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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에『우리시』 단풍제가 우이도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린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렸다. 아마도 올봄에 우이도원에서 신선들의 환상적인 시화제(詩花祭)를 구경한 탓인가 보다. 그 신선들에게 초대는 받지 못했지만 지난번처럼 슬그머니 찾아가 한귀퉁이에서 구경하다가 유자주와 맛난 음식도 얻어먹고 재수가 좋으면 그 신선들이 읊어대던 시집도 한권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좋은 가을에 혼자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서 도선사로 들어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 황홀한 비단 가을옷을 입은 산자락이여!
부처님을 찾아오는 사람, 단풍놀이 산을 오르는 사람, 각기 저마다 발길이 다르다.
도선교를 건너 150보를 기억하며 걸음 수를 세기 시작하였다. 발바닥에 울퉁불퉁 돌에 닿는 발 맛이 좋았다. 148보째에 『우리시』↑ 라고 표시된 표지를 발견했다. 언덕을 오르내리고 도랑을 지나 봄날의 기억을 더듬어 마침내 플루트 연주소리가 나는 곳에 당도했다.
빙 둘러 저만큼 멀리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병풍을 둘러치고 약 오십여 명이 제물 앞에 앉아있다. 봄날에 꽃분홍 팬지꽃과 금잔화가 잘 가꾸어졌던 가운데 꽃밭은 온데간데없고 덤불 속에 큰 무더기로 저쪽과 이쪽에 핀 노란 소국(小菊)과 키 큰 금송화가 단풍제 분위기를 좀 더 아름답게 했다. 모든 나뭇잎들이 단풍을 자랑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주위에 둘러선 복숭아 나뭇잎은 유월 녹음과 같고 한그루 대추 나뭇잎은 연둣빛이다.
삼각산 단풍제 현수막이 세 개나 걸려있고 잘생긴 나목이 된 고사목 앞에 제물이 차려져 있다. 모두 시선은 앞에 나와 플루트를 연주하는 장수길, 정은하 부부와 장은수 양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한참 늦었다. 혼자 계면쩍기도 해서 지난날 앉았던 자리에 가 살그머니 앉았다. 장진돈 시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잠시 후 사회자 나병춘 시인이 「우리시 선언문」을 남유정 시인이 낭독한다고 하였다.
“자연은 삶의 모태요, 모든 생물의 어머니다. 시로 된 연두교서, 시로 된 법전은 없는가, 시인의 나라는 없는가, 단풍은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이요, 시는 사람이 지은 아름다움이다. 단풍은 날짜를 모두 기록한 것이다.” 라는 요지였다.
축사는 광주대학교 문창과 이은봉 교수가 “오늘 하루 행복한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라고간단하게 했다.
또 한사람의 축사는 이번 10월 10일부터 강북구청 문화공보를 맡았다는 장병수과장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다음은 헌창(獻唱) 순서로 이순경 경기민요 명창과 설봉 장영철 화백이 고수로 불려 나왔다. “삼각산 단풍비 내리는 백운봉에 ……. 바람에 날려 왔나, 구름에 싸여 왔나 나 여기 온 것은 님 보러 온 것.”이라고 판소리에 북 대신 빈 귤 박스로도 제대로 고수역할을 하는 대단한 역량을 보이는 장영철 화백은 오대산에서 왔다고 한다.
축가로는 하덕희 씨가 청아한 목소리로 홍해리 시인의 「삼각산 단상」가곡을 장수길 씨의 플루트 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사회자는 새들은 노래를 잘 부르는데 그중에 사람새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면서 그 사람새를 지적하니 다시 설봉 장영철 화백이 귤 박스 를 치는 고수가 나오고 조용제씨가 사철가를 불렀다.
사회자가 헌작순서를 외치자 연장자 순으로 이생진 시인, 박희진 시인 등으로 시작해서 여러 차례 여러 명씩 집단으로 술잔을 올렸다.
둘레둘레 무리지어 점심을 먹었다. 나는 장진돈 시인의 벗들과 함께 자리를 하였다. 봄날에 먹던 그 여수 돌산 갓김치를 안주해서 맛본 씨름선수 김일이 먹었다는 달콤한 거금도 유자주 맛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점심을 웬만큼 들었다고 생각될 때 윤준경 시인이 2부 사회를 시작하였다. 신청자를 우선적으로 받는다고 했는데 1번 타자로 18세로 산다는 눈보라 시조시인이 나와서 『청산리~~』를 읊었다. 다음은 황도제 시인이 나와서 “산신과 목신과 꽃신과 함께 술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면 즐겁다.”라고 하며 「홍콩의 아가씨」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세 번째로 사회자가 발로 시를 쓰는 이생진 원로시인을 소개하였다.
“청년이라고 발악을 해도 세월은 어떻게 나무랄 수가 없어요.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좋은 때가 있다. 낙엽을 간직한 사람은 사랑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라고 하고 당신의 작사 “「떠나던 날」을 윤준경 씨에게 듣고 싶어 왔노라.”라고 노래 불러주기를 부탁하였다. 아름다운 그 목소리 봄날 부르던 그 노래, 이생진 원로시인은 참 행복한 시인이구나 싶다.
사회자가 칸초네도 잘 부르는 멋쟁이 고창수 시인을 소개하니까 당신은 “한국의 영상시의 1인자이다.”라고 했다. 불란서에서 씨네포엠 논문을 써달라고 해서 쓰려고 하는데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논문을 쓰려니 모르는 것이 많다. 11월 15일까지 마감이라 열심히 도서관을 뒤지고 있다면서 원어로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나무의 짝꿍 이수풀 님이라는 분이 천국은 사람과 꽃과 바람이 있는 곳이라면서 꽃노래를 불렀다.
문숙 초대시인은 『 우리시 』2007.10월호 70쪽에 있는「홍연」을 낭송했다.
산신령이라는 박희진 원로시인은 손가락으로 멀리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저것이 까치집이라고 생각해 달라며 변규백 곡, 자신의 작품 『까치집』을 노래 불렀다.
보라 저 까치집, 드높은 가지 위에!
저렇게 정결하고 소박한 집은 없다
저렇게 많은 빛과 바람과 나뭇잎들의
보라 저 까치집, 포플라 가지 위에
한태호 시인은 소리시를 읊었는데
옴~마~니~ 반~ 메~ 훔~ 옴~마~니~ 반~ 메~ 훔~
오샤오샤 인나라인나라 쟈크릿 가시 비비 일어난 비
시낭송의 새로운 면, 첨단 예술장르인가, 마치 남버원의 원맨쇼를 보는 것 같았다.
『 동창이 밝았느냐 닭의 목을 비틀어라』시집을 낸 조병교 시인은 봄노래 한하운 시/조념 곡「보리피리」를 불렀다.
보리피리 불며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닐니리, 필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그리워
필닐니리, 필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닐니리, 필닐니리, 필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닐니리, 필닐니리…….
막간을 이용해서 사회자 윤준경 시인이 「아, 가을인가 봐…….」를 불러대고.
이무원 시인은 「성주풀이」를 멋지게 뽑았다.
장진돈 시인은 이은상작사/ 현제명곡인 「그 집 앞」을 노래했다.
오늘 모임의 유일한 어린이 장은수 양이「개구리 노래」를 부르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하고 예쁜 모습의 동작을 하고 들어가니 효도교육을 아주 잘 했다고 사회자가 찬사를 보냈다.
오대산 설봉 장영철 화백은 판소리 단가「강상풍월」을 패러디해서 불렀다.
이배 저배 다 버리고 한송정 들어가
길고 긴 솔을 베어 조그만허게
배 무어타고 술과 안주 많이 실어
우이도원 구경가세
임보 시인은 『흥』타령을 했다.
구름이다 구름이다 모두 다 구름이다
구름속에 났다가 구름속에서 살다가 구름속으로
구름을 탓해서 무엇을 할거나
바람이다 바람이다 모두가 다 바람이다
너도나도 바람이요 이것 저것이 다 바람이다
바람에서 왔다가 바람속에서 살다가 바람으로 가는 인생
바람을 탓해서 무엇을 할거나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에, 이것저것 다 꿈이요
꿈깨니 또 꿈이요 꿈에 나서 꿈에 살다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부질없다 아이고대고~ 아이고대고~
어~ 아~ 아하~ 아~ 아하~ 아~
아마도 산신 목신 꽃신 구름신 바람신들이 모두 얼근히 거금도 유자주에 취한 임보 시인의 시흥을 돋우어 주어 즉흥시를 읊은 것이 아닌가 싶다.
마이크고장으로 송문헌 시인이 나왔다가 그냥 들어가고 홍해리 『우리시』 회장이 나와서 사회자에게 무언가 주문을 하고 들어갔다.
이순경 경기민요 명창이 「태평가」「양산아리랑」「밀양아리랑」을 부르는 동안 사회자를 선두로 한 무리가 흥겹게 춤을 추었다.
박영원 시인이 성주풀이를 불렀다.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영웅 호걸이 몇몇이며 절대 가인이 그 뉘기며…….
박승류 시인은 위트 있게 다이얄 비누 CM 송을 불렀다.
당신의 비누 다이얄
『우리시』의 남자 박승류
과연『우리시』첫 번째 등단자 다운 패러디이다.
하덕희 시인이 다시 그 청아한 목소리로 온산을 불러 모으듯「산들바람」을 불러 대미를 장식했다.
오늘의『우리시』행사를 고운 단풍옷을 입은 자연과 함께 묵묵히 지켜보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나무일까, 너무나 잘 생긴 나목(裸木)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풍제는 막을 내렸다. 봄날 박자를 잘 맞추던 장끼도 딱따구리도 어디로 숨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불청객은 가을을 흠뻑 느끼고 비가 내린다는 정보에 불타는 가을 산을 서둘러 내려왔다. ***
(원고지 28매)
첫댓글 선생님, 좋은 시간 가지셨군요. 산국, 메리골드, 소박한 단풍들..참 이쁩니다. 자세한 소식 잘 들었습니다.
민선생님, 그날 잘 들어가셨나요?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접속했는데, 삼각산 『우리시』단풍시제(丹楓詩祭) 후기가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 글을 제 카페로 퍼 갈까 합니다.^^ 그런데 여백이의 이름은 <박승유>로 쓰기도 하지만 정확한 한자어의 발음은 <박승류>입니다.^^
허락하지요. 박승류로 고친다음에요.
참관기를 상세하게 써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그날 변변히 챙겨드리지도 못해 미안합니다. 다음번엔 친구분들과 더불어 오시기 바랍니다.
허리가 아프시도록 힘겹게 쓰신글을 앉아서 편히 읽으려니, 죄송스런 마음이 앞서네요. 민선생님!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저도 들어보지 못한 교수님의 타령을 들으셨다니, 부럽습니다. 늘 깨어있는 의식으로 사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운하시어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