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전세계의 상이한 문명들은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각 시점마다 상이한 단계, 즉 초창기·발전기·성숙기·쇠퇴기를 거친다고 말했다.
슈펭글러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만약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오디오의 역사를 회고해 본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오디오 애호가들이 1960년대까지의 미국 오디오계야말로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오디오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시기라는 데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 하지 않을 것이다.
웨스턴 일렉트릭 92A 앰프 근래에 재생산되는 웨스턴 일렉트릭 300B 진공관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오디오의 탄생은 토키 영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20년대 후반 토키 영화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영화 음향 산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오디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원래는 전화기 회사였던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irc)은 수많은 연구와 시도 끝에 극장용 토키 시스템의 표준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웨스턴 일렉트릭의 기초는 이후 미국제 오디오의 초석을 이루게 된다.
4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디오 전반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고, 따라서 진정한 하이 피델리티(High-Fidelity)를 향한 노력의 성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던 기념비적인 기기들을 살펴보면, 먼저 불운의 천재 엔지니어였던 제임스 B. 랜싱(James B. Lansing)이 설계한 알텍(Altec) 604 스피커 유닛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스피커는 1943년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는데, 그 구조가 주목할 만 하다. 이 스피커는 고음용 유닛과 저음용 유닛을 같은 축에 배치한 최초의 동축형 유닛으로써(젠센이 그 다음이고, 탄노이가 그 뒤를 이어 동축형 유닛의 계보를 잇는다), 이후 수십년 간 여러 번의 개량을 거치면서 전세계 프로페셔널 그라운드와 가정의 리스닝 룸을 섭렵한 전설적인 기종이다.
이후 알텍은 주로 스튜디오 모니터용 스피커과 극장용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특히 ‘Voice of the Theater'라는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극장용 시스템 중 비교적 소형에 속하는 A5와 A7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열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다음으로 폴 클립쉬(Paul Klipsch)가 고안한 '클립쉬 혼(Klipschhorn)'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폴 클립쉬는 대편성의 심포니 사운드를 재생할 목적으로 1946년 클립쉬 혼이라는 올 혼의 대형 스피커 시스템을 개발했다.
당시는 앰프의 출력이 2W를 넘는 것이 드물었고, 따라서 웅장하고 박력 있는 소리를 재생하기에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클립쉬는 스피커의 고능률화와 디스토션을 최대한 줄이는 연구를 지속하게 되었고, 그 결과 클립쉬 혼이라는 명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클립쉬 혼은 104dB라는 높은 능률과 인클로저 내부가 일명 K-혼(굴절형 혼)이라고 불리는 특수하게 설계된 혼으로 되어 있어서 출력이 작은 앰프일지라도 얼마든지 웅장하고 박력있는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클립쉬가 자신의 역작인 클립쉬 혼에서 보여준 스피커 설계는 이후 탄노이 오토그래프나 바이타복스, 일렉트로 보이스 파트리션 같은 대형 스피커 시스템이 탄생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알텍과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JBL의 경우 프로용 기기는 물론이거니와 50년대의 미국사회가 누리고 있던 풍요를 등에 업고 최고급 가정용 스피커를 생산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최고급 모델로는 라이프(Life)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꿈의 스피커'라고 불린 하츠필드(Hartsfield)와 백악관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는 파라곤(Paragon) 등이 있다. 이 두 스피커는 JBL이 낳은 최고의 명기 중 하나라는 375 드라이버를 채용한 모델로써, 소리뿐만 아니라 그 독특한 외관에서도 많은 화제를 뿌렸던 기종들이다. 특히 파라곤의 경우 스테레오 시대가 열림과 동시에 발매된 기종인데, 좌우 채널을 하나의 인클로져에 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스피커였다. 또 다부지고 고풍스러운 외관과 그에 합당한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올림푸스(Olympus)도 빼놓을 수 없는 명기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기로는 60년대에 발표된 젠센(Jensen)의 G-610 유닛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젠센은 1928년에 설립된 스피커 메이커로써, 1930년에 최초로 영구자석을 이용한 다이나믹 스피커를 개발했고, 1936년경에는 덕트를 이용한 베이스 리플렉스형 인클로져를 업계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던 막강한 메이커였다. 젠센이 내놓은 가장 유명한 기기가 바로 G-610 유닛이다. G-610은 알텍 604처럼 동축형으로 되어있지만 알텍 604가 2웨이 1의 형태인 반면 젠센 G-610은 3웨이 1유닛, 즉 트라이엑시얼(Triaxial)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단히 독특한 유닛이다. 이 유닛은 특히 '오페라를 위한 스피커'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성악에 있어서 발군의 위력을 발휘한다. 즉 정위감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사운드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초호화 대형 시스템 중 하나인 젠센 임페리얼(Imperial)이 바로 이 G-610 유닛을 사용한 스피커이다.
그밖에 엄청난 크기와 화려한 외관, 그리고 최고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일렉트로 보이스(Electro Voice)의 조지안 시리즈나 파트리션 시리즈 등, 이 시기의 미국제 스피커들은 그야말로 외관이나 소리 양쪽 측면에서 극단의 극단을 추구했던 기종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양질의 사운드를 보다 간단하고 콤팩트한 크기의 기기를 통해 즐기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시도들 중 최상의 결과는 에드가 빌처(Edgar Villchur)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어쿠스틱 서스펜션(Acoustic Suspension)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토대로 1954년에 웨스턴 일렉트릭 유닛인 755a가 내장된 AR1이라는 기념비적인 명기를 내놓게 된다. 당시의 스피커들은 저음 특성을 좋게 하기 위해 인클로져를 크게 만드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었는데, 빌처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특수하게 고안된 밀폐형 인클로져를 채용함으로써 작은 크기의 스피커에서도 얼마든지 양질의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빌처는 AR 브랜드를 통해 스피커, 턴테이블, 앰프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우수한 오디오를 꾸준히 선보였다. 특히 AR의 스피커들은 가정용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페셔널 무대에서 사용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진정한 걸작들이었다. 특히 지휘자 카라얀은 죽을 때까지 AR의 오디오 시스템을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40년대 말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세계 최초로 LP를 발매하게 된다. LP의 등장은 음악의 녹음과 재생에 관한 퀄리티를 더욱 향상 시켰으며, 프로용이나 가정용 할 것 없이 오디오 전반에 대한 크나큰 질적 발전과 양적 발전을 가져오는 결과는 낳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이파이의 시대가 개막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란츠(Marantz)가 오디오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당시의 레코드 회사들은 각각 상이한 방법으로 레코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레코드들을 제대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레코딩 특성에 맞는 서로 다른 이퀄라이저가 필요했다. 마란츠의 설립자인 솔 B. 마란츠(Saul B. Marantz)는 이러한 사안에 착안하여 50년대 초 오디오 콘솔릿(Audio Consolette)이라는 이름의 프리앰프를 발매하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란츠 모델 1'이다. 마란츠 1은 각각의 레코드들에 적합한 여러 가지의 이퀄라이저를 탑재함으로써 레코드의 재생을 질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걸작이었다.
이후 레코드 회사들의 이퀄라이저 커브가 RIAA곡선으로 통일되고, 게다가 57년에는 스테레오 레코드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프리앰프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지게 된다. 전설적인 명기 마란츠 7은 이러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1958년에 발표되다.
12AX7 진공관을 이용한 마란츠 7은 흠잡을 데 없는 우수한 소리와 수려한 디자인으로 단번에 오디오의 레퍼런스로 자리잡게 되었고, 특히 포노단의 우수성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마란츠 7과 짝을 이루는 마란츠 9은 모델 2, 5, 8 등을 잇는 마란츠 파워앰프의 최고봉으로써, 채널당 4개의 6CA7(EL34) 진공관을 사용한 모노 블록 앰프이다. 성능과 디자인 면에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명기 중의 명기라고 할 수 있다.
50년대에 마란츠와 쌍벽을 이루던 최고급 앰프로 매킨토시(Mcintosh)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매킨토시는 1946년에 출범한 메이커로, 처음에는 프로용 음향기기를 만드는 것으로 오디오업계에 진출했다. 매킨토시가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시발점이 되는 모델은 프로용으로 개발된 50W-I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는 출력이 클수록 왜율이 커진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양질의 음질을 내주는 대출력의 앰프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매킨토시의 엔지니어인 고든 가우(Gordon Gow)는 두 개의 트랜스 권선을 동시에 감는 이른바 다중 권선(Unity-Copled) 트랜스를 개발하여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였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0W의 대출력을 내면서도 왜율이 극히 적인 앰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이 앰프는 50W-II로 개량되면서 그 명성을 더욱 더 확고하게 다지게 된다.
이후 MC30을 시작으로 검정색과 크롬 도금이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샤시가 매킨토시의 전형적인 디자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매킨토시는 계속해서 6550진공관을 사용한 MC60을 발표했고, 스테레오 시기에 접어들자 당사 최초의 스테레오 파워앰프인 MC240(6L6pp)와 역시 당사 최초의 스테레오 프리앰프인 C20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후 매킨토시는 영국 GEC의 KT88 진공관을 사용한 파워앰프 MC275를 내놓았는데, 이는 마란츠 9과 함께 진공관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파워앰프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직까지도 그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MC275와 짝을 이루는 프리앰프 C22 역시 마란츠 7과 쌍벽을 이루던 프리앰프의 전설이다.
매킨토시는 화려한 외관과 매킨토시만이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출력 트랜스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 앰프 메이커로써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당당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요즘에는 진공관 리시버로 유명한 피셔(Fisher), 성능 좋은 튜너 개발에 주력했던 스코트(Scott), ' 스테레오 70'이라는 명기를 탄생시켰던 다이나코(Dynaco), 피어리스 출력 트랜스를 채용한 걸로 유명한 히스키트(Heathkit), 그밖에 셔우드(Sherwood)나 에이코(Eico)와 같은 마이너 브랜드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질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속속 발표함으로써 오디오의 황금시대를 더욱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처럼 이 시기의 미국 오디오는 그야말로 열정이 넘쳐흐르던 최고의 시기였다. 오디오에 인생을 건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다채로운 시도를 통해 오디오의 역사를 자신들의 힘으로 썼던 바로 그 시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과는 달리 오디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상당히 높았으며, 당시 미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듯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넘치는 풍요를 주체하기 못해 각 분야에 엄청난 물량투입이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오디오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안되면 되게 하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고, 오디오계의 수많은 별들이 전쟁을 벌인 결과 엄청난 전리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황금시대, '하이파이의 최전성기'를 생각하며 그 시대에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아... 그 시대를 다 카포(Da capo)할 수만 있다면...
하이파이뮤직은 우리나라 오디오의 현주소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빈티지 수리 전문가이자 앰프제작자인 김형택님과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김형택씨 특유의 색채와 주장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가 있는 인터뷰이기 때문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전문을 다 싣고 전문의 분량이 상당히 길고 아메리카 빈티지에 대한 1 부에 이어 2,3 부로 나누어 싣습니다.
프롤로그
현재 하이파이 오디오의 세계에는 크게 보아 두 개의 서로 상반된 오디오의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하이엔드 오디오와 빈티지 오디오가 그것입니다. 하이파이뮤직에서는 하이파이 오디오의 두 가지 큰 줄기, 즉 하이엔드 오디오와 빈티지 오디오 양쪽을 더욱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김형택씨와의 뜻깊은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김형택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빈티지 전문가 중 한 분이십니다. 현재 <서윤전자>의 대표로서 빈티지 오디오 수리 및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며, 그동안 국내의 여러 오디오 잡지에 오디오 평론 및 빈티지 오디오 관련 기사 등 수많은 글들을 발표하셨습니다.
서윤전자는 주로 주문제작 방식에 의한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대량으로 생산된 '바로크' 프리앰프는 생산된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오디오 애호가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명기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하이파이뮤직 취재진은 김형택씨의 작업실이 위치한 영등포 유통상가를 찾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김형택씨와의 인터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이파이뮤직 :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택 씨는 한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빈티지 오디오 특히 알텍 전문가이십니다. 디지털앰프와 스피커가 등장한 현대 빈티지 오디오가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입니다.
현시점에서 빈티지 오디오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김형택 : 현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는 것처럼, 현대 기기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기들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 빈티지 사운드에 대한 의견도 아주 다양합니다. 빈티지 오디오는 하이엔드보다 열등하지만 회고적인 기분이 장점이다. 빈티지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소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 반면, 빈티지 사운드 자체를 부정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김 : 빈티지와 현대 사운드의 차이는 단지 장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소리를 재생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빈티지 사운드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대 하이엔드 기기들이 내주는 소리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 : 그러나 상당수의 오디오파일들이 빈티지를 열등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기술적인 한계에 의해서 소리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가장 대표적인 예는:
빈티지의 좁은 대역폭 때문에 답답하며, 원음을 재생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 :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정말 답답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전자 전기에 대한 지식을 대체로 1950 년대 이전에 쓰여진 일본 서적에서 배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할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일본 책을 번역한 것을 가지고 교과서로 사용했습니다. 50년대 이전의 일본의 전자공학 및 오디오에 대한 기술적·이론적 수준은 아주 낮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말입니다. 수준 낮은, 그리고 잘못된 지식들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머리 속을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빈티지 오디오가 대역이 좁다는 선입관도 이러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1948년에 알텍에서 20Hz에서 20 KHz를 커버하는 트랜스를 개발했습니다. 이 정도면 다들 잘 아시다시피 오디오가 재생해야할 주파수 대역을 완전하게 커버하는 것입니다. 트랜스뿐만 아니라 스피커 유닛도 20KHz까지를 무난하게 재생하는 빈티지 유닛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술적인 열등함을 내세워서 빈티지 기기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단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 : 그럼 빈티지와 하이엔드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취향일 뿐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김 :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입니다. 취향의 문제이고요.
하 : 평소 김형택씨는 60년대까지가 오디오 기술의 최정점이었고, 그 이후로는 오디오가 오히려 퇴보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김 : 당연하죠.
하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 : 사실 오디오는 요즘이 예전보다 더 열악합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전자산업의 퇴조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전자·가전 산업이 산업 전체를 이끌어 가는 주류 산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학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대거 전자회사로 흡수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음향 산업은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의 산업이었습니다. 요즘 IT 분야가 각광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알텍의 경우 최 전성기 때는 박사출신의 연구원이 3천명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웨스턴 일렉트릭의 연구부문 협력 기관이었던 벨 연구소에는 전자공학 박사가 무려 2 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자공학에 대한 선호가 일단 사라진데다가 박사 출신들이 전자회사로 가지 않습니다. 특히 오디오 쪽으로는 더더욱 가지 않죠. 요즘 오디오 회사들의 수준은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수 천명의 전문적인 기술진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내놓은 제품과 요즘처럼 소수의 몇몇이 단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서 내놓은 제품과는 차원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 : 그래도 전자공학 자체는 발전을 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김 : 물론 발전을 하긴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향 평준화된 기술이 오디오로 넘어왔느냐, 이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소리를 재생한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 동안 특히 기술적인 발전이 있었던 부분은 주로 디지털 분야였는데, 이건 음악을 담는 매체 변화의 수준이지 본질적인 소리의 재생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 : 그러면 요즘 생산되는 하이엔드 기기들에서는 어떤 획기적인 발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까?
김 : 그렇습니다. 약간 부가한 것에 불과합니다. 지난 30년간 정말 획기적인 그런 회로가 있었습니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하 : 그렇지만 대다수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에서는 대단한 신기술과 엄청나게 공을 들여 선별된 부품을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김 : 그건 하나의 상술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특히 부품을 선별해서 썼다는 그런 얘기는 사실 군수업체들이 사용하던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군수장비의 경우 열악한 상황이나 치열한 교전 중에서도 기기가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부품도 엄격하게 선별하여 사용합니다. 상업적인 이유에서 이러한 컨셉이 고급 오디오 시장에 통용되기 시작했던 것이지만, 이게 과연 오디오의 음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 : 초창기 하이엔드의 경우 부품으로 가득 차 있고 또 무겁고(웃음) 그랬는데, 요즘 기기들 중 상당수는 아주 간단하고 뭐랄까... 텅 빈 것 같고 그런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화나 간단화를 회로 기술이 발전되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김 : 발전이 아닙니다. 오히려 퇴보 한 것입니다.
하 : 이러한 신기술들이 대거 도입되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고들 하는데요.
김 :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오디오 가격이 계속 비싸지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현재는 오디오 산업 자체가 사양 산업인데다가 시장 자체도 날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디오 메이커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아트 개념, 명품 개념으로 오디오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마크 레빈슨이 채택했던 공법 중 하나가 앰프의 샤시를 알루미늄 공예가에게 맡긴 것이었습니다. LNP-2 같은 앰프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자세히 보면 패널에 새겨진 글자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제품 하나 하나를 일일이 알루미늄 공예가가 다 조각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알루미늄 아트라고 봐야겠죠. 그러니까 메탈 아티스트의 작품인 것입니다(웃음). 이러니까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컨셉을 가장 대표하는 메이커가 골드문트 입니다. 물론 골드문트의 경우 자기만의 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쪽은 확실한 자신들만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음악과 일렉트로닉스를 잘 접목해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케이스라고 봅니다.
하 : 골드문트의 오디오적 음악성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김 : 좋은 제품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주고는 안 삽니다(웃음).
하 : 그건 또 왜 그런가요?
김 : 너무 비싸요(웃음). 제가 인정은 하지만 그걸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샤시를 열어보면 대번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마크 레빈슨은 들어간 부품이나 많지....(웃음). 몇몇 하이엔드 앰프들 중에는 샤시를 열어봤을 때 이것은 소리하고는 상관없이 정말 돈주고 살만한 물건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앰프들이 있습니다. 엄청난 물량투입과 정교한 구성 등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죠. 그런데 골드문트는 이런 느낌이 덜 와 닿는 편입니다.
하 : 회로적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김 : 전자공학적으로 오디오에 쓰이는 건 4단자 회로망이라고 해서 인, 아웃이면 끝입니다. 거기서 특별하게 뛰어나다거나 또 엄청나게 많이 바뀔게 뭐가 있나요? 제가 참 요즘 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바뀐 것이 별로 없는데도 뭔가가 엄청나게 향상되고 발전된 것처럼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오디오 시장이 상업주의에 너무나도 많이 물들어 있습니다. 요즘 오디오는 아트 개념, 명품 개념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돈을 지불해야지 순수하게 소리를 재생한다는 기능으로서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조금 배가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하 : 그러나 60년대까지의 오디오 업계의 분위기는 달랐다는 말씀인가요?
김 : 네, 그때는 아주 순수했고 소리를 재생하는 기기로서의 오디오에 대한 보편 타당함을 추구하던 시기였습니다.
하 : 갑자기 의문이 듭니다. 현재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다들 저마다 보편 타당함을 추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충실한 원음의 재생만을 위해서 노력한다던가.
김 : 절대 아니죠. 요즘 하이엔드는 만든 사람의 주관이 너무 많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유저의 취향이 제작자의 취향과 감성적 공통점이 많으면 그 기계를 오래 가지고 행복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닐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이엔드 애호가들이 기기를 엄청 많이 바꾸는 것입니다.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사활은 조금이라도 업 버전된 기기를 만들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거든요. 계속 소비를 촉진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거죠. 미술품하고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완전히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수준이라며 쳐다보지도 안잖아요. 그게 만약 십 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면 그 그림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 작품의 깊은 사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싸기 때문에 그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파울 클레나 이중섭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이 사람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천재 미술가들입니다. 정말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값은 엄청나죠.
요즘은 오디오가 이러한 아트의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잘 만들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가졌을 경우 소유욕의 충족이라는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인 오디오로서의 기능과 부합하느냐하는 점은 의문입니다. 그리고 계속 말씀드리지만 너무 비싸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입니다.
하 : 빈티지와 하이엔드의 극한은 서로 만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맞는 말이죠. 소리를 재생한다는 본질적인 임무를 띠고 있는 기기들이 서로 완전히 다를 수가 있을까요? 서로 서로가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것뿐이지, 그것이 아주 틀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이지만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반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메이커들이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하 : 현대 오디오 시장에 만연해있는 무분별한 상업주의에 대한 깊은 우려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김 : 요즘 오디오는 단순한 껍질 바꾸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 예전에 TR 앰프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일본에 "가네다"라는 사람이 DC앰프라는 것에 불을 붙여서 일본에서 아주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발표한 회로를 봤더니 그럴 듯 하더군요. 그래서 아주 열심히 만들어 봤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부품은 없어서 대충 근접하게 만들었는데, 그럭저럭 들을 만해요. 소리가 밝고 화사하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이 계속 회로를 발표할 때마다 이전의 소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소리는 뭐 가랑잎이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 소리고... 등등... TR 을 다른 것으로 바꾸니 더 좋아지고... 그래서 생각했죠. "이 사람이 또 시작이로구나..." 이전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전 것들을 가지고도 전혀 문제없이 음악을 즐겁게 들을 수 있었거든요. 뭘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주겠지만 과거를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부인할 필요 없이 예전엔 이 점이 좀 부족해서 이렇게 바꿔봤다, 뭐 이런 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그렇지만 예전의 만든 걸 완전히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 : "가네다"씨의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상업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김 : 그 사람은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교의 교주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이 사람이 발표한 회로의 부품을 그대로 판매하는 부품 전문점이 있습니다. 그 부품 전문점은 "가네다"하고 계약을 맺어서 이 사람이 발표한 회로에 쓰인 모든 부품을 파는 겁니다. 그런데 새로운 회로가 발표될 때마다 "가네다"는 이전의 소리는 도저히 음악을 들을 수가 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매도해 버리니까 결국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거죠. 하이엔드하고 조금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소비를 촉진시켜야 하니까 과거를 너무 무분별하게 부정하고,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하 : 진공관을 특히 고집하시는 걸로 알고 계신데, TR 앰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 진공관만을 특별히 고집하는 것은 아니고, 제 감성에 진공관이 더 맞는다는 것뿐이지 TR도 그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유만 있으면 진공관과 TR 시스템을 둘 다 운용하려고 합니다. 특히 넬슨 패스가 만든 앰프는 정말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마크 레빈슨처럼 그렇게 다작은 안 했거든요. 현존하는, 앰프를 가장 잘 만드는 제작자는 넬슨 패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74 년도쯤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미국에서 발행되던 <오디오>라는 잡지를 사보고 나서였습니다. 그 잡지에 패스가 20 와트짜리 앰프회로를 발표했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확실히 타당성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 기사를 오려 놓았었는데, 몇 년 전 그때 잘라놓은 잡지의 회로도를 가지고 국내 하이파이동호회에서 많이 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 : 이건 여담입니다만 그런 식으로 복각을 하면 제 소리가 나오나요?
김 : 그 앰프의 경우 패스의 의도는 누가 만들어도 자신이 생각한 그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는 것이었거든요. 그걸 국내에서 한참 복각하고 있을 때가 'Pass Aleph 0'가 처음 시장에 소개되었던 때였는데, 만들어본 사람들이 Aleph 0와 만든 것을 비교해보고는 본질적인 차이는 못 느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하 : 미제 기기들을 특별히 선호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독일제나 영국 제 빈티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 사실 우리가 미제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미제 빈티지에 대한 어떤 각인 현상 같은 것이 제 마음속에 있었던 같습니다. 독일제의 경우는 메카니컬한 부분은 정말 뛰어납니다. 일례로 2차 대전 때 미군 잠수함의 배관 레버 중 중요한 것은 독일 Bosch의 제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전자 부품은 전반적인 품질이나 뭐 기타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해 볼 때 특별히 놀랄 정도로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50~60년대 미제 앰프들에 독일제 부품들이 많이 사용된 것을 보고 독일제 부품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예라고 말씀들을 하시지만 정확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당시는 동서 냉전의 시대였고, 따라서 미국은 독일을 경제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러한 마샬 플랜의 일환이 오디오계에도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독일제 부품을 대량으로 수입해서 오디오에 썼던 것이죠. 독일제 부품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월등하게 뛰어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취급하던 정밀 신호 제품 중에는 Siemens 것들이 있었지만 어느 부분은 너무 합리적으로 만들려고 애를 써서 내구연한이 떨어지거나 혹사당하는 환경에서 여지없이 타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음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뛰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보편타당함이 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봤을 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제 부품들은 아무거나 끼워도 어느 정도 수준의 소리는 나거든요.
하 : 그러면 미제가 가장 우수하다는 건가요?
김 : 그런데 미제는 어떤 것을 막론하고 대량생산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꼭 음질을 생각하고 만들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디오적인 면에서는 조금 열세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독일제와 미제의 경우 특유의 음질상의 차이가 분명 있기 때문에 취향의 문제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겁니다. 다만 우리는 삼겹살 취향이기 때문에 조금 기름기가 있는 것을 원하지만 편육처럼 기름이 쏙 빠진 것은 어느 때는 좋지만 어떨 때는 영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데, 독일제 시스템에서는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 : 새로 발매되는 부품들, 특히 새로 만들어진 진공관 등을 무조건 불신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 그건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요즘 동구권에서 나오는 진공관들은 좋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러시아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품질 자체는 매우 우수하죠. 그 진공관에서 내는 소리가 마음에 드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지 객관적인 품질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은 아직도 군수장비에 진공관은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진공관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가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요즘의 상황이 이런 세세한 것들을 따질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옛날 관이 좋다 나쁘다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 있으면 그냥 쓰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서 얼마 후에 우리 아들놈은 소브텍 진공관을 최고의 음질을 가진 진공관으로 칠 수가 있다는 거지요. 이런 것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으면 되는 것이지 너무 기계에 신경을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공관 앰프에서 진공관은 소모품입니다. 영원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수명이 다 되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집착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으면 쓰고 다 쓰면 버리고... 전 삼성에서 만들었던 진공관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꺼내어 들어보곤 합니다만...
하 : 그러면 진공관 앰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김 : 회로, 부품, 만듦새 이렇게 세 가지가 중요한데, 부품 중에서는 진공관과 트랜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뭐 아주 논쟁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진공관은 앰프에서 뽑아버리면 끝장입니다. 그렇지만 트랜스는 그대로 붙어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주관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얘기는 아니지만 트랜스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트랜스는 진공관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스피커에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트랜스가 나쁘면 진공관을 아무리 좋은 것을 꽂아도 좋은 소리가 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음의 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료 공학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트랜스가 진공관 앰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 : 트랜스의 경우 재료 면에서 옛날 것이 더 좋다고 하던데요.
김 : 재료는 요즘 만든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좋은 재료를 오디오용 트랜스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양질의 트랜스가 드문 것입니다.
하 : 트랜스를 감는 기술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김 : 감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순전히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아주 없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특별한 기술을 동원해서 감았더니 소리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는 그런 얘기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물론 상업적인 선전효과는 있겠죠. 제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 유도의 법칙을 확립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코일만 뭉쳐놔도 전류는 넘어갑니다. 문제는 효율에 있습니다. 트랜스의 코어는 예를 들면 촉매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전류를 더 잘 넘겨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일만 있을 때보다는 코어가 있을 때가 더 좋은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코어의 재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재질면에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이 옛날보다 더 많이 좋아졌는데, 결정적으로 그걸 오디오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또 오디오용 코어를 만드는 노하우가 단절되었습니다. 반도체가 등장하면서 트랜스 공장이 거의 다 생산을 중단했으니까요.
하 : 그래도 매킨토시 같은 건 TR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쭉 트랜스 방식을 썼으니까 명맥이 계속 유지되지 않았을까요?
김 : 아니, 원래 매킨토시의 트랜스는 사실 고급 트랜스가 아닙니다. 다들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 : 그런데 무슨 특수한 권선 법을 썼다고 하잖아요.
김 : 코어가 나쁘니까 권선을 가지고 난리를 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회사의 트랜스들을 여러 개 분해 해 볼 기회를 가졌는데 특별한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감는 방법은 상업적인 광고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실질적인 음질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오디오 리서치는 7층 권선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과거에 만든 오디오 리서치 중에서 현재 명기라고 일컬어지는 기기는 없다고 봅니다.
하 : 오디오 리서치를 별로 안 좋게 보시나요?
김 : 초창기의 오디오 리서치 제품들, 그러니까 D-76 하고 250였던가요? 메타 셋 달린 것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눈에 들어오는 기기가 없습니다.
하 : 알텍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계신데요, 알텍은 선호도가 상당히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김 : 제 생각에 알텍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기기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니까요.
하 : 왜 알텍에 심취하게 되신 건가요?
김 : 원래 아주 오래 전에는 JBL을 좋아했습니다. 43XX 시리즈의 스피커들이 처음 시장에 소개되었을 때는 "바로 이 스피커가 내 취향이야!" 라고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피커들을 써보고 연구하면서 진공관 앰프로는 이들 스피커의 능력을 100% 끄집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TR 시대에 나온 스피커들이라 TR로 매칭을 시켜야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CDP에 CD를 넣고 프리앰프의 볼륨을 올린다. 알텍 A7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 : 네트워크 같은 건 손을 보신 건가요?
김 : 네, 제가 만든 것을 씁니다.
하 : 앰프는 무엇을 쓰신 거죠?
김 : 원래 알텍 앰프를 쓰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상 임시로 아는 사람이 만든 300B를 쓰고 있습니다.
하 : 제 생각으로는 예전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 들었던 6L6 싱글앰프가 더 좋았던 것 같은데요?(웃음)
김 : 이 앰프는 저역이 조금 느슨합니다. 지금 나오는 소리는 이전에 제가 내었던 소리의 한 60% 정도로 보시면 될 겁니다. 관을 6L6 을 쓰면 소리가 엄청 쫄깃하고 밀도 있게 납니다. 제가 알텍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어떠한 가미를 하지 않은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알텍보다 대역이 넓던가 훨씬 더 평탄한 소리가 나는 스피커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알텍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과 스피커로서의 높은 완성도 등 총체적인 의미에서 알텍을 능가할 수 있는 스피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텍은 '소리 그 자체'를 재생하려고 노력했던 회사 중의 하나이고, 또 이런 면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즉 어떤 소리를 담은 신호가 여러 경로를 거치는 동안, 어떠한 손실과 왜곡도 없이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재생하기 위해서 정말 순수하게 노력했던 회사였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음악성 같은 것도 그들의 안중에는 없었습니다. 소리 그 자체에만 심혈을 기울였던 거죠. 요즘과 같은 그런 천박한 상업성도 없었습니다. "스피커에 어떻게 전기 신호를 넣어서 이 들어온 신호를 하나도 빠뜨림 없이 내주느냐"에만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정말 순수했습니다.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아니면 어떻게 독특하게 만들어서 내 이름을 떨칠까, 이런 것에 신경을 쓴 흔적이 많은데, 알텍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소리 그 자체만이 문제였죠. 그렇기 때문에 개발된 지 이렇게 오래 되었어도 그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고려청자처럼 다시는 만들지 못할 스피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오디오가 전자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가망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겁니다. 따라서 예전에 총력을 기울여서 만든 물건하고 요즘처럼 아마추어적으로 만든 기기들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트랜스나 스피커라는 것은 무슨 방짜로 만드는 징이나 종을 만드는 것처럼 장인이 혼자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훌륭한 트랜스나 스피커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전체적이고 거대한 산업적 기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산업적 환경의 변화가 과거 오디오 전성기와 현재의 오디오 침체기를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간단하게 철심 하나만 가지고 예를 들어볼까요? 한 달에 적어도 수십 톤의 철심을 쓰는 회사가 오디오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철심을 만들기 위해 특별 주문을 했다고 합시다. 이럴 경우 비교적 저렴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질 좋은 철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식의 부품 조달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런 것을 쓰지 않는데, 한 100 Kg만 만들어달라고 하면 누가 만들어주겠습니까? 어떤 총체적인 산업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수많은 연구에 의해 획득된 특유의 노하우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철심을 쓰려고 하는데 철광석은 어느 광산에서 채굴한 것으로 가져다가 녹여서 온도를 한시간 동안 X000 도로 유지하다가 두 시간 후에는 X00 도로 내려서 몇 시간 후에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압연 해달라." 뭐 이런 것이 아주 중요한 노하우거든요. 일본도 같은 것은 망치로 두들기고 담금질하는 방법에서 좋은 칼이 결정되는데, 철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철광석을 녹일 때부터도 중요하고, 철물을 압연을 해서 철판으로 펼 때도 중요합니다. 자화를 시켜서 압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걸 다시 열처리를 합니다. 그런데 이 열처리는 온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500도로 해야 하는데 450도로 해서는 원하는 코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시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두 시간 해야 할 것을 한 시간 한다면 이 역시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만드는 회사 밖에 모르는 노하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단절되었다는데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정이 안 좋으니까 500도 하던 걸 그냥 450도로 하자든지, 두 시간 해야 하는데 요즘은 장사도 안되고 하니까 한시간만 한다든지 또는 모르기 때문에 대충 하자 이러니까 예전의 그 소리가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필수적인 노하우가 단절됨으로써 오디오의 역사는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 : 그러니까 알텍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오디오가 만들어질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제작된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김 : 네, 그렇습니다. 또 중요한 사실은 엄청 잘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가요부터 클래식까지 다 잘 나오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소리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려고 애썼으니까요. 흔히 음악성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한쪽으로만 치우친 스피커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이 놈의 알텍은 뭘 걸어도 잘 나옵니다(웃음). 물론 자신이 현만 듣는다, 뭐 이러면 탄노이나 QUAD ESL 같은 스피커를 쓰면 되지만 다른 장르를 소화시키기엔 역부족일 때가 많은 것을 보아 알텍이 더 보편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 : 알텍이 해상력이나 정위감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 : 정위감은 오히려 요즘 스피커들보다 더 뛰어나죠. 그 예로 대다수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정위감 때문에 알텍의 604 스피커를 사용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해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초 하이엔드 스피커들처럼 극세 묘사는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음악을 듣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 : 또 저역에 문제가 있다거나 고역이 쏜다는 말도 있는데요.
김 : 그것은 운용을 잘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 들으시는 음악의 고음이 자극적으로 들립니까?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실제로 전혀 고역이 쏘지 않았다). 실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건방진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알텍의 소리가 쏜다거나 저역이 잘 나오지 않는다라고 하면 제 생각에는 "저는 오디오 운용 능력이 부족합니다"라고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 그러면 알텍을 쓰려면 항상 네트워크 같은 걸 손봐야 하는 건가요?
김 :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들어보시고 오리지널이 좋으시면 그냥 쓰시면 되고 마음에 안 드시면 약간의 튜닝을 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A7 같은 경우는 네트워크가 원래 극장용이기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쓰기 위해서는 어테뉴에이터가 고음을 적어도 15 데시벨까지는 떨어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원래 알텍에서 나온 가정용 네트워크는 20 데시벨까지 떨어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극장용에 사용하는 네트워크들은 4 dB 에서 6dB 까지만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들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정용으로 나온 A-5 용 N-500-FA 는 20데시벨까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오리지널 네트워크 대신 제가 만든 것을 가지고 세미나에 갔었는데, 거기서는 소리가 별로 안 좋았습니다. 공간이 넓었기 때문입니다. 멀리까지 소리가 잘 안 날아가더군요. 넓은 공간에서는 오리지널 네트워크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이럴 경우 멀리서도 저음이 아주 잘 들립니다. 이 스피커가 얼마나 뛰어난 스피커인가를 알 수가 있죠. 저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부터 체육관 같이 넓은 공간에서도 알텍을 울려봤습니다. 아마 갖가지 크기의 거의 모든 장소에서 알텍을 울려봤을 겁니다. 대는 소를 겸하기 때문에 이 스피커들은 잘만 가지고 튜닝을 하면 엄청나게 좋은 소리가 납니다. 제가 한 10년 전쯤에 A-7 여덟 개를 가지고 장충 체육관 정도 크기 되는 곳에서 울려봤는데 소리가 정말 좋았습니다. 저음의 양도 적당하고 명료도, 해상력 전부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때 새삼 알텍이 정말 좋은 스피커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하 : 그런데 하이엔드를 지지하시는 분들은 지금 흘러나오는 이런 소리를 해상력이 부족하다고 하시거나 느끼한 소리라고 하시더군요.
김 :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성에 이런 소리가 맞지 않을 수가 있죠.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틀어준다. 모두들 잠시동안 음악에 집중한다)
김 : 첼로에서 이렇게 나무의 통 울림이 느껴져야 하는데, 제가 정말 귀가 나빠서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하이엔드 스피커에서는 마치 플라스틱으로 만든 통에서 나는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줄은 나일론 줄 같고 통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것 같고...
하 :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결국 알텍을 운용을 하려면 어느 정도 자신이 튜닝을 해야 한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김 :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들어서 좋으면 그냥 놔두고, 마음에 안 들면 그때 튜닝을 하셔도 됩니다.
하 : 그런데 튜닝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많이 하는데, 예전엔 관을 바꾼다던가 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김 : 그것은 본질적인 접근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는 전자공학입니다. 전자공학이라는 베이스를 깔지 않고 이것저것 막무가내로 하는 것은 크게 효과를 볼 수 없는 헛된 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 : 알텍 사운드를 즐기고 싶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망설이시는 분들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할만한 알텍은 없을까요?
김 : 제 생각으로는 현재 상황에서 손쉽게 알텍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구하기도 어렵고 특히 요즘엔 예전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폭넓게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위치해있는 오디오 과정에서 어떤 수준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에게만 알텍을 권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에게는 알텍을 강력하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별로 도움이 될만한 게 아니거든요. 알텍을 들어보고 이 소리가 추구하는 소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분에게만 권합니다.
하 : 알텍 사운드라는 본질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알텍 스피커와 알텍 앰프는 각각 어느 정도의 비중을 점하고 있을까요?
김 : 동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전자공학에서 전자 증폭 회로, 그러니까 음향 재생용 앰프를 만드는 역사에서 알텍을 빼고는 사실 역사가 없다고 봐야합니다. 시작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최초로 등장한 앰프다운 앰프는 웨스턴에서 만든 앰프들인데, 그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회사가 바로 알텍입니다. 그러나 알텍 앰프들의 경우 프로페셔널 앰프들이 많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앰프 설계의 역사에 있어서 초기 TR 시대까지도 알텍의 위력은 막강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축적이 타 회사로 많이 이전이 되었고 전체적인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텍 앰프는 스피커의 명성에 못지 않은 아주 고급 제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텍 앰프들이 언뜻 보기에는 투박한 듯이 보여도 워낙 본질적이고 교과서적 이론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아주 스탠더드하고, 고장이 적으며, 순수한 소리가 납니다. 어떤 쓸데없는 기교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 : 앰프 역시 알텍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건가요?
김 : 그렇죠. 그리고 가정용 오디오들 중 Dynaco나 Heath 등등 많은 앰프 회사에서 알텍 회로를 채용했습니다. Marantz 9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알텍 1569하고 그 구성이 거의 흡사합니다. 알텍이 그 당시 가장 큰 회사였으니까요.
하 : 알텍은 웨스턴 일렉트릭에서 분리된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던 건가요?
김 : 독과점 방지법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미 대법원에서 우선 전화 산업의 독점을 막기 위해 사업 구역을 나누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영화 산업을 나누었고요.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웨스턴은 영화 산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였고 그 장비들을 남미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요즘 E-Bay에 보면 칠레 같은 곳에서 웨스턴 앰프들이 간간이 나옵니다. 1940년대쯤에 남미 쪽으로 보낸 장비들이 이제서야 얼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 : 그후 웨스턴 일렉트릭은 전혀 음향 산업을 하지 않은 건가요?
김 : 웨스턴 일렉트릭이 그 이후에도 음향 산업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전처럼은 아니고 소극적으로 하였으며 FM 방송국에 124 같은 걸 만들어서 납품하고 그랬던 정도입니다. 알텍에서 만든 음향 기기들이 웨스턴을 대체 할만큼 뛰어났기 때문에 알텍에서 만들어서 웨스턴 마크를 달아서 납품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 유명한 755 A 스피커입니다.
웨스턴의 경우 기기가 좋아도 값이 비싼 게 첫째 문제고, 두 번째는 광대역이 아닙니다. 우선 디지털 시대에 추종하기 위해서는 20KHz까지는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웨스턴은 10 KHz 정도가 오리지널이고 15 KHz를 넘어가는 부품들은 2 차대전 이후의 물건입니다. 알텍하고 비교해서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마크만 웨스턴이지. 웨스턴 마크만 붙으면 다들 '으악!'하는데 이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편견입니다.
하 : 웨스턴의 기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웨스턴 일렉트릭의 오리지널 소리는 듣기가 쉽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웨스턴 사운드라면 앰프로는 86앰프나 91, 42, 43 같은 것으로 스피커는 TA 4181이라는 우퍼 두 알을 짜 넣은 C-5 베이스 빈 인클로저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클로저의 넓이가 무려 2 미터입니다. 옆에 날개를 달면 4 미터에서 6 미터가 됩니다. 그래야 그 우퍼에서 정확한 저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스테레오로 구성하려면 폭이 12 미터가 되어야 하고, 거기에다가 가운데가 뚫려 있어야 하며, 또 양쪽으로도 조금씩 뚫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또 이 인클로저 위에 15 구멍이나 20 구멍 짜리 혼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천장의 높이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가로가 최소한 20 미터는 되어야 하고 세로는 그것보다 조금 더 길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벌써 가정용 리스닝 룸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전에 알텍 A 4를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출한 이유가 공간이 좁아서 소리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웃음). A4의 경우도 옆에 날개(Wing)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리가 앞으로 나가지 그것이 없으면 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A4도 이렇게 어려운데, 가정에서 웨스턴으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아주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때쯤에는 안방이 아니라 극장에 와 있는 것 같아서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웨스턴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엄청 좋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포기한 것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오디오 기기 구성 중에서 하나라도 빼면 그것은 웨스턴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트워크 같은 것은 제가 오리지널 부품으로 직접 만든다고 쳐도 말입니다. 일단은 스피커가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는 분 중에 4181 우퍼를 두 개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 18인치 우퍼 두 개를 가지고도 지금 들으시는 A7보다 저음이 덜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우퍼가 fixed edge 이기 때문에 "베이스 빈" 같은 통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나특성만으로는 저음이 나오기 힘든 편입니다. 이것처럼 편하게 술술 저음이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전체 기기 조합에 끌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 :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어떤 형태의 스피커를 가장 선호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질문을 잘못 했나요(웃음)?
김 : 아닙니다(웃음). 가장 이상적인 스피커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콘지에서 20Hz부터 20KHz까지 다 나와야 정상이지만 2 Way로 나뉜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이야기해서 벌써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풀 레인지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풀 레인지 가지고는 전 대역을 커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하게 대역을 나누면서도 전 대역을 커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명기들 중에는 2 Way 스피커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싸고 가장 소리가 잘 나는 게 A-7 입니다. 지금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표현이 잘 맞지는 않지만... (웃음)
하 : 인클로저의 형태 중에서는 특별히 선호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김 : 저는 인클로저 역시 A-7 인클로저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1940 년대 초에 개발된 것이지만 아직도 스피커 설계자들이 이 통을 만들거나 흉내냅니다. 저 통은 누가 만들어도 기본적인 소리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기를 쓰고 오리지널 인클로저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통은 유니트가 가지고 있는 성능을 최대한 발휘해 줄 수 있게 만든 통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클로저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구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프로페셔널 기기들을 보면 모두 이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여기에서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지 알텍의 인클로저에서 크게 벗어나는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요즘 Meyer Sound 같은 신흥 명기(?)를 만든다고 하는 회사들, 프로페셔널 회사들 중에서 히트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채택하는 타입들 모두가 A-7처럼 우퍼 앞에 혼이 달린 혼 로드 컴비네이션 타입의 인클로저입니다. 모양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 : 백로딩 혼형 같은 건 어떻게 보십니까?
김 : 그건 편법입니다. 저는 JBL의 Hartsfield나 오토그래프 같이 저음이 인클로저 안을 한참 헤매다가 나오는 스피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도 예전엔 Hartsfield를 대단히 동경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를 연구해보고, 또 이 스피커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실제로 운용을 해본 결과 적지 않게 실망했습니다. 고역은 바로 뛰쳐나오는데, 저역은 한 참을 헤매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시간차가 느껴지는 데다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그런 사운드였기 때문에 제가 추구하고 있던 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공간이 다소 넓었으면 그런 느낌을 덜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Fixed Edge 우퍼를 사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택한 편법이기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 : 요즘 하이엔드에서는 밀폐형 저 능률 스피커들이 많은데, 이런 스피커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 저는 그런 스피커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피커에 대한 본질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편법이기 때문입니다. 스피커는 최대한 유닛 그 자체로 해결을 하려고 해야지 왜 인클로저나 앰프에 자신의 책임을 전가시킵니까? 유닛 자신이 훌륭하면 인클로저하고는 상관이 없이 자기 혼자서라도 소리가 잘 나와야 하겠죠. 그런데 그것을 인클로저에다가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워 앰프에 전가시키고... 그러니까 이것은 편법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걸 정공법으로 그 본질에 접근해서 해결하려고 해야 하는데, 저 능률 밀폐형 스피커들은 이러한 본질적 접근을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 : 그래도 저능률 스피커들만의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김 : 물론 있습니다. 음압을 강제로 낮추게 되면 재생되는 음이 평탄해집니다. 어떤 잡소리도 없어요. 그래서 깨끗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또 음압을 낮추면서 파워를 많이 넣고 좁은 공간에서 울리면 극세 묘사가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자연스러움은 거의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질감도 사라집니다. 정확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무엇인가 인공적이고 억압받은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마치 연주자를 스튜디오 안에 가둬놓고 총을 겨누면서 연주하라고 해서 녹음한 것처럼 뭔가 자연스러움이 없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죠(웃음). 홀 톤이 제대로 재생된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스피커 자체를 통으로 완전히 억제시켜놓고, 네트워크로 억제시켜 놓고 그랬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스피커 제작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앰프 제작자들한테 떠넘기는 것입니다. 스피커 개발이라는 건 유닛 그 자체를 가지고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 :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스피커 메이커들은 남의 회사가 개발해 놓은 유닛을 납품 받아서 사용하잖아요.
김 : 그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피커 메이커인 KEF를 괜찮게 생각하는데, KEF는 자체적으로 유닛을 만들거든요. 다인오디오도 괜찮게 생각합니다. 역시 자기들이 사용할 자기의 유닛을 만드니까요. 직접 유닛을 생산해서 자신들의 시스템을 꾸미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봐야할 겁니다. 자기 유닛을 만들지 않으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간다고 보아야 합니다. 유닛을 개발한 사람이 그 유닛에 대해서 잘 알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갖다가 쓴 사람이 그 유닛을 더 잘 알겠습니까? 물론 재료를 가져다가 요리를 잘 할 수도 있으나 처음부터 그걸 개발한 쪽이 전체적인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하고는 완성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물론 꼭 유닛을 가져다와서 쓰는 메이커의 스피커는 형편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무래도 유닛을 자체 생산하는 메이커의 스피커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셀레스천 같은 스피커들을 좋지 않은 스피커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회사는 유닛을 자체 생산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남의 유닛을 가져다 쓰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보아야 하며 자체적으로 유닛을 생산하는 메이커들은 스피커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일단은 그렇지 않은 메이커들에 비해 한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하 : 녹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빈티지 오디오를 좋아하시는 걸로 봐서는 옛날 녹음을 선호하실 것 같습니다.
김 :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메이저 레이블 등의 녹음 경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동안 녹음평을 꾸준히 한 적이 있어서 이쪽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조금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녹음한 기기들과 모니터한 기기들이 전부 비슷비슷하고, 모니터 스피커로는 대부분 B&W를 썼습니다.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 필립스 등등... 소리요? 다 비슷합니다. 현악의 경우 현 특유의 질감이 다 죽어 있습니다. 현이 다 나일론 줄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이 레이블의 CD를 잘 안 사게 됩니다. 그렇지만 요즘도 정말 잘 된 녹음이 많습니다. 전에 누가 RCA 77dx 마이크하고 요만한 리복스 A77녹음기로 마이크 세 개만 가지고 교회당에서 한 녹음을 들어봤는데, 환상적이더군요. 그 엔지니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노하우가 십분 발휘되어 있었습니다. 평범하게 그냥 남들이 다 하는 대로 비슷비슷한 장비들을 깔아놓고 녹음하는 사람들 치고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계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기계의 힘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거기에 엔지니어 특유의 노하우가 녹아 들어가야 좋은 녹음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철저하게 녹음에 임하는 사람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명반을 만듭니다.
하 : 요즘은 빈티지 특유의 음색에 반해서 빈티지를 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유지보수 등의 문제 때문에 아쉬운 대로 일종의 편법을 쓰시는 분들이 꽤 있으십니다. 즉 스피커는 빈티지를 쓰고 앰프는 하이엔드를 쓰는 거죠. 김형택씨는 평소 이런 조합을 권하지 않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 그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빈티지 스피커는 내압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대출력의 앰프와 조합시키면 스피커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빈티지 진공관 파워에 하이엔드 TR 프리앰프를 조합하면 어떻겠냐는 말도 나올 법한데, 이 경우 격에 맞는 빈티지 파워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프리앰프의 음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 역시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동안은 이런 식이 좋다고 해서 쭉 써봤는데, 그렇게 썩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하 : 그럼 소출력 TR 파워앰프는 어떨까요?
김 : A급 소출력 파워앰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경우 빈티지 진공관 프리앰프를 물리면 또 문제가 됩니다. 빈티지 프리앰프는 뭐랄까... 약간 불안합니다. 스코프로 보면 출력이 출렁출렁 거리거든요. 그래서 TR 파워에 무리를 주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사실 스피커와 파워앰프는 그 궁합이 정확하게 맞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빈티지 스피커는 빈티지 파워와 맞습니다. A급 TR 앰프에도 빈티지 스피커를 물려 봤는데, 괜찮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소리를 내 주더군요. 그런데 진공관만은 못한 편입니다. 담백하고 깨끗한 맛은 나는데, 깊은 맛은 좀 부족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옛날 빈티지 스피커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저 레벨 시에 명료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력을 낮춰도 소리의 질이 일정하게 다운되는데, 하이엔드 스피커 중 상당수는 출력을 낮추면 소리의 질이 갑자기 확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빈티지 스피커는 음압이 높기 때문에 이런 단점은 없습니다.
하 : 훌륭한 스피커에는 높은 음압이 그 필요조건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김 : 음압이 높은 스피커가 정말 좋은 스피커냐, 이런 생각은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좋은 소리가 날 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봐야합니다. 일률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하 : 요즘 들어서 빈티지가 오히려 더 각광을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김 : 빈티지가 요즘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소스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스의 질이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그 성능을 더 잘 발휘하는 거죠. (본인이 만든 프리앰프를 가리키며) 이것 같은 경우에 완전히 빈티지입니다. CD 플레이어에서 나온 신호가 먼저 CD용 트랜스로 들어갑니다. 소리가 더 단단해지고 디지털 적인 맛이 사라집니다. 디지털 필터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프리앰프로 들어가고, 프리앰프에서 나올 때에도 출력 트랜스를 거칩니다. 그리고 파워 앰프 입력에는 입력 트랜스가 또 달려 있습니다. 스피커로 나가는 곳에는 당연히 출력 트랜스가 달려있고... 이렇게 트랜스가 4 개나 달려있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대역이 좁아야 하겠죠? 그런데 지금 대역이 좁다고 느껴지십니까?
(볼륨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빈티지적인 약간 답답한 느낌이 없고, 대역이 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 :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트랜스를 많이 쓰시는 이유는 있을까요?
김 : 음색이 독특해집니다. 물론 컬러레이션이 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것이 좋은 방향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컬러레이션이라면 오히려 하이엔드가 그런 쪽으로는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소스가 상당히 좋아졌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LP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날로그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무튼 소스기기의 발전은 오히려 빈티지에게 더 유리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새 빈티지를 좀 더 많이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김 : 그러니까 옛날 LP같은 경우는 판 자체에서 최대한 정보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카트리지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굴곡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Phono EQ 도 어정쩡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마란츠 7 같은 걸 써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레코드 안에 있던 데이터 량을 스피커로 온전하게 재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요즘보다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밖에는 FM라디오나 릴 테이프 정도, 이런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CD는 거의 완벽에 가깝지 않습니까? 디지털이냐 뭐냐를 떠나서, 대역폭이나 S/N비, 다이내믹 레인지 같은 스펙 상으로는 확실히 상향 평준화되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지점에서는 역시 아날로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디지털이 비교적 질 좋은 소스를 손쉽게 공급해준다는 점에서는 그 공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김 : 그것은 확고한 자신만의 소신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기기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빈티지와 하이엔드를 조합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기가 어떤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면 중간에 그 어떤 것을 넣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없이 브랜드를 의식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마구잡이로 조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 : 지금까지 수많은 명기들을 접해보셨을 텐데,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기는 무엇인가요?
김 : 다 자신들의 독특한 특징이 있으니까 뭐라고 딱 잘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제 경우는 역시 알텍 A-7이 스피커로는 평생을 쓸 수 있는 명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걸 오래 쓰면서 느낀 점인데, 돈을 더 들여도 이것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스피커를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걸 드라이브할 수 있는 앰프를 찾는다는 게 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게 되겠죠. A-7처럼 확실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드물 것입니다.
하 : 특별히 선호하는 진공관이 있으십니까?
김 : 특별히 그런 것은 없고 진공관이면 다 좋아합니다. 저는 3극관, 5극관 이런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3극관 바람이 불어서 5극관은 못 듣는다는 얘기가 자칭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되어있는데,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극관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고 5극관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한국적인 소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는 하이엔드 메이커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큐페이즈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적인 의미에서 선이 굵은 그런 하이엔드는 아니고 일본 특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사견입니다만 우리는 일본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대륙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태광에서 만든 앰프들, 삼성에서 만든 엠퍼러 같은 것은 브랜드만 가리고 보면 미제 같지 않습니까? 소리도 그렇고... 그런데 일본의 경우 외관과 소리 모두 선이 가늘고 하늘하늘한 걸 좋아한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테레오 사운드> 같은 걸 보고 일본사람을 무작정 따라하다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그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남이 하는 거 흉내내기보다는,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소리의 감성에 맞는 기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취향이 일본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 : TR과 비교해서 진공관의 특징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 : 솔직히 요즘은 진공관이냐 TR 이냐가 순수하게 소리로서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빈티지 진공관 앰프들 중에는 TR 과 비교해서 전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높은 해상력을 보여주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진공관이 TR 보다는 다소 달콤한 소리를 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공관을 좋아합니다. 또 제가 처음에 접했던 앰프가 진공관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있고 또 진공관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하 : 아주 신경을 써서 제작하시는 특주품 앰프의 경우 러그 단자부터 배선재까지 전부 다 오리지널을 고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장소에 그 부품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만 오리지널을 넣습니다. 오리지널을 무조건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오리지널을 못 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오리지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오리지널을 꼭 넣어야 합니다. 아니어도 되는 부분에 굳이 오리지널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무조건 비싸고 좋다는 부품만을 고집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닉 프론티어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 회사는 원래 파트 커넥션이라는 부품 공급 판매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네들 창고에 전세계에서 좋다는 부품들을 모두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좋은 걸 다 써서 앰프를 만들면 히트를 할 줄 알았는데, 결국엔 문 닫았죠. 그러니까 이것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접근을 잘못했다고 보아야겠죠. 한국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무조건 세계 최고의 부품들만을 써서 최고의 앰프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거의 100% 깨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서 수 천 만원씩 받는 사람이 있지만, 이런 앰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경우에는 그 부품이 들어가면 안 되는데 그 부품이 들어간 경우가 많더군요. 무조건 좋다니까, 또 비싸다니까 고급 부품들을 마구마구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품의 가격을 막론하고 저 부분에는 싸구려 부품을 써도 소리가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결과가 훨씬 더 좋을 텐데, 한국 사람들은 그것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비싼 것만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 : A5와 A7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A-7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공간을 확보한다면 A-5로 갈 겁니다. 어떤 넓은 홀을 하나 울린다면 당연히 A-5로 가겠죠. 그러나 집에서 쓴다고 하면 A-7이 더 낫습니다.
하 : 혼형 스피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상이 너무 앞당겨서 들린다거나 뭐 이런저런 이유로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김 : 그건 드라이브를 잘못한 겁니다.
하 : 혼형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김 : 그렇습니다. 혼형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A-7이 좋은 스피커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퍼도 혼형이라는 점입니다. 고역과 저역이 동일 형태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고역만 혼이고 우퍼가 아니면 그게 또 안 맞을 수가 있습니다.
하 : 특별히 혼을 선호하시는 건가요?
김 : 선호는 아니고, A-7의 소리를 좋아하는데, 이게 마침 혼형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가 완벽하기도하고요. 혼형이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어느 회사의 혼 스피커는 아주 엉망인 것도 있습니다. 오디오라고 만들었는데 완전히 PA 소리가 나더군요.
하 : 아주 논쟁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저희 동호회에서도 논쟁이 있었는데,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재미난 결과들이 많이 나옵니다. 저도 가끔 해봤으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눈뜨고 하면 오디오적 식견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이 앰프는 소리가 어떻고 저 앰프는 소리가 어떻고 신나서 말하는데, 눈을 가리면 전혀 구분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전 평소 오디오 애호가이신 모 대학의 K교수님을 굉장히 존경하는데, 예전에 제가 주관했던 블라인드 테스트 때 이 분이 참가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턴테이블을 비교하는 테스트로, 플로팅 방식의 5가지 다른 턴테이블에 암과 카트리지를 전부 다 똑 같은 것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테스트에 돌입하니 K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잘 구분을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얼마나 솔직합니까? 그분 정도 위치에 있는 분이면 이건 뭐가 어떻고 저건 뭐가 어떻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인데, 그 분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 기기를 눈으로 보면서 소리를 평가했을 때에는 각 기기의 특징을 살펴 주시면서 정확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블라인드를 하니까 다 비슷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은 정확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바꿨다고 하면서 안 바꾼 적도 있었거든요. 제가 셀렉터를 가지고 기기를 선택하는 역할을 했었는데, "자, 바꿉니다"하면서 안 바꿔봤습니다. 그런데 다들 소리가 어떻게 변했고, 고역이 어쩌고 저역이 어쩌고 그렇게 말했지만 K교수님은 자기는 구별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 :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 실질적인 음질 적인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까요?
김 :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극히 미미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테스트인가가 중요하겠습니다만... 특히 시각적인 것, 브랜드인지도 등에 엄청나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 블라인드 테스트 때에도 제가 처음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테스트는 무의미한 비교입니다. 모양보고 자신이 선호하는 모델은 사는 것이 더 빠르지 들어보고 결정한다는 건 무리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때는 다 출렁거리는 플로팅 방식의 턴테이블에 바늘과 암을 똑같은 걸 썼기 때문입니다. Sota가 조금 더 단단한 소리가 낸다는 세간의 얘기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들 구별을 하지 못하시더군요.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을 때는 모두들 구분했지만(웃음). 제 눈에는 참가한 분들이 각 기기들 사이의 차이를 느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적어도 이런 차이는 확실하게 구분해야지'하는 어떤 우월감이나 자부심들을 가지고 왔었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 : 하이엔드 TR 앰프들 간의 소리의 차이가 아주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 차이가 아주 없다고는 말하기가 그렇지만, 아주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일정 수준에 올라있는 앰프들 간에는 차이를 알기가 정말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스피커를 구동하는 면에서 수준 차이를 드러낼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하 : 진공관 앰프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확실히 차이가 나지 않나요?
김 : 조금 차이가 납니다(웃음).
하 : 그럼 김형택씨의 경우 소리의 차이를 어떻게 추구하시나요?
김 : 저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기 위해서 트랜스를 많이 씁니다. 트랜스가 들어가면 다른 증폭 소자보다도 소리의 차이가 훨씬 더 나기 때문입니다. 트랜스를 쓰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나름대로 장점이 많기 때문에 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독특한 소리가 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 : 그럼 뮬라드는 소리가 어떻고, 텔레풍켄은 소리가 어떻고, 요즘 생산되는 관은 어떻고... 또 관을 이걸로 바꿨더니 소리가 확 변했다, 뭐 이런 평가에 적지 않은 거품이 섞여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 : 네. 분명히 거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박관념입니다. 구별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차이가 아주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확 차이가 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구별하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 되지 왜 그렇게 구별하려고 합니까? 자기가 무슨 엔지니어나 전문가인양 착각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글 올려서 자랑이나 하려고 하면서 때때로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음악을 듣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 케이블을 바꾸니까 좋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만 소리가 조금 바뀔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소리가 확 바뀌었다면 두 케이블은 다 나쁜 것입니다. 전송계라는 건 가감 없이 그냥 전달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전송계에 전압이 가해집니까? 진공관이나 TR 이나 IC 가 들어 있습니까? 전송계에는 소리의 가감이 있으면 안됩니다.
하 : 그럼 케이블에 따른 음질 차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거의 비슷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이엔드 스피커의 경우 대 전류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굵은 케이블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가닥가닥 절연을 했다든지, 마크 레빈슨처럼 납작하게 폈다든지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전류가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 별의별 상황이 다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가 선재 자체에서 올 확률은 적습니다. 이 이야기를 벌써 수십 번 하는 것 같은데, 구리 용광로를 설치한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케이블 회사는 좀 심하게 말하면 다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구리를 사다가 껍질만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해서 소리가 특출하게 바뀔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쇠는 열처리 과정에서 성질이 바뀝니다. 그런데 구리는 융점이 낮아서 열처리 과정에서 성질이 비약적으로 바뀔 확률이 철보다는 낮은 편입니다. 고열로 열처리를 하면 녹아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온도에서 열처리를 해봤자 성질이 심하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케이블 회사들이 선전하는 것 중에 어디서 구리를 사와서 자기네들이 열처리를 했다는 등, 이런 것은 소리에 큰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구리를 뽑지 않은 이상은 기성품을 사다가 껍질만 멋있게 처리하면 그것으로 다 끝나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실드를 어떻게 하느냐, 굵은데 어떻게 굵은가 하는 건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돈을 그렇게 많이 받는 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선재 자체를 처음 뽑아낼 때부터 다르게 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주 비싼 케이블이나 싸구려 케이블이나 전체적인 저항치와 구조를 똑같이 하면 두 케이블 소리는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구리 공장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 구리를 뽑을 때 특별하게 한다, 뭐 이러면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하 : 은선이나 백금선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소리가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재질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거기에 수십 수백만 원씩 투자할 가치는 느끼지 않습니다. 달라질 수는 있으나 좋아진다고 단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케이블 같은 걸로 소리가 바뀐다는 것은 "완전히 사기다!"라고 말하기도 그렇지만 사실 거품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송계는 아무런 가감 없이 그냥 전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동안 오디오 하시는 분들이 너무 허접한 케이블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좋은 케이블로 바꾸면 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될 수는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소리의 질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선의 경우는 비쌀 수밖에 없겠죠. 은이 구리보다 비싸니까요. 재질에 대한 비용은 지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천상의 소리가 날것이라는 기대는 안 합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 같은 경우는 거기에다 많은 돈을 지불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 :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가 나아가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지금까지 쭉 그 얘기를 한 것 아닌가요?( 웃음) 사실 제가 빈티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그렇습니다. 제 생각이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이엔드가 과연 소리를 본질적으로 재생하는데 접근하고 있는가 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하이엔드의 소리는 강요적입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내게끔 기기를 만들었으니까 넌 무조건 들어야 한다, 이런 것인데, 이것이 자신의 취향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싫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제작자의 주관이 너무 많이 배어 있습니다. 단지 소리만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외관과 소리, 그 밖의 여러 가지 총체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무분별한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서 종종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 같아 좋게 보이질 않습니다.
하 : 김형택 씨는 앰프 제작가이신데, 본인이 제작하고 있는 앰프가 지향하는 사운드는 어떤 것인가요? 궁극적으로 추구하시는 사운드는 어떤 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 : 제 생각에 스피커와 파워앰프의 기술은 이미 옛날에 다 완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텍 스피커를 누가 들어도 뛰어난 스피커라는 것을 인식시켜줄 만큼 뛰어난 프리앰프를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파워앰프의 경우는 기존의 기기들이 워낙 좋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흉내내기는 해도 제가 아무리 난리를 쳐봐야 소용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프리앰프는 존재가치가 다소 미미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했던 오디오의 황금시대가 남겨놓은 훌륭한 스피커와 파워앰프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시켜줄 수 있는 프리앰프를 만드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하 : 여담입니다만, 서윤전자의 앰프들은 소리는 좋지만 외관이 좀 그렇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김 :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웃음).
하 : 요즘 국내에서도 작은 공방에서 제작되어 나오는 진공관 앰프들은 외관에 무척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김 : 그것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저도 그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비용이 적지 않게 올라가는데, 그렇게 되면 이 앰프를 살 사람이 없게 됩니다. 제가 물건을 몇백 개씩 만들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또 팔리는 상황이 아닙니다. 몇십 개만 된다면 저도 그렇게 해 볼 의향이 있습니다만...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팔아주지도 않으면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좀 그렇죠(웃음).
하 : 그래도 서윤전자의 바로크 프리앰프의 경우 중고 시장에서 대단한 인기가 있습니다. 찾는 사람도 많고, 중고시장에 한 번 나오면 나오는 즉시 팔려버립니다.
김 : 저는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 : 요즘 다시 만드시면 비용이 얼마 정도 들까요?
김 : 지금은 그때 쓰던 부품이 없습니다. 전에 쓰던 부품들 중 일부는 제가 독일에서 부품을 독자적으로 수입해서 사용하던 것이지만 지금은 그 부품들의 가격이 너무 올라서 따로 주문을 하기가 곤란합니다. 지금 시중에서는 그 부품들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하 : 오디오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전자공학에 아주 능통한 분들이 계신 반면 그쪽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전무한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후자가 더 많죠. 그런데 이처럼 전자 공학적 지식이 없는 분들은 일종의 '오디오 신비주의' 같은 경향에 빠지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것 같습니다. 전자 공학적 지식이 없으면 오디오라는 취미를 즐기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
김 : 오디오에는 물리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과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 지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사람들은 이론에 집착하여 그런 쪽에 맹신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그 우월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 흐를 가능성 역시 많습니다. 사실 이것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디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깊은 이해를 하려면 전자공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음악을 즐긴다는 점에서 보면 전자공학은 몰라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가 무슨 레코딩 엔지니어처럼 자처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대다수의 오디오파일들은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상황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오디오 기기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전문가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냥 들어보니 이것은 좋고 저것은 어떻고...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품이, 어떤 회로가, 어떤 이유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전자 공학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면 전자공학을 넘어서 재료 공학적으로도 나아가야 합니다. 왜 그러한 재료로 만든 것이 그런 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공학적 이해까지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초가 없이 그저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의미도 없으며 또 설득력을 가지지도 못합니다. 왜 그것이 그런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한도 끝도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또 이러한 노력과 지식들이 모든 오디오파일들에게 필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음악을 즐길 줄 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 마지막으로 오디오 파일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 :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먼저 자신이 오디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꼬집어서 말씀드릴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비싼 기기를 쌓아 두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 있고, 적당한 오디오를 가지고 그냥 음악만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제가 아는 분 중에 어떤 분은 오래 된 AR 스피커에 구닥다리 피셔 TR 리시버로 음악을 듣는 분이 계신데, 음반은 정말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니, 어떻게 저런 걸로 음악을 듣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행복한 소리를 듣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객관성을 가장해서 자기의 소리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남에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 역시 좋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 일반 연주자서부터 지휘자까지 오디오를 하는 음악가들과도 교류를 하는데, 그 사람들은 항상 실연을 접하기 때문에 의견이 일치될 것 같지만 재미있게도 이야기가 모두 다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홀에 가서도 S석이냐 D석이냐에 따라서 소리가 모두 다른데, 어떤 특정한 상황 하나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주관적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연주자든, 지휘자든, 청중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주로 듣는 사운드를 남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경우에도 사실은 개인적인 취향일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오디오에 대한 획일적인 접근 방법은 위험합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오디오를 대하고, 또 아무 기기라도 그것을 가지고 음악을 행복하게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에필로그
김형택씨와의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빈티지 오디오에 대한 올바르고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김형택씨가 가지고 계신 빈티지 오디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취재진의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작업실을 꽉 메운 수많은 빈티지 기기들과, 무엇보다도 김형택씨 본인이 메인 스피커로 사용중이신 알텍A-7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습니다.
도가에서 말하길 '유(有)'의 존재 근거는 '무(無)'에 있으며, 무의 존재 근거는 유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하나의 존재는 그것의 반대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오디오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있기 때문에 빈티지 오디오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고, 빈티지 오디오가 있기 때문에 하이엔드 오디오가 더욱 돋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김형택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이파이뮤직 회원님들의 오디오에 대한 이해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셨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