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영웅 장군님이 가신길...

[백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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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삼가에서 장군을 만나다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백의종군로와 황계폭포

이른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삼복더위가 기세깨나 부리고 있다.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의 연속에다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는 밤잠을 훼방 놓고 새벽녘에나 시치를 떼고 물러가고, 이따금 마른하늘에 번갯불이 번뜻하면 한줄기씩 퍼붓는 소나기가 천둥소리를 문밖까지 몰고 오는 여름치고는 꽤 멋이 있는 나날이다. 더위를 즐겨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충무공은 백의종군길의 난중일기에서 무쇠가 녹고 구슬이 녹을 듯이 땅이 뜨겁다고 하셨다. 그날이 바로 단계에서 합천 초계의 권률장군 진영으로 가다 삼가현에 닿았던 정유년 중복 날이었다. 비로 인하여 하루를 더 머물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간간히 쏟아진 폭우로 냇물이 불었던 모양이다. 충무공을 만나 뵙기로 하고 백의종군로를 찾아 삼가로 향했다. (사진설명= 합천 삼가면사무소에서 우체국 쪽으로 가다보면 ‘이순신백의종군로’표지석이 나온다. 표지석 옆에 있는 ‘수정정’은 충무공이 이곳을 지날때 쉬었던 곳이기도 하다.)
 백의종군로의 기념표지석은 하동 화개에서 옥종과 단계를 거쳐 삼가를 지나 합천 초계사이에 갈림길마다 하얀 화강암에 네모지게 오석으로 연마하여 흰 글씨로 이정표처럼 세워져 있어 오가는 길에 눈여겨보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삼가면 소재지는 33번국도 진주 합천간 중간지점이고 동서로는 20번국도를 이용하면 길 찾는 것은 문제가 될게 없다.
 삼가면 소재지가 삼가5일 장터이고 장터옆으로 흐르는 양천강 다리목에 커다란 조형물인 기념탑이 있어 차를 세웠다. ‘정미 의병전쟁 삼가 의병장 순국 기념비’와 ‘삼가장터 3·1독립만세 기념탐’이었다. 비문과 안내문을 읽고는 몇 오라기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햇볕에 타버린들 아까울게 없다하고 볕가림 모자를 벗고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이글거리는 태양열이 뒷덜미에 숯불을 퍼붓는 듯했지만 순국의 영령과 호국의 선열 앞에 얼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헌향 헌화가 없어도 이토록 떳떳하고 당당하며 준엄하고 근엄할 수 있는 기념비가 흔치는 않으리라. 두 비문을 요약하면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07년 정미7조약으로 일제는 우리의 군대까지 해산케 하여 전국은 구국의 의병전쟁이 확산되었고 1908년 이곳 삼가에서는 한치문 56세, 김팔용 41세, 그리고 17세의 이소봉을 비롯, 20~30대의 이차봉, 김우옥, 김응오, 김화숙, 장명언, 김찬숙 등이 의병장으로 왜병과 싸우다 꽃봉오리 같은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으니 정의에 앞장서는 경의사상은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져 음력 2월 17일과 22일 삼가장날을 기하여 두 차례에 걸쳐 삼가, 쌍백, 가회면 등 인근면민 3만여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총검에 맞서다가 40여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50여명의 부상자와 50여명이 투옥된 국내 최대의 3.1독립만세운동으로 밝혀지고 있어 고귀한 영령의 뜻을 기리고자 탑과 비를 세웠단다. 남여노소가 필사의 결의가 아니고서는 장터까지 수 십리길을 목숨을 걸고 걸었겠는가! 당시의 인구로선 3만이라면 지역민 모두가 죽음을 각오한 사생결단의 항전이었음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선열이시여! 물려주신 이 강산을 길이 보전하겠습니다. 두고두고 굽어 살펴주옵소서’하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삼가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우체국 쪽으로 십여보를 가면 왼편으로 정자나무가 짙푸른 수정정이라는 정자 옆에 ‘이순신백의종군로 합천 율곡 33.1㎞ 화개 114.7㎞’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고 20~30m를 더 가면 오른쪽 길가에  예사롭지 않은 2층 누각이 눈에 띈다. 정면 3 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에다 닭벼슬 모양의 난간이 멋의 조화를 이루고 적청과 흑백이 두드러진 단청이 예스런 맛을 한껏 풍기는데 ‘기양루’라 양각된 현판이 덩그렇게 걸려 있다. 길손을 반기는 안내판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93호로서 합천군 내에서 목조기와 누각으로는 제일 오래된 것이며 이순신장군이 머물렀던 곳이라 일러준다.
 2층 누마루에 오르니 커다란 용 두 마리가 대들보를 걸터타고 마주보는 가운데 가수헌이라는 또 다른 현판 옆으로 ‘국기’라고 세필로 쓴 현판에는 ‘태조강헌대왕 5월24일 건원능 양주’라고 쓰인 첫 줄을 시작으로 조선조의 왕과 비의 제삿날과 능명과 장소가 장헌세자에 이르기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 또한 흔치 않은 유물이거니와 백의종군중인 이순신장군이 좌정하고 계신 듯하다. ‘장군! 요즘은 삼가 한우고기가 전국 제일입니다. 오늘이 중복이니 제발 사양마시고 드시어 기체를 굳건히 하서야 왜적을 괴멸시킬 것이 옵니다.’옷고름만 고쳐 매시고 들은 척도 않으신다. 이참에 아뢰자 ‘장군! 지난 봄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어뢰를 쏴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난 채로 침몰하여 금쪽같은 수병용사 마흔여섯을 잃었습니다.’부끄러워서 모기소리 만하게 아뢰었는데도 장군의 눈에서는 번갯불이 튀었다. ‘경계근무는 실수도 실패도 용서받지 못한다. 더구나 하나를 잃었으면 백을 잡아야지!’뇌성벽력의 천둥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뒷걸음으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가회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즉각 반격하고 응징하여 전리품을 내놓았으면 저들이 오리발을 내밀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땅의 불순세력도 입을 열지 못햇을 것인데’하고 더 아뢰었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고 장군이 오셨던 길을 거슬러 가수교 삼거리 백의종군로 표지석 옆에 차를 세우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 땀을 닦는데, 족히 수백년은 넘었을 것 같은 노송이 하늘을 가린 언덕배기에 오랜 세월에 모가 달은 석상이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며 내려다보고 섰다.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하여 사시사철 촛불 꺼지는 날이 없다고 들일 나가던 주민이 일러 준다.
 다시 1㎞정도를 더 가면 장군께서 더위를 피해 잠시 쉬었다는 500여년 수령의 홰나무 그늘에서 장군의 유지를 되새겨 보니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련하게 보인다.
 덕진리 표지석에 닿으면 홰나무정자까지는 900m로 적혀 있다. 여기서 잠시 5분거리의 외토마을에 들리면 남명 조식선생의 생가지와 남명선생이 지은 뇌룡정이 있고 용암서원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뇌룡정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되면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소리친다.’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니 여기서 잠시 삼가장터의 의병장 순국비와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문을 되새기면 남명은 훗날을 훤히 꿰뚫고 정인홍과 곽재우를 문하에 두고 제자들에게 경과 의를 가르친 연유를 알듯하다. 합천군이 뇌룡정을 빗겨 흐르는 양천강과 영파대를 정비하면 백의종군로와 함께 찾는 이가 많아 삼가장터는 만세운동을 방불케 할게다.

 다시 길을 되돌아서 덕진 삼거리에서 백의종군로와 작별하고 60번 도로를 따라가면 장대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을 하면 1089번 도로가 황매산 만남의 광장 삼거리까지 안내를 한다. 여기서 합천호 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양리삼거리가 나오고, 우회하여 1026번 도로를 따라서 용주면 소재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황계폭포라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다. 우회하여 다리목에 차를 세우고 700여m의 평평한 길을 개울을 따라가면 자연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정자옆 건너편으로 비스듬하게 폭이 넓게 흐르는 물줄기가 하단 폭포이고 연이어서 위로 12m 높이의 상단 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물도 돌도 탐나고 찾아오는 사람까지도 탐이 나는 경치다. 남명선생의 시 한수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달아맨 듯한 물줄기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내일 아침 여러분들 논의 그리 각박하지 않으리/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까지 탐낸다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