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창
문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물음
김송포|시인, 성남FM ‘시향’ 진행
요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어떻게 나누고 베풀고 기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차 있다. 예전에 월급쟁이에서 자녀들의 학비와 과외 문제로 어떻게 하면 잘 키워서 이 사회에서 떳떳한 인물로 성장하여 인재로 역할을 할 것인가 초점이 맞춰 있다 보니 누가 누구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떠난 선배 시인의 죽음에서 일 년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먹먹한 삶이 이어졌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시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다. 자신의 서재에 평생 보내온 시집들을 가나다 이름순으로 서열하여 도서관처럼 열람할 수 있도록 장서해놓은 장면에 본보기가 되어 나도 본받아야지 생각을 하였다. 편지 봉투를 만들고 시 한 편을 곱게 적어 편지로 정성이 담긴 답장을 보내며 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시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시가 최고 좋고 나의 시만이 우뚝 서서 알려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나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목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이미 출발 자체가 늦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올라갈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렇다고 다시 출발하기에는 나이도 학력도 이미 늦은 시기에 그저 시에 밤낮을 바치며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역량만큼 할 수 있는 기록의 전부를 불태우는 것이다.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시를 쓰고 방송하고 있나 생각해보면서 처음엔 문학과 상관없는 <라디오 일번지>라는 프로에서 현장에 나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내용을 편집하여 지역 사람들의 사회적인 이슈를 생생히 전달하는 역할로 생방송을 하였다. 특히 공연, 예술, 각종 행사가 열리는 현장에는 마이크를 들고 무조건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응답해줄까 아니면 거절할까 “여러분 오늘 관람한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질문할 때 피하는 사람도 있고 마이크를 제지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데 인터뷰를 사전 예약도 없이 하느냐고 거부하는 상황도 있었으나 갈수록 시민들의 사회적인 성숙도가 높아져 차츰 낯을 가리지 않고 대답하는 의식이 높아졌다. 그렇게 현장에서 오 년을 버티고 스튜디오로 들어왔을 때 풍성한 인터뷰 내용이 있어서 편집한 내용으로 생방송 할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분야의 방송은 문학이었다. 그래서 <동호인클럽>이라는 제목의 타이틀로 동호인들의 친목과 취미를 하는 사람들의 현장을 취재하는 일이었다. 동호인들의 탐방은 아트센터에서 주로 열리는 공연팀의 인터뷰와 참여로 사람들과 친밀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때 기타를 치면서 연주회를 하기도 하고 공연무대에 서기도 하였고, 요들 복장을 하고 요들송을 부르기도 하였고, 기타 연주자와 함께 지역의 상황을 시로 써서 무대에서 극처럼 시낭송을 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저녁 시간대의 차분하고 정서적인 함양을 자리하는 비중으로 이해하였다. 몇 년을 하다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시에 대한 프로를 해야겠다고 의견을 제시했을 때 “요즘 누가 시를 듣습니까 청취자가 들을 수 있는 프로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면박을 당했지만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밥만 먹고 커피만 마시고 일만 합니까 밤에는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하며 공감하는 시와 음악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김송포의 시향>이라는 타이틀로 시에 관한 문학 프로를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엔 종이책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연 청취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밀고 나갔다. 시는 되도록 서사가 있는 것으로 전달이 쉬운 것을 처음엔 시작하였고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 아픔과 슬픔이 묻어있는 시로 하였으나 차츰 청취자들의 이해력이나 수준이 시인인 경우가 많고 감정을 담은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 시에 맞는 음악을 찾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그래도 그 시에 공감도를 더 높이는 일은 음악 선곡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팝송이나 발라드 가요로 감동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나라 주요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누구의 시를 호명하여 낭독하는 일은 그 시인에게 보람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가족이 모여 방송을 들으며 시를 쓰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도 늘었을 것이다. 나의 시를 누가 알아주느냐보다 남의 시를 읽어주고 해설해 주고 불러주는 일이 즐거웠다. 시집을 읽을 때 한 편 한 편 꼼꼼히 밑줄 쳐가면서 별표 해가면서 해설을 덧붙여 멘트 해주는 일이 나의 책임이고 의무였다. 2007년에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방송은 나의 천직이고 즐거움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돈으로 가치를 잴 수 없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방송인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문화적인 담론보다 문학이 가지는 힘의 정점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서두에 문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작으나마 이렇게 시를 나누고 불러주고 읽어주는 일이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지면에서 처음으로 내가 가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자랑도 아니고 부끄럼도 아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이길 자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의 넓은 지평에서 한 단계 올려 문학의 창에서 다시 시로 날개를 펼치는 시인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시가 가지는 힘은 소리 없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물처럼 스며들어 여러분의 마음에 투명하게 천착할 것이라 믿는다.
-------------------
김송포
2013년 《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우리의 소통은 로큰 롤』,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 외 등이 있으며 현재 '성남FM방송' 라디오 진행자을 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