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짜: 2011.05.08
산행경로 : 벌재-폐맥이재-황장재-감투봉-황장산-작은차갓재-차갓재-새목재-대미산-부리기재-꼭두바위봉-관음재-포암산-하늘재
산행거리 : 27.6km
음력 4월6일 새벽3시 여장을 챙겨 밤길을 길없는 길로 들어 선다.
지난 산행 때 통제된 벌재구간을 통제감시원이 없는 이 시간을 택해 통과 하려고 하니 위험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규범을 어기고 욕심을 채우려는 위엄천만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대간종주에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벌재는 북으로 단양군과 남으로 문경군을 경계하는 재다.
백두대간종주를 계획하는 많은 산꾼들이 이곳 벌재처럼 생태복원을 목적으로 통제되는 몇몇구간으로 사실상 정상적인 종주는 힘들다.
백두대간 남쪽구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향로봉에 이르는 길이 670km의 대간구간을 관통하는 포장도로는 모두 47개나 된다. 그 가운데 29개 도로가 산림생태계를 끊고 있다. 지난 저수령도 그렇고 죽령도 좋은 예다. 야생동물이 이산과 저산을 이동 할 수 없는 단절된 길. 우리가 말하는 백두대간능은 인간들에 편리를 목적으로 생태적 맥은 이미 끊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듯 싶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그 무리중 하나이고 또 범법행위를 마다 않고 산행을 고집하는 꼴통중 하나인 셈이다.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닌데 달도 없는 밤길을 렌턴하나 의지하고 오르려니 이거이거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새벽이 가까와 오니 산짐승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길도 없는 등산로를 동물적 감각 하나로 앞서가는 이선생님은 낮에도 그렇지만 캄캄한 밤이라고 해서 뒷사람 안전이나 편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더구나 여자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다.
숲으로 들어 오기전 GPS를 켜 뒀으면 좋았을 것을 들어 선 이후라 위성이 잡히질 않는다.
앞서가는 이선생님 렌턴빛만 따라 죽을 힘을 다해 가는 수 밖에.....
새벽 5시 30분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제도 오늘 처럼 해가 떠올랐고 내일도 오늘 처럼 해는 떠오를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자연의 법칙뿐인듯 싶다.
시시 때때로 생각이 달라지고 편의에 따라 가치관이 흔들리는 나 자신에게 자연은 큰 스승이며 학습에 표본이 된다.
온통 캄캄하던 세상을 산마루를 경계로 하늘과 땅을 구분짓게 하고, 또 나무와 풀을 구분짓게 하며 점점 더 밝아 수없이 많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짓게 하니 태양은 무(無)와 유(有)에 어머니가 아닐까?
끝없이 펼쳐지는 산능선 산자락 마다에는 숱한 사람들이 잠에서 깨 아침을 맞을텐데 능선에 서서 아침을 맞는 이 황홀한 순간.
어쩌면 역마살을 타고난 몇 안돼는 사람들에게 주워지는 신에 특혜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득한 산 넘어로 부터 떠오르는 태양은 무딘 가슴에 잠든 열정을 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아무도 맛보지 않은 태양을 아침 밥상에 놓인 흰 쌀밥 한 숟가락 처럼 목구녕으로 꿀떡 삼켜본다.
폐백이재를 지나 치마바위 다닿아서 만난 스님 한분. 지그시 내려감은 눈이며 곱게 깎은 머리는 역락없는 스님에 옆모습이였다.
산아래 칠성암을 향하고 있는듯하다. 낼모레가 사월 초팔일이라 그런지 멀리서 들려오는 아침 불경소리와 지그시 눈감고 청음하는 스님바위가 인상깊게 눈으로 들어온다.
저 멀리 문경 동로면과 공덕산이 보인다. 지난번 문복대에서 바라본 공덕산은 천주봉 뒷쪽에 가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공덕산 넘어로 천주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천주봉과 공덕산을 중심에 두고 대간길은 두르듯 휘돌아 가고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고 해서 산은 스스로 물길을 갈라내고 산과 물을 구분함에 있어 산은 물을 건너지 않으며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이치를 궂이 산경표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곳 문경을 경류하는 대간길을 걷다보면 절감하게 된다.
그 옛날 선조들은 왜 물도 없고 암릉으로 위험한 이 마루금을 주요 통행로로 이용했는지 알것도 같다.
지방과 문화를 경계하는 산과 물은 결국 마루금에서 부터 시작 된다고 봐야 하고 그 마루금은 지방과 문화를 경계하는 산의 최단거리 노선이 되다 보니 주요 통행로로 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야 말로 두발로 한반도를 종단하는 최단거리 코스라는 말인가?
최단거리 코스라고는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멀었으니 서둘러 걷는 수 밖에.....
폐백이재에서 부터는 중간중간 암릉이 있어 산행하는 재미가 있다.
피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그럴싸한 암릉이 없었던 터라 오늘 걷는 이 구간이 마음에 든다.
연두빛 새 순이 트기 시작한 나무도 보기 좋고 연분홍 진달래가 암릉과 어우러져 핀 모습은 마치 동양화속에 주인공이 된것만 같아 더 좋다.
황장산 도착시간 6시 30분경. 주변을 둘러 보며 여유를 부린탓도 있겠지만 지도상 거리와 소요시간이 실제 거리와 소요시간과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거리에 있어 다를리 없겠지만 암릉이 있어 평소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때가 때인지라 배꼽시계가 아침을 알리는 소리. 꼬르륵~꼬르륵~~
아침을 먹고 출발 하자는 권유에 이선생님 대뜸하는 소리. 8시까지는 차갓재에 도착해야 된다며 차갓재 지나서 아침을 먹겠다고 한다.
아직까지 통제구간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서둘러야 마땅하나 간식으로 대충 허기를 달래고 출발 한다.
황장산에 장(腸)은 창자 장자를 쓴다. 누런내장이란 이름이 왜 붙었을까?
어떤 지도에는(국립지리원) 황정산으로 표기 되기도 하고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지에는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미산을 주령으로 해서 이 일대가 모두 봉산으로 지정 되었고 대원군때 이곳에서 황장목을 베어다 경복궁을 지었다 해서 황장산봉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니 이 일대 황장목은 아주 우수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장엄한 소나무를 중간중간 볼 수 있으나 곧고 바르게 잘 자란 소나무는 흔하지 않은편이다.
드디어 통제구간을 벗어났다. 생각보다 30분 빨리 도착했다.
이제부터 쿠션 좋은 육산인 모양이다.
암릉이 재미는 있다고 하지만 경사가 급해 오르내릴때 힘이 많이든다.
모처럼 완만한 능선길을 걸으니 흥이 절로난다.
작은 차갓재를 지나면 또 차갓재가 있다.
차갓재라는 이름도 재를 거듭 넘는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실재 작은차갓재와 차갓재가 두개 있으니 이러나 저러나 거듭넘어야 할 차갓재다.
백두대간 중간석이라고는 하나 남한땅에 백두대간 중간이니 큰 의미는 없는셈이다.
남한땅 중간 표지석이 두개나 되는데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화강암에 중간표지석이라고 세워진 이 비석이 있고 또 검은 대리석으로 세워진 표지석이 있는데 검은 대리석으로 세워진 표지석에는 367.325km로 진부령에서 천왕봉의 중간지점이라 쓰여져 있다.
백두대간에 시발지가 어째서 진부겠는가...... 그러니 지금 이 두 개의 백두대간 중간 표지석은 통일과 함께 사라져야 마땅할 것이다.
대미산 못미처 삼거리에 도착했다. 오래된 이정표지목은 뽑혀서 나무에 기대 서 있는가 하면 바닥에 떨어져 방향을 지시해주는 안내 이정표며 제천시가 새롭게 새워놓은 표지목이 각자 생긴대로 각자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 있다.
산불조심 기간 입산 통제구간이긴 하나 관리가 너무 소홀하다. 이곳 삼거리는 황장산과 대미산을 잇는 주능과 대미산과 문수봉을 잇는 주능이 만나는 지점이라 아차하면 대간길을 벗어나 문수봉을 향해 갈 수도 있다.
어정쩡한 삼거리에서 부터 대미산 0.8km남았다고 하니 이정표와 함께 널부러져 눕고싶다. 맥이 풀린다.
지도상으로 보면 대미산이 오늘 산행에 중간지점이다.
몸이 피로를 느끼는 것으로 봐 15km이상 걸은 모양이다.
이럴때 보면 몸은 기계 보다 더 정확한 시스템인 것 같다.
모처럼 날은 뜨겁고 아직 잎이 없는 능선길을 걷다 보니 노출된 팔뚝이 장난 아니게 그을었다.
덥고 갈증이 심하지만 아직 수통에 남은 물만 믿고 70m내려가는 수고를 피해 강행하기로 했다.
이름도 눈물샘이라니 70m 내려가 병아리 눈물만큼 물이 나는 샘이라면 어쩌겠는가
목마름을 참으면 왕복 140m를 내려가는 수고는 피할 수 있다는 얇은 생각이 앞선다.
10시 50분 대미산에 도착했다.
벌써 산행이 시작된지 7시간 50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시간만큼 더가야 한다니 대미산 정상석 앞에 서도 반갑지가 않다.
마골치에 도착하니 눈물이 난다.
23.2km 걸었는데 아직도 4.5km남았으니 어쩌면 좋아.
계속되는 암릉과 오르락 내리락 봉우리와 재를 넘나들었으니 극도로 피곤한 산행이 계속되고 있다.
수통에 물이 떨어졌다. 수분이 있는 간식도 없고 물을 구할 샘도 하늘샘까지는 없으니 극기 체험이 시작된 것이다.
바짝바짝 타드는 갈증은 극기체험을 지나 생사 귀로에 선 심정이다.
한발 한발 옮길 때 마다 천근만근을 옮기는 것 처럼 무겁고 단내가 나도록 타드는 갈증은 나를 미치게 한다.
파랗게 자란 둥글레 잎사귀를 보면서 저건 먹어도 안죽겠지? 어디 한 번 먹어봐? 소나무 가지를 꺾어 송기를 벗겨 먹으면 어떨까?...
진달레 꽃잎을 따서 한주먹씩 넣고 우물거려보지만 갈증엔 별 도움이 안됀다.
대간종주를 하겠다 마음 먹고 태백산 천제단에서 혼자 시산제를 올리며 생존에 근원인 대자연에 어느것 하나 손상시키지 않으며 아끼고 살피어 생명존중을 실천하겠다고 산신께 약속하지 않았던가,,,,,
문득 아프리카 아이들이 시커먼 물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텔레비젼을 통해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어디 물기만 느껴져도 땅을 후벼파 흑탕물도 마다 않고 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그 물을 마셨을까. 오죽하면......
일상 가운데 그렇게 흔하게 접하던 물이 백두대간 능선에 서면 금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돌이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된다. 산소 없이 물 없이는 단 10여분도 생명을 지속 할 수 없는 우리가 아니던가.
마시는 물 보다 똥 씻어 내리는 물을 10배 20배 더 소비하며 살아 온 우리가 아니던가....
지금 같아서는 변기에 담겨진 물이라도 고민 없이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다리가 아파 더이상 걷기 싫어도 시간은 절로 가고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 하겠지만 지금 당장 견딜 수 없는 건 갈증이다.
앞서가는 이선생님 배낭에 얼려온 물이 한모금 정도 남아 있음을 알지만 아직도 두세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내 수통에 물이 아닌데다 최후에 한모금은 만일을 대비해 남겨 두어야 하니 감히 달라고 말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처절한 기분...... 이렇게 미련한 방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가비야~~~ 같이가자~~~
짜증과 갈증으로 숨 넘어갈 지경이다.
인기척도 없이 앞서가는 대간동지를 과연 동지라고 불러야 되나?
의리라고는 밥에 말아 먹고 없는 사람이라며 투덜투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자니 걷기가 싫어졌다.
그냥 주저 앉아 밤이 오던지 말던지 멈추고 싶다.
포암산만 오르면 이제 하산길인데 마지막 그 포암산이 쥐약보다 강하게 죽여준다.
무릎을 바닥에 끌며 엉금엉금 기어보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시간을 계속 지체하며 엉그적거려도 걱정되 콜하는 법이 없으니 앞서간 이선생이야 혼자 잘 가던지 말던지 난 이대로 죽는다 해도 겁날게 없을 지경이다. 배낭을 등에 맨채로 누워 하늘을 보니 나와 상관없이 깨끗한 하늘빛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래서 사람들은 하늘을 동경하고 하늘나라를 꿈꾸나보다.
멀리서 "어이~~~" 하며 부르는 소리가 난다. 못들은 척 콜해도 댓구가 없으면 되돌아 오겠지 하는 생각에 몇차례 부르는 소리를 무시했더니
"포함산까지만 가면 수통에 물 다줄테니 얼른 따라 오쇼" 이런이런.... 눈이 번쩍뜨인다.
화끈거리는 발바닥을 바위면에 탁탁 두들겨가며 저려오는 통증에도 걸을 수 밖에....
뾰족하게 우뚝선 포암산은 바위산으로 생긴것이 꼭 삼베를 짤때 삼을 벗기고 남은 대처럼 우뚝셨다 해서 베바위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골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죽을 것 같이 힘겹게 오르는 지금 난 해골산이라 부르고싶다.
다리를 질질 끌며 오르니 하늘과 맞닿은 포암산 돌무더기와 정상석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 수통에 물을 건내주며 고생했다는 말로 응원까지 해주신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대접이다.
"이제 하산만 하면 산행이 끝이다."
"오늘은 나도 힘든데 꺼벙이 고생이 많다."
"약속대로 남은 물 다 줄테니 마시고 내려가면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봐"
다 귀찮다는 듯 수통만 받아 들고 꿀꺽꿀꺽 마시는데 눈이 마주쳤다.
이선생님도 엄청 갈증이 났는지 부러운 시선으로 처다본다.
속없이 내 생각만 하고는 한번 권하지도 않고 마셔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두 모금 남은 물을 건냈더니 "나는 참을 수 있으니까 다 마셔" 이러는게 아닌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적응이 잘 안된다. 이런 극한 상황에 "나는 참을 수 있으니 너가 다 마셔라 "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사귀어봐야 안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엄청 피곤한 하루였지만 대간동지 이상갑선생님에 새로운 모습이 위로가 된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똑 같은데 이런 상황에 나는 참을 수 있으니 너가 다 마셔..... 이런 자기통제력과 인내는 오랜산행을 통해 얻었을 것이다.
아직 소양이 부족한 난 얌아리같은 근성으로 수통에 물을 다 마셔버렸다.
고마운 마음까지 마셔버린셈이다.
포암산에서 하늘재 가는 길은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너럭바위가 중간중간 있어 바윗길을 잘 보고 가야한다.
새벽부터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걷고 있으니 다리는 긴장이 풀려 후들거린다.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더 오르막길은 없다는 것이다.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맥풀린 다리에 긴장을 조아가며 하늘재를 향한다.
하늘재 못 미쳐 하늘샘이 있다.
그렇게 꿈꾸고 바랬던 물이 아니던가....
연거푸 세 바가지를 드리키고야 바가지를 내려 놓았다.
이제 물도 양것 마셨고 산행도 마무리 지어지는듯 하니 또하나 욕심이 생긴다.
먹는 것도 귀찮고 마시는 것도 귀찮으니 두다리 뻗고 편안히 누웠으면 한 잠 잤으면 원이 없겠다.
옛말에 말타면 종부리고 싶어한다는 말이 이럴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만 마실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바라던 물을 마시고 나니 이젠 자고싶다니 말이다.
드디어 하늘재에 도착했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어 하늘재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더 바라는게 있다면 그건 과욕일뿐이다.
산행은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 원없이 잘 일만 남았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우리는 늘 집에서 벗어나 여행을 꿈꾸지만 막상 여행지에 서면 집을 그리워하게된다. 이런! 모순덩어리.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늘 자유를 꿈꾸며 세상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세상밖에 서면 불평스러웠던 집과 일상이 꼭 나쁘지만은 않음을 깨닫게된다.
여행은 결국 나를 타인의 시각으로 보는 눈을 키워준다.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기위한 것이 아닌 나를 찾아나서는 일인 것이다.
백두대간을 통해 원초적인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오늘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를 만나고 왔다.
한 구간 한 구간 성찰의 기회로 삼아 성숙한 나를 만나게 되길 바라며 5월 8일 산행을 마감한다. (2011.05.08.오후 5시30분)
첫댓글 꺼벙이~!! 정말 정말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