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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09
고흐·랭보를 다룬 뮤지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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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고흐’의 한 장면.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가운데)는 그림 모델을 구할 수 없어 거울을 보고 자화상을 수없이 그리며 연습했어요. /에이치제이컬쳐(주)
우리는 뛰어난 예술가를 '천재'라는 말로 칭송하죠. 하지만 그 성취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쉽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을 종종 잊곤 합니다.
여기 두 예술가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열정을 시와 그림에 바쳤지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입니다. 두 사람의 예술을 향한 치열한 여정을 그린 두 편의 뮤지컬을 소개할까 해요. '빈센트 반 고흐'(12월 13~14일·군포문화예술회관)와 8일 종연한 '랭보'입니다.
고흐, 습작만 1100점 이상
고흐는 '불행한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지요. 지금 고흐의 그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해요. 고흐 인생에 몇 명 되지 않는 지인을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은 경매에서 8250만달러, 약 1170억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이처럼 고흐가 그린 그림은 부르는 게 값이 됐지만, 정작 생전엔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그는 37세의 이른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흐의 위대함은 아무도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고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끼니를 해결할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캔버스를 사서 완성한 그림이 무려 900여 점이고, 습작만 해도 1100점 이상이 있지요. 고흐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으로 그림을 배운 것은 1년 남짓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사실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화가였답니다.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쥔더르트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학교 수업엔 적응하지 못했고 화랑과 서점의 판매원을 전전하지요. 한때는 성직자가 되려 했으나 이마저 포기해요. 목사인 아버지와도 불화를 겪지만, 고흐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동생 테오 덕분이었어요. 당시 유럽에서 유명한 미술품 딜러 회사의 성공한 미술상이었던 테오는 형 고흐의 둘도 없는 후원자이자 친구였어요. 그는 고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요. 두 사람이 나눈 900여 통의 편지는 책으로도 출간됐는데, 그들의 형제애는 감동을 줍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눈 우애를 바탕으로 고흐의 인생을 그려나가요. 무엇보다 3D 영상을 물체에 투사해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고흐의 명작 50여 점을 무대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이 기술을 통해 관객들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작고 허름한 고흐의 방이 그대로 무대에 옮겨진 듯한 느낌을 받죠. 마치 고흐의 방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감동이 전해진답니다.
시 분석에 몰두한 랭보
시인 랭보의 삶은 고흐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고흐보다 1년 늦게 태어나 역시 37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고흐가 그림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듯, 랭보 역시 시에 온 생을 바쳤지요. 랭보는 어려서부터 많은 시를 암송하는 놀라운 기억력은 타고났지만, 매일 시 분석에 골몰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노력파였지요.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다면 랭보에게는 폴 베를렌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그는 랭보보다 열 살이나 많았지만 랭보와 그의 시를 사랑했어요. 베를렌은 랭보에게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랭보는 별명처럼 위태롭게 방황하며 시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네덜란드·아프리카 등을 거치며 떠돌다가 심각한 무릎 통증을 느껴요. 이후 무릎 부근의 종양이 퍼지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결국 암세포가 온 몸에 번져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짧은 생을 마치지요.
놀랍게도 랭보가 남긴 대부분의 시는 그가 10대 때 쓴 것들이에요. 그는 16세에 첫 번째 시 '고아들의 새해 선물'을 발표한 이후 20세에 절필을 선언했거든요. 그는 이 시기 세계 문학사에 남을 만한 여러 시를 발표했는데, 보통 사람으로선 평생 걸리는 일을 청소년기에 이미 이뤄낸 것이죠.
랭보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은 베를렌과의 다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일어난 다툼 끝에 베를렌이 랭보의 손에 총을 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흔들리게 되고, 랭보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기로 해요. 랭보는 평생 베를렌과 함께 시를 쓰는 이상적인 삶을 꿈꿨지만 결국 세상을 떠돌며 돈을 벌다가 병으로 끝을 맺은 것이지요. 이처럼 극적인 그의 삶은 후대에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집니다.
그의 삶을 재해석한 뮤지컬 '랭보'는 랭보가 세상을 떠난 후 시작돼요. 그의 고향 친구였던 들라에가 베를렌을 찾아가 랭보가 아프리카에 남긴 마지막 시집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자고 제안하죠. 랭보와 베를렌이 남긴 아름다운 시들에 음악이 더해지고 두 사람의 인생이 담긴 연기가 어우러지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뮤지컬 '랭보'에는 랭보의 대표작 '취한 배', 그리고 베를렌의 시 '초록' '예지'를 비롯해 27편이나 되는 시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뮤지컬의 설정과는 다르게 랭보의 마지막 시집 '일뤼미나시옹'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랭보가 베를렌을 직접 찾아가 남긴 것이지요. 비록 랭보의 방랑자 인생은 무채색처럼 어두웠지만, 시를 쓸 때만은 '채색 삽화'라는 뜻의 '일뤼미나시옹'처럼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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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가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을 배경으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이 그림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에이치제이컬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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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랭보’의 공연 모습. 랭보(오른쪽)가 고향을 떠나 파리로 가기 전, 고향 친구인 들라에와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라이브(주)·(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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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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