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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22> 너는 내 아들 내 장자라, 장자의 축복, 갑절의 축복, 영적 장자, 장자권을 지켜라, 장자권의 싸움, 하늘과 땅의 복
1. 말씀 배경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이 말씀을 듣고 읽는 모든 자에게 장자의 축복이 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장자라는 의미가 우리나라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맏형의 역할과 부모를 모시고 부양하는 의무 정도가 부여되지만 성경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가 되면 재산도 두 몫이 주어지고, 아버지 더 나아가 조상들의 모든 능력과 권위, 명예가 장자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조상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후손들이 그 조상들의 이름을 똑 같이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혼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하여 1세, 2세, 3세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창 48장을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에 야곱이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지 않고,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축복했을 때 요셉은 이를 기뻐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48:13-18).
장자가 오른손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신 33:2, 시 89:13, 사 48:13)
요셉이 기뻐하지 것은 히브리어로 “야라”인데 몸이 흔들릴 정도로 떨면서 몹시 걱정 근심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몸짓인 것입니다.
▶ 창 27장을 보면, 이삭도 원래는 장자 에서에게 축복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 먹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눈이 어두운 이삭은 하나님의 섭리로 야곱에게 축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 27:1-4).
그래서 장자로 태어나는 것, 장자권을 갖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인 것입니다.
▶ 장자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쌍둥이의 경우에는 태중에서부터 먼저 나가기 위하여 경쟁까지 하는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낳은 쌍둥이 아들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세라가 태에서 먼저 나오기 위하여 손을 내 밀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손에 홍색실이 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세라의 손이 도로 들어가고 베레스가 먼저 나온 것입니다.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했지만 베레스가 세라를 제치고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레스가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가 장자가 되니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입니다.(대상 2:4, 마 1:3, 눅 3:33)
② 이삭이 낳은 쌍둥이 야곱과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 야곱이 에서의 발굽치를 잡고 나온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가 먼저 나가지 못하도록 에서의 발굽치를 잡은 모습입니다. 야곱이라는 뜻이 “움켜 잡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창세기 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그들이 태어난 이후에도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취하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결국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취하게 됩니다. 야곱은 장자권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에서는 장자권 대신 육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장자권을 잃게 된 것입니다.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형성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입니다.
2. 도무지 장자의 축복이 어떤 무엇이기에 장자가 되기 위하여 태중에서 까지 싸우는 걸까요?
장자가 되면 이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① 하늘과 땅의 축복이며, 만민과 형제들 위에 주가 되는 축복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장자 에서로 알고 한 축복은 장자에 대한 축복입니다.
[창 27: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하늘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은 그대로 땅의 축복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이 보다 더 이상 좋은 축복은 없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한 후에 에서가 자기에게도 축복을 요청했지만 이삭은 더 이상 무엇이든지 남은 빌 축복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 27:37).
우리들은 이런 이삭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서에게도 똑 같이 복을 빌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야곱은 빌 복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장자의 축복은 나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장자의 영성이 되면 하늘로부터 받을 수 있으나, 장자가 받은 축복을 장자가 아닌 자에게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원리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복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천국에 가는 복은 믿는 자 만이 가지는 복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믿지 않는 자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도 자식인데 야곱은 그에게 빌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아끼는 지식으로 에서가 복 받기를 원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② 야곱의 아들 요셉도 11번째 아들이지만 야곱의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창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엄청난 번성과 승리, 하늘과 땅의 복, 자녀의 복, 선조들 보다 더 나은 축복, 형제들 위에 뛰어난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장자의 대표적인 축복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이름으로 두 지파의 몫을 분배받습니다.
[여호수아 14: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나중에 남북 이스라엘로 갈라질 때에 북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족속인 것입니다 (왕상 11:26).
에스겔서에서도 요셉의 지파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몫의 땅이 분배됩니다.
[에스겔 47: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는 이 경계선대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몫이니라
에스겔에서의 땅의 분배는 실제 이 땅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왕국에서 받는 영적인 땅입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두 몫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이니까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③ 이것처럼 장자의 축복은 다른 형제에 비하여 두 몫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두배 이상의 축복입니다. 조상들의 힘과 능력, 명예를 그대로 물려 받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 그 조상의 이름과 명예를 가지고 대를 이어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의 장자가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라도 사랑 받는 자의 아들로 장자를 삼으면 안되며, 반드시 장자에게 소유의 두 몫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1: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여러명의 부인을 두는 시대이기에 어느 부인에게 태어나든 첫 번째 태어난 아들을 장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도 장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개인적으로 받는 장자의 축복도 있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시며 한 민족을 아들의 축복, 장자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믿는 자를 예표하므로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아들의 축복, 장자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믿지 않는 자들에 비하여 믿는 자들은 두배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 나라의 장자들을 넘어뜨려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도 장자권 싸움인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인 아담을 죄를 짓게 하여 넘어뜨렸습니다(창 3:6). 아담은 인류의 장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장자의 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인간 모두가 장자와 같이 창대하고 번성하기를 원했습니다 (창 1:28)
또 사탄은 아담을 통하여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에서 장자인 가인을 넘어지게 합니다. 죄의 유혹으로 결국에는 아벨까지 죽이고 맙니다.(창 4:7-8) 그래서 가인은 장자로서의 축복을 다 잃게 됩니다.
이후에도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장자인 르우벤을 넘어뜨려 장자가 되지 못하게 하고 (대상 5:1), 유다의 장자 엘도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합니다 (창 48:7).
사탄은 장자를 넘어지게 하고 타락하게 하고 죽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자의 큰 축복을 못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사탄에게 넘어가 죄를 지으면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장자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장자권을 빼앗긴 첫 번째 아담 대신에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오게 하셔서 장자권을 회복하게 하시고, 믿는 우리들을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고자 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출애굽 사건도 다양한 영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자에 대한 싸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에게 야곱의 열 두 아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장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요 장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벌써 두 번째로 햇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정체성요. 새해에는 장자의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이 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놓아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바로는 사탄의 하수인이며 예표이기도 합니다. 세상 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로서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의 종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 곧 오늘날의 하나님의 장자를 사탄은 종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의 종으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장자, 내 아들을 바로에게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장자를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장자까지, 짐승의 초태생까지 말입니다.
[출애굽기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장자를 놓고 싸우는 엄청난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의 장자는 죽어야 끝이 나는 싸움인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아홉가지 재앙을 당해도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아들이요 장자를 내 놓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사탄은 장자인 이스라엘 백성이 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인 그들을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믿는 자들이 복을 받지 못하게 하여 모든 열방이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초태생을 다 쳐서 죽입니다.
[시편 105:36] 또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력의 시작인 그 땅의 모든 장자를 치셨도다
[시편 78: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그들의 장자가 죽어야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장자들이 사는 것입니다.
애굽의 짐승의 초태생까지 죽이신 이유는 짐승도 애굽에서 끌고 나와야 하고 짐승도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태생의 싸움에서 짐승까지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우리들이 가진 재물에 이르기까지 장자의 복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력의 시작인 장자의 죽음은 곧 싸움에서 진 것입니다.
모든 초태생의 죽음 앞에 바로도 항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재앙도 버텼는데 이 장자의 재앙 앞에서는 손을 든 것입니다.
그만큼 장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장자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의 기력의 시작이요 힘이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창 49:3). 장자의 죽음은 힘과 능력이 다 빼앗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 잃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는 사람과 짐승의 장자의 축복을 다 빼앗긴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은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입니다.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이런 축복이 빼앗겼다는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사탄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장자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많은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라 했습니다. 장자인 것입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계 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결국 사탄은 맏아들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심으로 장자권을 오히려 회복하게 하셨고, 또 지키셔서 사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는 장자와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 장자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시 89: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사탄은 다윗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다윗의 통하여 메시야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을 통하여 다윗을 죽이고자 했으나 결국 그는 자기의 장자 요나단과 함께 같은 날 죽고 다윗이 왕이 됩니다. 장자의 싸움인 것입니다.
다윗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했고, 얼마나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까? 그리고 은금은 얼마나 풍부했습니까? 그가 솔로몬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은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대상 22: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장자의 싸움입니다.
▶ 이렇게 사탄은 우리들이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장자를 종 삼고자 하며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장자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영적 장자권을 지켜야 하는 과제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자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교회도 죄로 인하여 장자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장자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교회가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마치 주도권이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잃어 힘이 없어진 것입니다.
4, 성경에도 이런 장자의 축복, 장자권을 빼앗긴 경우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먼저, 장자권이 빼앗기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적으로 장자권이 빼앗긴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죄 때문입니다.
① 야곱의 아들 르우벤입니다.
그는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을 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그래서 르우벤은 장자권에서 밀려나고 장자가 요셉에게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5: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역대상 5: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야곱이 죽음 직전에 자식들을 축복할 때 르우벤에게 한 축복을 보면 성욕이 물이 끓음 같아서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기 때문에 탁월하지 못하다고 해 버립니다.
[창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르우벤 지파에서는 역사적으로 탁월한 인물이 없습니다.
사사도 없고, 나라를 구원할 지도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라가 반역을 할 때에 그와 같이하여 반역에 가담합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인 것입니다 (민 16:11). 그래서 많은 르우벤 지파의 사람들이 갈라진 땅에 삼킴을 당합니다 (민 16:31-31)
땅의 분배도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아닌 요단강 동쪽에 분배를 받게 됩니다.
르우벤이 첩 빌하와의 한번의 실수로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창 35:22절에서, 동침하매, 가서, 들었더라의 동사가 계속적 용법으로 되어 있고 미완료형입니다. 이것은 계속 그런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발각될 때까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실제 장자가 아니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면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실제 장자라도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면 장자의 권리가 박탈됨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르우벤은 장자의 축복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왜, 장자의 축복을 받았을까요?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창 39:7-12), 그래서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다윗 왕이 태어나는 유다도 장자가 될수 없었던 것은 그도 기생처럼 옷을 입고 얼굴을 가려서 유혹한 며느리 다말에 넘어간 것입니다(창 38:13-18) 그래서 유다도 장자에서 탈락한 것입니다.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결하면 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유혹으로 장자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② 두 번째로 장자의 축복에서 멀어진 자가 야곱의 장자인 에서입니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를 판 자입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했을 때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던 자입니다. 그래서 맹세를 하고 장자를 판 것입니다.
[창세기 25: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창세기 25: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창세기 25: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장자를 판 이후에 이삭이 그의 맏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고자 했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삭의 눈이 어둡게 하시고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고자 했으나 이미 물 건너 간 것입니다. 빌 축복도 없는 것입니다 (창 27:37).
[히 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성경은 에서의 이런 모습을 망령된 자라고 평가합니다.
[히브리서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육적인 사람은 장자권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에서는 이삭과 야곱을 떠나 자기가 모은 재물과 자기 집 사람들을 데리고 세일 산으로 가게되고 야곱이 이삭의 땅과 재산을 물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6: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세일 땅은 호리족속이 사는 곳입니다. 에서의 부인 오홀리바마는 호리족속입니다 (창 36:2,5,14,18,25)
그러므로 처가 족속이 있는 땅으로 간 것입니다.
5. 우리들은 모두 예수 안에서 모두 장자입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왜, 우리들이 믿음 안에 있으면 장자가 될까요?
① 구원 받는 백성들의 예표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자인 것처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우리들도 모두 장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가 장자가 되는 원리를 조금 더 설멸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모든 초태생의 죽음이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의 장자들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초태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 34: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마찬가지로 믿는 우리들도 예수의 피가 뿌려져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원리로 우리들도 이스라엘 장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자와 똑 같은 영적으로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장자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것입니다. 할렐루야!
② 믿는 자들이 장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종말에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예루살렘을 보니까,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구원을 받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에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장자들의 모임은 이스라엘 백성 중 구원을 받은 자, 교회는 구원을 받은 이방인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여도 교회는 장자들의 구원받는 자의 반열에 있기 때문에 장자들의 같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 이 땅에서도 실제 자기가 육적인 장자가 아니라도 믿음이 있는 자가 그 가정의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소위 장자의 역항을 하는 KEY MAN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 가정의 장자의 권세가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맺는 말>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장자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된 장자입니다. 장자는 더블축복을 받습니다. 하늘과 땅의 축복을 다 받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가기 위하여 사탄은 지금도 우리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하여 이 장자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있으면 장자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서와 같이, 르우벤과 같이, 유다와 같이 육적인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요셉과 같이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실제 가정의 육적인 장자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 믿음의 영적 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장자권은 대단한 권세입니다. 딸도 아들도 모두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왕적 권세, 제사장적 권세, 선지자적 권세가 동시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실제 부모의 능력과 힘, 재산이 그대로 주어지고, 영적으로는 가장이 되고, 조상들의 명예까지 주어지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개인적으로도 예수를 온전히 믿음으로, 성결함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고, 교회도 세상을 주도하는 장자권을 회복하여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블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