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003년 12월경에 김해경찰서에서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다. 교장의 아들이 나를 자기 아버지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법률전문가로서 명예훼손죄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글을 올리면서도 가해자인 교장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고 그 목적 또한 공익을 위한 것이므로 무혐의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며 경찰 조사에 담담히 임하였다.
그런데 다음 해 3월 창원지방검찰청으로부터 벌금 30만원을 납부하라는 약식명령 통지서가 날아왔다. 경찰과 검찰은 고소인의 주장을 인용하여 내가 “해당 교장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마치 그가 폭력적인 사람인 것처럼, 아직도 수사기관에서 폭행사건을 수사 중에 있어 사실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허위의 사실을 인터넷에 게재하였다”고 하여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61조 제2항을 적용하여 구약식 처분을 한 것이다.
나는 즉각 반발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 이 재판은 창원지방법원에서 2004년 6월 4일에 첫 공판이 시작되어 한차례 더 변론을 하고 2005년 1월 21일에 판결이 선고되었다. 재판이 길어진 것은 내가 올린 글이 허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피해 행정실장이 가해 교장을 폭행죄로 고소한 사건의 재판 결과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 재판 결과 내가 올린 글의 내용이 허위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나는 내 재판에서 이렇게 최후 변론하였다
최후 변론(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까지 명예를 최고의 생활신조로 살아온 제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피고인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참담함을 느끼며, 이유야 어떻든 매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재판장님을 비롯한 법원 및 검찰 관계자님께 수고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 사건에서 벌금 3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은 결코 돈 30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만약 이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한다면 정의가 불의 앞에 무릎을 꿇는 비참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제가 피해자 000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000이 마치 폭력적인 사람인 것처럼 허위의 사실을 인터넷에 게재하여 동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000의 폭력행위는 틀림없는 사실이며 제가 이러한 폭행사실에 대해 진상규명과 가해자의 처벌을 주장한 것은 사회정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지극히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7월1일 000이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00 00초등학교의 교장실에서 부하 여직원 △△△을 폭행한 사건이 현재 00지방법원00지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에 있어 아직 사실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그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사건당시의 정황증거와 일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000의 폭행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건직후 사건현장인 교장실에서 행정실장 △△△이 0000소방서 소속 119구급대에 의해 00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는 사실, 당시 교장실에는 건장한 남자인 교장 000과 연약한 여성인 행정실장 △△△ 등 두 사람밖에 없었다는 사실, 사건 이후 그 합의과정에서 000이 △△△에게 일정한 합의금을 제시하며 폭력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자신이 부담하기로 하는 각서를 작성해 주었다는 사실, 000의 처가 병원에 입원중인 △△△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며 용서를 구했다는 사실 등은 00지방검찰청 00지청의 수사결과 확인된 것입니다.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진실한 사실’이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한 것이라고 대법원은 판시한바 있습니다(2002.9.24.선고 2002도3570판결). 그러므로 설사 제가 000의 폭행행위에 대해 인터넷에 올린 글의 내용이 사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다소 과장된 면이 있더라도 폭행의 사실은 틀림없는 것이므로 그것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의 목적은 부인되며, 공공의 이익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2188 판결,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도3744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판시한바 있습니다.
위 폭행사건에서 가해자 000이 다른 사람이 아닌 이 나라 2세 교육을 책임진 교육자라는 사실, 사건이 회식이나 술자리가 아닌 근무시간 중 교육의 도장인 일선학교 현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하여 대항하기 어려운 부하직원이며 연약한 여성이라는 사실, 000은 폭행사건직후 오히려 자신이 폭행을 당했다고 폭행피해자를 무고하는 적반하장의 파렴치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 등은 사회 일반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한 요소입니다.
특히 제가 전국 교육행정직공무원들의 자생 연구단체인 한국청백리교육행정연구회의 임원으로서 교육현장에서 인권이 유린된 이러한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 제가 관련 글을 인터넷의 아무 곳에나 마구 올린 것이 아니라 제 개인 홈페이지와 교육행정직공무원들을 회원으로 하는 홈페이지인 교육행정전문사이트 게시판에 한정하여 게재한 점, 그리고 글을 올린 목적이 유사사건의 재발방지와 교육계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저는 000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감정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저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만약 이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앞으로 누가 힘없이 억울함을 당한 이웃과 동료의 불행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도와줄 것입니까? 또한 이 재판이 불의한자가 오히려 법을 악용하여 정의로운 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결과가 된다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단으로 법은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확인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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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변론을 마치고 나는 무죄를 확신했으나 판사는 단순 명예훼손죄로 죄명을 변경하여 선고유예라는 절충적인 판결을 하였다. 선고유예란 징역 1년 미만의 비교적 가벼운 유죄가 인정된 피고에게 정상을 참작하여 형의 선고를 미루고,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별일 없이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무죄판결과 같은 효과가 있다. 그 효과는 무죄판결과 같지만 일단은 유죄로 인정되었다는 점이 기분이 나빠서 항소를 할까도 생각했으나 재판의 계속은 오히려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항소를 포기하였다.
공무원이 범죄혐의로 기소가 되면 경찰이나 검찰에서 그 사실을 소속기관에 통보하게 되어있는데 이로 인해 나는 김해교육청 감사담당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어처구니 없게도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란 이름으로 경고처분을 받았다. 사회 정의를 위해 애 쓴 일에 대해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벌을 준 것이 야속하기도 하고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불려 다닌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유로 고소를 당하여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벌금형이 확정되어 형이 집행되었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도 있음을 감안하면 내가 겪은 것은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고소한 사람은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에 대한 효심에서 그리했을 것이다. 재판과정을 통하여 형사소송에 대해 살아있는 공부를 한 것에 감사한다.
첫댓글 아..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라울뿐입니다. 그것도 학생을 교육한다는 학교의 수장인 학교장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지.. 동료직원을 위해서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사건은 10년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전엔 특히 초등 교장중에는 왕처럼 군림하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지금은 그런 정신나간 사람이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7 00:3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7 00:43
평사리 여인님은 대단한 학구파이시네요.
법의 이념은 '정의'이지만 법현실은 정의가 아니라 강자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라는 느낌이 들죠.
법무담당으로 있으면서 느낀건대 법정에선 결국 힘있는 놈이 이긴다는 현실을 목도하고 한숨을 쉰적이 있습니다.
애써서 공부하신 것 사회를 좀 더 정의롭게 하는 일에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