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그 때다. 밖에서 하인의 헛기침 소리가 나더니 하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리,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방안의 선남선녀들은 말을 중단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영이 여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으로 나서니 한 건장한 젊은이가 옷과 머리에 어둠을 흠뻑 뒤집어쓴 채, 오른 손에 선물 꾸러미를 하나 들고 서 있었다.
“아니, 이게 뉘시오? 해고 형이 아니시오?”
“조영 형, 오랜 만이오. 같이 폐하를 모시면서도 만날 때가 거의 없었구려.”
이해고는 옷과 머리에 묻은 어둠을 털면서 말을 이었다.
“가을정취는 눈처럼 펑펑 내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내 성격 탓에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조영 형이 문득 생각나, 이렇게 밤길을 헤치고 온 것이오.”
우리 동이인들은 밤에 모실(마실) 다니길 좋아했다. 화하인들은 동이인들의 이런 관습이 특이하다고 생각해, 이 점을 특별히 그들의 책에 기록해놓았다<후한서/동이열전>, <삼국지/위서/오환선비동이전>.
“어서 들어오시오. 마침, 잘 오셨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아주 흥미진진한 얘기를 나누고 있소.”
“아니, 우리라니, 누가 또 오셨소?”
“들어와 보시면 아오.”
“아니오, 손님이 오셨다면, 돌아가 다음 기회에 오겠소.”
“해고 형! 우리 사이에 무슨 격식이 필요하오? 오히려 해고 형이 오셔서 자리가 더욱 빛나게 되었소.”
조영은 이해고의 소매를 붙잡고 끌고 들어갔다. 조영은 방문 밖에서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해고는 방안으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랐다. 모두 다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연모해 마지않는 이루하가 맨 먼저 그의 눈에 띄었다. 조영은 극시아에게 이해고를 소개했다.
“이 분은 송막도독 이진영 어르신의 가신장家臣長으로서, 장창長槍 하나로 거란 팔부八部와 중원 무림을 뒤흔든 분입니다. 중원의 무림동도武林同道들은 그에게 신창神槍이라는 별명 외에, 그 놀라운 기마술이 마치 까마귀 떼 속을 헤치고 날아가는 매와 같다고 해서 송막비응松漠飛鷹이란 별명까지 붙여주었소.”
조영은 이해고에 대한 강호 무림계의 소문과 그의 명망을 여인들에게 간략히 들려주며 덧붙였다.
“제가 이분을 처음 만났을 때 어깨에 무서운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었소. 매를 다루는 솜씨가 천하일품입니다.”
“조영 형이 이 아우를 그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조영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소개말을 덧붙였다.
“지금 이분은 저와 함께 태후마마를 곁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조영의 소개가 끝나자 이해고는 극시아에게 머리를 숙여 절했다.
“이해고라 합니다.”
이어서 조영은 극시아를 이해고에게 소개했다.
“이 분은, 황상 폐하의 어처 마마이십니다.”
이해고는 깜짝 놀라 일어서서 다시 인사했다.
“이 장군님, 편하게 앉으세요. 먼발치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해고 형, 우리가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괜찮습니까?”
“저도 듣고 싶습니다. 화롯불은 달아오르고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참 분위기가 그만입니다.”
“자,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조영이 물었다.
“‘삼삼오륙칠칠’을 상호 대칭으로 곱해보라고요.”
여미아의 말에 극시아가 입을 열어 구구셈을 했다.
“삼칠은 이십일, 삼칠은 이십일, 오륙은 삼십.”
“곱하기에서 나온 세 수를 모두 합산해보세요.”
여미아의 말에 극시아가 셈을 이어갔다.
“이십일 더하기 이십일 더하기 삼십은 칠십이七十二네요.”
“칠십이! 그것을 시간이라고 상정한다면, 몇 일이죠?”
“칠십이 시간은 만 사흘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바로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어머나, 그래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 얘기는 종종 들었어요.”
“그게 아니라, 그 분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이해고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라 두 눈을 멀뚱거렸다. 조영이 이해고를 위해 지금까지의 얘기를 간략히 설명해 준 다음, 여미아에게 물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셨다면, 그 분은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여미아는 좌중을 바라보며 다시 숙제를 내었다.
“이번에는 ‘삼삼오륙칠칠’ 여섯 숫자를 모두 합산해보세요.”
“합해서 삼십일이군요.”
“신의 완전수인 앞의 삼삼을 서로 곱하면?”
“구.”
“삼십일 더하기 구는?”
“사십.”
“바로 그겁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그분의 신분 전체와 삶, 죽음, 부활까지 상징하는 여섯 수를 모두 합산하면 삼십일인데, 그 분은 완전한 하나님(삼삼)이시므로 다시 하늘의 하나님 자리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삼십일에, 삼삼은 구를 더해야 합니다. 그러면 딱 사십입니다.”
“······?”
“그분은 부활 후 사십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수천 명의 군중이 목격하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숫자가,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의 그분의 신분, 삼십삼 년의 생애, 십자가에서의 죽음, 사흘만의 부활, 그리고 사십일만의 승천까지 담고 있다니.”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니, 그럼 또 다른 게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 숫자의 비밀에 대해 아직 절반 밖에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방안의 모든 사람이 두 눈을 크게 치켜뜨고 여미아의 입을 주목했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모란꽃 봉오리 같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기 짝이 없는 여미아의 입술이 방긋 열렸다.
그녀의 말에는 사람의 혼을 빼앗는 신비로운 힘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그녀의 언변에 빨려 들어갔다.
“저도 대덕님께 배워서 그걸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거지, 뭘 알아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미아는 겸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분의 생애가 삼십삼 년이라고 했습니다. 신비육수神秘六數 중 맨 앞의 ‘삼삼’은 그 분의 삶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분의 가르침을 그 분의 제자들이 한데 모아서 정리하고 또 편지 형식의 글로 남겼습니다.”
“그게 경교의 경전에 들어있지 않습니까?”
조영이 물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경교의 경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메시아가 이 땅에 강탄하시기 전에 기록된 경전과 메시아가 이 땅에 강림하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이 쓴 기록이 그것입니다.”
여미아가 특별히 조영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그 분의 제자들이 쓴 기록, 그러니까 그분의 생애과 교훈을 담고 있는 말씀은 모두 몇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시나요?”
“물론, 우리가 알 턱이 없죠.”
“그것은 희랍어라는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문자는 우리의 진서眞書(漢文)와 다릅니다.”
여미아는 한자를 “우리의 진서”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여미아는 말갈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던 바, 말갈은 동이족의 일맥이고, 한자의 원형은, 동이족이 만든 글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장관 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인 임어당林語堂(1895-1976) 선생을 만났을 때 여담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죄송하지만 그의 무지를 드러낸 말이었다.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자 임어당은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
이 에피소드는 한중韓中언어학의 대가 진태하陳泰夏 교수(인제대)가 2011년 경 어느 인터뷰에서 소개한 일화다.
진태하 교수에 의하면, “한자漢子”라는 명칭은 중국 한족이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중국 한나라 때에도 “한자”라는 명칭은 없었다.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은 한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자는 곧 한족인의 문자라는 말인데, 몽고문자와 대칭해서 말한 것이다.”
이 칭호가 생긴 것은 원나라 때다. 그것은, “몽고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몽고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newdaily.co.kr).
지금까지 알려진 한자의 최고最古 원형은 전자篆字인데, 단군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전역과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전자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은 동이족 창힐로 알려져 있다.
동이족 은나라의 갑골문도 일종의 전자다.
서기전 9세기의 단군조선사람 왕문은 단군조선과 중국에서 널리 쓰이던 이 전서篆書를 다듬어 새로운 서체를 개발했는데, 이를 예서隸書라 한다. 그 후 중국에서는 진秦나라 사람 정막이 왕문의 예서를 배워 팔분체를 만들고 이것을 채옹이 좀 더 세련화했으며, 왕문의 후손인 후한 사람 왕차중은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해서를 개발하니,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한자 정자正字다.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진서眞書” 즉 “참 글”이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사대주의에서 나온 표현이 아니라, 태고 조상들의 글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한민족의 글이라는 뜻에서 “한문韓文”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백번 지당하다.
여미아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대덕님이 가지고 계신 책에서 희랍어를 구경했습니다. 그 문자는 한 글자가 한 낱말을 이룰 수 있는 우리 진서眞書(한자)와 달리, 여러 개의 낱개 글자가 모여 하나의 낱말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평생 삼십삼三三 세 구세주의 삶과 죽음, 가르침을 정리한 경전(신약전서)은, 모두 오천육백칠십칠五六七七 개의 상이한 희랍어 낱말로 씌어 있다는 겁니다.”
“오, 그렇습니까? 삼삼오륙칠칠에 그런 속뜻도 있었군요.”
조영 등은 놀라서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다 설명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미아가 웃으며 좌중에 계속해서 파문을 던지고 있었다. 조영과 이해고, 이루하, 극시아 등은 다시 들어온 다과를 입안에 우물거리며, 음식 맛을 거의 잊은 채 여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경전에서 구세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별명 가운데 하나가, ‘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여미아의 설명은 이어졌다.
“로고스는 희랍어로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 분에게서 또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겠죠. 그 분이 하신 말씀은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이라 할 수 있겠죠?”
“그 분에게서 나오는 것이 둘인데, 하나는 로고스 즉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신격神格이신 현풍玄風(성령)입니다.”
“예? 참으로 난해하군요.”
조영은 머리가 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서 로고스와 현풍이 나온다는 말이군요.”
조영이 간단히 정리했다.
“예, 그런데 현풍(성령)은 희랍어로 ‘프뉴마’라 합니다.”
여미아의 말에 따르면,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과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온 현풍을 통해, 오늘날도 그를 믿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머물러 사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서 나오는 로고스(말씀)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를 구세주로 모신 사람들의 심령 속에 살고 계시는 현풍 즉 프뉴마의 힘을 빌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간단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려면, 그의 로고스(말씀)와 프뉴마(현풍=성령), 이 둘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로고스
프뉴마
여미아는 이 두 단어 “로고스”와 “프뉴마”를 힘주어 강조했다.
“제가 로고스 말씀과 프뉴마 현풍에 주의하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단순히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신비육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각도로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색불루 임금의 ‘별유진보’가 무엇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아니, 별유진보가 삼삼오륙칠칠 가운데 있다면, 그 별유진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까?”
“그건 맞습니다. 별유진보는 바로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별유진보의 정체를 그렇게 명백하게 알 수 있는데 왜 모른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외람되지만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가 ‘별유진보’ 즉 참 보화이지요? 예수님이 참 보화임을 누가 인정해 줍니까?”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가 들은 바에 의해 말씀드립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어 우리가 죄 용서를 받고 천궁,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억만금의 보석이나 황제의 지위, 명예, 나라를 얻는 것 등등보다 더 귀한 보화로 인정하고 계십니까?”
조영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죠?”
여미아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주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공자님이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얻는다는 말을 제아무리 많이 들어도,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르므로 그걸 일소一笑에 부치고 결단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방안의 선남선녀들은 바야흐로 사위가 짙은 어둠에 싸이고 또한 어둠의 사자들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타오르는 화롯불과 함께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영은 여미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예수님을 어느 정도는 아는데, 잘 모르다니, 무슨 말인가? 지나친 말이 아닌가?’
여미아는 조영의 심중을 꿰뚫고 있는 듯 말했다.
“아마도 공자님은 제 말에 동의하지 않으실 거예요. 하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예수님께 글자 그대로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정신이 돌아버린 광신자가 되는 겁니까?”
“호호호, 호호호호호!”
갑자기 여미아가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좌중은 깜짝 놀랐다. 이런 웃음은 조영이 여미아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조영은 여미아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적이 놀랐다. 방안의 다른 사람들도 아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미아는 참으로 신비로운 여인이었다. 지금까지 여미아를 잘 안다고 했으나, 매번 자신의 상상을 뒤엎는 예측불가의 기이한 면모가 여미아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엔 천상 선녀 같았고, 나중에 무예 고수였으며, 또 극시아 앞에선 엄한 부친이었다.
‘내가 곁에 있는 여미아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어찌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조영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여미아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한참이나 웃더니 좌중에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비천한 하녀로서 잠시 제 신분을 망각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지위와 명예가 있는 귀족이었지만, 한낱 노예인 여미아의 도도한 언변과 고상한 기품, 숭고한 아름다움, 신비로운 매혹, 성스런 위엄 앞에서 주눅이 들어, 감히 그녀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정신이 돌아버린 광신자 같습니까?”
여미아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더니 웃음을 그치고 진지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오히려 아가씨는 다른 사람보다 무척 종명하고 예의바르며, 더구나 성스런 기품, 고고한 언동, 천하절색이라는 말로도 다 묘사하기 부족한 극히 매혹적인 미모, 사람의 맘을 한없이 잡아끌고, 심금을 울리는 향기와 언변 등을 표출하는 바, 이는 도저히 범인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입니다.”
조영은 여미아를 진심으로 칭찬했는데, 이루하와 극시아를 의식하고 발설 후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녀들 앞에서 여미아를 지나치게 높인 것이다.
“공자님, 그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오히려 저의 아씨와 여기 어처마마님께 더 어울리는 표현들입니다.”
여미아는 이해고 앞에 극시아와 자신의 자매 관계가 밝혀지는 것을 꺼려했는지, 극시아를 “어처마마”라 깍듯이 부르고 있었다.
여미아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공손히 엎드려 모두에게 큰절을 했다. 그리고 조영에게 다시 요청했다.
“공자님, 그 말씀을 거두어주시지 않으면 제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여미아는 얼굴을 방바닥에 대고 꿇어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계속 앉아 있었다.
“취소, 아, 취소합니다.”
그 때 여미아가 배시시 웃으며 일어났는데, 그 웃음이 어찌나 매혹적인지 조영과 이해고는 물론, 그녀의 여주인 이루하, 심지어 그녀의 여동생 극시아가까지 그 웃음에 도취될 것 같았다. 좌중의 모든 사람은 여미아의 언동이 마치 용수철과 같아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완전히 매혹되어 압도당하며 그녀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지.”
조영이 다시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공자님은 예수님께 미쳤습니까?”
여미아가 그 아름다운 눈망울로 조영을 응시하며 물었다.
“아닙니다.”
조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어느 정도 매혹당하고 반하고 미치고,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아가씨가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입니까?”
“글쎄요. 예수님은 알면 알수록 더욱 모르게 되는, 참으로 기이하고 묘하고 신비하고 놀라운 분입니다. 그야말로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랍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어구가, 인간 세상의 무수히 많은 언어들 중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놀라운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그분을 가리켜 ‘기묘奇妙’라고 칭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분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까?”
“그 질문 참으로 잘 하셨습니다.”
여미아는 생각을 가다듬어 말을 이었다.
“방금 전 제가 말씀 드린 로고스와 프뉴마를 통해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
일동이 멍한 표정이다.
“벌써 잊으셨군요. 로고스는 예수님의 말씀, 프뉴마(현풍, 성령)는 예수님의 영靈입니다.”
“달리 그 분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까?”
“예수님의 로고스는 바로, 그분의 가르침을 정리한 경전이므로 그 경전을 읽고 배우고 연구하면 그분을 알 수 있지만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현풍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현풍이 그분을 모신 자들의 심령 속에 들어와 살고 계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영이신 그 현풍을 통해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고 사귀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교제하고 사귄다는 것은, 기도를 드린다는 뜻입니까?”
“예, 맞습니다. 일단 그 분을 나의 구세주와 나의 임금님으로 마음에 모시고 그 분께 귀의하신 후, 그 다음부터 그분의 가르침인 로고스, 경전의 말씀을 명상하거나 그 분께 기도를 올리며 그 분 자신을 알게 해 달라고, 계시해 달라고, 조명을 비추어 달라고 눈물로 탄원해야 합니다.”
일동이 매우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여미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 때 내 안에 계신 그 분의 영 현풍, 프뉴마의 빛을 통해 그분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 분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분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별유진보’임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그 분께 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좀 어려운 말씀이군요. 저는 이미 오래 전에 그 분을 나의 구세주와 임금으로 모셨습니다만, 제가 그분의 로고스를 잘 알지 못하고, 또 그 분과 교제를 많이 하지 못했으므로 그 분을 잘 모르는 거로군요.”
“바르게 지적하셨습니다.”
여미아는 깜깜한 밖을 흘낏 내다본 후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말을 이어갔다.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신비육수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삶, 죽음, 부활, 승천, 그분의 말씀이 숨어 있고, 반면 그 분을 알 수 있는 두 방편, 로고스와 프뉴마에는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신비육수가 숨어있습니다.”
“······?”
(다음 장으로 계속)
********************
샬롬.
2024. 3. 8. 이른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