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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8구간 제3부
당촌마을-수한마을-매천로-
용전마을-방광마을-참새미골
20260707
1.원사봉 자락 수한마을의 아름다운 돌담과 감나무
1주일 만에 지리산둘레길 18구간을 탐방하기 위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 다시 왔다. 지리산둘레길 구례 구간에서 오미-난동과 오미-방광 구간은 구례 지역을 순환하는 탐방로이다. 지난 번 오미-난동 구간은 구례 지역의 섬진강과 서시천을 따라 토지면, 마산면, 구례읍, 용방면, 광의면의 들녘을 탐방하였다면, 이번 오미-방광 구간은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지역의 지리산 서쪽 산자락길을 따라 화엄사 화엄계곡과 천은사 천은계곡을 지나 천은계곡 아래 광의면 방광마을 참새미골에서 마친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는 오미-방광 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과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을 잇는 12.3km의 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구간은 전통마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구간 중 하나이다. 오미마을과 상사마을에서는 운조루, 곡전재, 쌍산재 등 고택의 정취와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화엄사 아래 지리산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자원과 역사를 살피고, 종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구례분지를 조망하며 농로와 숲길을 주로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다. 구간별 경유지와 거리는, 오미마을 운조루 (1.1km) 용두갈림길 (1.6km) 상사마을 (5km) 지리산탐방안내소 (3.2km) 수한마을 (1.4km) 방광마을이고, 전체 거리 12.3km, 예상 탐방 시간 5시간, 난도 中이다." 지리산둘레길 18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3부(당촌마을~참새미골) :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곰사육장 시설물에서 남쪽으로 내리벋는 원사봉 능선의 숲을 가로질러 광의면 수월리로 넘어가 원사봉 기슭의 임도로 내려갔다.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9.1km를 걸어왔으며, 광의면 방광리 참새미마을까지는 3.2km 거리가 남아 있다. 이제부터는 원사봉 기슭의 임도를 따라 광의면 수월리 수한마을 갈림길까지 이어가는데, 임도는 당촌마을 위쪽의 언덕으로 굽이돌아가기에 당촌마을을 상세히 살필 수 없다. 그 대신에 남쪽의 계족산과 오산, 구례군 마산면과 용방면 들녘, 그리고 구례읍 시가지를 조망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당촌마을을 내려보는 임도의 언덕에는 아름다운 민가가 자리하고, 감나무밭이 펼쳐지며, 구례 지리산리조트 건물이 상부 모습을 보여준다. 당촌마을 위쪽의 풍경을 살피며 잘 조성된 수로와 함께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간다. 대나무숲을 지나 풍경이 열리는 임도 아래 넓은 터에 기와 지붕 건물 두 채가 있으며, 그 위쪽에는 납골묘가 있다. 저 건물은 사당일까? 사당이 아니라 황토정사 사찰이었다. 황토정사를 지나 굽이도는 임도를 따라 노랗게 죽어가는 대나무숲과 개망초 묵밭, 농부가 농약을 뿌리고 있는 고추밭을 돌아가면 서남쪽으로 풍경이 활짝 열린다. 서시천 동쪽에 마산면과 광의면 들녘이 펼쳐지고, 그 서쪽에 구례읍과 용방면이 자리하며 그 사이로 서시천이 남쪽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17구간 탐방 때 걸어간 길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남쪽에는 오산과 계족산, 호남정맥 백운산 줄기가 가늠되고, 동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에서 서남쪽으로 갈래치는 지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이 당촌-수한 임도에서 풍경 조망이 가장 좋았다.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지역에서는 원사봉(院絲峰)이 가장 중요한 산봉우리로 보인다. 지리산 종석대에서 차일봉을 거쳐 원사봉으로 내리벋는 능선은 화엄사의 화엄골과 천은사의 천은골을 경계하는 능선으로,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산길이 원사봉 아래 원사재라고 한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갈래치는 지능선은 원사봉 능선 외에도 마산면 마산리와 황전리의 경계를 이루는 화엄골의 무넹기 능선, 토지면과 마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문수골의 노고단-형제봉-월령봉-삼밭재 능선이 있으며, 원사봉은 광의면 수월리와 방광리 지역을 내려보며 북쪽의 간미봉과 호응하며 천은골을 이루는 것 같다. 지난 시절의 지리산 산행 추억과 이번 지리산둘레길 탐방이 이 풍경들을 더 구체적으로 실재하게 한다.
광의면 수월리 지역의 마을은 당촌마을과 수한마을, 월곡마을 등 세 자연 부락이 있는데, 당촌마을과 수한마을은 원사봉 자락 남쪽과 북쪽에, 월곡마을은 서쪽 들녘 광평저수지 아래쪽에 자리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이 세 마을 중 수한마을을 통과한다. 당촌-수한 임도에서 골짜기의 대나무숲 사유지를 통과하여 수한마을 입구 송죽정 카페로 내려갔다. 여러 장식물들이 복잡하게 꾸며진 것이 아름다움일까? 아름다움은 각자의 안목에 따라 다른 것이니 길손의 눈에는 이 풍경이 어수선함으로 비쳤다. 수한마을의 아름다움은 돌담길에 있다. 정성스럽게 쌓은 오랜 세월의 돌담이 골목길로 이어지고, 나이 든 감나무가 돌담과 어우러져 그윽함으로 빛난다. 이 풍경에 감탄한다.
수한마을은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벽화가 장식된 농촌마을이 보편화되어 벽화가 장식되었다고 하여 그 마을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을을 고유하게 드러내는 벽화가 마을의 아름다움이며, 그 고유성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담벽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인공물 담벽이 서로 조화하지 못하고 어수선하여 벽화를 장식하고자 한다면, 보편적이지만 고유한 특성을 반영해야 할 것이고, 깨끗함을 유지해야 한다. 수한마을의 벽화는 최근에 장식한 것인지 비교적 깨끗한 모습으로 길손의 마음을 환하게 비쳐준다.
수한마을회관 옆 500년이 넘는 당산목 느티나무와 마을정자를 지나서 수한마을 넓은 들녘을 가로지르는 농로인 수한1길을 따라 마을 밖으로 나간다. 수한1길은 길게 이어지고, 앞쪽은 거칠 것이 없이 열려 있다. 천은저수지와 천은사 천은골이 북쪽에 보이고, 그 서쪽에 참새미골과 방광마을, 그 북서쪽에는 산동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초봉이 솟아 있다. 17구간 탐방 때 지초봉 아래 온당리 난동마을로 올라가며 살핀 박용래의 시 '모과차'와 '추일'을 적은 벽화가 눈앞에 나타난다. 감동이 컸었다. 서시천 너머에는 구례 산간분지를 형성하는 산성봉, 요강바위산, 천황봉, 형제봉이 이어지며, 남쪽에는 봉성산과 구례읍 시가지, 병방산과 오산, 계족산과 국사봉, 호남정맥 백운산 산줄기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동쪽 지리산 주능선에서 갈래치는 지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구례 지도가 마음 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길게 이어진 수한1길 서쪽 끝에 매천로가 있다. 매천로 남쪽의 수월리 월곡마을에 매천 황현의 위패를 봉안한 매천사가 가늠되며, 그 앞으로 매천을 기리는 매천로가 지난다. 매천사를 지난 매천로는 수한리와 방광리의 경계를 이루며 수한마을 입구를 가로질러 북쪽 천은사 삼거리로 올라간다. 오래 전에 이 길을 승용차로 지났었다. 지난 시절 여름날 가족과 함께한 매천사 탐방의 추억이 떠오른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오른 뒤 천은사를 들러 천은사를 둘러보고 선방에서 차를 마셨다. 스님의 이야기는 잊혀졌으나 비내리는 여름날의 선방 추억은 선명하다. 천은사를 나와 매천사를 탐방한 뒤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와 하동 화개장터로 내려갔었다. 그때의 추억이 아른거려 매천사를 가늠하며 머뭇거렸다. 매천사에 다녀올 시간이 부족하다. 그의 절명시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어렵구나."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매천로를 가로질러 광의면 방광리로 넘어가 방광리 들녘의 농로 용전길을 따라 방광마을로 올라간다. 17코스 탐방길의 광의면사무소와 광의초등학교가 눈앞에 가늠되고, 남쪽에 방광저수지가 보이며 그 아래쪽에 매천사가 가늠되지만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방광리 용전마을을 지나 천은골 아래 참새미골에 자리한 방광마을로 올라간다. 지리산 천은골 왼쪽으로 간미봉 능선, 그 위쪽으로 시암재 능선이 가늠되며, 간미봉 능선 북서쪽에 지초봉이 간미봉을 마주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탐방 덕분에 구례군의 북쪽 지형이 확인된다. 19구간 탐방은 간미봉-지초봉 북쪽 능선의 구리재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으로 넘어가 원촌리 산동면사무소에서 마치게 될 것이다.
방광마을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당산목 느티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다. 그들 중에서 마을 입구 마을정자 체력단련장의 세 그루 당산목이 방광마을을 대표한다. 마을정자 처마 밑에 종석정(鍾石亭) 현판이 붙어 있고, 주련은 왼쪽부터 "放光子孫萬歲榮방광자손만세영 鍾石齋人千年壽종석재인천년수 智異精氣受放光지리정기수방광 歲歲豊財(?)放光稿(?)세세풍재방광고"가 적혀 있는데 '財'자와 '稿'자는 불확실하다. 그 뜻을 대충 살피면 '방광의 자손 만세에 번영하고 종석재 사람들 천년을 장수하리. 지리산 정기는 하늘의 빛을 받아 방광에 내놓아서 세세토록 풍요한 재산 방광에 쌓이리.'
방광마을회관 옆 골목길을 따라 참새미마을로 올라간다. 민가의 출입구에 남근 형상의 바위가 세워져 있다. 이 바위는 민가에서 세운 바위일까, 방광마을에서 세운 바위일까? 가문인지 방광마을인지 그 부족한 양기(陽氣)를 비보(裨補)하는 남근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참새미마을 버스정류소에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고, 건너편 광의철쭉동산로 길가 언덕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18·19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광의철쭉동산로는 천은사와 성삼재 휴게소로 올라가는 길이다.
탐방을 마치고 참새미마을을 돌아보았다. 방광마을의 돌담길도 아름답지만 윗마을인 참새미마을의 돌담길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참새미마을 정자 앞에서 방광리 드넓은 들녘과 남쪽을 조망하였다. 탐방한 지리산둘레길과 구례 지역이 사랑스럽다. 박남준 시인의 시처럼,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 그루 푸른 나무를 몸 안에 숨쉬게 하는 것이고, 지리산을 모신다는 일이며, 결국 내 자신이 지리산둘레길이 되는 길이다." 나는 진정으로 지리산둘레길이 되어 걸었는가?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숨 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을을 걷는 길이란/ 그대 지금껏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 길/ 어찌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대 안에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 껴안아준다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것이야/ 어느새 가슴이 열릴 것이네/ 이윽고 눈앞이 환해질 것이네/ 그대가 바로 나이듯/ 나 또한 분별을 떠나 그대이듯이/ 그대와 나 지리산이 되었네/ 그대와 나 지리산둘레길이네" - 박남준(朴南濬, 1957~)의 ‘지리산둘레길’ 전문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1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28분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당촌(唐村)마을 소규모 급수시설(간이상수도) 취수원 옆을 지나간다.
오미 9.3km, 방광 3.0km 지점, 당촌마을 출입구에서 한우 축사 앞으로 이어간다.
한우 축사 앞에서 왼쪽의 원사봉과 그 오른쪽 아래 원사재를 올려본다. 원사재는 광의면 수월리와 마산면 황전리를 넘나드는 고개이다.
한우 축사를 지나서 감나무밭 앞에서 광의면 수월리 당촌마을을 내려보았다. 왼쪽 뒤에 계족산, 중앙 뒤에 오산이 보인다.
당촌(唐村)마을은 1,700년대 전주 이씨 2가구가 수한마을에서 이주 개기하였다. 그후 순조(1800년대 초기) 때 인동 장씨가 경상도 산청에서 이주하여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에 따른 직조기형(織造機形)의 명칭으로 옥녀봉, 총두재, 개자리, 구리실(꾸리실), 버드실(보디), 잠실, 돋트미(돋트머리) 등 산야곡명(山野谷名)이 산재되어 있어 사직골(沙織洞)이라 칭하다가 구한말(1897~1910) 세제 정립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당촌(唐村)으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구례군청
파란색 한우 축사를 지나 감나무 밭 앞에서 뒤돌아본다. 왼쪽의 원사봉 능선은 마산면과 광의면 경계를 이루고, 중앙의 무넹기 능선은 마산면 마산리와 황전리의 경계를 이루며, 맨 뒤의 형제봉-월령봉-삼밭재 능선은 토지면과 마산면의 경계를 이룬다.
당촌마을 위쪽 감나무밭 사이의 임도를 따라간다.
민가 앞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고, 왼쪽 앞에 구례 지리산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쉼터정자가 있는 민가 앞에서 원사봉(院絲峰)을 올려보았다.
앞쪽에 구례 지리산리조트 건물이 보이며 앞의 농로는 당촌마을로 내려가는 당촌1로이다.
민가 앞을 지나 당촌1길 앞에서, 왼쪽 뒤 무넹기에서 중앙으로 내리벋는 무넹기 능선과 맨 뒤의 형제봉-월령봉 능선을 돌아보았다.
오미 9.6km, 방광 2.7km 지점, 왼쪽은 구례 지리산리조트로 내려가는 길이고,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수로가 길게 이어져 있는 임도를 따라 굽이돌아 간다.
임도를 따라 수로와 함께 굽이 돌아간다.
수로의 틈에서 물이 새어나온다. 보수가 필요해 보이지만, 이 정도의 물은 풀숲에 뿌리는 게 좋은가?
굽이 돌아가는 임도를 지나 울창한 대나무숲을 지나간다.
대나무숲을 통과하면 풍경이 열리고 아래에 황토정사, 맞은편 중앙에 산성봉, 그 오른쪽 맨 뒤에 천왕봉이 가늠된다. 용방면 사림리 산성봉 오른쪽에 구례교육원과 그 아래 사림마을이 보인다.
오미 10.1km, 방광 2.2km 지점, 황토정사 출입구에서 한국통신로를 따라 나무숲을 통과한다.
하얀 무궁화꽃이 피어나는 한국통신로를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따라간다. 앞쪽에 노랗게 죽어가는 대나무숲이 있다.
굽이도는 한국통신로의 개망초꽃 흐드러진 묵밭 앞에서 중앙 뒤 구례읍 시가지와 봉성산, 왼쪽의 오산을 확인한다.
하얀 무궁화꽃 피어나는 곳에서 한국통신로를 따라 개망초 묵밭 앞을 돌아 고추밭 앞으로 왔다. 왼쪽 뒤에 원사봉이 솟아 있다.
한국통신로는 굽이돌아 서쪽으로 이어고,. 광의면 수월리 들녘 뒤쪽은 지천리와 대산리 들녘이다. 서시천 건너편은 용방면 사림리와 용강리, 용정리 지역이며, 맨 왼쪽에 산성봉, 그 오른쪽 맨 뒤에 천왕봉, 그 오른쪽 앞에 요강바위산, 중앙 맨 뒤에 형제봉이 가늠된다.
오미 10.4km, 방광 1.9km 지점, 한국통신로는 굽이돌고, 광의면 수월리 수한마을은 앞쪽 무성한 숲 뒤쪽에 자리한다.
서시천 동쪽에 광의면 수월리와 지천리 들녘이 드넓다. 중앙 뒤 봉성산 자락에 구례읍 시가지, 맨 왼쪽에 오산, 그 오른쪽 뒤에 봉긋한 병방산, 오른쪽에 산성봉, 맨 오른쪽 뒤에 천왕봉이 확인된다.
앞의 나무 왼쪽 뒤에 국사봉, 그 오른쪽 맨 뒤에 흐릿한 호남정맥 백운산 줄기, 중앙에 계족산, 오른쪽에 오산과 병방산을 확인한다.
왼쪽에 원사봉 능선의 원사재, 중앙에 지리산 무넹기 능선, 맨 뒤에 노고단 남쪽의 형제봉-월령봉-삼밭재 능선이 보인다.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원사봉(院絲峰)이 중앙에 머리를 들고 동쪽과 서쪽으로 능선을 갈래친다.
오른쪽 길은 수한마을 뒤쪽으로 이어지, 지리산둘레길은 왼쪽으로 내려가 숲길로 들어간다.
오미 10.5km, 방광 1.8km 지점,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있는 숲길 나들목으로 진입한다. 광의면 수월리 들녘 너머로 봉성산 자락의 구례읍 시가지, 맨 왼쪽의 오산과 그 오른쪽 뒤 병방산이 확인된다.
숲길을 내려가면 대나무숲길이 굽이 돌아간다.
대나무숲길에서 내려보면 바로 아래에 광의면 수월리 수한마을이 자리하고, 왼쪽 뒤 광의면 방광리에 방광저수지, 그 오른쪽 뒤 용방면 신지리에 구례골프연습장이 보인다.
수한마을로 내려가는 대나숲 앞 철망 울타리에 사유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위해 이 숲길을 열어주었다.
오미 10.7km, 방광 1.6km 지점, 수한마을로 나가는 숲길 나들목에 '솔밭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수한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숲길 나들목 안쪽에 '하늘은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다' 문구판이 붙어 있다. 이 문구는 남명 선생의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어찌하면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문구의 의미를 요약한 것이다.
숲길 나들목 앞에 송죽정(松竹亭) 카페가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송석정을 지나 왼쪽 돌담길로 올라간다.
송죽정 출입구에 여러 장식물들이 요란하다. '앞만 보고 뛰느라 애쓴 마음 천천히 숨쉬며 걸어가세요' 문장이 기둥에 붙어 있다.
송죽정 앞의 바위에 수한마을 표석이 서 있고, 그 옆에 공동 우물이 있다.
언덕을 넘어 수한마을 앞쪽으로 내려간다. 돌담길이 예쁘다.
돌담과 오랜 연륜의 감나무가 어우러져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준다.
수한마을의 돌담길이 아름답다. 뒤쪽에 원사봉 능선이 이어진다.
돌담길 언덕을 넘어 광의면 수월리 수한마을회관 앞으로 내려간다.
수한(水寒)마을은 조선 선조 25년경에 임진왜란을 피해 남원에서 이주한 경주 김씨 3세대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본래 물이 차다고 하여 물한리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수한마을이 되었다. 마을에는 520년 수령의 도나무 당산나무 잎이 일시에 피게 되면 풍년이 들고, 2~3회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을 당산에서 매년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과 늙은 감나무가 예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 지리산둘레길
돌담길을 따라 수한마을회관 앞으로 내려왔다. 오른쪽 뒤에 원사봉이 봉황의 날개를 펼친 듯 솟아 있다.
수한마을회관 앞 수한2길은 수한경로당으로 이어지며 골목에 예쁜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수한1길을 따라 당산목 쉼터정자 위쪽으로 올라간다. 당산목 느티나무는 수령 540년, 수고 15m, 나무둘레 5.8m이다.
당산목 느티나무 앞에 수한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 마을은 민족의 영산이요,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아래 자락의 화엄사와 천은사 그리고 섬진강물이 어우러지는 이곳에 최초 경주 김씨 3세대가 선조 25년 임진왜란(1592년)을 피해 개기한 후, 대대손손 풍요롭고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변모해 가고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은 물이 차갑다고 하여 물한리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한마을로 개칭되었으며, 지금도 깊은 산중에서 내려오는 물과 암반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장수촌의 비결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여순반란사건(1948년) 당시 지리산에 은거했던 빨치산의 소행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마을이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오면서, 특히 1960년대 새마을사업 등으로 마을을 재건하여 이제는 지리산 둘레길 거점마을로서 방문객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조상들의 피땀 어린 정성을 감사하면서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마을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주민들의 뜻을 여기에 담는다.
방광 1.4km 지점, 수한1길 벽화삼거리에서 왼쪽 수한1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뒤 원사봉에서 서쪽으로 능선이 벋어내린다.
오른쪽 민가의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 왼쪽 뒤 기와집에 무우사(無憂舍) 현판이 붙어 있다. 원사봉 능선이 이어진다.
여름날의 낭만 파도와 기타맨이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광의면 수월리 수월1길에서 수월리 들녘 너머의 남쪽을 바라본다. 맨 왼쪽 뒤의 오산, 중앙 뒤의 봉성산과 구례읍 시가지, 오른쪽 태양광 시설 뒤의 산성봉, 맨 오른쪽의 요강바위산, 그 왼쪽 맨 뒤의 천왕봉을 확인한다.
광의면 수월리 수한1길을 따라 매천로의 광의면방광리교차로로 나간다. 왼쪽 비닐하우스 농장은 '구례와 딸기 농장'이다. 왼쪽 뒤에 형제봉 능선이 이어지고, 중앙 뒤 구례 골프연습장 뒤에 비득재와 그 오른쪽 깃대봉이 가늠된다.
수월리 수한마을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 뒤에 온당리 난동마을이 있는 지초봉과 그 맞은편 간미봉이 가늠된다.
수월리 수한1길 도랑 둑방에 무궁화 연분홍 꽃과 자귀나무 진분홍 꽃이 한창 피어나 수한마을 들녘을 물들인다. 자귀꽃 꽃말은 환희, 부부의 사랑이라고 하며, 중앙 뒤에 지초봉이 보인다.
수월마을 들녘의 논에 벼모들이 푸르게 자라고, 왼쪽에 구례와 딸기 농장이 자리한다. 중앙 뒤에 계족산과 오산, 그 왼쪽 뒤에 호남정맥 백운산 산줄기가 가늠되며, 오른쪽 뒤에 병방산과 봉성산 그리고 구례읍 시가지가 보인다.
수한1길에서 구례&딸기 농장과 수한마을을 돌아본다. 왼쪽에 원사봉은 동서로 두 산줄기를 갈래치고, 남쪽으로 벋어내리며 수한마을 뒤쪽을 지난다. 중앙의 무넹기 능선, 맨 뒤의 형제봉 능선도 모두 남쪽으로 벋어내린다.
수한(水寒)마을은 조선 선조 25년경 임진왜란을 피해온 경주 김씨 3세대가 개기하였으며, 그 당시 20여 호가 모여들어 비로소 마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이 차갑다고 하여 '물한이'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한이라고 했다. 수한리, 월곡리, 당촌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수월리의 '수' 자와 월곡리의 '월' 자를 따서 수월리라 하고 수한, 월곡(月谷), 당촌(唐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 구례군청
원사봉 서남쪽에 자리한 수월리 수한마을 앞 들녘의 벼모들이 푸르게 자란다. 종석대-차일봉 능선이 원사봉에서 동서 두 산줄기를 갈래치고, 원사봉 오른쪽의 원사재를 넘어 화엄골과 천은골 사람들이 왕래하였다고 한다.
수한마을 들녘 뒤 중앙에 천은제가 있고 맨 뒤에 시암재 능선인 듯. 왼쪽에 방광마을 참새미골산 능선, 그 왼쪽 뒤는 간미봉 능선이다.
맨 오른쪽 뒤에 천은저수지, 그 맨 뒤에 시암재 능선, 중앙에 참새미골산 능선, 그 왼쪽 뒤에 간미봉 능선, 그 왼쪽 뒤에 지초봉이 보인다.
광의면 수월리 수한1길을 따라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을 기리는 매천로(梅泉路)로 나간다.
오미 11.4km, 방광 0.9km 지점, 지리산둘레길은 수한1길을 나가 매천로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넌다.
광의면 수월리 매천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광의면 방광리 용전길을 따라간다.
매천로의 수한마을 출입구에 수한마을 표석이 서 있고, 그 오른쪽에 수한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왼쪽에 원사봉, 앞쪽 전신주 맨 뒤에 무넹기가 살짝 보이고 무넹기 능선이 남쪽으로 벋어내리고, 맨 뒤 형제봉 능선이 월령봉-삼밭재-천황재를 거쳐 남쪽으로 벋어내린다.
광의면방광리교차로에서 오른쪽의 매천로와 왼쪽의 한국통신로를 바라보았다. 매천로 오른쪽 방광저수지 앞에 매천사가 있고, 민가 지붕 뒤쪽의 산성봉, 왼쪽 나무에 가린 오산을 확인한다.
광의면 방광리 용전마을과 방광마을 방향으로 용전길을 따라간다.
광의면 방광리 방광저수지 왼쪽은 광의면 수월리 월곡마을이며, 매천사가 자리한다.
월곡(月谷)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33년 전(1870년)에 봉성 장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가 마을을 개척하며 마을이 설촌되었다. 그후 벽진 이씨, 밀양 박씨, 광산 김씨, 진주 하씨 등이 이주하여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 '미영씨바위'에는 설촌 회갑(1931년) 기념으로 호수 32호, 인구 182명이라 새겨져 있다. 설촌 당시 '월아재'라 했다가 '월암재'라 하였다.(회관 앞 책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후 다시 '달실'로 개칭되어 불려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월곡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구례군청
광의면 방광리 용전마을과 그 뒤 용방면 신지리 지역의 구례 골프연습장이 있다. 그 뒤쪽에 광의면사무소가 있을 것이다.
광의면 방광리 용전길을 따라가며 왼쪽의 용전마을과 오른쪽의 방광마을을 바라본다. 전신주 오른쪽 뒤에 지초봉이 보인다.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 앞 들녘이 펼쳐지고, 중앙 송전탑 뒤에 천은제와 천은사가 있고, 왼쪽 뒤에 간미봉 능선이 보인다.
용전마을 출입구에 용전마을 방향 표석이 서 있고, 안쪽에 용전마을이 자리한다. 왼쪽 앞에 구례농협 반달곰쌀 창고가 있다.
용전(龍田)마을은 문헌은 없으나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1860년경 달성 서씨가 곡성에서 이주하고, 그후 노씨, 정씨, 왕씨가 이주하고 함안 조씨가 하동에서 이주해 오면서 마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설촌 당시 중전리(中田里)로 불려오다가 개천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전리로 개칭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풍수지리설로 볼 때 주형지(舟形地)라 하여 마을 상부에 사공바위가 있고 마을 하부에 조탑(造塔)에 짐대까지 설치하였다. 배는 물을 만나 순행하므로 용(龍) 자는 물을 상징하여 용전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 구례군청
방광 0.7km 지점, 용전길에서 오른쪽 방광길을 따라 방광마을로 올라간다. 방광마을 방향 표석 맨 뒤에 지초봉이 보인다.
방광마을 들녘 뒤에 천은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중앙 뒤쪽의 능선은 방광면과 산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시암재 능선인 듯.
방광마을 초입에 그윽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쉼터정자에서 마을 주민들이 막걸리를 마신다. 왼쪽 뒤에 지초봉이 보인다.
방광 0.5km 지점, 느티나무 쉼터정자 옆에서 방광마을 들녘 너머의 서쪽, 구례군 북쪽 산줄기를 가늠한다. 맨 왼쪽 나뭇잎 뒤 요강바위산, 중앙 뒤 형제봉 능선, 맨 오른쪽 뒤 비득재가 가늠된다. 중앙 뒤 산줄기 아래에 순천완주고속도 고가도로가 보인다.
방광마을 앞 푸르른 들녘과 느티나무 쉼터정자 풍경이 정겹다. 왼쪽에 원사봉 능선, 중앙에 무넹기 능선, 맨 뒤에 형제봉 능선이 확인된다.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은 오랜 수령의 무성한 느티나무들이 많다. 천은천의 참새미골 위쪽에 능선이 이어지고, 그 왼쪽 뒤 간미봉 능선이 보이며, 맨 왼쪽 뒤 지초봉이 간미봉을 마주한다.
왼쪽의 참새미골 능선과 오른쪽의 원사봉 능선이 천은저수지로 내려앉고, 그 뒤쪽에 천은사와 천은골, 맨 뒤쪽에 시암재 능선이 보인다.
왼쪽에 정미소, 그 오른쪽에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쉼터정자, 중앙에 방광마을회관이 자리한다.
방광마을은 본래 판관이 살았다고 하여 팡괭이라 불리다 방광으로 변했다. 한편 다른 유래도 있다. 지리산 우번대라는 암자에 사미승과 노승이 살았다. 어느 날 사미승이 남의 밭에서 좁쌀 세 알을 훔치는 것을 본 노승이 ‘3년 간 일해 갚으라’는 벌을 사미승에게 내린다. 이후 사미승은 소로 변했고, 밭주인 집에서 여물 대신 밥을 먹고 살았다. 그런데 소가 싼 똥이 땅에 떨어지며 빛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고,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방광리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수령이 오래된 당산 느티나무들과 산수유가 심어진 돌담길, 소원바위가 나그네를 반긴다. 천은사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참새미 계곡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 있다. 천은사와 지리산 성삼재로 가는 길목 마을이며, 식당이 있고 숙박이 가능하다. 둘레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 말 우국지사이자 문장가인 매천 황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매천사가 있다. - 지리산둘레길
왼쪽에 정미소, 앞에 수령 54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쉼터정자, 오르쪽 뒤에 방광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수고 15m, 나무둘레 4m, 수령 540년이 넘는 느티나무 옆에 느티나무 글판이 서 있다.
느티나무는 어릴 때부터 쑥쑥 자라고 크게 자라며 오래 살고, 또한 가지가 넓게 퍼지기 때문에 넓은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때문에 마을 어귀에 쉼터 겸 보호수로 많이 심었고, 느티나무는 오늘까지 시골마을 곳곳에 나이 든 노거수로 많이 남아있습니다. 방광권역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들은 모두 당산나무입니다. 당산나무란 크고 오래 사는 영험한 나무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특별하게 아끼고 기리는 나무를 뜻합니다. 방광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공북마을에서는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0일에 왼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을 이어 당산제를 올렸습니다. - 글판
마을정자 처마 밑에 종석정(鍾石亭) 현판이 붙어 있고, 주련은 왼쪽부터 "放光子孫萬歲榮방광자손만세영 鍾石齋人千年壽종석재인천년수 智異精氣受放光지리정기수방광 歲歲豊財(?)放光稿(?)세세풍재방광고"이 적혀 있다.
방광마을 벽화에 '행복하세요. 당신이 있는 지금 이곳에서 많은 것을 느껴 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종석정과 당산목을 돌아보았다. 앞쪽의 느티나무도 수고 15m, 나무둘레 4.7m, 수령 540년이 넘는 당산목 느티나무이다.
왼쪽에 방광마을 청년회관이 있고, 오른쪽에 방광마을 여성복지회관이 있다. 맨 뒤쪽에 지리산 시암재능선이 구름에 덮인다.
방광마을회관 맞은편에 방광마을 여성복지회관이 자리한다.
방광청년회관 앞에 방광마을회관과 방광경로당이 있고, 회관 앞에 마을유래비가 서 있으며, 뒤쪽에 참새미골산 능선이 이어진다.
문헌기록이 없어 확실치는 않지만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천은사를 창건할 당시 주변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798년 둔촌리 훈포로 불리다가 1914년 광의면으로 합병되면서 방광(放光)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판관이 살았다고 하여 판관마을이라 불렸으나 판관이 변형되어 '판괭이'로 바뀌고 다시 방광으로 개칭되었다. 마을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500년 된 당산나무 3그루의 보호수와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며 매년 당산제를 모시는 제단, 마을 뒤에 자리한 마을 수호 지킴이바위(소원바위), 마을 중앙에 있는 아버지 감나무(150년)가 있는데 이는 마을을 수호하는 3대 지킴이로서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 2005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구축된 참새미마을 계곡쉼터, 황토한옥펜션, 친환경 농산물가공공장, 도농교류 활성화 센터는 마을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방광마을 청년회관, 방광마을회관&경로당, 맞은편에 방광 여성복지회관이 자리한 이곳이 방광마을 중심지인 듯.
방광마을회관 옆 방광길을 따라 광의면 방광리 참새미마을 버스정류소로 올라간다. 농가 입구에 남근 형상의 바위가 세워져 있다.
마을의 부족한 양기(陽氣)를 비보(裨補, 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움)하는 남근 형상의 바위를 가까이서 살폈다.
방광마을 골목 방광길을 따라가며 뒤쪽의 참새미골산 능선과 그 왼쪽의 간미봉 능선을 올려보았다.
방광리 참새미마을 추차장과 버스정류장이 있고, 뒤쪽에 참새미골산 능선이 이어진다.
광의면 방광리 참새미마을 버스정류소 안쪽에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방광마을회관에서 방광길을 따라 참새미마을 주차장과 버스정류소 앞 '광의철쭉동산로'로 나왔다. 앞쪽은 광의면사무소 방향이다.
앞의 바위를 소원바위라 이른다. 광의철쭉동산로는 천은사 방향으로 올라가며 뒤쪽에 시암재 능선이 보인다.
방광권역마을의 소원바위는 본래 계곡에 자리잡고 있던 것으로서 무당들이 자연의 신비스런 힘이 있다고 하여 굿을 하던 바위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막에 있는 문명은 척박한 땅보다 하늘을 더 숭배하였기에 절대자를 기렸으나, 우리 민족은 풍요로운 땅에서 살았기에 하늘뿐만 아니라 땅의 온갖 생명과 물질들에 대해서도 자연으로서 존중하고 대우하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그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경이롭게 바라봤는데, 아마도 수억 살을 살면서 깨지지 않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 바위에게도 모종의 경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 안내판
참새미마을 계곡쉼터 입구에 방광 전통마을숲 안내판과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 지리산둘레길 18·19구간 시종점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가 서 있다. "방광 전통마을숲은 방광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서려 있는 곳으로, 훼손·소멸되고 있는 숲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산림문화유산으로 계승시키고,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여, 도시민과 화합할 수 있는 산림문화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복원한 숲입니다. 2018년 4월"(안내판)
광의철쭉동산로 길가 언덕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18·19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오미 12.3km, 산동 12.7km 지점, 참새미골 입구에 지리산둘레길 18구간과 19구간 거리를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서 있다.
참새미마을에서 구례 지역을 바라보았다. 중앙 뒤에 봉성산과 구례읍 시가지, 왼쪽에 계족산과 오산, 오른쪽에 산성봉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