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가짜와 진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자의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삶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이미테이션의 삶일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단연코 잘못되었으나 그것을 가짜라고, 순종하고 순응하며 인고의 삶을 살아내는 삶은 단연코 바람직하지만 그것을 진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등장하는 여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짜와 진짜의 삶을 살고 있다. 결국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려는 삶이 진짜가 아닐지.
「다리위의 사람들」 우리나라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헌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나 연민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이 작품은 한강 다리위에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등장인물 -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학자금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현, 장기 이식 밖에는 살 길이 없으나 돈도, 가족도 없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명국, 웨이터의 일을 하며 모은 돈을 사기당하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앨비스 -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과 그들을 둘려 싼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이들의 몰락과 죽음은 그들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환기하는 작품이다.
「딸국질」 조선의 여류시인 이옥봉의 한시 [자술]을 사용하여 구성한 이 소설은 전생을 기억하는 주인공의 삶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슬픈 사실은 과거이든 현재이든 여자 주인공은 ‘여자’라는 가부장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그녀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여류시인이지만 당대 사회는 여자가 남자들과 어울려 시를 짓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재의 그녀역시 남편을 이기고 상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혀 주변의 눈총을 받고 갈등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능력이나 인격이 아니라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중요한 기준인 이상 여자가 설 자리는 없다. 아무리 뛰어 넘으려 해도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는 딸국질이라는 병리현상으로 드러난다. 진정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는 미래에는 해결 될 수 있을까.
「미로」의 주인공은 샐러리맨이다. 상사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리 전형적인 샐러리맨은 아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풀지 않으면 이명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타나는 이명증은 어린 시절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지만 이 이명증을 치료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주인공을 미워만 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당한 불이익을 또 누군가에게 되갚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병실에서 아내가 소리치듯 화가 난다고 일면식도 없는 아들에게 벽돌을 던진 인간이나 자신의 화를 누군가에게 풀어야 하는 주인공이나 똑같은 것이다.
「스마일맨」미로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스마일맨의 주인공은 지극히 전형적이다.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몰락하고 무너져가는 존재감. 아내와 장모와 아들은 그의 존재감을 더 무너지게 만든다. 사업도 회사도 끊임없이 실패하는 운명이지만 주인공은 그래도 밝다. 절망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일어서려고 한다. 고사 상에 올릴 돼지 머리가 웃는 모습을 하게 하려고 억지로 입에 젓가락을 끼우고 삶듯,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을 일이 있을 때도 웃는다. 불쌍하게 웃고 슬프게 웃고 우울하게 웃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의 삶이 배신당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실종」은 실종된 것이 없다. 오히려 실종된 것을 찾았다고 느끼게 한다. 주인공의 불행하고 치열한 삶은 분명 짧은 시간의 행복을 앗아갔다. 거기에 건강까지 실종되어버렸다. 행복이 실종된 주인공은 UFO를 찾아 돌아다닌다. 행복이란 게 현실에서는 실종됐기 때문에 다른 세상으로 가야만 그나마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부로 등장하는 그녀를 통해 행복을 찾게 된다. 그녀의 삶도 같은 것을 잃어버렸기에 주인공을 남달리 생각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삶이나 주인공의 삶에는 공통적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사라지고 불행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불행과 불행이 만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갖게 한다. 주인공은 고등어조림이라는 행복을 얻기 위해 정말로 찾은 UFO의 탑승을 거부한다. 실종된 것을 이미 찾았기 때문이다.
「에어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복지제도들은 에어백이다. 주인공의 친구인 은수의 에어백은 위치 추적기이며 주인공의 새 차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도구도 에어백이다. 그것들은 모두 절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제도가 과연 약자들을 보호하고 있을까, 오히려 약자들을 더 굴욕적이고 처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소설 숙의 노파에게처럼 말이다. 은수의 위치 추적기는 어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위치추적기만 믿었다가 스토커 남편에게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위치 추적기는 경찰에게 은수의 위험을 알리기에는 너무 느린 에어백이었다. 주인공의 에어백은 필요이상의 과보호로 주인공을 오히려 다치게 하고 죽음을 넘나들게 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과연 끝까지 우리 편이 될 수 있을까....
「피규어」 진열대에 장식된 피규어들,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렬해 놓은 만화 캐릭터들에 집착하고 깔끔하게 소유하는 주인공, 강아지 쫑이를 아주 사랑하는 옆집 여자의 공통점은 말 잘 듣는 소유물이기에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피규어까지 말 잘 듣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우습지만. 그들은 소유물들을 자기 기분에 맞춰 다루니까 말이다. 그런데 주인공에게는 움직이는 피규어가 생긴다.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피규어를 대하듯 온갖 정성을 쏟는다. 하지만 여자는 피규어처럼 인형이 아니기에 자유의지가 있다. 그것이 불안한 남자는 마치 옆집 여자가 화풀이로 강아지를 학대하듯 여자를 학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자기의 피규어는 자기만의 것이라 누구도 건드리면 안 되고, 놓일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어야 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여자를 협박하는 주인공의 악행을 멈출 수가 없을까, 마지막 장면에 옆집 여자의 반려 견은 동물단체에 의해 구조된다. 다행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악행을 막을 사람은 없는 채 소설이 끝난다. 제발 여자가 무사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햄스터」 기간제 교사인 그녀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을 정성 다해 가르치고, 학교 업무를 수행하며, 담임으로서 진실로 학생을 대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무모한 열심이다. 휴직을 했던 정교사가 복직하게 되면 그녀의 열심은 소모품처럼 기억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녀는 언니의 집에서 가져온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는 그 무모한 열심히 안쓰럽다. 자신의 삶이 이입됐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쳇바퀴를 없애준다 힘들이지 말고 편히 쉬라고 말이다. 하지만 햄스터에게 쳇바퀴는 최선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며 가치였던 것이기에 편안함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쳇바퀴가 햄스터에게는 절실한 의미이다. 그녀는 기간제교사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날 그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알아주고 고마워해주는 학생이 단 한 명 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지하철 노선도처럼 돌고 도는 그녀의 삶을 의미 있게 해 준다. 그리고 햄스터의 쳇바퀴를 다시 넣어준다. 그녀도 쳇바퀴의 삶을 계속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