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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츄드' 1960년대부터 팝 전파
- 클래식 음악다방과 세대 교체
- 1970년대 광복동 '무아' 등 성업
- 스타 DJ 산실·음악 트렌드 주도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다방으로는 '에덴'다방을 들 수 있다.(해방 후 서울 명동에도 같은 이름의 클래식 음악다방이 개업했다) 일제강점기에 '제일'다방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음악학교를 나온 우아하고 기품 있는 신여성이 운영해 품격 있는 다방으로 서울에까지 알려졌던 다방이었다. 물론 이 다방은 클래식 음악다방이었고 피난시절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안식처였던 광복동의 '밀다원'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1970년대 부산 광복동 음악다방 '무아'. |
1950년대 부산의 클래식 음악다방으로는 1953년경 남포동에서 문을 열었던 '비원'이 유명하다. 이곳은 음악감상을 넘어서서 술이 얼큰히 취한 화가가 즉석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주인이 소중하게 보관할 정도로 예술가들을 넉넉히 품어주었던 공간이었다. 그밖에 '태백' '천연장' '망향' '스타' '금강' '클래식'과 같은 클래식 음악다방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다방은 1960년대에도 그 흐름이 이어졌다. 1957년 광복동 미화당백화점 4층에서 문을 연 '미화당음악실'은 매주 KBS 노래자랑이 열려 신인가수 등용문이 됐다. 1957년 고갈비 골목에 문을 연 '아폴로'는 매주 토요일 진행된 수준 높은 음악감상회와 1959년 백건우 독주회를 비롯한 여러 음악회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 부평동 족발골목 입구에 문을 연 '오아시스'는 가장 많은 음반을 보유해 음악애호가들과 음악전공자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밖에 '고전음악감상실'이 구 시청(현 롯데백화점 광복점) 앞에 생기고, 을숙도가 보이는 에덴공원에 '강변'이 생겨 낙동강의 정취 속에 음악을 감상했다. 광복동 입구 농협 뒷골목에 있었던 '백조'가 클래식 음악다방의 명맥을 이었으며 '아폴로'와 '클래식'도 1960년대까지 존속했다.
부산의 민속학자 주경업 씨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팝음악과 대중음악을 틀었던 음악다방으로 구 동아극장 골목에 있었던 '에츄드'를 꼽았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부산에 팝음악을 전파시킨 대표적인 음악다방으로 기억된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부산 시민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대중음악감상실은 1970년 여름에 문을 연 '무아'였다. 광복동 입구의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있었는데 1층 '수'다방과 3층 당구장 사이인 2층에서 영업했다. 오전 10시 문을 열어 밤 10시 반에 문을 닫았다.
1970년대 초반에 7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요구르트 하나를 주었다. 조명이 어두운 실내는 170평에 280석의 좌석이 있었고 정면에 DJ박스와 대형 스피커가 있었으며 개인용 소파가 정면을 보고 일렬로 놓여있었다. 소파의 팔걸이 양쪽으로 널빤지를 가로질러 책상을 대용하도록 했다. 중간에 나가서 점심을 사먹고 들어올 수도 있었으나 안에서 담배와 대화는 금지사항이었다.
5, 6명의 DJ가 시간대별로 번갈아가며 장르를 나누어 음악을 들려주었고 주말에는 '장기자랑'과 '프리스테이지' '일요스페셜'과 같은 공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치 서울의 1960년대 중반의 '쎄시봉'과 같이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되었고 '무아 폐인'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아'를 알게 되자 주위에선 불평과 불만이 쌓여갔다.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가족들이 불평이고 늘 '무아' 얘기만 하니 친구들은 기를 쓰고 내 입을 막아댔다.--'무아음악실 창립 20주년 기념 팸플릿' 중 팬 김은주의 글
DJ는 인기에 따라 A, B, C급으로 나뉘었고 급에 따라 시간대가 정해졌다. 월급은 1979년 당시 21만 원이었는데 대기업 사원보다도 많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백형두, 배경모, 이영철, 강동진, 세미(윤문규), 지명길 등과 같은 전국적 스타 DJ를 배출했다.
1970년대 부산 광복동에는 '무아' 이외에 '칸타빌레' '목촌' '하늘소' '수다방' '청다방' 등 음악다방이 30여 군데에 달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DJ의 숫자가 100여 명 에 이르렀다.
항구도시 부산은 팝음악 수입에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었다. 외국을 드나드는 선원들을 통해 외국 최신음반을 사들일 수 있었고 하야리아부대라는 미군 부대가 있었으므로 DJ들은 하야리아부대 근처에서 AFKN 라디오로 최신 팝송을 듣거나 광복동 외서골목에서 '롤링스톤'과 같은 미국 대중음악잡지를 사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문화 인프라와 전문가들이 바탕이돼 부산은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음악 트렌드를 발신할 수 있는 지역이 될 수 있었다.
대중음악저술가 김형찬의 대중음악 이야기
부산의 다방
최신 팝송 솟아나는 젊은이들의 오아시스
2016.2.1. 국제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