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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엄마!
남경 목장 김무생 성도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회, 권력자, 권세, 판사, 의사, 교수 모두 훌륭하시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구미남교회 10남 친구들이 사랑으로 저에게 악수를 하지요. 참으로 감사해요. 10남 친구 부인 집사님들을 볼 때마다 또 남경목장 가족 여집사님과 남교회 여집사님들, 모두 세상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남자 집사님들도 아름다워요.
똘지라고 저희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있어요. 풀어서 키우는데 집에도 자주오지 않고 신평 칠성주택구역이 자기 본 거주지이고 다른 수컷과 매일 싸워 상처투성이입니다. 자기 구역이라고~^^ 똘지는 고양이 수컷이지만 남자의 성품과 인품이 있지요?ㅎㅎ 남교회 여집사님들을 볼 때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멋진 남편 집사님들과 교회로 손잡고 함께 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한 분 한 분 볼 때마다 존경스럽고 귀하고, 소중하고, 어찌나 위대하게 보이는지 손을 잡고 악수해 드리고 싶어요.
대구 칠곡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사과밭이 많은 동네였는데 사과밭 중에서 제일 큰 사과 밭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과 열매가 많이 달리면 막내인 저는 사과밭을 누비며 사과 열매를 한입에 물고 또 사과 열매를 입으로 상처내면서 그렇게 큰 사과 밭을 누비고 다녔다 합니다. 과수원 옆으로는 강이 흐르는데 깨끗하고 예쁜 강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강가에 집을 지으셨는데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집 가까이에 와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뛰어 놀던 강의 추억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집에서 초등학교 등교를 하려면 과수원 길을 2~3백 미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이 노래 가사가 어쩜 제가 등교를 하는 그 길이라 해도 하나도 부족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때론 사과가 먹고 싶어서 탱자 가시나무 사이로 손을 뻗어 사과를 훔쳐(?) 먹었지요. 아버지가 과수원 돕는 일들을 하셔서 초등시절에 사과는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건강이 나빠지고 어머니가 제지 공장을 다녔습니다. 새벽에 3~4시경에 일어나 우물가에 가서 빨래를 다 하신 후 직장을 50분가량 걸어서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과를 담임선생님께 가져온 일이 있습니다. 주위에 과수원이 많아 사과에 흠이 있고 조금 썩은 것을 이웃집에서 먹으라고 자주 가져왔었기에 엄마는 썩은 사과를 도려내고 보따리에 싸서 선생님께 드렸었나 봅니다. 전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 있는 것을 보니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쉬는 시간, 책상에서 3분의 1 이상 도려낸 사과를 깎아 드시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맛있다고 하셨죠. 여선생님이셨습니다. 운동회가 있으면 저는 엄마를 오시지 말라 했습니다. 술만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왜 오시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요.
초등학교 소풍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기억 속에서 아직 두 가지가 잊히지 않습니다.
하나, 아버지의 선물.
내일이면 소풍입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슈퍼에서 먹을 것을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저것 담아서 소풍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먼 길, 먼 산을 걸어가고 있는데 선생님이 무거워 보인다며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과자 욕심에 선생님의 도움을 뿌리치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는데 아마 혼자서 그 많은 과자를 다 먹었던 것 같아요. 슈퍼에 아버지가 과자 값을 모두 외상으로 달아 놓았을 것 같고요. 아마도 엄마가 다 갚았을 거예요.
둘, 어머니의 선물.
등굣길에 동네 친구들이 오늘 소풍 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 소풍날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회사 가는 엄마를 붙들고 울면서 소풍이라고 하니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아침에 먹다 남은 식은 보리밥에 푸른 나물반찬을 싸 주었습니다. 푸른 나물반찬인 줄을 산에서 알았습니다. 친구들은 김밥에 삶은 계란 등,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있었지만 저는 창피한 마음에 그냥 들고 다니며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필 푸른 나물반찬통을 흘려 여러 친구들이 보았고 한 친구가 주워서 들고 “니 반찬통이냐?”하며 저에게로 와서 주었는데 난 “내끼 아이다.”하며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이후에 반찬통을 들고 집에 와서 그대로 먹지 않고 보리밥과 푸른 나물반찬통을 집 부엌에 둔 것 같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그 날은 그것이 다였는데... 엄마가 그 도시락을 보고 어땠을까요?...ㅠㅠ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사랑하는 엄마가 얼마 전 돌아가셨습니다. 미안한 마음은 이처럼 가슴속에 가득한데...
오늘따라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