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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역사에 가장 큰 변혁을 일으킨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하나는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산업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혁명이었다. 이러한 경제사회와 정치계의 커다란 변혁은 서구사상에 몇 가지 문제성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 하나는 도시화에 따른 변화다. 조용한 농경사회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던 옛날 삶들은 정신적인 삶 자체가 개인중심이었다. 문화, 예술, 학문, 도덕, 종교 등 모든 문제가 개인에서 개인에로의 길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떤 사상가나 예술가의 정신과 삶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또 그렇게 살면되었다. 그러다가 도시화가 불가피하게 되고 정치적 집단과 경제의 산업사회로 변하면서 개인이 합해진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의 개인이 되었고, 사회에 예속된 자아라는 생각이 점차로 굳어지게 되었다. 서구사회에서 일어났던 두 개의 혁명은 그 불가피성과 절대성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철학과 사회과학이 발달되며 어떤 사회적 이념과 사상이 필수적이 된다. 서양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회과학 및 사회철학이 19세기 중엽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어서는 공리주의가 정착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이 탄생했다. 때를 같이하여 독일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등단하게 된다. 뒤늦게 나타난 미국의 실용주의 사상도 일조의 사회철학이라 보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러한 사회과학적 과정을 밟지 못한 나라들이 오늘에 있어서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가 대열에 끼어 있으나, 어딘가 정신적 선진국가라고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일본다운 사회과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아 좋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도 실학사상이 그대로 계승, 발전되었다면 우리나름대로의 사회과학적 사고가 정착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정치적 퇴락과 일제의 침략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아쉽고 원망스러운 역사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학에서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했다는 사람들도 사회에 나오면 사회과학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없다. 그것은 서구의 학문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였을뿐, 그것들이 우리의 삶의 내용과 근거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성인들도 뿌리와 밑둥이 없는 가지와 잎과 꽃에 해당하는 지식의 지엽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사고방식은 오늘의 기계와 기술을 앞세운 산업사회와 접선되어 흔히 말하는 메커니즘 사회로 변질된다.
먼저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러한 사회철학 및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한 철학자가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A.Comte, 1798-1857)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콩트를 지금도 사회과학의 창시자 및 사회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러주고 있다. 콩트는 비범한 천분을 갖고 태어나 제멋대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파리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너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입학이 보류되었을 정도로 머리가 우수했다. 콩트는 생계를 위해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그렇듯이 학원의 선생 같은 직업을 택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으나 교수들의 학문적 수준에 실망했었기 때문이다. 또 교수들도 그런 거만하고 앞선 질문과 주장을 내세우는 젊은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한때 별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허영심이 강한 그 여성은 변호사인 다른 남성으로부터도 생활비를 얻어오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절망과 젹분을 참지 못한 콩트는 자살을 하려고 강물에 뛰어든 일까지 있었다. 지나가던 군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훌륭한 저서와 사상은 세상에 나타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학구생활로 뜻을 모은 콩트는 상하 두 권으로 되는 거작이면서 대표작인 "실증철학 강의"에 전념하였고, 30대 전반기부터 그 학문적 업적이 성숙, 발전의 단계에 이르러, 10여 년간의 노구 끝에 하나의 고전에 해당하는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 그 앞 책에는 그 당시까지 있었던 모든 학문을 종합, 정리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하는 획기적 업적을 남겨주었고, 그 후반부는 그 당새까지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사회과학의 과제들을 취급했던 것이다. 그의 철학적 업적은 이 창의성이 넘치는 사회과학분야에서 결실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같은 영역의 학문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나. 그 창의적 업적은 역시 콩트에게 돌려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