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라틴어 수업>, 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2017년6월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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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본래 천주교 신부이고 교황청이 세운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석사(최우등)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고, 교회법-로마법도 공부했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라고 할 정도로 공부도 많이많이 열심히 했겠다.
왜 이런 경력을 소개하느냐 하면 <라틴어수업>이라는 어려울 것 같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터디셀러가 된 이유에는 저자의 이러한 화려한 스펙이 모두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단 저런 화려한 스펙에 꿈뻑 죽는다. 마치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출신인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듯이. 안철수에게 열광했듯이! 아닌가??
이 책은 서강대에서 라틴어 수업 강의를 기초로 만들어진 책이다. 라틴어에 대한 얘기도 나오지만 자신의 유학생활 얘기와 라틴어 강의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들을 매개로 자신의 종교인으로서의 인생철학에 대한 얘기를 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목소리를 낮추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편안하게 잘 풀어냈다.
한국의 법학도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대부분의 학문이 서양에서 온 것이고, 그러한 서양의 학문의 기초가 라틴어 - 로마 - 교회라는 맥락에서 이룩되었으니 라틴어수업은 우리 학문의 본령을 찾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쪽저쪽에서 단편적으로 주워들은 라틴어들, 예컨대 Summa cum laude(숨마 쿰 라우데), Carpe Diem(오늘 하루를 즐겨라),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케자르의 것은 케자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와 같은 말들의 어원과 의미를 제대로 잘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박한 라틴어에 대한 지식도 글로 제대로 잘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저자의 글솜씨도 탁월하여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먹힐 수 있을 만큼 무리도 없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어쩌면 삶이란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Du ut Des’(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122쪽)
“ Hoc quoque transibit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274쪽)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144쪽)
물론 나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도 이런 말들을 할 수 있겠지만, 한동일처럼 화려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 유식하게 보이는 라틴어를 매개로, 현실의 잡스러움으로부터 어느 정도 초월한 천주교 신부가 하니 글에 무게가 실리고 더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위의 나의 잡스러운 언급을 다 무시하고서도 책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보통사람들이 좀처럼 접하기 힘든 ‘라틴어’라는 것을 매개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해주고 우리의 피곤한 삶에 위안을 주고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이처럼 평범한 말들을 라틴어를 섞어서 한동일이 하니까 좀 있어 보인다!
첫댓글 읽어 보고 싶네요
벌써 2년 반도 더 전에 강철님께서 읽으시고 후기까지 올려놓으신 책인데 제가 과문하여 이제야 접하게 되었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