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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 기도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기도하게 된다. 중보 기도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간구에서 중보로 기도를 바꾸는 것은 우리의 무게 중심을 우리 자신이 필요에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사로 옮기는 것이다. 중보 기도는 이기심이 없는 기도이며, 심지어 자신을 내어 주는 기도이다. 하나님 나라의 계속적인 사역 가운데 중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결혼 관계들이 깨어지고, 자녀들은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 개개인은 미래도 없고 목적도 없이 말없는 자포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서 기도하기를 배운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요, 귀중한 특권이다. 중보 기도의 좋은 모범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중보 기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전쟁사적으로 보면 여호수아가 그날의 승전 장군이었다.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앞장서 있었던 사람이 여호수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투의 이면에는 모세와 라론과 홀히 중보 기도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감추어져 있다. 각자의 역할은 그 승리의 필수적이었다. 여호수아는 공격을 선도하였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다. 이론과 훌은 모세가 지쳤을 때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포어시트는 “우리가 결단의 골짜기에 더 깊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기도의 산으로 더 높이 올라가야만 하며, 하나님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 주 관심사인 사람들의 두 손을 떠밭쳐 주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날드 블뢰쉬 (Donald Bloesch)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이 대속의 희생과 구원의 중재가 없이는 우리의 기도가 아무런 가치나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기도의 삶을 위한 원동력임을 알고 거기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중재나 중보 없이는 우리가 완전히 무기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구세주요 구속자이신 그 아들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심판대를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끈질긴 기도가 승리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면 그 결과가 더디고 고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쉽게 낙담하는 것을 이내 발견하게 된다.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다. 하나님의 길은 사뿐히 땅 위에 내려서 땅을 적신 후, 땅 속으로 사라지는 눈이나 비와 같다. 그리하여 적절한 때가 되면 새로운 생명을 싹트게 한다. 조작도 없고 통제도 없으며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해방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다.(사55:8-11) 우리는 한 두 번 기도하다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다른 문제로 넘어가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샐쭉해지거나, 기도를 완전히 포기하기도 한다. 간구는 열심을 갖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기도하는 일에 대해서 극도로 심각하다고 하는 선포이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똑같은 간구를 두 세번만 반복해서는 안된다. 필요할 때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자꾸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일에 결코 지쳐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중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그분의 이름이 새겨지고 하나님이 손수 기록한 초청장을 주시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에 직접 관여하게 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