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귀촌인
손대원
문학기행이 끝나고 식사자리에서 예술가적인 아취가 물씬 풍기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회원분이 포천에 어떤 연고가 있어서 왔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돌아올 때 차안에서 자기 소개를 너무 짧게 하여 궁금 했던 모양이다. “저는 금년 초 포천으로 이사를 왔고요, 시립중앙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포천문예대학 광고지를 보고 왔습니다.”라 하고는 마이크를 다른 분에게 넘겼다. “벌써 끝난거야”라는 뒷말이 들렸지만 괘념치 않았다.
문학기행에 참여한 문예대학 수강생 대부분은 기존 회원분들로서 자기연찬을 위해 해마다 참가 하는 것 같고, 신입 수강생은 몇 명 되지 않은 것 같다. 매년 문예대학에서 자기 연찬을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존경스럽다. 쉬원 것 같지만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겸허히 낮추고 꾸준히 문학을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처갓집이 포천시 신북면이다. 40년 가까이 들락 거렸다. 낮선 곳이 아니다. 시내 지리도 대충 안다. 경기도 광주의 문협에서 포천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몇 년동안 회원으로 활동 했다. 그러니 문협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엇비슷할 것이다. 내가 궁금한게 없다보니 남들도 궁금한게 없나 보다 했다. 짧은 자기 소개에 대한 변명이다.
작년 늦가을 장인이 별세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구순 노모를 봉양해야겠다며 아내가 친정으로 막무가내로 간다고 한다. 아내 없이는 밥, 반찬 , 빨래등 가사에 자신이 없고 겉보리 서말의 여유도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딸려 와서 아니 끌려와서 처가살이를 한다. 장모의 건강상태로 볼 때 짧으면 3년 길면 5년 정도 모실 수 있다고 믿었는데 뜻밖에 이사온지 2개월만에 운명을 했다. 두분이 없는 빈집에서 100일 동안 상식을 올리다 그냥 눌러 앉았다. 아내는 텃밭을 가꾸고 나는 마당과 집주변 환경을 관리 한다.
장인은 중년까지 주변 환경을 잘 가꾸었다. 건강을 잃고 병원 입퇴원을 수시로 하게 되면서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엉망이 되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을 가지치기를 하고 필요 없는 나무들은 솎아베기를 하며 지저분하게 얽힌 칡 등나무 찔레 등을 걷어 내니 많이 깔끔해졌다. 빗물에 쓸려 쌓인 토사를 유물 발굴하듯 30cm이상 호미로 긁어내고 삼태기로 퍼내니 정원석과 돌계단이 살아났다. 이웃이 와서 새로 쌓았냐고 한다. 원래 있던 것을 다시 살려낸 것이라 하니 놀란다. 내친 김에 주변의 큰 돌을 모아 화단을 만들고 주변 산과 들에서 야생화도 캐오고 꽃모종도 사다 심었다. 그전에는 여차로 보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꽃 좋아하면 늙은 거라며 아내가 놀린다. 그래도 재미 있다. 이런 작은 재미가 쌓여 기쁨이 되고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뜻해진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집 주변이 대충 정리되자 생전에 장모가 집 뒷산에 산책로 만들어 달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 하였던 것이 생각이 났다. 당신의 불편한 거동을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싫었나 보다.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곁가지를 쳐내고 찔레등 걸리적 거리는 잡목을 없애라. 뱀 걱정하지 않게 길을 넓게 하라. 돌 부리에 채여 넘어지지 않도록 평탄하게 해 달라. 오래 못 걸으니 쉬었다 가겠금 중간 중간에 의자를 놓아 달라고 주문을 한다. 봄에 날이 풀리면 꼭 해드린다고 했는데 봄을 함께 하지 못하엿다. 살아서는 거닐지 못했지만 혼이라도 편하게 거닐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다. 장모와 한 딱 한번뿐인 약속이었으니까. 장모와 약속한 산책로는 한창 공사중이다. 나를 이곳에 머물도록 터전을 만들어 준 장모에 대한 현재의 여건에서 깜냥것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 보답이다.
팔과 다리에는 가시에 긁히고 찔린 자국과 흉터 투성이다. 이것을 초보 일꾼이 시골에 몇 달 살면서 얻은 훈장 이라며 어떤 연고가 있어 왔냐고 묻던 분에게 보여 주었다. “귀촌은 우리 또래의 로망이지 않습니까? 로망을 성취하였네요. Rustic life(시골에서 보내는 소박한 삶)를 축하합니다.”라며 반가워 한다. 아마도 그분은 농촌에서 삶 자체가 문학이라는 나와 공감하는 바가 많다고 여겨지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귀촌인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 온 귀촌을 당해버린 피(被)귀촌인이다.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자동사로 읽든 타동사로 읽든 Rusticate로 같다. 시골 생활의 소박한 삶을 좋아 하고 적응해 나가려고 노력하며 만족해 하는 면에서 볼 때 결과는 같은 것이다.
반나절의 애환
손대원
여행을 갈 때의 들뜸은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설레게 한다고 한다. 혹여 여행중 좋은 추억거리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꽝이 아니기를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한다. 제이십기 포천 문예대학 문학 기행도 작은 희망을 갖는다. 너무 일찍 일어나 새벽잠을 설친 까닭에 차에 타자마자 눈을 감고 부족한 잠이나 채우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사회자인 채현기 사무국장은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로 고문으로 하는 바람에 잠을 포기하고 하는 수없이 분위기에 함께 어울린다.
세 번째 게임은 박인한 문학관 주차장에 회장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맞추는 것이다. 상금이 가장 크다고 한다. 다들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촉을 발휘하면서 종이 쪽지에 몇 시 몇 분 몇 초까지 정확히 기재한 후 참가비 천원과 함께 제출한다. 나는 건성으로 0 또는 5로 끝나는 숫자로 10시 50분 00초라고 적어낸다. 문학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여기 저기서 에이! 에이! 짧은 탄식 소리가 들려온다. 사회자가 짓궂게도 분단위로 끊어서 탈락자 명단을 부르며 확인 사살를 한다. 무슨 진검승부라도 되는지 생존자가 줄어들면서 은근히 긴장이 된다. 이제는 재미로 하는 장난이 아니다. 상금이 보인다. 아슬아슬하다 주차장 근처 골목길에서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대형 버스가 한 번에 꺽지 못해 머뭇 머뭇거릴 때 안절부절하면서 손에 땀이 난다. "이러다 주차장 도착이 많이 늦는 건 아니야, 그러면 물 건너 가는데" 입속말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때 뒤에서 자기가 정확히 맞았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맥이 풀린다. 아쉬운 마음으로 손목 시계를 보니 내가 정확히 맞은 것 같다. 하지만 내 시계는 싸구려라 아무래도 틀렸겠지 하며 에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차 후 혹시나 싶어 사회자에게 다가가 내가 정확히 맞췄지요. 하니 발표 때까지 말을 못한다고 한다. "이런 거 하나 명확히 말 못하는 것을 보니 무슨 야로가 있나 보군. 그럼 그렇지 문협 회원도 아닌 문예대학 수강생에게 상을 주겠어" 라며 속으로 뇌까린다. 점심 식사 후 김유정 문학촌으로 가는 중에 사회자가 당첨자 발표를 한다고 나선다. 시큰둥한 마음으로 창밖만 바라본다. 나를 호명하는 소리에 어! 하고 놀라 고개를 돌려 사회자를 보니 축하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 나오라 한다.
내가 맞췄다고 외친 분은 10시 49분 00초로 기재했다. 그런데 회장이 주차장에 첫발을 내딛은 시각은 10시49분 32초이다. 나와의 차이는 28초 이고, 그분은 32초이다. 내가 4초 차이로 승리하였다. 이런 짜릿한 승부는 처음 느껴본다. 버스에 문이 열렸을 때. 뒤에서 어떤 회원분이 갑자기 뛰어나와 회장에게 장난으로 실랑이를 버렸다 많은 이에게 웃음을 선물하였다. 그사이 몇 초가 흘렀다 그분은 재미를 주려고 한 짓이지 승부에 영향을 주려고 한 행위는 아니었다. 49분과 50분 사이에서 줄타고 있는 줄 몰랐다. 하여튼 장난은 누구에게는 아쉬움을 누구에게는 기쁨을 선사하였다. 승부는 사소한 것에서 차이가 난다. 아주 작은 일 소소한 것이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며 지냈다 나에게는 하나의 장난일 뿐일지라도 남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도움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의미없는 숫자로 건성으로 써낸 것이 정확히 맞다니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야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맞췄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보안을 지킨 것이다. 당첨 소감으로 아침에 작두타고 왔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한마디로 신이 지피었다는 이야기다. 신이 내려와 살짝 일러 주었다는 건데 집에 작두가 없으니 말의 알리바이를 맞추기 위해 철물점에 가 보아야겠다.
기쁨을 되도록 오래 간직하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봉투를 열어보지 않았다. 서재에서 홀로 숨죽이며 개봉해 보니 상품권 삼만원, 현찰 이만육천원이 들어있다. 백수인 나에게는 매우 큰 선물이다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심심풀이 재미로 장난삼아 시작하여, 애써 기대를 크게 하고서 희망에 부풀고, 의심스런 말 한마디에 실망을 하여 좌절하였다가 당첨되었다고 박수갈채를 받고 기뻐서 환호를 외치고 흥분하였다. 짧은 몇 시간에 크게 성공한 이들의 특징인 순조롭게 시작 - 근면과 성실로 성공 - 불의의 실패와 좌절 - 극복과 재성공이라는 N자형 성공 스토리가 쓰여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어제 문학 기행 가서 로또 맞았다고 자랑하니, 아내는 마침 쌀이 떨어졌다며 상품권 내놓으라고 한다. 머뭇 거리는 사이. 밥 먹기 싫으냐며 압박을 가한다.약간의 식탐이 있고 먹는 것에 심약한 나에게 적실하게 파고든 수법이다. 점심에는 외식으로 쌀국수를 먹자고 한다. 상품권 받고 미안해서 사주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선다. 식사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상금으로 받은 현찰로 계산해 하라고 한다. 참으로 알뜰하게 뜯어간다. 공돈 생겼다고 자랑하였다가. 모두 강탈 당하였다. 이런 슬픔이 어디 있으랴.
반나절 사이에 어제는 기쁨이, 오늘은 슬픔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리. 짧은 하루 사이에 애환이 왔다 갔다 한다. 기쁨의 기승전결도, 슬픔의 기승전결도 반나절이다. 이번 문학 기행은 꽝은 아니었다. 체험으로 익힌 소중한 자산이 생겼다. 禍從口生(화종구생) , "화"라고 하는 것은 입으로 부터 나온다. 자랑질하다 책 한 권 못사 보고 손해만 당했다. 오늘의 복이 내일 화의 뿌리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오늘의 화가 내일 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좋은 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