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다. 서울 외곽의 중소도시처럼 허름한, 그래서 내 취향인 동네를 쉬 떠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재래시장이다. 일요일 오후 구입할 목록을 적은 쪽지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역시나 허름한 내 애마 포비를 몰고 시장으로 향하는 일과는 일종의 평형 잡기 의식이라고나 할까. “나 생활인으로 건실히 살고 있는 거 맞지?”라며 안도감을 선사하는, 일상을 복원해 주는 평형수가 되어주는 시간이었다. 시장에 다녀오면 부엌일이 따라온다. 장을 본 재료들을 손질해서 뚝딱뚝딱 찬거리를 만든다. 일요일 저녁 부엌을 훈훈하게 채우는 음식 냄새, 온기, 냉장고에 차곡차곡 쟁여지는 밥, 국, 반찬들은 오는 한 주 또 열심히 살아내자는 나와의 약속이자 스스로를 다독이는 격려였다.
쿠팡이 영업을 시작하고 대중화되었을 때도 나는 배달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꼭 시장에 갔다. 골목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도 있었지만, 금요일 퇴근 후 저녁부터 시작되는 위장 무력증에서 회복되는 일요일 오후, 혼자 앓고 난 뒤 퀭해진 몸과 마음은 생의 활력과 온기를 수혈받고 싶어진다. 시장통을 거닐며 단골 가게 주인장들과 주고받는 소소한 안부와 인사들은 저 멀리 망망한 우주의 미아로 떠돌던 나를 끌어당겨 지구로 안착시키는 중력처럼 현실감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단골이 된 어물전이 있었다. 주문진이 고향이라는 아저씨, 동향이라는 친근감에 이끌려, 그리고 자그마한 체구에 곱슬머리를 뒤로 묶고 수염을 기르는 다정다감한 주인장의 개성과 인품, 가게에서 키우는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갸냘픈 카오스 냥이 색동이, 색동이가 낳은 아기들까지... 꼭 한번은 쓰다듬고 싶어지니까...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생물 고등어가 있었다. 땅꼬는 고등어를 좋아한다. 싸고 싱싱한 그 집의 생물 고등어는 괜찮았다. 그러다 주인이 교체되었다. 둥글둥글한 얼굴의 젊은 청년이 함께 장사를 하다가 어느 날부터 혼자 가게를 운영했다. 가게를 인수하기 위한 교습기간이었을 것이다. 다정다감한 주인장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서운했지만 습관에 충실했던 나는 얼마 후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를 위해 골뱅이 숙회를 대접하려고 그 집에서 골뱅이를 구입했다. 기대에 차서 삶고 있는데 역한 냄새를 풍기는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상한 것이다. 민망한 맘에 원망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쓸데없는 의리 같은 게 있는 나는 그 일을 함구한 채 걸음을 계속했다. 실수였겠지.
그러다 코로나를 겪고, 퇴직을 하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나도 어느샌가 쿠팡의 편리함에 물들어갔다. 하지만 쿠팡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품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땅꼬를 위한 ‘생물 고등어’였다. 혹시나 하고 주문한 손질 포장된 쿠팡표 고등어는 철저히 외면당해서 그대로 냉동실에서 말라갔다.
땅꼬는 사료를 거부하지도 않지만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파트 정원에서 길냥이로 살던 어린 시절, 아파트 주차장 한 곳에 마련된 고양이 급식소에서 밥 동냥을 했던 땅꼬는 캣맘께서 제공한 날생선을 먹고 살았다. 집에서 강아지만 키우셨던 캣맘은 고양이에 대한 정보에 어두웠고 사료보다는 생선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배려심에서 힘들게 생선을 구입해서 보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아이들이 건네는 이런저런 음식들에 익숙해진 탓에 땅꼬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가끔 건네는 마요네즈도, 치즈도, 슈크림도 할짝거리고 소고기 장조림, 삼겹살, 수육, 명절날 먹는 엄마표 반건조 생선들은 땅꼬에겐 별미다. 소금이 고양이한테는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쩌다 가끔은...
킨텍스에서 2년을 살고 다시 이 동네로 귀환한 후, 시장통 깊숙한 곳에 여러 명의 청년들이 운영하는 어물전이 성업 중이었고 그 집의 생물 고등어에 눈이 가서 발길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으로 사료를 내밀 때 실망하는 땅꼬의 아쉬운 눈빛이 맘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소분해서 넣어둔 고등어가 떨어져갈 때면 게으름을 무릅쓰고 시장을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6시 정도엔 초조해진다. 어물전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늦게 당도한 어느날, 청년들의 어물전은 이미 파장해버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나오는 길에 단골이었던 그 가게가 영업 중인 걸 발견했다. 아직도 팔리지 않은 생선들로 가득한 매대에 큼직한 생물 고등어가 보였다. 늦게까지 팔리지 않은 생선들... 무감각한 나는 그저 오늘 고등어를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고 여러 마리를 사서 의기양양 집으로 향했다. 땅꼬에게 저녁으로 고등어구이를 내밀 수 있다고 안도하면서... 기대에 가득한 눈으로 고등어를 굽는 내 발 밑에서 기다리던 땅꼬에게 먹기 좋게 잘라 내밀었지만 한 입 입에 대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다 쌩 가버린다. “이런 걸 먹으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배가 부른가 싶어 밤새 놓아두었지만 허사였다.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맛을 보아도 크게 나쁜지 모르겠는데...“가시나, 까다롭기는... 아주 배가 부르구나. 길냥이 시절엔 감지덕지 했을텐데...”
어쩌겠는가, 내 잘못인걸. 아둔한 소비자. 늦은 시간까지도 팔리지 않는 생선가게.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청년은 다정다감한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어물전 영업에 필수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단골이었다는 이유로, 떨쳐내지 못하는 습관에 복종한 내 탓, 먹는 일에 예민하게 구는 태도를 경계하는 지나치게 금욕적인 내 삶의 태도가 불러온 무능력 탓이다. 내가 먹지 뭐.
그 후부터 나는 다시는 옛 단골집에 발길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오래지않아 그 어물전은 문을 닫을 것이다. 나처럼 아둔하고 충직한 단골도 잃는 추세라면... 부지런한 청년들의 어물전은 한 번도 땅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단골이 되었다.
땅꼬에게 외면당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구입한 고등어들이 냉동실에 쌓여가고 있다. 해결해야 한다. 문제의 그 고등어를 해동해서 구웠다. 한 점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우웩!!!
땅꼬가 옳았다. 난 욕 먹어도 싸다. 에잇! 다 버려버리자.
어떡하나! 문제의 어물전은 분명 망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또 함구할 것이다.
주인장님, 아둔한 단골 뒤에 총명한 입맛을 지닌 어물전 감별사 고양이들이 있다는 걸 명심하셔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