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통문화와 녹색생태가 어우러진 영주
마을은 공간이다. 오래된 전통이 서려있는 마을의 공간 곳곳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의 자취가 남아있다. 나라의 기둥이 된 충신(忠臣), 나라의 방패가 된 의인(義人)
의 이야기도 있고, 가문의 내림손맛을 이어나간 종부(宗婦), 부모를 위해 정성을 다 바친
효자(孝子)의 이야기도 있다. 오래된 고을은 사당, 서낭당, 서원, 정자가 남아져 있다!
일제 치하와 해방 후 역사의 격동기에서도, 근대화의 바람이 불면서 서구화와 도시화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마을의 정체성을 지켜내며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는 고장이 있으니,
'살기좋은 고품격 도시'를 지향하는 경북 영주시이다. 우리 영주는 되살아나고 있다!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영주시는 소백산 산록의 고원부지로 형성되어 있다.동서로는
협소하고 남북으로 긴 모습이 언듯 보면 우리나라 지도 같은 모습이다.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충북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소백·태백권 교통의 중심지였으나, 경부선을 중심으로 지방도시의
개발축이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낙후되었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산업화·서구화·도시화가 진전되지 않은 곳이었으니, 녹색
성장시대를 맞이하여 청정자연 속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감상하면서 풋풋하고 넉넉한 인심
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중심도시, 선비고을인 우리 영주이다. 가흥리 소재
선사시대 암각화는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증거하고 있다.
단양에서부터 영주에 걸친 소백산맥의 주봉(主峯) 비로봉(1,439m),국망봉(1,421m),연화봉
(1,394m),죽령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1,315m)으로 서남방면으로 푸른 정기가 뻗어내린다.
봉황산과 북부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연화봉과 죽령계곡
에서 발원한 남원천,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천과 합류하여,서천을 이루어 영주 시가지를
휘감돌아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세 발원지가 한 흐름이 되어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
봉황산에 걸린 비구름에서 낙동강물의 한 줄기가 비롯되는 셈이다. 토질은 비옥한 침식
분지의 사질양토(沙質壤土)인 덕택으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란다.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다. 배수가 잘 되니 인삼, 사과 등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자연조건을 갖추었다.
영주시의 유래를 한번 살펴보자. 도시의 이름이 변천되는 과정은 도시의 역사, 영고성쇠
부침의 역사가 담기어 있다. 마을의 인물에 따라서 승격하기도 하고 좌천하기도 한다.
삼국시대 영주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정복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 강주군
(剛州郡)이 되어 병사를 훈련하는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고 하니 본래 군사요충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인종 21년(1143) 안동에 속(屬)하였던 것을 순안(順安)이라 하고 현령(縣令)을
두었다가, 고종 45년(1258)에 주(州)로 승격되면서 영주(榮州)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영주
출신인 김인준(金仁俊)이 무신정권을 평정하여 왕정복고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가서 영주는 영천(榮川)으로 개칭되면서 군수를 두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서 풍기군(豊基郡)과 순흥군(順興郡)이 영천군과 합치어
영주군이 되었다. 1980년 영주읍은 영주시로 승격되고 영주군은 영풍군으로 나누어졌다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영주시와 영풍군이 다시금 하나로 통합되어 오늘날 영주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중앙권력의 힘이 고무풍선처럼 빠질 때 지방문화, 인심은 되살아난다!
현재 행적구역 상으로는 1개 읍(풍기), 9개 면(부석, 단산, 순흥, 안정, 봉현, 이산, 장수,
문수, 평은), 9 개동(영주 1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08년
이후 세대수가 증가하면서 인구의 감소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현재 인구는 약 11만 명이며,
그 중 풍기읍에 약 1만 2천명이 살고 있다. 인구, 땅, 자본 기반으로 도시는 혁신한다!
청정자연, 역사유적, 전통문화를 조화롭게 엮어 “한국 전통문화의 멋과 맛,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한문화 테마파크’를 조성해 한국 전통문화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선도하겠다”다는
당찬 비전을 김주영 영주 시장을 비롯한 지역유지,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박수를 보낸다!
소백산 자락길과 함께 소백산역에서 서천과 구계천을 따라 무섬마을,소수서원까지 이어지는
Y자형 자전거 탐방로를 조성하고, 국립테라피단지를 조성하여 산림휴양의 허브로 발전시킨다
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고 있다. 빨리 걷다가 느리게 걸을 때 내 속에 너가 보인다!
영주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안향이 성리학을 처음으로 전파한 곳, 우리나라 최초
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부석사 무량수전과 영주 사과,풍기 인삼,소백산 천문대,희방폭포,
연화봉의 철쭉축제 등이다. 몇년 전 집사람과 영주에서 소백산 가던 그 길은 잘 있는지?
이제 전통문화·녹색생태 관광도시로서의 숨겨진 가치가 새롭게 드러날 때가 되었다.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가면 서울서 2시간 반 거리이나, 중앙선이 복선화되면 1시간 반 거리가 되어
수도권에 인접하게 된다고 한다. 올곧은 선비의 마을, 영주시의 시화(市花)는 철쭉이다.
철쭉은 본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는 척촉(擲燭)이 변해 된 말이라고 한다. 꽃말은 '사랑의
기쁨,절제'이다. 소백산 철쭉처럼 영주의 선비문화가‘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어나는
그 날을 그려 본다. 선비는 양반과 다르다. 돈과 권력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사랑한다!
* 영주 문화광광 안내 사이트 http://tour.yeongju.go.kr/open_content/main_page/
@ 덕화만발 百花齊放 만파식적 百家齊放
첫댓글 하하하하! 영주의 문화와 역사를 한 눈에 꿰였군요!
제가 군대생활을 안동 36사단에 했습니다.
그땐 철모르고 영주 봉화 풍기 등을 누볐는데 다시 한 번 가 봐야 하겠습니다.
그 때 봉화군청의 그 아가씨도 이제 할매가 되었겠지요?
갈 수록 정감가는 도시인 것을! 하하하하!
안동 36사단에서
젊은 혈기 보내셨군요!
안동은 양반마을이라면
영주는 선비고을입니다!
봉화에 가면 춘양이란
깊은 산속 마을이 있지요.
우리나라 십승지 중 하나,
임진왜란 때에 류성룡 선생
큰 형님이 노모님을 모시고
피란을 간 마을이었지요.
산지기 외딴 집 송화가루가
이제 곧 봄을 알립니다.
그 춘양도 갔었지요!
로맨스 빠빠, 원술랑 등을 들고 18미리 영사기와 군예대, 의무대, 취시병을
정훈부 쫄병인 제가 이끌고요! 물론 저는 영사병이었구요!
경북 북부 32개 면인가를 샅샅이 훑었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