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존칭은 생략하자.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그런 거 붙이지 않아오지 않았으니까. 노무현이 다녔었던 진영 대창 초등학교 맞은편 진영 노인 대학은 엔간히 정들었던 곳인데, 거기 학생들 중 제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그저 노무현이었다. 그러니 우리 이웃에서 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도 ‘이명박’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예사롭게 듣는다. ‘대통령’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시피 됐다.
내가 올해 일흔이다. 이 나이인 내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란 말을 일상에서 기대하긴 글렀다. 그저 석 자 ‘김대중’ 뒤에 폄하하는 말을 안 덧붙이는 것만도 다행이랄까. 그래도 요즈음은 가끔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말이야. 서로 종교가 달랐다던데? 가톨릭과 개신교…….”
하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약간의 호감은 그의 종교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나의 교우였으니까. 민주화 투쟁 역사 추억은 이미 뒷전이다.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정두언 의원의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다. 그는 그의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역대 총리 중 밥값을 제대로 한 총리로 이회창과 이해찬을 꼽았다. 그 외에는 그저 대독 총리 정도로 치부했고. 나로서도 이 둘의 이름이 발음하기도 듣기도 비슷하다는 데서 특별히 묘한 느낌을 갖는다. 까짓 ‘총리’를 떼버리면, 이 ‘회’와 ‘해’의 ‘중간 발음’으로 가운데 자를 얼버무리고 마지막은 ‘창이’라 함으로써 갖게 되는 혼란이 즐겁기까지 하였다.
그 둘에게 얽히고설킨 일화가 있다. 나의 사적인 것에 국한시키려니 밋밋하고 재미없게 시작되고 끝나려나, 지레짐작부터 한다. 공적인 문제로 둘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면? 약간 파장을 몰고 올지 몰라도 글쎄 내 표현력으로 감당하기 버거우니 꽁무니를 빼자.
이회창 자유 선진당 전 총재, 굉장한 인물이었다. 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실세를 휘둘렀다. 수틀리면 대통령과도 맞서고 그러다가 결국 목이 날아갔다. 그러나 뒤에 한나라당의 총재로 선출되었고 대통령에 두 번이나 출마한다. 만약 그가 대통령을 한 번이라도 역임했다 치자. 뭔가 달라졌겠지. 그는 ‘대쪽’이었으니까.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잣대는 오직 법이라는 그가 무서웠다. 교감이 무슨 큰 비리가 있을까마는 행여나 승진을 못할까 싶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두어 해 뒤에 가락 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부산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는…….공교롭게도 학교 주소지가 부산 북/ 강서을 국회의원 선거구에 들어 있어서 총선에 출마할 후보자들의 관심 ‘사거리(射距離)’에 들 수밖에.
어느 날 중고등학교 후배인, 허태열 위원장이 교장실로 찾아왔다. 서른아홉 살에 충북지사를 지낸 바 있는, 행정고시 관료 출신……. 어찌나 깍듯이 대하는지 나는 그때부터 그를 지지해 왔다. 상대는 노무현 부총재. 이런저런 세상사가 둘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마침내 일어서려 하는 그 앞에서 내가 뱉은 말!
“이해(혹은 회)창이 그 작자 말이오. 아주 못되어 먹었어요.”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몇 마디 품위 없는 말을 보탰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더니 항의를 하는 게 아닌가?
“선배님 우리 당 이 총재를 욕하시다니요, 그분 앞으로 대통령 될 사람입니다.”
그제야 나는 이해찬이라고 바로잡고, 그에게 맺혔다가 아직 풀어지지 않는 우리 대다수 교육 동지들의 ‘구원(舊怨)’을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그는 교육자 정년을 -3으로 단축시킨 장본인이다. 나 자신만 하여도 교장 직만 8년에서 5년 반으로 줄어들지 않았는가? 나는 어림짐작으로 대강 1억 원쯤은 손실을 볼 거라며 불만을 털어 놓을 수밖에.
사실 교장 자격 연수를 받을 때만 해도 그랬다. 1,014명인가 되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 온 예비 교장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해찬’ 이름 석 자를 입에 달고 지냈다. 이야기 중간이나 끝에 욕지거리를 마구 뿌렸고. 이미 그때에 초 중등학교 교원들의 정년은 책상 위의 공론이 아니었다. 나아가 정년이 1년도 남지 않은 상당수는 자격만 주고 임용을 하지 않는다는 이해찬의 복안에 희생되어야 할 처지에 놓인 동료도 있었다.
어느 시도 교육감은 이런 봉변을 당했더라나? 장관실로 가서 한창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해찬 장관에게 눈치를 보다가 겨우 한 마디 건넸다. 자기 시도에서 정년 1년 미만인 연수자 몇몇은 구제(?)하겠노라고. 장관은 단번에 얼굴 표정부터 바뀌더니 벽력같은 고함!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해 보오.”
이해찬이 누군가? 수틀리면 부하의 뺨따귀까지 갈기는 사람이 아닌가. 교육감은 코를 싸매고 돌아서고 말았더란다.
듣고 있던 허태열 위원장이 말했다.
“해서 총재님이 당선되셔야지요. 교원 정년을 원 상태로 돌리는 게 공약 중 하나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다가 나는 강서 노인 학교 1학기 방학식에서 노무현과 허태열 등과 조우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무현을 이기고 허태열이 당선된다. 그러나 대선에서 이회창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일찌감치 옷 벗을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여기서 잠깐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본다. 그리고 서둘러 결론도 짓자. 만약 이해찬이 아니었더라면, 다시 말해 그가 교원들의 정년을 단축시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서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으리라. 퇴임 2년을 앞두고 큰 병을 얻어 마침내 식물 교장으로까지 전락해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2004년 8월 말(末)을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물론 묘한 변수도 도사리고 있어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머무르다 46년을 꼬박 채우고 물러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뒤의 그런 불쌍한 생존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음을 더 강조해 무엇할까? 차라리 온전히 죽는 게 낫지.
이회창 대신 노무현이 대권을 쥐고, 이해찬은 승승장구하여 국무총리에 오른 것은 내 개인으로 봐서는 축복이고도 남는다. 그런 저런 사연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고, 노무현의 모교를 들락거리고 그 맞은편 노인학교 강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지 않은가?
한데 나는 가끔 스스로 생각해 봐도 괘씸하다는 느낌이 될 정도의 놀부 심보에 시달린다. 궤변으로 연결하면서. 내친김에 감히 늘어놓자. 이회창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대권을 못 잡은 그에게 안타까움을 보낸다. 이해찬은? 그러나 그의 종교를 알 수 없으니 함구할 수밖에. 고마운 그였는데……. 묘하게도 양(兩) 이(李)는 아직 정치 현장에 있다. 그런데도 내가 언필칭 종교 간의 불목 해소라니 부끄럽다. 쩨쩨하다 못해 괘씸함에 휘둘리다니. 뭇 이웃들로부터 내동댕이쳐질 때가 되었나?
오늘 밤은 찬송가며 찬불가를 실컷 불러야 할 것 같다. 이해찬의 종교를 생각해서라도, 그런 채찍질이 있어야 하리라. 그럼으로써 종교에 대한 가면을 쓴 자책감을 약간은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