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과 초코파이 이야기 1/2
개성공단 사업추진 경과
2000.08 현대아산-북한간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채택
2002.11 北,「개성공업지구법」제정
2003.06 개성공단 1단계(100만평, 330만㎡) 개발 착공
2007.06 개성공단 1단계 2차 기업 분양(183개 기업)
2013.04 北,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
2013.05.02 잠정 폐쇄
2013.09.16 개성공단이 재가동
2016.02 개성공단 전면 중단
2020.06.16 북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 철거
간식으로 초코파이 공급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출퇴근 버스가 없어서 걸어서 출근하고, 일을 하다 보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체력 유지를 위해 간식이 필요하였다. 개성공단은 애초에 국내 법정 근로 시간인 8시간을 근무하게 했으나 노동자들이 체력이 약해서 근무 시간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측에서 북측의 부실한 영양 상태를 걱정하여 점심 식사 제공을 제의했지만 다른 주민과의 형평의 차이 때문에 양측이 절충하여 밥은 북측에서, 고깃국은 남측에서 제공하였다. 국물은 식사로 먹지만 고기는 가족을 위해 비닐봉지에 싸서 가는 경우도 있었다.
또 기업이 잔업을 시키고 임금을 더 주고 싶어도 북한에는 그러한 제도가 없었다. 그래도 서로가 합의해서 잔업에 대한 추가 수당을 현금이 아닌 ‘초코파이’로 지급하기로 하였다. 한국산이며, 비싸지도 않고, 크기도 작고, 맛있고, 열량 덩어리이며, 한국에서 생산량이 많으니까 물량이 딸릴 일도 없으니 최적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야근에 대해 '초코파이'를 현물로 주기로 합의하였다. 나아가 간식도 초코파이를 현물로 주었다. 간식과 야근의 대가로 처음으로 초코파이를 하루에 2개씩 지급하였다. 대개의 노동자들이 지급되는 초코파이를 먹기보다는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그것이 장마당으로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당시 공급 상황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개성에서 현지 인력을 이용한 경제협력 사업의 현장이었다. 2003년에 개성공단을 착공하여 2004년에 건설을 완료하게 되고 2005년에 기업의 입주를 시작하였다. 당시 입주한 의류 봉제업체들에게는 일거리가 많아지고 주문 수량이 늘어나므로 야근이 불가피하였다. 2005년 일부 기업에서 북한 노동자들에게 간식용으로 나눠주기 시작한 초코파이는 입소문을 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대부분 업체의 공식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 공단에 취업한 북측 근로자들에게는 간식으로 각각 초코파이가 2개씩 지급되었고, 야근자들에게는 하루 2~3개씩 지급되었는데, 야근 일수가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하루 5~7개씩으로 늘었다. 그래서 북한 노동자에게 한 달에 주는 초코파이는 한 사람당 최소 100개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개성공단에서 소비되는 초코파이 수가 한 달에 600만 개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개성공단에 북한 근로자가 5만 3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 반입된 초코파이의 수가 상당했다.
2007년 월 50만 개씩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초코파이는 불과 5년 만에 10배 이상으로 공급량이 늘었다. 2011년 초 오리온과 롯데제과 등 2대 기업이 매달 제공하는 초코파이만 413만 개로, 유사 제품까지 총 600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헤럴드경제, 2011.07.29). 통일부가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2011.6.29),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하루에 지급받는 초코파이 숫자가 2~3개에서 최근 5~7개로 늘었다. 야근을 하면 2개 더 주는 등 수당 개념으로 추가 지급하였다.
당시 개성공단에는 300-400명의 한국인과 약 5만 3000명의 북한인을 고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림으로 약 5만 4000명의 직원들이 매일 20개의 초코파이를 받고 있었다는 계산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매일 40~50만 개의 초코파이가 개성공단으로 유입되었다 설이 있다. 개성공단에 북한 직원이 대략 5만 명 정도 일을 했다고 하니, 최대로 공급되었을 땐 매일 1인당 10개씩 뿌려졌다는 추산이다.
초코파이는 짭잘한 부수입(fringe benefit)
공급한 초코파이는 대개가 먹어없애기 보다는 집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간식용으로 지급을 했는데도 일하는 장소나 사무실에는 초코파이를 쌌던 빈 봉지가 모아지지 않았다. 까닭은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실패한 스탈린주의 유토피아’라는 저서에서 초코파이는 한국의 번영과 정교함, 진보를 상징한다고 썼는데, 그가 회고하기를 소련 시절의 서방의 캔 맥주가 소련에 처음 들어 왔을 때처럼 초코파이는 주변 세계의 풍성한 미식과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북한에서는 귀한 간식이나 기호품인 커피, 과자, 라면을 매일 맛볼 수 있게 되었고, 더구나 그 간식을 장마당에 가져가 팔면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초코파이 암시장이 만들어지고 급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초코파이는 장마당에서 최고 인기 간식이라 몇 십 배의 가격으로 팔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매달 250만 개의 초코파이가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고, 또 매일 15만 개에 달하는 개성 초코파이가 북한으로 들어갔을 갔을 거라는 설도 있는데 이러한 야설은 모두가 초코레트와 관련된 암시장의 규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임금을 받는 개성 근로자들은 초코파이를 팔아서 그들의 빈약한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는 부수입(fringe benefit)이었다. 여기서 저임금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비록 북한의 노동자들의 현지의 임금보다는 개성공단이란 꿈의 직장에서 받는 임금이 현지 임금수준 보다 훨씬 많은 고액이라 하더라도 한국의 노동자들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금액이란 뜻이다. 다른 하나는 실 수령액이 낮다는 것이다. 현지의 임금보다 개성공단의 임금이 높으면 북측의 현지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의 차이를 고려하기 위해 임금차액의 일부분을 정부나 공공기관의 수입으로 하고 차액을 지급하는 경우처럼 노동자의 높은 임금이라도 그 실 수령액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카투사들의 봉급과 국군의 봉급관계에서도 그랬었던 것과 같다. <다음에 계속)
* 더보기: ‘초코파이와 개성공단’,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5, 강역의 기억, 영토의 변경, 한국문학방송,
2023.02.01.: 183~187 http://dsb.kr/ebooks3/ecatalog5.php?Dir=XVOLY6P8815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