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천희란(1984-), in 2017올해의 문제소설(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푸른세상, 2017), pp. 258-288(P. 415)
* 그러고 보니, 내가 천희란의 작품 하나를 읽었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2016),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2017), 문학동네, 2017. pp. 281-314.(P. 352). 작가는 이 단편에서 여성 동성애의 관심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2016)」에서 여자 화자인 형인이 행동이 과장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이 시기의 정치권에서 자식들(이명박, 김무성, 남경필)에 얽힌 이야기가 회자된 것을 생각하면, 네 그렇군요.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표면의 폭발이 아니라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 들뢰즈 표현으로 - 괴물 같은 광기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52PME)
** “스카이 캐슬”이 올해 초 트위터에서 올라 온 적이 있다. 뭐 그런 이야기. 세상에서 강남의 휴학족들이 돌아와 남긴 강남 뒷골목이야기의 첫째 것은 아마도 오렌지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야타, 그다음은 첨단의 예술을 한다면서 울트라족이든가, 그러고 나서 재벌 3세 청치권 자식들(이명박 아들, 김무성사위 등)이 남긴 천상(天上)족이 마약이지 않나.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수진은 경고음 없이 등장하는 울트라족은 아니지만 유학 후유증을 겪는 청소년 정도이다. 이 소설 다음에 드라마《SKY 캐슬》도 나올 수 있겠구나... (52PMF)
# 참조: 《SKY 캐슬》은 2018년 11월 23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방영된 JTBC의 금토드라마이며, 대한민국의 대학교 입시와 사교육, 의료계를 소재로 하였다.
**************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pp. 258-288. 『문예중앙』, 2016. 가을.
- 천희란(1984-) 경기 성남, 2015년『현대문학』신인추천에 단편소설 「창백한 무영의 정원」로 등단.
**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를 권한다. - 이 다음의 짧은 단상을 보시려는 분은 스스로 먼저 한 줄의 글이라도 써 놓고 읽어 보기를 권한다.
** 시골 밭에 풀을 베고 되돌아오는 차편에서 슬슬 읽었다. 그렇게 읽는 것이 내용의 선들 사이에 혼란을 부추겼다. 다음날 활을 쏘고 나서, 어디서부터 혼선이 일어났는지를 조용히 다시 읽어보았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선 감동(감격) 또는 감화, 스피노자 용어의 번역으로 정동(情動)이라도 좋다. 감동은, 정서와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으로, 꼭 좋은 일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삶에는 자신이 겪지 않으면서도 감동과 정동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두뇌와 신체의 관계라기보다 영혼과 신체의 연관이라 여겨진다. 영혼은 두뇌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과 다른 무엇도 포함한다. 즉 영혼은 두뇌의 움직임에서 이성(오성)이라는 측면보다 훨씬 넓은 위상들과 연관이 있다. 한 사람들은 사무실 안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무 연관에서 만나는 사람은 오성이나 이성으로 추리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무 연관이외에도 만나는 사람들이 사무 연관에서 만나는 사람보다 숫자로도 많고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 연관자들은 관계자들과 전혀 다른 위상과 전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만나는 본인은 이성의 착각으로 착오와 오류를 범한다.
지성(오성이든 이성이든)의 사고와는 다른 감동의 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관계자들 자체도 관계로 만났기보다 연관자들이라는 점이다. 같은 심층의 위상에 속하지 않은 경우에 상층에서 범주와 범위는 추론에서만 이해 가능할 뿐이기 때문이다. (52PMD)
* 강남의 권력과 부를 쥔 자들의 외동딸, 수진. 미국 유학 중에 일시 귀국을 한다. 수진의 학업관리를 맡은 형인은 어떤 실수로 수진의 대학 입학시험에 필요한 SAT시험 원서 자체가 누락되었다. 부모는 길길이 날뛰었다. 부모가 수진을 모른다.
자식이 대가리 굵어지고 머리카락 짙게 검어지면, 부모 대의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카락이 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 (52PMD)
* 안개경보의 사이렌이 울린다는 것은 경고를 알리는 소리이며, 민방위 훈련처럼 사이렌의 소리는 경고라고 여긴다. 그런데 의료 등에서는 사이렌이 울린 것은 이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대체하기 위한 위급함의 소리이다. 정유라(1996)가 고등학교와 이화여대에서 벌인 여러 정황들은 많은 이들이 좋은 것이 좋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고 지냈을 때 일어난 일이며, 게다가 경고 사이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있었다면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유라라는 풍문이 있었을 뿐이었으리라. 그러나 사악한 상층이 심층을 건드릴 때는 사이렌이 없다. 졸라의 사례만이 아닐 것이다. - 거칠 대로 거친 야만의 사회에는 욕이라도 통하지만, 덫에 걸린 사회 또는 포로가 된 사회에서는 욕을 하면 영혼이 없다는 메아리가 돌아온다. (52PMC)
*
사이렌이 울린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굉음이다. 형인은 핸들 가까이 몸을 당겨 붙이고 주위를 살핀다.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의미만큼은 삽시간에 분명해진다. 안개 주의 경보. (257)
...수진이 한참 전부터 계획해온 첫째 SAT를 응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회사 내에서도 큰 사고였다. 수진의 부모는 당장에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수진의 아버지는 당장 병원으로 찾아와 무릎을 꿇기를 요구했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진실한 사과의 방법이었다. (262)
덫에 걸린 기분이다. 그들의 친절이 오직 그들에게 유리할 때에만 유효했다는 사실을, 형인은 잊지 않으려 애쓴다. 수진은 그들에 속한다. 수진은 그저 자신의 부모에게 악역을 떠맡기려는 것뿐이다. 그것이 오히려 형인에게 더 큰 모욕을 준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268)
진심이 필요하지만 않다면, 조급도 어렵지 않다. 노예는 노예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수진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수진과 그녀의 부모에겐 형인이 그들의 가정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269)
엄마가 뭘 알아. / 그보다 그들의 관계를 잘 함축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수진이 그들의 모든 것을 장악한다. 그녀의 부모는 두 해만 지나면 아이비리그에서에 진학하게 될 외동딸 앞에서 속수무책일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기를 원할 것이다. 형인의 이름은 그 희생의 목록에 기록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270)
전 부모님이 바라는 걸 충족시켜줄 뿐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누려야 하는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에요. 왠지 언니는 입이 무거운 사람 같아서 하는 소린데요. 이건 선생님한테도 비밀이고요. 물리적인 거리가 있잖아요. 그건 부모님이 더는 저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부모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요. (273)
언니‥…, 정말로 비밀인데요. 저 영화 찍을 거예요. /// 호러 무비, 찍을 거예요. (277)
호러 영화 찍을 거라고요. / 수진의 목소리가 공터를 가로질러 크게 울려 퍼진다. 건물의 안쪽에서 메아리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형인은 수진의 간절한 부름에 응하지 않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멀리서 다가오던 사람이 이제는 형인의 차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가로등 밑으로 사람이 지나간다. (278)
같이 들어갈래요? (280) / ... 그녀는 아무런 의심도 경계도 없이 형인에게 곁을 내 줄 것이다. 치명적이지는 않은 전류가 수진을 쓰러뜨릴 것이다. 그 물건들이 형인의 손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될 줄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진을 묶고, 그녀의 입과 귀를 막고, 형인은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281)
형인은 수진을 난도질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수진의 몫은 그저 어둠 속에 배달려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는 형인의 모습을 목격하는 일 뿐이다. 음산한 허공을 가르며 거칠게 흔들리는 형인을 바라보는 수진이 비명을 지르기를, 통곡하기를, 형인은 기도한다. 그 다음의 수진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이, 형인의 계획이었다.(281) [수진에게 교육 또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 게다가 수진과 수진의 가족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해. 삶의 영역에 공통성이 없는 연관 속에서, 이런 극단적 발상을 갖는 인간이 있다는 말인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고 수진 네는 하루살이 인생들이 그렇지 뭐 하고 지나 갈 것인데.. / ]
경적이 울린다. 바퀴는 서서히 도로 위를 구르기 시작한다. 건물 안에서 요동치는 빛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차에 속도가 붙는다. 수진이 곧 건물 밖에 나오면 그곳에 형인은 없을 것이다. (283)
형인은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수진은 무고하고, 형인은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골탕 먹이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것은 형인이 여전히 냉정하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285)
선의 목소리가 잠겨 있다. / 일단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님의 학력과 관련된 거예요. / 형인은 깊은 숨을 내쉬며, 잠자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간단히만 말하면, 그간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 미국의 출신학교에 학력 조회를 요청했어요. 오늘 그런 졸업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286)
시발년아 넌 내가 만만하게 보였지. 무슨 약점이라도 잡았다고 착각하지마. 너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야. 개같은 년. (287) [수진의 전화겠지]
룸미러를 기울이자 거울 속에 형인의 얼굴이 비친다. 거울을 본다. 그리고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는다. 그녀는 기다린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누구의 것인지, 결코 알 수 없게 될 때까지. (288, 마지막 긴 문단에서 마지막 세줄) (52PMC)
(4:01, 52PMF)
설1984천희란2016사이렌.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