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와 레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사도 요한도 말씀을 받아 먹었고, 에스겔 선지자도 말씀을 먹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1-3,
계 10:5-11). 천사가 전해 준 두루마리에 쓰여진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이 아닌, ‘ 참 복음’을 전파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되어 진 말씀이라고 하였다.
(갈 1:1, 11-12)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 성경 원문에 로고스(logos)와
레마(rhema)를 번역한 것이다.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에서
그 말씀은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 그 자체,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법, 혹은 하나님의 영적 원리 같은 것을 말한다. 반면에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내 영혼에 부딪쳐왔을 때, 그 어떤 감화 감동이
되어 믿음이 된다든지 하여, 나의 영혼 내면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때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로고스인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불꽃이 튀는 듯 뜨거워지고, 내 죄를 회개하게 되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천지개벽을 하듯 변화를 경험하게 하는 말씀으로 다가올 때 그
말씀을 ‘레마’라 한다. 말하자면 로고스는 문자화된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해하면 되겠고, 레마는 그 로고스가 나의
삶의 현장에서 내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뜻, 규범, 영적 이치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순간이라든지, 길을 걸을 때, 마음에 근심이 있어 고민할 때 ,
그 순간순간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마음에 말씀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로 가르쳐서 ‘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우리는 ‘레마’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음식물인 밥을 ‘로고스’로 비유한다면, 그 밥을 내가 먹고 소화하여
기력(氣力)을 회복시킨다면 그것은 ‘레마’로서의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한 것이다. 밥은 얼마든지 내 앞에 있다. 그러나 내가
그 밥을 먹지 않는다면, 도대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아무리 한국은행에 돈이 많아도 내 돈이 되지 않으면 단 한 푼도
쓸 수 없는 것처럼, 로고스가 레마로 들려지지 않으면 내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사나운 풍랑을 만났을 때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건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다.
그들은 “유령이다!”라고 소리질렀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빨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 때 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정말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너라!” 그러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갔다.(마태복음
14:25~33).
그러나 베드로와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다”
(마 14:32)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다. 물 위를 걷다니. 무술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이 사건은, 분명 성경 말씀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로고스의 말씀이
베드로의 영혼에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 영혼에 ‘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는 ‘로고스’의 말씀은 존재할지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그저 있는 말씀’일 것이다.
즉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실지라도,
‘나를 구원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는 경험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하면, 대단히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언젠가 믿음이 좋다는 어느 성도가 사랑하는 가족을 전도할 때에
겪었던 비극적 사건이 일간지에 실리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는 마가복음 16장 15절~1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농약을 먹고도 죽지 않으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이니 믿으라!"
하면서 부모 형제가 보는 앞에서 농약을 마시고는 즉사했던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는
로고스의 말씀을 무분별하게 일반화된 공식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능히 표적을 나타내실 수 있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상하지 않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그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
레마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만 성립되는 것이다.
로고스의 말씀은 항상 우리 앞에 계시고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로고스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믿음의 순전한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말씀이 믿음이 되는 자는 복되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자는 복되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계 2:7) 우리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의
말씀으로 들어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고, 능력으로 역사(役事)
하시고, 구원이 되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생명의 아버지시다.
(시 136:4)
*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요 6:63. 요 1:1-3 요 4:24)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갈 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