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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서노의 무덤을 찾아서 – 3
여러분들이 아시는 산제사의 축문은 어떤 형식인가요?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시(某時)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 일반적인 형식이지요.
그리고 ‘누가 어떤 내용으로 축문을 올립니다.’라는 내용이 가장 보편적 형태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난 미증유(未曾有)의 축문이 대모산 아랫마을 가업리에 전해 내려옵니다.
‘용을 품은 토성’을 골자로 한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산제사 축문’을 소개합니다.
《山祭祝〉 土城山神之靈曰 維心有靈 幹龍抱廻 寔鎮玆土 民麗其下 出雲降雨 顧他閈里 冥佑庶事 敺癘垂祜 大疵吾人 粤自數歲 率多隕天 恐惶無地 遇歉且漠 亦靡寝熄 重足而立 村孩育驚 實念厥故 不虔不禱 里老日咨 職由民蚩 獲戾致咎 惟我神佑 謹消吉辰 齋誠永新 豈肯蕸棄 潔我牲酒 庶降多祚 六氣暢和 阿禁保護 春而發作 二堅消匿 休養生息 秋多乃積 俾爾壽康 歲歲報賽 伏惟尊靈 惠我茀籙 無念無斁 剡剡歆格 尙 饗
토성 산신께서 가로되 마음에 영이 있도다. 용을 품은 이 터에 백성들이 거하니, 구름을 몰고 와 비를 내리시고, 마음을 돌보아 매사를 보살피시고, 만병을 몰아내시고, 복을 내리시니, 그 은혜에 힘입어 우리가 보존할 수 있었도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이 일찍 죽고, 흉년에 역병이 끊이질 않으니, 모두가 두려워하여 말도 하지 못하더라. 아이들이 밤에 경기하고, 생각이 어수선해지니 갈수록 불경해지더라.
마을 노인이 자문하니, 백성들이 어리석어 허물을 얻게 되었으니, 신령께서 보우하시도록 삼가 길일을 잡아 정성으로 기도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제주를 올리면 많은 것을 주시고, 복을 내리시리라. 부디 육기가 창통하고 질병이 사라지며, 휴양생식하여 봄에 뿌리면 가을에 풍족하게 거두게 하시고, 무병장수하여 오래도록 감사의 제를 올리게 해 주소서.
존령에게 엎드려 원하건대 저희에게 복을 주시고, 신령에게 감읍함에 있어 게으르거나 소홀히 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상 향!!!
육기: 천지 사이에 있는 6가지 기운 (음, 양, 풍, 우, 회(晦), 명) 창통: 막힘없이 잘 통한다. 존령: 혼령의 높임말 휴양생식: 휴양하여 예기(銳氣)를 기른다.
-양주의 산간신앙. 266p. ‘가업리 산신제’. 양주시·양주문화원 2004. 12. 25. |
한자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주변 학자들에게 축문을 보낸 결과. 욕 엄청 먹었습니다. 흑 ㅠㅠ.
요즘에 쓰지도 않는 한자에, 앞뒤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라 직역을 해서는 이 축문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공통된 의견만 간신히 건진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한자의 해석에 있어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여기에 올리는 해석은 일차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이지 완전한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이두식 표현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산축문은 왜? 만들어졌고, 해석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축문은 왜? 아직까지도 가업리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걸까요?
그리고 신동명 박사는 왜 이 산축문 발견에 전투 모드가 되어 눈을 번뜩이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온조왕 13년 (음력) 2월에 여제 소서노가 훙거(薨去)했고, 그 해 5월에 매우 급하게 하남으로 내려 간 후 4년 뒤 하남위례성에서 사당을 지었다면, 소서노의 능은 온조왕 13년 3~4월 즉 2개월 이내에 급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2. 그렇다면 먼 곳이 아닌 곳. 사건이 터진 의정부 범골 또는 초기 하북위례성의 영역 안의 어디엔가 장사를 지내고, 무덤을 조성했을 것이다. 3. 무덤을 조성했으나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라도 무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단 제사는 웅장하게 지냈을 것이니 그 흔적은 지명에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4. 대를 이어 관리를 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산제사나 축문, 토착집안의 족보 또는 내력, 전설 등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
제가 ‘사라진 소서노의 무덤을 찾아서-2’에서 제시한 내용 기억나시죠!
신동명 박사의 추리력. 대단하지 않습니까? 움화화화.
제시문 4번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니 제 두 눈에 힘이 안 들어가고 배기겠습니까?
족보, 축문, 산제사, 전설 이런 것들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아무튼 이러한 전대미문(前代未聞)과 유사한 축문들은 오래 전 시대에는 주변 지역에도 있었을 것인데, 간신히 가업리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지명들이나 이 산축문을 통해서 모아지는 하나의 단어는 ‘대모산성은 토성이다.’라는 겁니다.
엉? 그런데 현재 대모산성은 석성인데?
다음의 자료는 지금의 대모산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석성이 되었는지를 갸름하게 만들어줍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건물지는 동제말 1점과 토제말 1점이 출토된 81-건물지1이다. 이 동제 ․ 토제말들은 83-건물지1과 84-건물지1, 동문지에서 출토된 많은 청동방울과 함께 산성에서 행해졌던 성황신 제사와 관련되는 유물로 파악되며, 이 유물이 출토된 81-1건물지는 성황신 祭祠址였을 가능성이 상정된다. 이 건물지가 제사지였다면 제사용 사당과 같은 것이 官人의 주거 건물지로 추정되는 81-건물지3에 인접 배치된 것이 된다.
양주 대모산성의 재조명. 139p
한편 이 10개의 동령은 일괄 출토된 것으로 10개가 1단위로 동시에 사용된 것이다. 청동방울 여러 점이 함께 사용되는 예는 무속의 무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개 소형의 무당칼이나 자루 끝에 함께 매달아 무구로 사용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전술한 동제 ․ 철제 말과의 조합관계이다. 위 함유일 관련 내용에서 ‘등주 성황신이 여러 번 무당에게 내려 국가의 화복을 신기하게 맞추었다’라는 내용을 통하여 성황신 제사가 무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무당이 개재되어 성황신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문지에서 출토된 10개의 동령들은 고려시대 산성에서 행해졌던 성황신 제사에 관여되었던 무속의 巫具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양주 대모산성의 재조명. 153p. 노혁진 한림대학교 출판부 |
이러한 역사 흔적의 총화는 의정부 녹양동 ‘능논골’이라는 지명에서 종지부를 찍습니다.
능논골: 능논골은 선석 끝에 있는 용머리 앞에 있는 4천 여 평의 논으로 어느 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능에 소속된 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의정부지명유래, 의정부시, 1997, 215쪽; 유태진(남, 82세), 2020. 9.24 -의정부 땅이름 이야기, 의정부문화원, 133쪽; 2021. 2. 26 |
이 지명이 왜? 총화를 이루는 글자냐고요?
제시된 내용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능논골’은 ‘능에서 관리하는 논’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것도 4,000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제공하였다는 겁니다.
왜 아니었겠습니까? 능을 관리하려면 일정한 수의 군사 또는 백성들을 주둔 시켜야 했을 것이고, 이들에게 능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려면 자체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치해야 했을 겁니다.
기원전 6년, 온조국 13년 그해 2월 훙거한 소서노의 무덤을 부랴부랴 조성하고 5월에 긴급히 하남으로 내려가야만 했던 온조대왕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자! 이제 1편과 2편 그리고 지금 3편을 통해 ‘소서노의 능’ 위치가 ‘대모산성’에 있는 이름 없는 ‘적석묘(積石墓)’이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마지막 퍼즐을 꿰맞추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그러려면 ‘능논골’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명할 필요가 필수입니다.
‘능논골’의 위치는 어디냐? 그 곳은 바로~. 바로~~. 바로~~~.
‘어둔리 저수지’ 바로 아랫동네입니다. 그러면 ‘어둔리 저수지’는 어디냐? 그 곳은 바로~. 바로~~. 바로~~~. ‘대모산성’ 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적하다보니 ‘능논골’이 화룡점정의 글자라는 주장에 힘을 더 해주는 지명이 하나 더 등장 하는군요. ‘어둔리(於屯里)’ 임금의 군사가 주둔하던 곳.ㅎㅎ. 그리고 그 밑 동네에 ‘능논골’ 즉, 능을 관리하는 군사들의 생계를 위해 제공된 논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능’은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대모산성’에 있다는 거 아닙니까!
자! 이러니 신박신박 신동명 박사가 ‘대모산성’에서 발견한 ‘파천황(破天荒)’의 무덤을 어찌 사라진 ‘소서노의 능’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모산 주변의 지명의 지명마다 ‘소서노의 능’이 ‘대모산성’에 있다고 한 곳을 가리키니 의정부지명밟기운동본부 회원들이 어찌 이 목소리를 대신하여 주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신동명 교육학박사
현) 세한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현) 전국지명밟기운동본부 대표
저서: 역사소년 신새날, 십대토론, 행복한 수다가 치매를 예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