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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점심무렵이었다.
무슨 일인지 상범의 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장 선생님, 통나무집 잔디 밭에 나는 풀을 뽑으러 가려고 해요." 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세요?" 하기는 했지만 기로는,
'뭐, 그런 일로 굳이... 전화로 신고까지 해온다지? 그냥 와서 풀을 뽑으면 될 텐데......'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서 상범 처는 조카와 차를 타고 도착했다.
그런데 김치를 한 통 담가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김치 때문에 미리 전화를 걸었던가 본데, 미리 떠벌이지 않고... 불쑥 김치를 내놓는 상범 처를 보면서, 기로는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김치야 기로 형수와 누님이 번갈아 가면서 가져오거나 보내줘서... 모자람이 없지만, 어쨌거나... 혼자 사는 남자라고 신경을 써 준 것이라,
"뜻밖의 커다란 선물을 받아서, 뭐라... 감사할 줄을 모르겠네요." 하는 인사 끝에, "그렇지만 다음엔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군산의 형수님이 김치를 담가다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 김치는... 아주 맛있게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근데, 장 선생님, 애들 아빠 얘길 들으니, 요즘... 쟤(격) 짝을 찾아주려고 한다면서요?" 하고 격을 가리키면서, "그 문제 때문에도 제가 왔는데..." 하면서 하는 얘기가,
둔터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러니까 '운암대교'를 건너지 않은 '산내면' 쪽에 자기네가 아는 진도개 집이 있다면서, 거기에 가면 좋은 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상범 처는 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 상범에게는 여전히 경계의 빛을 내비치는 격도 상범 처에게는 꼬리를 칠 정도로 친근미를 보내는 것을 잘 알던 기로는,
"아, 잘됐네요!" 하고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보다는... 제가 지난 번에 저 호수 건너에 있는 한 검은개를 봐두었기 때문에, 그 놈하고 짝을 지어줄까 했었는데요......" 하게 되었고,
"그래요?" 하던 상범 처가, "어쨌든... 한 번 가 보세요." 했는데......
지난 번 구 병태가 왔을 때, 호수 건너편 산길을 가보려고 가다가 기로는 격과 똑 같이 생긴 검은 진돗개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기로 자기 자신의 개만 검은 색인 줄 알았는데, 그와 똑 같은 개가 있다는 사실에... 며칠 전 박 만석과 강진 장에 갔다가 호수 건너편에 산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 개가 숫캐라는 간접적인 확인까지 해두었던 터라... 격의 신랑감으로는 적격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그 집에 가 교섭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새로운 후보가 나타난 것이었다.
아무튼 점심을 먹은 뒤, 기로 처는 바로 자기 조카에게,
"나는 풀을 뽑고 있을 테니, 그 사이에... 여기 장 선생님을 모시고 호수 건너편에 갔다 와라." 하는 편의까지를 제공해 줘서,
"격, 니 배필을 물색하러 다녀오마." 라는 말을 하면서, 일단... 기로는 그 차를 얻어 타고 호수 건너편의 검은 진도개를 찾으러 갔다.
그러나 찾아 간 그 집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울타리 넘어 마당 구석엔 그 전처럼 하얀 색과 새카만 색 개 한 마리씩이 묶여있었는데,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짖는 개가... 아닌 게 아니라 여간 탐스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암캐인지 수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거리여서, 이웃에게 물으니...
"그 집 사람들이 일간 모양이네요." 하면서, 근처의 친척집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기로는 그 친척집까지 가서 그 집의 전화번호를 알아오긴 했다.
그렇게 돌아온 뒤 상범 처는 돌아갔고,
기로는 배를 탔다.
건너편 둔덕에 내릴까하다가, 그냥 절벽 쪽으로 노를 저어갔다. 그리고 배를 띄워놓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러면서 보니, 정미네 집 쪽 밭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서 기로는 서서히 그 쪽으로 배를 몰고 갔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산장 할머니였고 그 수수밭에서(산장 집 밭은 이쪽에도 있다.) 일을 하고 있었다.
배를 대 놓고 올라가는데, 정미가 기로를 발견하고는,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래서 기로도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는데,
"할머니, 뭐 하세요?" 하고 기로가 물으니,
"예, 수수 모종 좀 혔어" 하면서, "근디, 저그... 뽕나무에 가 봐. 열매가 다래다래 달렸든디, 아까웅게... 화가 선상이라도 따 먹어." 하기에,
"그럴까요?" 하면서 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밭가에 제법 큰 뽕나무가 있었고, 마을에 있는 것보다 씨알이 잘았지만, 맛은 훨씬 더 달았다.
그래서 기로는, 나무 가지를 잡아 다니면서까지 오디를 따먹었다. 마치 오디 따먹으러 그 곳에 들른 것처럼......
저녁을 해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여덟 시가 넘어가면 호수 건너 집에 전화를 하리라고 벼르고 있었기에, 시간이 된 것 같아... 전화를 거니 받지를 않았다. 그 뒤로도 10 분 20 분 차이로 몇 번을 걸었지만, 사람이 없는지... 계속 받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개 시집 한 번 보내기도 이렇게 어렵구나......' 하며 초조하게 있다가,
겨우 열 시가 넘어서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면서 기로가 본론을 말하는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우리 집 개도 암캔디요?"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까만 개끼리 교미를 시켜 그 새끼마저 까만 놈으로 낳게 하고 싶었던 기로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실망도 컸는데, 격과 닮은 새끼를 원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상실감이 컸던 것이다.
어제는 토요일이었는데, 군산에서 기로 조카 부부가 왔었다.
기로는 그들과 점심을 먹고,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왔다.
그런 뒤 그들이 사온 수박을 평상에서 먹으려다, 전날 자신이 뽕나무 아래에 사다리를 놓고 왔던 것을 떠올리고는... 그걸 가져오러 갔는데, 오디가 새카맣게 열려있는 것이었다.
도무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어 기로가 조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삼촌, 우리도 오디를 따다가 술을 담고 싶은데요?" 하기에,
"그럼, 같이 가자!" 하고는 함께 가서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줄기마다 까맣게 달려있는 오디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요 근래 그 쪽을 오가며 기로가 몇 번 오디를 따먹긴 했지만,
"야, 오늘처럼 이렇게 오디가 좋은 건... 처음 본다!" 하면서, 따기도 했지만 바로 열매를 따서 먹느라... 금방 양 손에 검은 자줏빛 오디 물이 드는 것이었다.
"정말, 오늘 처럼 푸짐하게 오디를 따먹는 것도 처음이다." 했지만, 어느새 소주 팻트댓병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로는 이미 몇 병의 술을 담궈 놓았기 때문에,
"오늘 딴 건, 정읍에 계시는 김 선생님께 갖다 드려야겠다." 하면서,
역시 팻트병 두 개를 가득 채웠던 조카가 돌아가는 길에, 그 차편에 기로는... 그 오디와 빌려 읽은 책 세 권을 돌려드리기 위해 김 선생님 댁으로 갔다.
그러다 보니, 이번 주말도... 다시 술 분위기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번엔 군산 최원장 부부가 오지는 않았지만, 전주에 사는 기로 후배 둘이 와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쏟아지는 잠에... 졸다가, 아들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 늦게 잠을 잤던 것으로,
아침 7시 경에 일어났던 기로는, 조용히 선생님 댁을 나왔다.
역시 술이 취해, 기로 보다 조금 늦게 잠 자리에 들었을 선생님과 그 후배들은... 오늘이 일요일이라,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머리도 띵하고 속이 쓰려, 간밤에 술 마신 게 후회되기도 했지만, 기로는 천천히 걸어서 정읍 시가지로 나왔다. 그리고 시내 한 지점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거기서 '정자리' 행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만 했는데, 20 분쯤 뒤에는 '칠보'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일단... 그 걸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오늘, 상범이 '夢想?'에 온다고 했는데......' 하면서는, 바로 상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도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던가 본데,
"너, 오늘 오냐?" 하고 물으니,
"그럴 생각인데, 왜 이렇게 전활 걸었어?" 하고 묻기에,
"나, 지금 정읍에 있거든? 정자리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가 '칠보'에 도착해서 기다릴 테니, 날 데리러 올래?" 하자,
"알았다. 지금 준비하고 곧 출발할 게" 해서,
'그렇잖아도 몸이 안 좋은데, 상범이 데리러 오면... 잘 됐다!' 했던 건,
술 마신 후유증에 몸이 좋지 않은 기로 자신이 쉽게 '夢想?'에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상범의 차를 타고 가게 되면... '격'의 짝을 찾아다 주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약간 괴로운 몸으로 축 처져있던 기로는 20분을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랐고, '칠보'에 도착했다.
그런 뒤, 파리가 많아 짜증이 났던 정류소에 앉아 있었는데,
상범은 능숙하게 버스정류장에 닿았고,
둘이는 ' 산내면' 쪽 길로 해서... 이번엔 격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 지난번 상범의 처가 가르쳐주었던 진도개가 있다는 집을 찾아갔다.
그 집에 가서 보니, 물론 그 개는 검은 개가 아닌 '백구'였지만... 그 가족 중에 검은 개가 있다는 '백풍이'라는 숫캐를 '격의 신랑감'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남의 집 개를 그냥 데려올 수는 없어서, 더구나 기로와 상범은 그 개에겐 처음보는 낯선 사람들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집 주인(여자)까지 셋이서 개를 데리고 '夢想?'에 돌아왔던 것이다.
농담
드디어, 격의 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 짝을 '夢想?'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개들의 짝짓기를 위해서 2- 3일 빌려온 것이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냐구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어리벙벙할 정도거든요?
그 일이 하도 물 흐르듯 쉽게 성사가 되어서요......
며칠 전에 격의 짝을 찾으러 호수 건너에 갔을 때, 마침 우체부가 주인 없는 집에 찾아갔던 내 얘길 듣더니.. 그런 개가 마암분교를 지난 또 한 집에 있다는 얘기를 하드라구요.
그렇지만, 당시엔 그 검은 개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체부의 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검은 개가 있다고 해도, 그 개가 진돗개인지 다른 종륜지도 모르는데... 굳이 찾아갈 일까지는 없는 것으로 여겼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개가 암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실망과 함께 다른 방법이 없게 되자,
나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어쩐지 거기도 한 번은 가 봐야만 할 것 같아서... 수소문하여 그 집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일도 우연히 벌어졌던 것인데,
오늘 친구가 '夢想?'에 왔기 때문에, 그의 차를 타고... '한 번 알아나 보자'며 갔던 일이,
개를 데려오는 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마암 분교'를 지나 움푹한 곳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지나다 보니 진돗개로 보이는 하얀 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친구가 주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풀어 놓은 그 개가 짖는데도 친구는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고, 개를 키우면서도 아직 겁이 많은 나는... 그냥 차 안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집 안을 바라보며 몇 마디를 나누던 친구는 날더러 오라고 부르드라구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야, 아깝게도 좋은 신랑감을... 놓쳤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아본 즉, 그 집에 온몸이 검은 좋은 진돗개 숫놈이 있었는데... 두 달전 쯤에, 집을 나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만 들어도,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어쩌면... 그 개와 친숙한 사람이, 개가 너무 탐이 나니까... 사람이 없는 틈에 그 개를 끌고 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그 집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있는 개들은 다 그 가족이거든요." 하면서, 집 뒤의 철창으로 된 개집에 들어있는 댓 마리의 진돗개를 더 보여주었는데요,
그 중에는 격처럼 까만 개도 두 마리나 더 있었고, 나머지는 하얀 개로 두 종류드라구요.
근데, 밖에 돌아다니는 흰 개만으론 별 느낌이 없었는데... 개장 안의 개들을 보니, 이 집 개들은 정말 족보가 있는 것 같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 암캐뿐이드라구요.
그래서 얘기 끝에 알고 보니,
웬걸?
내가 지난 번 호수 건너에 찾아갔던 검은 암캐도, 원래 이 집에서 가져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답니다.
그러니까, '원조'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는 대뜸,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세요." 하면서, 우리에게 본인이 직접 따다가 엑기스를 추출한 솔잎에다 시원한 물을 타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술 때문에 속이 불편했던 나는 연거푸 두 잔을 마셨고, 그런 사이에 내 친구와 이런저런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니... 아주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전주가 집인데, 이 곳에 집을 사 놓고 전원생활을 즐기시는 분이란 말과 함께... 마당에 가꾸어 놓은 꽃 등에서도 정성과 부지런함이 배어있는 것까지도 느껴지드라구요. 게다가, 처음 본 우리들에게도 전혀 경계의 빛이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그러니까 놀랍도록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남자라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토록 마음을 열어놓지는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분을 보면서 나는, 나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면서도 선한 그 마음씨에 감동까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마음이... 굉장히 열려진 분이군요." 했더니,
"절더러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우리집 양반도 늘 그게 염려스럽고 불만이라고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람인걸 어쩌겠어요?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하 하 하..." 하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대화를 하다 보니... 조심스럽던 내 입장도 많이 편해져 있었는데요,
그 아주머니는 우리 사정 얘길 듣더니,
"그래요? 근데, 저(마당에 돌아다던) 개도 숫캔데... 비록 검은 색이 아닌 백구로 생긴 건 저렇지만(지금 털을 가는 중이라 볼품이 없다고 했슴) 족보있는 진돗개 가문이고, 영리 하니(집안에 주인이 있을 경우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허용하지만, 집안에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도 집안에 발을 못 들여놓게 한다고 함), 저 녀석과 짝을 맞춰주어도 될 거 같은데요?"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귀가 번쩍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개를 데려오던지 아니면 그 녀석을 우리 집으로 한 2 -3 일 데려다 놓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하더군요.
그 말도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마을 분들이 나에게는...
"혹시 격의 짝이 될만한 개를 발견했다 해도, 그 개 주인이... 뭘 요구할지 모르는디..." 하는 얘기를 해서, 그 문제가 마음에 걸려있었거든요. 뭔가 사례를(새끼를 난 다음에 한 마리를 준다던지, 아니면 일정한 돈으로 대가를 치룬다던지 하는...) 해야만 한다는 일 말이지요.
물론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그런 문제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는데,
그런데, 우리 쪽에서 부탁 말을 드리기도 전에... OK는 물론이고, 개를 데려가도 된다는 말까지 하니...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됐다지?' 하고, 놀랍기도 반갑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 우리 같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개를 맡기시려구요?" 했더니,
"사람을 믿어야지요."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주머니 혼자 결정해도 됩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글쎄요. 우리 집 양반(일이 있어 전주에 머물고 있다는)한테 혼날지도 모르지만, 그 문제는 걱정마세요. 제가 잘 구워 삶을 테니..." 하는 것입니다.
'참,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 아주머니는 참으로 드물게 대범하면서도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이로구나......'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감탄을 하고 말았답니다.
'남자인 나도 저렇지 못한데......' 하며, 자꾸만 나는 그 아주머니와 비교까지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내 소심함이 부각되기까지 하드라구요.
아무튼 그렇게 얘기가 되어, 개를 차에 싣고 오게 되었는데... 어차피 우리는 타인인지라 개가 안 따라올지(이 개는 그 사이 우리와 조금 친해졌는지 꼬리를 흔드는 등 친근미를 보임)몰라, 주인이 개와 함께 가는 방법에 대해 얘길 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아주머니께서 같이 가주시면... 다시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부탁하자,
"옷차림이 이래서..." 하면서도, "그러지요." 하고 준비를 하드라구요. 마침, 외손주라는 어린 아이도 따라가겠다고 나서서, 우리는 모두 차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차 안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보니, '내가 빈곤하게 사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배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문구가 있길래... 저는 그 말을 가슴에 간직하며, 사람들에게 덕을 배풀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도... 그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답니다.
아무튼, 그 아주머니는... 참 재미있고도 드문 분이드라구요.
아무튼, 개를 발견한 기쁨에다... 그런 사람을 안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백풍'이라는 이름의 개를 데리고 오니,
두 개가 약간의 경계의 으르렁 소리가 내다가... 이내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린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이 흐뭇했는데,
잠시 우리는 호숫가 평상에 앉아, 내가... 어제 조카가 사왔던 수박을 내와서 먹고 있는데,
키큰 아저씨가 오시드라구요. 그래서,
"이리 오셔서 수박 좀 드시지요." 했더니,
그렇게 같이 자리한 키큰아저씨는,
"근디, 이 아주머닌 누구신디..." 하시기에,
나는 '夢想?' 쪽을 가리키며(개 두 마리가 나란히 있는 걸 보시며 모든 상황을 파악하던 아저씨께),
"우리는 '개 사돈'입니다." 했더니,
한 순간 모두가,
"와 하 하 하..."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개 사돈' 이라......
그런 말도 있습니까? 뭔가 이상한가요?
개 한 쌍을 결혼시키는데, 양쪽 개의 주인들이니... '개 사돈'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을 해 놓고서도,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그 분께 실례를 한 건 아닌지...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만, 일단은 모든 사람이 박장대소를 하니... 좌우간, 웃음으로 넘어가고 말긴 했는데요,
그 아주머니도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다행이었습니다.
'개 사돈' 이라......
내가 말을 너무 함부로 한 건 아닌지, 그러니까 그 분께 실례를 한 건 아닌지... 하는 우려로 사전까지 찾아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다만, '개'가 접두어로 들어가는 말은 일반적으로, 야생적이라거나 변변치 못한 일에 사용한다는 풀이가 되어있드라구요.
'개 살구'나, '개 꿈', '개 소리' 등등......
그러니까 진짜라는 '참'과는 반대의 뜻이니, 결코 좋은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 그 아주머니께 죄송했습니다.
전혀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아니... 오히려 그런 드물게 마음이 열린 사람에 대한 경의에 차 있기까지 했었는데,
그저 순간적으로 튀쳐나왔던 농담으로 실례를 저지른 건 아닌지......
그래서 다음에 개를 데려다 주면서는, 정중히 사과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답니다.
물론, 이 일과는 상관없이(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놓았었음)... 감사의 의미로 내 조그만 판화 한 점을 갖다 드리면서 말입니다.
6 . 22
그런데 기로는 점심 무렵에 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근디, 그렇게 밥도 안 먹고... 소리 없이 가버려서 섭섭혀!" 하더니, "가는 길에, 된장도 좀 보내려고 했는데... 그냥 가서 어쩐대?" 하고 나무라는 투여서,
"격이 신랑감을 구하러 가느라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나왔던 겁니다." 하고, 얼른 화제를 돌리자,
"그려? 구했어?"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예, 백군데... 아주 영리하다네요." 하자,
"잘혔고만!" 하고 깔깔깔 웃으면서 좋아하는 본심을 감추지 않았다.
"예, 선생님. 기대하십시오. 격이 새끼를 낳으면... 선생님께 갈 것도 생길 겁니다." 하는 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오후가 되자 상범은,
"오늘은 나도 좀, 여유를 갖고 싶다!" 하면서, 아까 개의 주인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사왔던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기로는 전날 정읍의 김선생님 집에서 마셨던 술의 후유증 때문에 상범과 함께 하지 못했는데,
그 얼마 뒤에 키큰 아저씨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상범과 합석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하지만, 나... 한 숨 자야겠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하고 양해를 구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쯤 기로가 잠을 잔 뒤 나가 보니,
상범은 어느새 술이 취해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약간 횡설수설 하더니, 급기야...
"배 좀 타야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랐던 기로가,
"야! 무슨... 술을 먹고 배를 탄다는 거야?" 하고 짜증을 내면서 말렸음에도,
"괜찮아! 그리고 뭐, 내가 취한 줄 아냐?" 하면서 호수로 가는 것이었다.
"너, 정말... 말 안 들을래?" 하고 기로가 막아나섰음에도 범상은 고집을 피웠고,
'나도 술을 마시면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로는, '정말, 나도... 앞으로는 술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술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었던 상범은 통나무집에서 자고, 기로는 멍- 한 상태로, 후텁지근한 밤을 맞았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니, 오늘이 하지라고 했고,
"내일부터는 장마권에 접어듭니다." 하는 뉴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