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대야처럼 생겼다고 해서 민대야 또는 옥대야라고도하며 무당이 쓰는 징은 광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징은 쇠와 함께 농악에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흔히 꽹과리는 중요하게 생각하나 징은 소홀하게 평가되기가 쉽다.
농악에서 쇠는 잔 가락을 치고 징은 대개 첫 막에만 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장단 안에서 여러번 치기도 한다. 즉 농악에서 장단을 차(次)또는 채라고 하는데 일차에서 12차까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차라고 하는 것은 징을 치는 횟수를 말하는 것으로 칠채는 징을 일곱번 친다는 것을 가리킨다. 징은 그밖에도 무당 굿과 시나위에서 거의 엎어놓은 상태에서 치기 때문에 소리가 크지 못하나 신비감을 준다.
절에서 울리는 재에서 범패(梵唄)를 부를 때는 그냥 든채 친다. 무당이 쓰는 징은 비교적 작은 것이나 절에서는 큰 것을 사용한다.
징은 민속 음악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종묘 제례악과 대취타(大吹打)에 편성되기도 한다. 종묘 제례악은 정치(政治)를 잘 했다는 의미의 보태평(保太平) 열한곡과 군사적 업적(武功)을 기리는 정대업(정대업) 열한곡이 있는데 징과 꽹과리는 이 정대업의 매 박자 첫 박에 쳤다.
그러나 요즘은 꽹과리는 치지 않고 징만 연주한다. 특히 징은 제례의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에서 연주하는데 종헌에서는 징을 열번 친다. 군대에서 징은 북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북은 전진을, 징은 후퇴나 싸움을 거두는 신호로 사용했다.
또 예전 군악에서도 징은 북과 함께 기본박자를 짚어 갔다. 군악 연주에서 대취타는 처음에 등채라고 하는 군악대장이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라고 외치는데 이 말은 금, 즉 징을 한번 울려 대취타를 시작하라는 명령이다.
징이 한번 꽝 울리고 그 다음 북이 따닥 딱 하고 템포를 제시하면 모든 악기가 음악을 시작한다. 이때 템포는 약< = 40> 정도로 매우 느려 현재의 군악< = 80-90> 보다 배나 느리다.
따라서 여러가지 타악기가 서로 잘 맞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템포에 맞추어 행진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요즈음은 각급 학교를 국악 시범학교로 지정하고 취타대(吹打隊)를 운영하는데 여러가지 국악 행진곡을 연주한다. 징은 지름이 37cm 에서 40cm 정도의 여러가지 징이 사용되는데 절에서 사용하는 것이 제일 크며 무게는 한관(貫)이 넘는 것도 있다.
징채는 나무채에 보통은 천을 감아치는데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예전에는 짚을 감아 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징채가 단단해지는 경향으로 해석된다. 농악이나 사물놀이 중 서서 연주하는 선발의 경우 호남 농악에서는 쇠잽이만 부포를 돌리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나 웃다리나 경상농악에서는 쇠잽이도 다 상모를 쓰고 돌리는 것을 같이 해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쇠가 여럿있을 때 제일 우두머리 쇠를 상쇠라 하여 대장을 삼고 다음을 부쇠, 그 다음을 종쇠라고 부른다. 징이나 꽹과리는 주석(朱錫)과 구리(銅)를 28:72의 비율로 용해시키는데 좋은 소리나는 것을 만들려면 약간의 금과 은을 넣어야 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북쪽지방은 만들기 쉬운 그릇을 많이 만들었고 남쪽 지방에서는 징이나 꽹과리 등 악기류를 만들었다. 이들을 만드는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용해 : 필요한 쇠붙이를 도가니에 넣고 용해시킨다. 2) 형틀에 넣기 : 만들고자 하는 물건과 크기에 따라 크고 작은 둥그런 모양을 부어낸다. 3) 1차 두둠질 : 형틀에서 부어낸 것을 조금 두드려 얇게 하고 가운데가 약 간 들어가게 한다. 4) 2차 두둠질 : 3-4차례 불에 달구면서 두드려 기본 모양을 만든다. 5) 분리작업 : 아홉겹으로 두드려진 것을 하나하나 분리한다. 6) 3차 두둠질 : 보다 완전한 모양을 만들고 두께를 고르게 하고 담금질을 한다. 7) 1차 소리잡이 : 평범한 소리가 나는 것을 바닥을 두드려 악기 소리가 되 도록 한다. 8) 깎음 : 깎을 곳을 깎아 다듬는다. 9) 2차 소리잡이 : 마지막으로 다시 완전한 소리가 나도록 다시 두드려 소리를 잡는다. 10) 손잡이를 다듬는 등 상품으로 마지막 손질을 한다. 여러 과정 중 두둠질과 소리잡이가 가장 중요하다. 두께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하는것과 바닥을 두드려 좋은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은 요술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징이나 쇠는 바닥의 가운데가 가장 두껍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지다가 구부려지는 데서부터 다시 두꺼워져야 한다. 이것은 가운데를 때려 생긴 울림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지다가 구부려지는 데서부터 다시 두꺼운 끝으로 가면서 다시 그 울림을 잡아 주는 역할이 되기 때문이다.
두둠질은 불에 달구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땀을 비오듯 흘려야 하며 재미없는 일이고 수입도 좋지 않아서 점점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그 전승이 위태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 유기장(鍮器匠)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 6월 주물(鑄物)에 안성의 김근수(金根洙, 1916생)를, 방자(方字)에 서울의 이봉주(李鳳周, 1926생)를, 반방자(半方字)에 전남의 윤재덕(尹在德, 1914생)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들 인간 문화재들은 연로(年老)하여 그 대를 물려주는 단계에 와 있다. 이제는 그 다음 세대에 기대를 걸어야 되겠다.
현재 징과 쇠를 잘 만드는 사람은 인간 문화재 이봉주와 함께 일해온 김문익(金文益, 1943,경남 함양)이다. 그는 남갑진과 더불어 1978년부터 운라 등 전통 악기를 재현하여 보급했다. 또한 전문가용 징, 쇠를 제작하는 등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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