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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국어회화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Sino-meeting
산이 있으면 올라야 하고 길이 있으면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 여행을 가서도 ‘빨리빨리’만 외치다 여행의 목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곳에 가면 그냥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 모든 게 족하다. 느림의 공간, 느림의 음식, 느림의 여행….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오는 절세의 풍광과 수천년의 역사. 원시적이지만 현대적인, 촌스럽지만 세련된, 여행자 스스로 명상케 하는 구도(求道)의 고도(古都)를 찾았다. |
중국 윈난(雲南)성의 성도(省都) 쿤밍(昆明)을 떠난 동방항공 MU5810기는 50분 만에 리장(麗江)에 닿았다. 공항이라면 높은 관제탑과 수하물 벨트, 안내 데스크 등 인공적인 냄새를 풍기게 마련인데 여기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공항을 벗어나자 석양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농촌 들판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코끝에 와 닿는 공기 또한 싱그럽다. 15위안(약 2100원) 하는 공항버스는 평탄한 들녘을 가로지르며 온갖 풍경을 드러낸다. 차창으로 검은 기와집 촌락들이 점점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모든 게 풍요롭고 아름답다. 차는 그런 시골길을 한동안 달리다 새로이 개발된 뉴타운에 이르러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길게 뻗은 대로 양쪽으로 제법 높다란 현대식 건물들이 서 있다. 호텔이 곳곳에 있어 숙소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별 두 개짜리 호텔을 찾아 짐을 풀었다. 호텔 프런트의 여직원은 이곳 원주민인 나시족(納西族) 출신인지 푸른색조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순박해 보이지만 묻는 말에도 꼬박꼬박 대답을 잘해줬다.
슬로시티, 슬로뷰티 중국 최남단 윈난성의 고도(古都) 리장이 관광명소로 떠오른 것은 15년 전. 당시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시안(西安), 타이산(泰山), 상하이 등은 이미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뤘기에 중국 정부는 조용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이곳을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전세계에 알렸다. 그러자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던 이곳이 수년 만에 세계 배낭 여행자들의 메카로 떠올랐다. 다른 곳에선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특별한 매력을 리장이 간직하고 있는 덕분이다. 리장은 1300년 역사에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고성(古城)이자 장강(長江, 양쯔강)이 발원해 처음으로 몸을 크게 한번 뒤틀며 커브를 그리는 곳에 자리 잡아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지 않으면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느림의 미학’을 한껏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속을 따지고 보면 느림에 관한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 이곳은 ‘느림의 공간(慢空間)’이다.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일찍이 이 말을 그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첫머리에 남겼고, 따라서 이곳 사람에겐 느림의 공간이란 개념이 그리 낯설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로하스(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란 말이 화두이지 않은가.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그곳에 산 하나가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중략) 그곳에는 너른 들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갔다. 남녀가 입은 옷은 모두가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쳐 보였다. (중략) 그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둘째는 슬로푸드(slow food)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브라(Bra)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슬로시티 운동은 기실 동양에선 무슨 운동이라며 떠들어대진 않아도 생활화한 지 이미 오래인데, 된장국과 김치 등 발효식품과 함께 자체 생산한 밥과 나물 등을 천천히 씹어먹는 만식(慢食)이 바로 그것이다. |
셋째는 느리게 여행하기다. 수박 겉핥기식의 ‘깃발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걷거나(慢走) 이동하면서 주위를 두루 구경하며(慢看) 여행을 과정까지 속속들이 즐기는 것이다. 그 대표적 형태가 명상 여행, 사색 여행인데, 리장에선 굳이 결심하고 찾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넷째는 느리게 운동하기다. 중국인들이 공원이나 광장에 모여서 태극권을 즐기는 것처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근육과 관절 하나하나를 풀어주는 방식의 운동법으로, 언뜻 보기엔 ‘저게 무슨 운동이 되랴’ 싶지만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삼기에 비만 해소에도 그만이다. 다섯째는 느리게 사랑하기. 쉬 달아오른 사랑이 쉬 식듯 은근한 사랑은 은근히 오래 지속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같이 있고 싶다면 리장을 찾을 일이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변화의 시대’, 하지만 리장에 가면 전통 그 자체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머나먼 곳임에도 리장을 찾는다. 리장에선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게 좋다. 어디에서나 멈춰도 되고 어디에서나 다시 출발해도 되는 그런 발걸음으로.
물의 도시 리장 관광의 핵심은 구시가지다. 그 입구에선 대형 물레방아가 쉼 없이 돌아간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글씨가 적힌 하얀 벽면이 병풍 노릇을 하며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고 있다. 물레방아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개울들이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흐른다. 이름처럼 맑은(麗江) 물빛은 도시를 청량한 빛깔로 수놓는다. 해발 2000m 고원의 고성 안으로 들어가자 개울은 크게 세 가닥으로 갈린다. 서하, 동하, 중하. 작은 시냇가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그 여유로움을 무엇에 비견하랴. 가게 앞에 세워진 토속적인 장식물은 아기자기한 멋을 풍겨 발길을 쉬 옮기지 못하게 만든다. 중국에 대한 선입관 중 하나가 ‘지저분하다’는 것인데, 리장은 이처럼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수로에 흐르는 물도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다. 물은 저 멀리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것이라 시리도록 차고 투명하다. 수량 또한 넉넉해서인지 물살도 거세다. 사람의 발길로 반들반들 닳은 돌 포장길 좌우에는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신시가 쪽으로 난 언덕배기에는 전통가옥들이 빼곡하다. 대부분 여행자 숙소로 사용된다는데 방값은 무척 싸다. 하루 80위안(약 1만1200원)이면 괜찮은 곳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리장의 숨은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수로 주변의 꽃나무는 맑은 물 때문인지 더러 꽃을 피운 채 푸른색을 머금고 있다. 구시가는 쓰팡제(四方街)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곳을 중심으로 네댓 개의 작은 골목길이 거미줄같이 뻗어나 있다. 구시가의 교통 요지답게 그야말로 인파가 물결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시족은 푸른색 전통복장을 입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한다. 흥이 난 여행객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이 광장은 낮에는 약속의 장소로 쓰이고, 해가 지면 돌 포장길에 긴 그림자를 남기다가 주변 상가에 불이 켜지면 갖가지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다목적 공간인 셈이다.
아름답고 친근한 다리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리장에서는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애써 길을 찾을 필요는 없다. 곧 익숙해지는데다 어디를 가나 머물고 싶을 만큼 편안하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낯선 거리라도 여행객이 있고 이들을 맞이하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건 상가건 전통가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성 한가운데에는 물이 솟아나는 빨래터가 있다. 물이 아주 맑고 양도 많다. 나시족 특유의 푸른 옷을 입은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그 물을 길어 나르기도 한다. 더러 채소나 음식물을 씻기도 한다. 고성을 걷다보면 어느새 목부(木府)란 곳에 이르게 된다. 13세기 칭기즈 칸에게 정벌되기 전까지 리장 일대는 목(木)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다스렸다는데 이곳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말하자면 궁궐 같은 곳이다
목부 건물의 뒤편에는 리장 고성을 조망할 수 있는 5층 목탑인 만고루가 우뚝 서 있다. 그 위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자 납작한 2층 기와집들이 고성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저 멀리 눈 덮인 위룽쉐산이 모두 보인다. 고성에는 개울이 많아 다리도 많다. 흔히 리장을 일러 ‘다리의 도시’라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다리 하나마다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 조그맣고 낡은 나무다리들인데 예사롭지 않다. 어떤 나무다리는 리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사람들을 왕래시켜줬다고 한다. 다리들은 실용성에 아름다움까지 갖췄다. 중세 유럽의 다리가 아름답다 하나 리장처럼 친근하면서 아름다운 다리를 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스케치북을 펴든 학생들이 그런 다리가 잘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린다. 솜씨는 아직 서툴지만 열성만큼은 대단하다. 저쪽 다리 옆에선 서양 여인이 바윗돌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다. 한가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다. 사람들이 리장을 일러 ‘고원의 쑤저우’ ‘동방의 베니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곳에 개울이 흐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1000년 넘은 모계사회 점심때를 조금 넘긴 시각, 리장의 많은 다리 중 하나인 완쯔차오(萬子橋)를 지났다. 좁은 길을 따라 나아가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운치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주인이라고 했다. 그의 이름이 특이하게도 완쯔(萬子)였다. 청두(成都)에 살다가 최근 이곳에 왔다는데, 40만위안(약 5600만원)의 거금을 주고 이 카페를 빌려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집의 식사와 커피, 그리고 서양식과 중국식이 퓨전을 이룬 특이한 분위기가 내 취향에 딱 맞아 이후에도 두어 차례 더 찾았다. 골목 군데군데에는 기념품을 펼쳐놓은 좌판과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밤이 되자 중국풍의 홍등과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에 불이 켜진다. 가게 안은 때를 만난 듯 영어와 일본어를 해대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그날은 마침 보름날이라 골목길에서도 둥근 달이 훤히 보인다. 그때 문득 ‘한(閒)’자를 떠올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달이 보인다는 뜻. 이 얼마나 한가로운가! 노대(露臺)에서 보는 달은 방안 문틈으로 보는 그것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그 차이가 바로 한가로움, 여유로움을 가르는 잣대가 될 터. 하늘의 둥근 달과 가게 처마에 걸린 홍등은 보색 대비의 묘한 조화를 이루며 조우한다. 작은 개울을 지나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道法自然(도는 자연을 따른다)’이란 글씨가 길게 내걸린 가게가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갔다. 40대의 서예가는 후난(湖南)성 출신이라 했고 글씨를 배우는 학생은 나시족 처녀들이었다. 리장의 총인구 28만 중 57%가 나시족이라는데, 나시족이 이곳에 뿌리내린 건 약 2000년 전이라 한다. 그들은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동바(東巴)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다. 동바 문화의 유적지답게 소박한 건축양식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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