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귀농 여유자금을 단 돈 한 푼 준비하지 않았어요. 이사 비용을 지불하나까 통장 잔고가 0이 됐습니다. 다만 귀농 직후 2,000만원 가량 생각하지 않던 돈이 생겨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귀농 여유 자금은 최소 1년치 생활비(2천만원)를 준비합니다. 제 알기로 보통 2년치 생활비(4천만원)를 준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에 덧붙여 농기계, 농기구 등 농자재 구입자금까지 별도로 고려하셔야 합니다. 제 경험을 적습니다.
삽 1 자루, 낫 2 자루, 호미 2 자루 달랑 들고 농사지러 왔습니다. 도시 생활할 땐 이런 게 필요없는데, 저는 오래 전부터 귀농을 결심했기 때문에 벌초 때 사용하던 것을 낡았지만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낫, 호미, 삽을 도시에서 쓸 일이 없는데도 보관하였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죠? 망치, 드라이버, 뺀찌, 니뻐, 손톱 등 기본적인 가정용 공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림도 없더군요. 무슨 일 하려도 들 때마다 필요한 것 천지였습니다. 오죽하면 집에 방문할 때 무엇을 사갈까 물어오면 농기구를 요청합니다. 작년 생일선물도 농기구로 받았어요. 농사를 한두해 하다 말 것이 아니어서 필요할 때 구입할 수밖에 없어요. 새 것을 구입하되, 별 문제 없는 것은 약간 저렴한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구입한 농기계 등 자재를 적어보겠습니다.
엔진톱, 전동대패, 스킬톱, 그라인더, 전기용접기, 드릴, 전동드라이버, 예초기, 절단기(끌, 줄자 등 자잘한 목공 용구 몇 가지 더 구입했습니다.), 전원 연장선, 작업등
비닐, 갑바, 노끈, 박스테잎(비닐과 갑바는 재질과 두께를 보고 골랐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엔 얇고 싼 것을 구입했다가 햇볕에 두달 노출되니 다 헤져서 두꺼운 것으로 다시 구입했습니다.), 곡식 말리기 위한 모기장처럼 생긴 검고 촘촘한 그물망
외발 수레 및 수레 바퀴 몇 개(바퀴가 자꾸 터져서 튜브없는 프라스틱 바퀴를 구입했습니다. 프라스틱 바퀴는 턱을 올라가기가 힘드는데, 익숙해지니까 별 차이 없습니다.)
삽, 미니삽, 오삽, 각삽, 눈삽, 호미는 종류별로 10여 가지, 모종삽(국산 스테인레스 제품으로), 호크(포크), 쇠스랑, 곡괭이, 괭이, 바(빠루), 일반낫, 대장간 낫, 전정가위, 삼지창
비옷, 장화, 작업화(작업화는 유명 메이커 작업화도 서너달 신으면 헤져서 등산화를 구입해 신고 일함), 슬리퍼, 장갑, 비닐장갑, 양말(양말은 몇 번 신으면 금방 헤지네요.), 모자(바람 세고 추울 땐 써야 합니다.), 후레쉬
양동이, 물통 등 각종 통(십여가지 이상 구입, 농사 지어보세요. 꼭 필요합니다. 심지어 딸기 장사가 딸기를 담아서 파는 빨간 작은 통도 처음엔 여기서 구하지를 못해 600원씩 주고 구입했고, 지금은 이런 통은 재활용센터에서 무료로 얻어 사용합니다.), 각종 바구니
천그물망, 철그물망, 하우스 파이프, 함석 스레트, 철사(닭 우리와 염소 우리, 창고를 짓고 울타리를 치기 위한 용도입니다. 각종 우리와 창고를 지을 때 구조재는 산에서 나무를 해와다 깎고 치목해서 사용했고, 나머지 자재는 구입했습니다.)
집 수리에 필요한 전선, 콘센트, 플러그, 지붕 방수용 하도, 방수페인트, 상도, 붓
농산물 박스, 마대자루, 그물망 자루(씨앗 보관할 때 필요합니다.)
나무난로(이사와서 석유 2 드럼을 채웠는데, 단열이 잘 안되는 슬라브집이라 덜 추운 11월에도 한 달 조금 넘게 때면 바닥납니다. 석유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무 난로를 구입했어요. 나무를 때고나서는 연료비 걱정 없이 한 겨울에도 집안 전체가 20~30도씨를 유지하며 따뜻하게 지냅니다.)
이외에도 구입한 농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필요한 농기구를 구입하는 데 약 1,500만원 이상 썼습니다. 떠오르지 않는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자면 훨씬 더 많겠지요. 이런 것 구입하는 데 뭔 돈이 그리 많이 드냐고 하시진 마십시오. 적어도 그 이상입니다.
처음 이사 와서 이웃이 고구마 캐고 남은 고구마 잎과 줄기를 퇴빗감으로 쓰기 위해 양동이로 사흘 동안 퍼 날랐습니다. 한 곳에 쌓아 두고 오줌 싸대고 손으로 뒤집었습니다. 퇴비를 덮을만한 게 없었습니다. 농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레가 필요하고, 오줌을 발효시킬 통이 필요하고, 호크(포크)도 필요하고, 퇴비를 덮을 비닐이나 갑바가 필요했죠.
풀을 손으로 뽑다가 곡괭이와 괭이, 호미를 더 구입해야 했습니다. 밭에서 골라낸 돌을 양동이에 담아 날라보셨나요? 수레가 없어선 안됩니다.
닭 우리를 짓기 위해 산에서 이미 벌목된 나무 중에서 2M 길이가 넘는 나무를 수레에 싣고 왔는데, 맨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썰고, 깎아내겠습니까?
용접할 일이 생기면 이웃께 들고가서 도움을 받지요. 그런데 어느 날 대문 용접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담장과 함께 대문을 들고 갈 수가 없지요. 전기용접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접 초보자가 이웃의 귀한 장비를 빌려 직접 용접하기도 그렇고 또 용접기 들고오셔서 용접해달라고 할 염치가 저한텐 없었습니다.
닭 우리 기둥을 세우는데, 50M 넘는 곳에 콘센트가 있어서 50M짜리 전원 연장선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못을 빼거나 바위를 들어 옮길 때마다 이웃으로 달려가 빠루를 빌려 사용하기는 힘듭니다.
네 마지기의 밭에 물을 주려고 양동이로 퍼다 물을 줄 수는 없지요. 호스와 분무기를 마련해야지요.
처음엔 여윳돈이 없었는데, 서울에 작은 집이 팔려 빚 갚고, 나눌 사람과 나누고 남은 돈이 있어서 그나마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게 얻거나 빌려써도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요. 남에게 매번 빌려다 쓰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근데 거꾸로 남에게 빌려주는 것은 좋아해요.
각종 목재, 하우스 파이프의 일부, 고추지주대, 고추터널비닐, 터널하우스용 강철 등 이웃으로부터 도움 받은 것도 많았습니다. 씨앗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씨앗도 이웃으로부터 도움 받았습니다. 만일 이런 것까지 구입했다면 지금 나무 그늘아래서 밥 먹고 잠자고 있겠지요. 쉽게 말해, 노숙하고 있겠지요.
경운기가 생기고는 작업 능률이 몇 배 좋아졌습니다. 써 보니, 트랙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경운기는 농사짓는 데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경운기를 사용하고 나서 작업능률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몸도 훨씬 덜 혹사하니까요. 저는 경운기와 로터리를 이웃으로부터 선물받았습니다. 만일 이런 최소한의 기계를 새 것이든 중고든 구입하는 것까지 고려하신다면 예산을 더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 해올 때 처음엔 외발 수레에 나무를 싣고 왔는데, 산에 가서 하루에 서너번 왕복해도 하루 땔 분량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운기로 나무를 한 번 실어오면 1주일을 때요.
또 농사를 대규모로 짓고, 요즘 보통 농사방법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면, 비닐, 씨앗, 비료, 농약, 하우스 등 기타 시설비용까지 감안하셔야 합니다. 저는 일백년 전 조상님들이 농사짓던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이런 비용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실 돈 주고 산 것보다 이웃으로부터 도움 받은 게 더 많다는 점까지 함께 고려하셔야 합니다.
만일 농사를 짓던 분으로부터 각종 농기구, 농자재를 통째로 넘겨받는 경우라면, 이런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