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대교서 대형 폭발... 푸틴의 전쟁 보급로 치명타
파리=정철환 특파원
입력 2022.10.09
8일 오전 6시 7분(현지시각),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림대교에서 트럭폭탄이 폭발해 다리 수십m가 무너지고 철도교량을 지나던 열차도 불에 탔다./로이터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빼앗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케르치해협 대교(일명 크림대교)에서 8일 오전 6시 7분(현지 시각) 대형 폭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크림반도 쪽으로 가는 차량용 교량 상판 수십m가 무너지고, 바로 옆 철도 교량을 지나던 연료 수송 열차의 화차 59개 중 7개에 화재가 나 철도 교량도 수십m 불탔다.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는 “도로와 철도 운행이 양방향 모두 중단됐다”며 “크림반도와 러시아 간의 물류가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내무부와 국가반(反)테러위원회,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이 참여한 조사 위원회는 이날 “폐쇄회로 TV 영상 등 증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차량용 교량을 지나던 트럭에서 폭탄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폭발한 트럭 인근에서 달리고 있던 차량 탑승객 남녀 2명 등 총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나 관련 단체를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이 트럭의 소유주는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에 거주하는 남성”이라며 “추가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케르치해협대교(크림대교)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로 철도교를 지나던 연료 수송 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불타고 있다. 이 다리는 러시아에서 크림반도 지역에 식량과 연료, 생필품 등을 공급하는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최전방에 병력과 무기, 장비 등을 실어 나르는 핵심적인 보급선 기능을 해왔다./AFP 연합뉴스
크림대교는 크림반도 동부 케르치반도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주 서부의 타만반도를 잇는 길이 18㎞의 다리다.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이기도 하다. 복선 철도교와, 왕복 4차선 차량용 도로교로 이뤄져 있다. 2018년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바로 이을 수 있게 됐다. 또 선박으로 2~3일 걸리는 크림반도와 본토 간 물류를 하루 반나절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어 크림반도의 러시아 경제권 편입 및 이번 전쟁에서 중요한 보급로 역할을 해 왔기에 러시아에는 큰 타격으로 평가된다.
크림대교의 정확한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교통부는 “차량용 교량은 (양방향 상판 2개 중) 손상되지 않은 쪽 2차선을 이용해 운행이 곧 재개될 것”이라며 “크림대교 철도 통행도 8일 오후 8시 재개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CNN, 영국 가디언 등은 그러나 현장 사진과 위성 사진을 근거로 “차량용 교량의 경우 크림반도 쪽 방향 차로 2개가 완전히 무너졌고, 반대쪽 방향 도로도 크게 그을렸다”며 “손상 정도가 심해 복구에 2개월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 “약 30m 정도 떨어진 철도교 역시 다리 구조물이 완전히 불타거나 휘어버린 모습이 확인됐다”며 “정상적인 열차 운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덴마크 교량 설계·건축 전문 업체인 COWI를 인용해 “폭발 때문에 크림대교의 구조가 손상돼 완전 복구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후로는 러시아군에 탄약과 식량, 병력 등을 공급해 온 핵심 보급로 역할도 해왔다. 영국 국방부는 “남부 전선의 경우 돈바스 지역을 통한 철도 보급선의 수송량이 많지 못한 데다, 우크라이나군의 습격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 크림반도를 통하는 보급선이 주로 이용돼 왔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크림대교의 운영 중단이 당장 러시아군의 전투력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전쟁 초기부터 지적받아 온 러시아군의 보급 문제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를 이용해 후방 보급 부대를 집중 타격하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로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평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