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⑪]
종로구 지방자치 30년사
“종로 지방자치 주도 세력 변천”
이 병기(정치학 박사)
지방자치에서의 생활 정치 구현
풀뿌리 생활 정치 속 젠더 정치
“민초들이 신명을 얻은 셈입니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이지요. 나도 이제 당당하게 동네 일원이 됐으며 동네에서 주민으로서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김 전 의장은 더군다나 종로 지역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알게 됐고 그 의미는 신바람 나는 세상이 왔다는 의미라고 강조한다. 과거 중앙집권적 정치풍토에서 전통적 기득권층이 지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그들만의 동네인 것처럼 보였던 세상에서 지방자치가 가져온 풀뿌리 정치와 주도 세력의 변화는 동네 그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설명한다. 공무원이 주도했던 분위기도 일소되고 동네 유지들이 지배했던 문화도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치라는 영역도 그동안 특정인들만의 전유물 인양 간주되었던 분위기가 일반 주민들의 선거 참여와 투표로 일반화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켰는데 특히 야당 쪽 주민들은 야당의 조직 확충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이루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한다.
김 전 의장은 그 당시 종로에 사는 호남 출신 주민들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대통령 만들기가 평생소원이었다며 마침 부활된 지방자치에서의 풀뿌리 정치는 호남인의 한을 푸는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한다. 호남향우회를 중심으로 종로라는 타향에서 친목만을 도모하던 회원들이 갑자기 지방자치에서의 주민선거를 통해 똘똘 뭉치는 우애를 보였으며 그동안 동네에서 소외됐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풀뿌리 정치에 전심전력하는 정서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호남향우회원들은 재력이나 능력 그리고 학력이나 권력에서 늘 소외받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종로라는 대한민국 1번지에서 워낙 막강한 인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과의 거리는 매우 멀었으며 소통도 거의 없었습니다”
김 전 의장은 그러나 지방자치 실시로 풀뿌리 정치라는 주민선거가 생기면서 호남향우회원들은 “이제야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으며, 지방자치에서의 풀뿌리 정치를 통한 지역사회 일원이 되고자 모두가 합심, 단결했다고 말한다. 김 의장은 사실 그러한 호남인들의 의식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드는 단초가 된 것도 맞는 말이라고 평가한다.
더불어 김 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호남인들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이제 우리 고향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까 우리도 지역을 주도해 보자’는 의식이 팽배했다고 술회한다.
이러한 호남향우회원 중심의 종로구 풀뿌리 정치참여는 민선 구청장을 호남인으로 배출하면서 어느 정도 실현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곧바로 지역의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는 변천을 몰고 왔다고 주장한다. 김 의장은 종로구 풀뿌리 정치가 호남인의 한을 풀면서 이제 당당히 종로주민으로서의 일원이 됐음을 느끼게 했다고 단언한다.
<지방자치에서의 생활 정치 구현>
풀뿌리 종로 정치의 생성으로 종로의 주도 세력이 변천하는 것은 호남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민초들에게도 크나큰 정치적 기회로 작용됐다. 그동안 민초들은 정치권과 다소 거리를 두면서 정치적 활동과는 다소 무관했던 주민들이다. 기존의 전통적 주도 세력에 대항하여 등장한 야당의 호남향우회 중심의 선거자치세력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반주민으로서 그동안 지역 정치와 무관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방자치의 주도 세력 다툼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토호 세력 대 새로운 저항 세력인 선거자치세력이 ‘상호을박’의 각축장을 벌인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선거자치세력이 등장하여 토호들을 후퇴시킨 뒤 그 공백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일반주민들이다. 토호 세력이 쇠퇴하면서 야당 측의 자치 세력과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토호들이 내세운 토착 자치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전통적 지역의 주도 세력 층은 아니었지만 주도 세력들이 토착자치세력으로 내세우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여당 측 자치 세력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동안 조용히 민초로 있었던 풀뿌리 주민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종로구 의회 의원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 성은 종로구 의회 의원이다. 김 의원은 2006년 당시 43살의 비교적 젊은 여성이었다.
주로 초등학교 학부모회 임원 등을 맡으면서 녹색어머니회 등 학교 관련 봉사만 열심히 한 인물이었다. 이를 한나라당 박진 국회의원이 영입하여 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를 시키고 당선이 된 케이스다. 김 의원은 초선의 여성 의원이었지만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의정활동으로 인정을 받은 여성 풀뿌리 정치인이다.
김 의원은 구의원 역할을 이렇게 평가했다. “ 아무것도 모르고 의원이 됐지만 들어와서 보니 할 일도 많고 보람도 있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김 의원은 기초의회가 할 일이 많음을 알았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구의원들이 주민과 함께 지역의 발전은 물론 주민의 권리와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주민 생활이 향상될 수 있음을 깊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지방자치를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정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거환경과 교통 문제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의 각종 민원사항을 해결하고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생활 정치화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김 의원은 스스로를 종로의 생활 정치인으로 불러달라고 주문도 했다. 중앙의 정치 권력과 이해다툼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과 관련된 생활상의 제반 문제를 지역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논의하고 해결하는 차원에서 자신은 종로의 생활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생활 정치라는 개념이 사실 애매한 구석이 있다. 2002년도쯤부터 생활정치란 용어가 대두되면서 생활정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명료한 개념 정립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도 본다. 그러나 김 의원은 어디서 벤치마킹을 했는지 자신은 생활 정치인이라고 지칭했다. 생활정치는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권력정치 또는 이념정치가 아니라 생활정치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생활정치는 풀뿌리 주민 정치를 일컫는 것이다. 풀뿌리 정치는 지방자치 속에서 지역의 일을 지역 주민이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처리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기존의 토호 세력과 새로운 선거자치세력 이후 여당 쪽 토호 세력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토착자치세력으로서 앞의 두 세력과는 다소 지향점이 틀리다. 토호 세력은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세력이며 신흥 선거자치세력은 토호 세력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두 세력은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상호 대결과 반목을 하는 형세 곳에 있었지만, 김 의원과 같은 토착자치세력은 지역의 주도권 다툼과는 관심 차원이 달랐다. 주민의 생활을 민주적으로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지향점을 찾았다. 이미 지역의 주도권 쟁탈 의미는 ‘빛바랜’ 상태였으며 그보다는 주민과 밀접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형태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풀뿌리 정치가 주민 생활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지방자치 초창기부터 풀뿌리 정치가 주민의 권리와 복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지만 그동안 지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대결 양상을 벌였기 때문에 주민 생활을 전격적으로 챙기기에는 다소 미흡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과 같은 새로운 제3 세력이 등장하면서 풀뿌리 정치의 성격이 명료해지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으로서 섬세한 생활 점검 차원의 주민 정치를 실천하면서 주민 정치 세력의 변천은 생활정치의 내용을 변화시켰다.
김 의원은 “주민 정치가 올바르게 육성된다면 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다고 봅니다. 풀뿌리 정치가 특히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회복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지역의 민주화는 훨씬 빠르게 달성된다”고 강조한다.
김 의원의 이러한 의정활동은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