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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얼떨떨해요. ‘이렇게 큰 상을 내가 정말 받아도 되나, 조금 더 준비한 다음에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쁨보다 부담감이 앞섰죠. 콩쿠르 끝나고 너무 피곤했는데 잠을 거의 못 잤어요. 그동안 제가 해온 발레를 되돌아보면서 더 큰 목표를 세웠죠. 너무 일찍 정상에 오른 것 아니냐고들 하는데, 아직 멀었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이제 막 세계무대에 저를 알리기 시작했잖아요. 늘 더 나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는 몇 개월 사이 인터뷰 실력도 늘었다. 만리 타향 러시아에서 몇 달간 경험하면서 몸과 마음이 훌쩍 큰 듯했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장고를 거듭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가 그랑프리를 거머쥔 두 개의 콩쿠르는 성격이 다르다. 120여 명의 참가자가 몰린 러시아의 페름아라베스크 콩쿠르는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콩쿠르 중 하나로, 전 세계의 프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이 기량을 겨루는 무대다. 470여 명의 참가자가 몰린 유스아메리카 콩쿠르는 주니어 콩쿠르로, 현재의 기량보다 참가자의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둔다. 김기만은 현재의 기량을 평가하는 프로들의 무대와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주니어 무대에서 모두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는 마린스키발레단 180여 명의 단원 중 유일한 동양인이다. 발레단에서 외국인은 그와 영국인 한 명 단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인이다. 마린스키발레단은 단원 선발을 위해 공개 오디션을 치르지 않는 데다 대부분 마린스키 부속인 바가노바발레학교 출신 중에서 뽑기 때문에 그의 마린스키 입단은 발레계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었다. 그가 마린스키 단원이 된 데에는 한예종 지도교수인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김의 역할이 컸다. 마린스키 솔리스트 출신인 블라디미르 교수는 일찌감치 김기민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공연 영상을 마린스키 측에 보냈다. 영상을 본 마린스키 측에서는 그에게 특별 오디션을 보러 와줄 것을 요청했고, 김기민은 단독 오디션을 치렀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기량에 감탄하면서도 입단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검은 머리의 발레리노’라는 점 때문이었다. 전례 없는 방식으로 입단한 그는 입단 2개월 만에 〈해적〉의 주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제가 러시아말을 잘 못하니까요. 파트너는 마린스키의 간판스타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발레리나 중 한 명인 빅토리아 테레슈키나였죠. 원래 발레단에 입단하면 아래부터 한 단계씩 올라가는데, 저는 오자마자 솔리스트급 역할을 했어요. 그만큼 부담감도 컸죠. 외국에서 공연하면 한국보다 편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러시아인들은 워낙 발레를 좋아하고, 발레 공연을 많이 봐요. ‘러시아인도 아닌데 주역을 맡았으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하는 시선이 느껴졌죠. 왜 아니겠어요. 노랑머리 서양인이 한국무용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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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서는 팔다리가 긴 편이지만 러시아에서는 평균이에요. 게다가 발의 라인이나 다리의 골격이 발레리노로서 그다지 좋은 체형이 아니죠.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이 부각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연습을 많이 해요. 그런 점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선생님(블라디미르 김) 말씀이, 제가 작품에 빠져서 감수성을 전달할 때에는 제 몸이 잘 안 보인대요. 제 춤의 동작은 완벽하지 않아요. 실수도 하고요. 하지만 공연할 때에는 작품 속 캐릭터에 푹 빠지죠. 무아지경이 되는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멍해요. 반면 제 스스로 동작이 의식되고 기억날 때에는 항상 공연이 안 좋았어요.”
실제로 그는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평을 듣는다. 작은 얼굴과 긴 목, 길쭉한 근육질의 팔다리에서 뿜어 나오는 그의 동작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인형이 움직이는 듯 사뿐사뿐 가볍지만, 그 동작에는 어떠한 외부의 힘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딴딴함이 깃들어 있다. 그의 몸의 언어는 온몸 구석구석에 각인된 동작처럼 자연스럽고 섬세하다. 스스로 동작을 의식하지 않고 배역 속으로 녹아들어 저절로 동작이 나오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할까. 그는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한예종 재학 시절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 일찍 연습실에 도착해 해가 진 후에야 나섰다. 마린스키에 입단해서는 공연 리허설 두 시간 전에 미리 가서 몸을 풀기 시작하고, 다른 단원들이 다 나간 후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 연습할 때가 많다. 이번에 한국에 잠깐 왔을 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실에 들렀다. 몇 해 전 무릎 부상으로 6개월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만의 동작’ 수백 가지를 직접 만들어 그려가면서 연습했다. 온몸 구석구석에 뻗어 있는 미세한 근육들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동작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를 독한 연습벌레로 키운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바로 세 살 위의 형 발레리노 김기완이다. 올 초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김기완 역시 빠른 행보로 국내 발레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수단원 신분으로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을 했고, 올 4월에는 〈스파르타쿠스〉의 주연을 맡았다. 새내기 단원이 잇따라 주역을 맡은 건 국립발레단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어려서부터 기완이 형에게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형이 얼굴도 더 멋있고, 키도 더 크거든요. 지금도 형이 저보다 더 커요. 어디를 가도 형이 더 주목을 받았어요. 형처럼 되고 싶어서, 형을 따라잡으려고 죽도록 연습했죠. 형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형은 저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해줘요. 마린스키 입단 소식을 듣고는 뽀뽀까지 해줬다니까요.(웃음) 형이 국립발레단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두툼한 방한복을 사줬어요. 러시아에서 입으라고요. 형에게 늘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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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감수성과 운동신경, 지독한 연구와 연습을 거듭하면서 그는 최고의 발레리노로 커갔다. 15세이던 2008년에는 이탈리아 로마 국제발레콩쿠르 주니어 금상, 2009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금상 없는 은상,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 주니어 금상 등 굵직한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낭보가 있을 때마다 그가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 지독한 연습벌레인 그는 항상 공을 주위 사람들한테 돌린다.
“저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많아요. 발레리노가 되도록 이끌어주신 이원국 선생님, 한예종에서 초기에 가르쳐주신 김선희 선생님, 무엇보다 제 춤을 부각시켜주시고 마린스키에 갈 수 있도록 해주신 블라디미르 김 선생님,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웅진재단(이사장 신현웅)님도 빼놓을 수 없지요.”
“운이 좋다”는 그의 말은 일면 수긍이 간다. 그의 주변에는 지척에서 그를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많다.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웅진재단 은채원 과장은 김기민의 콩쿠르 수상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알려왔다. “콩쿠르 동영상을 보면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기민이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며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블라디미르 김 교수는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 자식이 없는 블라디미르 김과 그의 아내는 그를 아들처럼 대한다. 그 역시 부부를 “빠, 마마(러시아어로 아빠, 엄마라는 뜻)”라고 부르며 부부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들락거린다. 블라디미르 김 교수는 그에게 발레는 물론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 등도 친절히 가르쳐주고, 크고 작은 파티 때마다 그를 데리고 간다.
그는 이번 콩쿠르 입상으로 군 면제를 받게 됐다. 그는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를 빛내고 싶어요. 예전에는 저를 위해 춤을 췄는데, 외국에 가니까 애국심이 생겨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TopClass〉와의 인터뷰 때 “마린스키 입단 후 열심히 노력해서 주연을 꼭 따겠다”고 말했었다. 그 꿈을 너무 빨리 이룬 데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두 개나 받았으니 부담이 클 터다. 그는 “너무 빨리 커버린 것 같아 성장판이 아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 ‘부담’ ‘꿈’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너무 빨리 정상에 오른 것 같아 부담스럽고, 부담감이 큰 만큼 더 꿈을 찾아 노력한다는 것이다.
“저에게는 만족을 모르는 버릇이 있어요. 누군가가 ‘잘했다, 좋아졌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해요. 안 믿기고요. 좋아졌다는 말을 들으면 ‘다음에는 판타스틱하다는 말을 듣도록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요. 언제쯤 만족할 것 같으냐고요? 만족하기 싫어요. 만족하면 제 발레의 성장이 거기에서 끝날 것 같아요. 발레를 다 끝내고 집에서 형과 함께 제 발레 공연 영상을 볼 때, 그때 만족하고 싶어요. 사실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큰 꿈이 있어요. 세계 무용계에 한 획을 긋고 싶어요. 이사도라 던컨이 현대무용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듯 말이에요. 꿈이 너무 큰가요?(웃음) 저는 허황된 꿈을 정하고, 먼 미래에 실현할 수 있는 꿈을 내일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고 연습해요. 빨리 새로운 꿈을 이루고 또다시 새로운 꿈을 만나고 싶어요.”
만족을 모르는 그의 면면은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드러났다. 발레 동작을 찍은 후 찍힌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만 다시 찍을게요”라며 반복을 거듭했다. 사진 촬영 시간은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났다. 그는 지치지도, 웃음을 잃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