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7일 등재된 기사로서 읽어보니 참 좋은 기살세(평론 끝 / 기사 전문은 아래).
탐스런 사장나무 아래 근심 걱정 내려놓게
길따라 물따라 김정희작가
- 강진만① 푸른 영혼의 길
2012. 12.27(목) 08:27
결사적 행복 아니어도 아름다워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는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긴 길을 걷는 과정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이지만 세상과 대면하는 진실한 방법 중 하나다.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푸른 영혼의 길, 강진만 바다 둘레길을 걸었다. 내 마음의 버킷리스트는 그런 것이었을까. 낯선 곳을 떠돌며 그곳을 살았던 이들의 발자취와 삶의 쓸쓸함, 애잔함을 읽는 것- 걷는 것은 한 곳 만을 향하여 달리는 마라톤과 다르다. 과정을 누리는 행위이다. 햇빛이 가득히 고인 강진만의 바다 둘레길을 걸으며 ‘결사적인 행복’이 아니어도 이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느꼈다. 지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의 탄력을 회복했다. 다산수련원에서 출발해 용흥리와 부흥마을을 지나 용산과 가우도 출렁다리, 중저 마을, 그리고 청자 박물관에 닿는 길은 1박 2일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강진(康津)-그 편안한 나루에서 다산의 향기를 느끼며 걸었던 짧은 도보여행의 발자국을 옮겨 본다.
일금당(一金堂), 이항촌(二項村) 삼군자(三君子)
다산친구 ‘윤서유의 집 600m’가 표시된 표지판 앞에서 여섯 명의 일행은 여름 햇볕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수건과 마스크로 중무장(?) 하고 바다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여름 한낮, 햇볕이 내리 쬐는 길을 걷는 것은 때론 엄숙한 각오가 필요하다. 처음으로 바닷길 걷기에 따라 나선 후배 L과 J목사님은 유쾌한 입담으로 출발할 때부터 웃음을 선물한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20분 쯤 걸어 이 소도시의 특별한 ‘성(城)’같은 ‘항촌’마을의 입구에 닿았다. 일행은 둥근 표지석에 새겨진 ‘항촌’ 마을의 지명과 ‘항촌찬가’ 앞에 나란히 섰다. 마을의 편안한 기운이 머리에도 어깨에도 손등에도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택리지의 이중환은 「복거총론(伏居總論)」에서 ‘사람이 살 곳을 정할 때에는 처음에는 지리, 다음에는 생활하는 도리, 그 다음을 인심(人心)과 산수(山水)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 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하였다. ‘항촌은 예부터 일금당(一金堂), 이항촌(二項村) 삼군자(三君子)‘라고 할 정도로 강진에서도 명당자리로 알려졌다. 강진군 성전면 금당리에 강진에서 첫 번째 가는 명당이 있고, 도암면 항촌리에 두 번째 가는 명당, 작천면 군자리에는 세 번째로 좋은 명당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 항촌(項村) 지명에는 ‘목 항‘자가 사용 되고 있는데 풍수 하는 사람들은 이 항촌리가 바로 용의 몸통에 해당되며 마을의 남쪽에는 항두(項頭), 즉 용머리를 지칭하는 지명이 있다고 설명한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한 가운데 빨간 지붕이 보이고 이 빨간 지붕의 건물이 1914년 일본강점기 때 도암 면사무소 자리다. 그만큼 ‘항촌’은 도암의 중심지였다. ‘항촌’은 도암 석문천의 맑은 물이 마을 전체를 감돌고 뒤로는 황새산이 학의 양 날개를 벌린 형국이다. 또 다산 정약용선생의 아버지인 정재원이 처가인 해남 연동을 가다가 이곳 ‘항촌’의 윤광택가에서 검정소를 대접받고 이 마을에 시를 지어 답례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윤광택과 다산이 인연이 되어 사돈지간이 되었고 다산의 딸과 사위의 묘소도 이 ‘항촌’에 있다. 마을 입구 사장나무 아래 갈색 표지판에 필자가 이곳을 소개한 글이 새겨져 있다.
‘탐스런 사장나무 아래 그대는 근심 걱정 내려놓게.’ 사계절 고운 풀꽃이 피는 담장 길 돌아서면 확 트인 들판의 풍경을 마주한다. 길은 본래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니 항촌 입구에는 마을의 사랑방 사장나무가 있다. 어디서건 길 떠난 이가 구름 창 아래 선잠자다 꿩 우는 소리에 깨기도 하였을까. 나그네여, 붉은 산 앵두 같은 이야기 똑똑 이곳에서 풀어놓으라. 날아가는 새들이 알아듣고 똑같이 아름다운 길을 열어 주리니 그대 신비로운 다산 길의 흙과 돌을 밟을 때마다 프시케(psukhe)-생명의 가장 여린 숨결로 바람의 무늬가 돋아난다. 이곳에서 배낭과 함께 근심 걱정 내려놓고 다산 옛길의 여정을 살펴보자.
“잘 익은 상처엔 꽃향기가 난다”
‘항촌’을 돌아서 선홍빛깔 철쭉이 붉게 핀 길을 걷는다. 모든 상처는 꽃의 빛깔을 닮았다고 쓴 시인이 있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고. 발로 몸을 길들인다는 말처럼 들길의 감수성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낮은 돌담장에 삼남길과 다산 유배길의 방향을 표시하는 리본이 걸려 있다. 마을로 들어서는 둥근 길은 돗자리를 깔고 장기판을 마주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것 같은 풍경이다. 돌로 쌓아 올린 담장에는 싱싱한 덩굴 이파리들이 뻗어 오르고 열린 대문 사이로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서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풍차가 돌아가는 그림책속의 집처럼 예쁜 집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곡선의 들길에서 붉은 산딸기도 수확(?)했다. 비닐로 만든 허수아비가 손을 흔드는 논둑길을 얼마쯤 걸으니 ‘복천제‘와 부흥마을 회관이 나오고 위쪽으로 작은 정자가 하나 서있다. 문득 어디서 새떼가 날아와 먼 하늘에 길을 낸다.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 나의 신속에 신이 살고 있다.’
문정희 시인의 시「먼길」을 떠올린다. 자연을 벗 삼아 옛사람이 걷던 길과 지금의 길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산과 들, 풀과 나무 그것들은 예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생산을 매개로 해서 자연과 관계를 맺건 유람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건 인간의 모든 생활은 자연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은 마치 천(布)의 씨와 날같이 함께 짜여 있다. 18세기 지리학자 신경준은「도로고(道路考)」에서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 하였다. 길의 주인이 되어 가우도 선착장이 있는 망호 마을을 향해 걷는다.
컬쳐인 root@ho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