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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사역(15) / “보배를 담은 질그릇의 축복자!”
+ 본 문 : 고린도후서 4장 7절 - 12절 (신약성경 289쪽)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아멘!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모든 자녀 손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축복한 대로 됩니다.”
오늘 주일은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은 질그릇 인생들이 받을 축복!”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살아가다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때문에, 어떻게 할지 몰라 쩔쩔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두 사람이 사업을 같이 하다가 부도가 나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강에 투신자살하기로 하였습니다.
한 명이 먼저 뛰어 내렸습니다. 떠내려가면서 다리위에서 뛰어 내리지 않는 동업자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너도 빨리 뛰어내려.” 그러자 다리위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서워서 못 뛰어 내리겠어.”
그러니까 먼저 물에 뛰어든 사람이 말했습니다. “에이, 그러면 나도 안 죽어.” 그리고 헤엄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 죽는 사람은 막장 인생입니다.
그렇게 힘들 때, 힘들다고 도망가는 사람은 4류 인생입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우는 사람은 삼류 인생입니다.
삶이 정말 힘들 때에 “참자. 참자.” 하면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잘 참아내는 사람은 이류 인생입니다.
그러면 일류 인생은 어떻게 할까요? 정말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일류 인생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 인간을 “질그릇 같은 인생”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서도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 우리 인간을 질그릇으로 표현합니다.
로마서 9장에서도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그릇”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냥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담은 질그릇” 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질그릇인 우리 안에 담겨 있는 보배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냥 연약한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은, 살아가다가 힘들다고 죽지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울지 않습니다.
끙끙대며 참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됩니다.
왜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은 살아가다가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는 걸까요?
첫째 이유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8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첫 번째 이유는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보배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방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영적으로 보면 결코 우겨 쌈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질그릇 같이 보잘 것 없고, 심히 연약한 질그릇 인생들일지라도 예수님을 모셨기에,
사방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로 우겨 쌈을 당하였을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 인생인 우리들은, 살아가다가 힘들다고 자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망가도 안 됩니다. 울어도 안 됩니다. 끙끙대며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홍해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바로 왕은 200만 명의 히브리 노예를 다시 잡으려고, 병거 600대를 앞세우고 잡으러 뒤쫒아 옵니다.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앞은 홍해입니다. 뒤는 애급 군사입니다. 양쪽으로 가 보아야 사막입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미련한 지도자라고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죽이려 합니다.
그렇게 힘들 때,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 모세가 크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아멘!
그렇게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 모세가 크게 외치고 지팡이를 든 손을 내미니,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라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 모세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하는 일마다 안 되니까, 점쟁이를 찾아 갔습니다. 그랬더니 손금을 보자고 합니다.
손금을 보던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40세가 될 때까지는 하는 일마다 안돼서 가난할 것입니다.”
실망한 젊은이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면 40세 후에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자 점쟁이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는 가난과 아픔에 아주 익숙하여져 있을 것입니다.”
보배이신 예수님 없는 인생들은 늘 그렇게 살게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한 채 평생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여 담고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도전하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살아가다가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여기 “답답한 일” 이란? 극심한 불안을 의미합니다.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말합니다.
사방을 우겨 쌈을 당하는 것이 외적 현상이라면, 답답한 일을 당하여 낙심하는 것은 내부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때에도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담은 질그릇 인생인 우리는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불안해서 두렵고 떨리는 일들,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우리의 답답한 일들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보배를 지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 인생인 우리들은, 살아가다가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도망가도 안 됩니다. 울어도 안 됩니다. 끙끙대며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 피를 쏟아내지만 고침 받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돈도 다 허비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낙심되었을까요?
그러나 그에게 “예수의 소문이 들린지라.” 아멘입니까? - “보배로우신 예수님의 소문이 들린지라.”
그는 곧 바로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그의 답답한 일 -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질병이라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믿음으로 보배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우리의 답답한 일 - 병 고침을 받을지어다! 아멘!
오래 된 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시크리트 가든”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평균 시청율 30%를 기록한 인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드라마 작가는 김은숙입니다. 그는 꿈의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책 살 돈도 없었습니다. 드라마로 유명하여 지기 직전까지만 하여도,
그는 30만원 월세방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근근히 살았던 사람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새우깡 한 봉지를 3일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드라마 한 편으로 6억 원을 벌었습니다. 그를 답답하게 만든 가난이 사라졌습니다.
물질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면 안 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신 우리는 일류 인생이잖아요.
아멘입니까? 그래서 일류 인생은 오히려 믿음으로 질병에 도전하고, 가난에 도전하고, 도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꿈대로 이루어집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축복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여배우 마리린 몬로의 상징인, 바람에 치마가 나부끼는,
매혹적인 모습을, 그와 함께 잠깐 결혼생활을 했던 남편이 엄청나게 큰 조각품으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마리린 몬로는 그 미모 때문에 수많은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 닫은 해수욕장과 같았다.”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던 그도, 예수님 없이 살았기에 답답한 일을 당하였을 때 낙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없이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답답한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다가 죽음으로 끝맺습니다.
프랑스의 오베랑 목사님이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를 찾아가서 두 개의 보석을 보여 주면서 말했습니다.
“어느 보석이 더 빛나게 보이나요?” - 그 성도는 유난히 더 빛나 보이는 보석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오베랑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보석은 8번 깎았지만, 성도님이 가리킨 유난히 빛나는 이 보석은,
80번이나 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실수록 그래도 믿음으로 도전하면 성도님도 이처럼 빛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할수록 단련을 받아 더욱 빛나는 성도는 유난히 빛나는 보석과 같습니다.
비록 질그릇 인생일지라도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셨기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오직 우리에겐 보배로우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질병과 가난 때문에 답답하여도, 가정과 사업 때문에 답답하여도, 세상 그 어떤 일에 막혀 답답하여도,
일류 인생인 우리는 믿음으로 도전하면 믿는 대로 다 해결되고 이루어집니다. 기도하고 축복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살아가다가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는 세 번째 이유는,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 때문에 버린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 중에, 앞에 부분의 말씀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학생들이 학교생활하면서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왕따 당하는 것이랍니다. 같이 어울려 주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자기들끼리만 연락하여 같이 움직이고, 유독 한 아이는 제외시킵니다. 그게 바로 핍박입니다.
사람만 우리를 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핍박도 있고, 질병의 핍박도 있고, 권력의 핍박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비록 이런 모든 것들에게 버린바 되고, 왕따를 당하고, 그래서 외톨이가 되고,
핍박을 받지만, 하나님은 더 크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버린 돌이었지만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보배를 지닌 질그릇 된 우리는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영국출신의 유명한 극작가요. 시인인 세익스피어는 너무나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박함 속에서 먹을 것을 벌려고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먹고 살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크게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글을 쓸 때 꼭 먼저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먼저 성경을 많이 읽고서 믿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세익스피어는 가난이라는 핍박을 받았지만, 예수님이라는 보배를 지녔기에 가난 때문에 버린바 되지 않았습니다.
양식 물고기보다 자연산 물고기가 값도 더 비싸고, 맛도 더 있고, 영양가도 더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식의 환경은 평안합니다. 때가 되면 주는 먹이를 먹고 자랍니다. 아무런 저항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자란 물고기들은 세찬 파도 속에서 자라고, 기온차가 엄청난 곳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자연산 물고기는 그렇게 버린바 된 것 같은 환경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맛과 영양가가 높아 비싸게 팔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버림을 당하여도, 오직 우리에겐 보배로우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질병과 가난 때문에 핍박을 당해도, 가정과 사업에 핍박을 당해도, 세상 그 어떤 일에 막히는 핍박을 당해도,
일류 인생인 우리는 믿음으로 도전하면 믿는 대로 다 해결되고 이루어집니다. 기도하고 축복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모신 질그릇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살아가다가 힘들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는 네 번째 이유는,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 때문에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 중에 뒷부분의 말씀입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직접 체험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면서 죽을 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사도 바울은 오뚜기처럼 다시 살아나서,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러분! “실패파티” 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성공파티” 는 있어도 “실패파티” 는 생소합니다.
미국에 인투이트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잘 나가는 회사입니다.
그 회사에서는 신제품을 만들어 출시하여 판매에 실패하면, 전 직원들이 모여서 “실패 파티” 를 열었습니다.
사장은 말합니다. “실패작을 내놓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하여 거꾸러뜨림을 당하였다고 다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잘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엔가 실패하고 힘들 때,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은 일류 인생은 막장 인생처럼 죽지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절대로 울지도 않습니다. 끙끙대며 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실패에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우린 일류인생입니다. 실패해도 연장전이 있습니다. 재기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공합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웃을 수 없는 날에는 가게 문을 열지 말라.”
우리 자신은 비록 질그릇 같은 연약한 인생이지만,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셨기에 우린 강합니다.
강한 자는 언제나 웃을 수 있습니다. 그 웃음에 여유가 묻어납니다. 실패해도 웃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일어섭니다.
10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신학시험에서 이런 논술 문제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가나 혼인잔치 기적에 대한 고찰” 모두가 잘 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유독 빈둥거리며 노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시험 감독관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시험마감 5분 전에 다가가서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5분 남았는데, 너는 아직 백지다.”
그러자 그는 그때서야 펜을 들어서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서 성령의 새 술에 취해, 거룩한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역사상 음반 판매 기록 1위을 세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프로 축구선수였습니다. 최고의 골키퍼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부상이 심하여 1년 반 동안 병원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축구 선수생활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간호원이 키타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병상에서 지루할 테니 배워서 노래를 부르세요.”
노래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축구선수였으나, 그때부터 그는 병상에서 키타를 배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작곡도 배워서, 자기가 직접 작곡하여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소질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구슬프고 감미로운 노래를 작곡하여 직접 불렀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이 팔려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하여 거꾸러뜨림을 당하였다고 다 망한 것이 아닙니라, 더 잘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엔가 실패하고 힘들 때,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은 일류 인생은 막장 인생처럼 죽지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절대로 울지도 않습니다. 끙끙대며 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실패에 도전하는 일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우리는 일류인생입니다. 실패해도 연장전이 있습니다. 재기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공합니다.
오늘 본문 7절부터 12절 말씀까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아멘!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비록 연약하여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들이지만,
이렇게 연약한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아멘!
드라마 대사 가운데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내 안에 너 있다.” - 그러나 우리는 “내 안에 예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다가 힘든 일을 만났을 때에도, 우린 결코 우겨 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버림당하지 않습니다. 우린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힘든 일을 만났을 때에 오히려 믿음으로 도전하십시오. 그것이 일류 인생이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질병과 가난, 가정과 사업, 세상 그 어떤 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버린 바 되어도,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오직 내 안에, 여러분 안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도전하는 인생이 되어,
주님이 형통의 길을 열어 주시고, 기도하고 축복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