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오르도스를 중심으로 하는 내몽고 중남부 지역에는 주변 지역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지역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기원전 6~3세기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이 지역의 주요한 유물 요소로 북방식 토광묘제, 양․소․말을 중심으로 한 동물 순생, 조형병식동검(촉각식동검), 각종 동물 장식(패대식, 동물상…), 도홍파랍형 말 얼굴 장식, 동물형 거구류(간두식), 도홍파랍형 토기, 모경구형 토기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유물 요소는 개별적으로는 장성 연선의 북방문화권의 기타 지역과 연결되는 속성을 강하게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주변의 북방문화와 차별적인 별개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원전 6~3세기만을 기준으로 할 때의 상황일 뿐, 전반적으로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같은 공간 내에서 다양한 성격의 지역성과 문화 변동이 확인된다. 즉, 기원전 21~16세기의 내몽고 중남부 지역은 토기를 중심으로한 정주농경문화지대였던 반면, 기원전 6~3세기에는 조형병식동검과 동물 양식을 중심으로 하는 유목문화지대였다.
또한 중기 청동기시대 전후에는 축목문화지대, 기원전 1세기 전후에는 유목과 축목을 위주로 한 집단이 일부 끼어 있는 정주농경문화지대에 속하여 있었다.이처럼 내몽고 중남부 지역은 이 일대를 기반으로 한 오르도스 청동기문화가 이른바 ‘북방문화’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서 동북아시아 청동기문화의 형성과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 외에, 이 일대가 중기 청동기시대 전후로부터 북방문화권과 중원문화권, 그리고 농업경제와 유목경제가 끊임없이 교체 변동되는 역동적인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주변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연구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이러한 인식 하에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문화와 사회를 소지역 및 획기 별로 살펴 보기로 하겠다.
II. 내몽고 중남부의 지역군과 소지역 단위
내몽고는 산맥과 수계 및 기후 등 자연지리적 조건을 기준으로 할 때, 대체로 동북부, 동남부, 중부, 서부의 4개 지역으로 구분 가능하다.
즉, 동북부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호륜패이시와 흥안맹, 수계 상으로는 눈강 서쪽과 액이고납하 남쪽의 각종 지류, 산맥 상으로는 대흥안령 산맥의 동서 지대, 동남부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석림곽륵맹과 적봉시 및 통요시, 수계 상으로는 서랍목륜하 유역, 산맥 상으로는 연산 산구 북단과 노로아호 산맥의 북쪽 지대, 중부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오란찰포시, 호화호특시, 포두시, 오르도스시, 파언탁이시, 수계 상으로는 곡류 황하 유역, 산맥 상으로는 음산 산맥과 대청산의 남북지대, 서부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아랍선맹, 산맥 상으로는 아포뢰 산맥의 동서 지대를 말한다.
이중 내몽고 중부 지역은 음산산맥과 대청산을 기준으로 남북의 두 지대로 세분할 수 있는데, 대체로 두 산맥의 북쪽 지대는 전형적인 초원구, 남쪽 지대는 구릉, 고원, 초원, 사막이 착종되어 있다. 즉. 남쪽 지대의 경우 자연지리 상 명 장성 이남의 황토고원구와 음산 산맥 북쪽의 초원구의 중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생업경제 면에서도 전형적인 유목과 전형적인 농업의 중간에 해당하는 농목혼합구에 속한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몽고 중남부 지역이란 바로 이 지역을 말한다.
그런데 내몽고 중남부 지역 또한 미시적으로는 인문과 자연지리적인 면에서 차별성을 보이는 여러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예를 들어, 구릉과 분지성 평원이 발달하여 있는 대해 일대와 황토고원의 북단에 속하는 황하 양안의 준격이기와 청수하현 일대, 그리고 오르도스시 중부의 모오소 사막 일대 간에는 커다란 지형지리적인 차별성이 확인된다. 호로사태 무덤이 발견된 황하 북안, 음산 산맥 남록 일대가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 지역 간의 차이는 미시적인 측면에서 유물복합 상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간 여러 연구자들이 내몽고 중남부의 오르도스 청동기문화를 몇 개의 지역군으로 분류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먼저 임운은1)기원전 6~3세기 하북성 북부로부터 감숙성 동부에 이르는 지역의 유적군을 무덤과 청동기는 물론 토기에 중점을 두어, 하북 북부의 연연산구, 내몽고 음산 동단의 산전구, 내몽고 하투내의 동북부구, 영하 남부구, 감숙 동부구, 내몽고 음산 서단구의 여섯 개 구로 분류하였다. 결국 임운은 내몽고 중남부 지역을 남류 황하 동안의 양성, 화림격이, 토묵특기, 남류 황하 서안의 항금기, 이금곽락기, 오르도스시, 준격이기, 음산 서단의 항금후기 일대의 세 개 지역으로 분류한 셈이 된다.
전광금은2) 같은 시기 장성 연선의 북방계 청동기 유적군에 복합하는 유물을 전형적인 오르도스식(A조), 중원식(B조), 하가점상층문화식(C조), 감숙 동부와 영하 남부식(D조)으로 분류한 뒤, 하북성 북부로부터 감숙성 동부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에서 오르도스식 유물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 이들 지역 모두를 오르도스 청동기문화권으로 일괄하였다. 아울러 내몽고 중남부 지역은 무덤과 유물의 세부적인 복합상을 기준으로 다시 서원, 모경구(곽현요자 포함), 도홍파랍(호로사태 포함)의 세 개 유형으로 세분하였다.
이외 양건화는3) 보다 큰 관점에서 내몽고 중부의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유적군을 호화호특시를 기준으로 하여 그 동쪽의 대청산 동단의 대해를 중심으로 하는 동구와 서쪽의 하투 이남의 오르도스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두 구역으로 분류하였다. 양건화의 지역 분류는 위의 두 연구자에 비해 성근 편이어서 사실상 지역군 분류에는 참고하기 어렵다.
그의 연구 목적이 주로는 ‘북방문화대’ 속에서 내몽고 중부 지역 청동기문화의 문화적 맥락을 밝히고자 한데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위의 지역군 분류 중 내몽고 중남부의 유물복합 상 지역적인 차이를 잘 드러낸 것이 임운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체로 임운의 지역군 분류를 참고하기로 하겠다. 다만 임운이 B구와 C구로 분류한 지역 가운데 남류 황하 양안에 면해 있는 지역, 즉 화림격이, 청수하현, 준격이기, 탁극탁현을 두 지역의 중간 지대로 따로 떼내고자 한다. 아울러 임운이 분류에서 고려하지 않은 전광금의 서원유형, 즉 황하 북안의 포두 일대를 별개의 지역군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중 남류 황하 양안 지역은 이 일대가 신석기시대 이후 동, 서 두 지역 중 어느 한 지역에 전형성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과4) 곡병동검 단계와 그 직후에는 이 일대가 동서 두 지역과는 문화적 맥락과 성격을 달리하는 서차유형의 중심권이었다는 점5), 그리고 평면적인 공간 분포와 지형지리적인 면에서도 이 일대가 항금기에 중심을 두고 있는 서쪽과 양성에 중심을 두고 있는 동쪽의 중간 지대에 속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별개의 지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서는 내몽고 중남부 지역을 하투 동북구(A구), 남류 황하 양안구(B구), 음산 동단의 산전구(C구), 황하 북안의포두구(D구), 음산 서단 산전구(E구)의 다섯 소지역 단위로 나누고자 한다.
III. 획기와 편년
중앙아시아와 북중국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청동기문화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검을 기준으로 대체로무동검 단계와 유동검 단계로 대분되는데, 무동검 단계는 전기 청동기시대에, 유동검 단계는 후기 청동기시대에 속한다.6)이중 유동검 단계는 동검 유형을 기준으로 할 때 다시 곡병동검 단계와 직병동검 단계로 세분된다. 곡병동검 류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나, 이러한 류의 동검이 직병동검에 의해 대체 또는 전환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7) 이렇게 볼 때, 곡병동검 단계를 중간 성격의 시대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대체적인 경향성은 내몽고 중남부 지역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전기 청동기시대 말기 직병동검의 예(주개구M1040)가 보고되어 있어, 위와 같은 일반적인 대단위 획기를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보고자는 주개구M1040의 청동 가슴 보호용구와 직내과가 이러한 청동기와 함께 이리강 상층(궤, 두) 및 주개구(사문력, 대뉴원복관) 류의 유물 요소가 공반하는 주개구 5단의 다른 무덤들과 연결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 무덤을 주개구 5단과 같은 시기, 즉 기원전 15세기 전후로 편년하였다.8)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주개구M1040에서 처음으로 확인되는 류의 동검이 기원전 15세기 주개구 유적에서 갑작스럽게 출현한 후, 북중국에서 무려 400여년 간 이와 같은 류의 동검이 단 한 건도 제작되지 않다가, 기원전 10세기 전후 창평 백부촌M2,3에서 유사 형식의 것이 재현된다는 점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개구M1040이 주개구 5단 이후에도 내몽고 중남부 지역에 일부 존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후주개구문화 류의 유적군과 관련이 있을것이라든지,9)또는 동검과 동도의 시대적 속성을 고려하여 아예 백부촌기의 유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10) 여기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일단 주개구M1040을 획기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그러면 이제 내몽고 중남부 지역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유물을 획기하여 보기로 하겠는데, 획기안을 짜는데에는 개별 유적 간의 차이 또는 개별 유물의 미세한 형태적 차이를 시간성 자체로 치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유적 유물을 표지 유물의 공반 여부를 기준으로 몇 개의 공반 단계로 획기한 후, 각 단계의 시간성을 파악해가는 방식으로 편년키로 하겠다. 이러한 방식의 획기 방식은 다소 성글게 보일 수도 있으나, 현재의 조사 상황으로는 그나마 안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내몽고 중남부 청동기~초기 철기시대를 획기하는데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유물로는 주개구류 토기(사문력, 대뉴화변관, 분형언…), 이리강 상층식 토기와 무기, 곡병동검과 동도, 관공부, 직병수수(直柄獸首) 또는 마고상수(蘑菇狀首)의 청동 공구류, 각종 오르도스식 동검, 전국계와 한계 유물 등을 들 수 있다. 즉, 이들 유물 모두 주변 지역의 유물 양상과 대비하여 볼 때 시대성을 분명하게 띄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의 주요한 표지로 삼을 수 있는데, 이중 주개구류 토기는 실질적으로는 청동기 제작이 보편적이지 않던 전기 청동기시대를 획기하는데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위의 표지 유물을 통해서 볼 때,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청동기~초기 철기시대는 전체 여덟 개 단계로 획기된다. 즉, 제I단계는 반지와 팔지를 중심으로 하는 소형 청동 장식류와 주개구류 토기가, 제II단계는 이외 약간의 무기(직내과)와 방호구류(무(鍪), 가슴 보호용구)가, 제III단계는 영수곡병동검, 영수착, 마수비, 관공부 등이, 제IV단계는 직병수수와 마고상수의 청동공구류 및 공내과 등이, 제V단계는 특수 형식의 동검과 각종의 고식 동도가, 제VI단계는 전형 조형병식동검과 학취부 및 천공수도 외 각종 패대식과 마구류가, 제VII단계는 (쌍)환수동검, T자형병동검, 동물형 간두식을 비롯한 거구류, 금은 장식품과 함께 전국계 유물 요소가, 제VIII단계는 토착적인 소형 장식류 외에 각종 한식 유물이 공반하는 단계이다.11)
이상으로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관련 유적을 전체 여덟 단계로 획기하였는데, 이중 제I단계는 이미 보고자가 상세한 유물 비교를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 주개구 1단과 4단에 각각 용산문화 만기 단계와 하대 만기의 토기류가 공반한다는 점, 그리고 주개구 4단 H1071와 H1055 등에서 출토된 숯의 수륜교정연대측정치가 3685±103년전과 3515±103년전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용산문화 만기 단계 또는 그보다 약간 늦은 시점으로부터 하대 만기에 이르기까지,12) 즉 기원전 21~16세기로 편년된다.
제II단계는 이리강상층류의 토기와 직내과가 공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15~14세기,13) 제III단계는 곡병동검을 비롯한 관련 유물군의 일반적인 유행 시기를 감안할 때14) 기원전 12~11세기, 제IV단계는 대체로 직병수수와 마고상수의 청동공구류가 곡병동검 단계 보다 한 단계 늦은 시간성을 보인다는 점 및 최근 청수하현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관공부와 공내과가15) 형태적인 속성 상 역시 곡병동검 단계의 전형적인 관공부에 비해 한 단계 후행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10~9세기로 편년된다.
제V단계는 공반하는 청동기가 제IV와 제VI단계의 중간 단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8~7세기로 편년된다. 제VI단계는 이 단계에 조형병식동검 등과 함께 공반하는 유공식동족, 수금형대구, 환수동도, 남동구식 두쪽 말재갈, 오목밑 청동방울, 스키타이식 동물 양식 등이 하북성 북부의 동남구문화 옥황묘-북신보 단계와 요서의 십이대영자문화 남동구 단계에 대응된다는 점 및 옥황묘와 남동구 단계가 이들 청동기의 공반 관계를 근거로 기원전 6~5세기로 편년되고 있다는 점16) 등을 고려할 때, 그와 같은 시기로 편년할 수 있다.
제VII단계는 토착 기종의 철기화와 전국시대 중원계 유물의 복합 및 황금 장식 등 고급 위세류의 등장을 시대적인 특징으로 잡을 수 있다. 내몽고 중남부와 인접하여 있는 전국조와 전국연의 경우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철제품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전국연에서조차 철기 생산이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종류 또한 철경 동촉과 철곽에 한정되어 있었다.17) 전국연에서 철기의 생산이 보다 확대되기 시작하는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이다.18)이러한 점과 함께 이 단계에 전국시대 중원계 유물이19) 복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VII단계의 시간 범위를 기원전 4~3세기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제VIII단계는 관식과 패대식 및 동물 순생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물 요소가 서한계로 대체된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는데, 특히 서한계 철제 이기류와 서한 양식의 토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양상을 띈다. 따라서 제VIII단계의 시간 범위를 서한의 존속 기간 대부분과 같은 기원전 2~1세기로 잡을 수 있다.
■ 내몽고 중남부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유물 유적과 획기
유물/유적
시간범위
표지 유물
표지 유적
획 기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무동검
단계
-
제I단계
전21~16
주개구류 토기,
소형 청동 장식물(반지, 팔지)
주개구 1~4단
-
제II단계
전15~14
주개구류토기, 이리강상층토기
직내과, 청동 방호구류
주개구 5단
유동검
단계
곡병동검단계
제III단계
전12~11
곡병영수동검, 관공부…
숙해수만, 주개구, 서차
직병동검단계
제IV단계
전10~9
직병수수․마고상수 청동공구
공내과…
서차, 노우만
제V단계
전8~7
특수 형식 동검,
각종 고식 동도…
내박장E․116
제VI단계
전6~5
조형병식동검, 학취부, 수금형대구, 환수동도, 마구류…
모경구 1,2기, 곽현요자M1, 도홍파랍, 서원, 구리두, 범가요자…
제VII단계
전4~3
환수동검, T자형병동검, 거구류, 금은장식, 전국 중원 유물…
서구반M1, 아로시등, 옥륭태, 모경구 3,4기, 곽현요자M8, 호로사태…
제VIII단계
전2~1
토착 소형 장식물,
각종 서한계 유물 요소
서구반M4, 208묘지…
IV.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청동기~초기철기 사회
여기에서는 내몽고 중남부 지역의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사회 단계와 구조 등의 문제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하는데, 내몽고 중남부 지역에서의 고고학적인 조사 정황이 아직 이러한 분석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내몽고 중남부 지역에서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정착화된 사회를 대상으로 개발된 이론적 틀을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사회경제적인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분석이 어디까지나 시론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특별히 밝혀두고자 한다.
1. 청동기시대
1) 제1단계(전 21~16세기)
취락고고학자들은 취락을 대표로 하는 인류의 거주 체계 속에 거주 집단의 기술 수준과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각종의 사회 작용과 상호 조절 작용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20)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각종의 고고학적 지표를 여러 층차의 미시적인 방식과 거시적인 방식21) 모두를 활용하여 특정한 시공간 상에서 활동한 인류의 사회적 관계를 밝히고 있다.22) 이러한 노력은 내몽고 중남부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대해 지역의 신석기시대 취락을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23)
그러나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청동기시대의 경우 취락지 조사가 극소할 뿐만 더러 전면적이지도 못한 상태이다. 특히 전기 청동기시대 이후는 몇 례의 소규모 취락지 일부만이 조사된데 지나지 않아서 취락을 통한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비록 취락지의 일부가 단편적으로 조사된 상태이기는 하나, 정착농경문화에 속하는 1단계(주개구 1~4단)의 취락 유적이 신석기시대 후기의 노호산문화 보다도 취락 구조와 분포 등의 면에서 결코 보다 계층화되고 복합화된 상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무덤에서도 드러나는데, 비록 주개구 4단으로 갈수록 청동기의 비중이 높아진다든지, 3단의 경우에는 목관을갖춘 큰 규모의 무덤이 출현하기는 하나, 상위 계층과 일반 성원 간의 입지와 배치 상의 차별성, 상위계층 전용의 배타적 유물의 존재, 청동기 부장 무덤과 일반 무덤 간의 차별성 등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1단계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성원 간에 빈부 차이가 확대되기는 하였으나, 아직은 생계경제사회이자24) 서열사회인25)부족사회 단계에26) 처하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제2단계(전 15~14세기)
주개구 5단은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듯이, 주개구 1~4단과는 달리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중간 단계인 축목사회의 성격이 강한 단계이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에 정주농경사회를 상징하는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 제작이 급감하고 단순화 된다든지, 순생 대상에서 돼지가 제외됨과 동시에 양만이 배타적인 순생물로 채택된다든지 하는 것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난다.27) 주개구 5단에 발생한 이와 같은 변화는 기원전 2300년 이후 계속된 기후 변동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는데,28)이와 같은 변동이 주개구인의 거주 체계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취락지 조사가 충분치 않은 까닭에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경이 악화되고 인구와 자원 간에 불평형성이 발생하게 될 경우, 아주 원시적인 단계의 사회를 제외하고는, 집단 간의 갈등 요소가 증폭하게 되고, 그 결과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사회 복합도가 높아짐은 물론 기존의 조정자로서의 부족장의 권한이 통치자로서의 군장(추장)29)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다.30) 또한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집단 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됨에 따라 군장을 중심으로 일종의 군사특권 계층이 형성되기에 이르고,31) 이들이 군장을 정점으로 한 재분배경제의 특권을 장악하게 된다.32)
주개구 5단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인 방향으로 사회 구조와 경제가 재조정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러한 점은 무덤을기준으로 할 때, 주개구 5단의 사회가 청동제의 전쟁 무기와 토기 및 고급 장식물을 갖춘 상위 계층, 소량의 토기와 약간의 석제 장식물 및 생산 도구를 갖춘 중간 계층, 토기 1건만을 부장하고 있거나 부장품이 전혀 없는 하위 계층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점과 완전한 축목경제로 전환된 것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제2단계 내몽고 중남부의 여러 지역군 중 최소한 A지역군의 경우 단순군장사회,33) 계층사회, 초기 정치경제사회로 진입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제3단계(전 12~11세기)
제3단계의 유물 유적으로는 E지역군을 제외한 내몽고 중남부 전역에서 수집된 약간의 청동기와 최근 청수하현(B지역군)에서 조사된 서차 유적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직은 구체적인 사회 분석을 진행하기에는 여러 무리가 따른다. 다만 비록 영성한 자료이기는 하나, 곡병동검, 관공부, 마수비, 영수착, 양이부 등의 청동 무기류와 공구류가 발견된다든지, 주개구34)와 서차 유적에서 관공부의 돌과 진흙 거푸집이 발견된다든지 하는 점을 감안할 때, 제2단계와 유사한 사회 구조와 단계에 처하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4) 제4단계(전 10~9세기)
제4단계의 유물 유적 발견 상황 또한 제3단계와 같다. 3단계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확실한 유적으로는 B지역군의 서차 유적만이 확인되고 있는데, 전단계와 유사한 사회 구조와 단계에 처하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5) 제5단계(전 8~7세기)
제5단계는 유적의 발견 예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사회적인 분석을 가하기가 어렵다. 다만 내몽고 중남부 전역에서 수집된 이 단계의 청동기가 형태 면에서 4단계와 6단계의 중간적인 속성을 보인다는 점과 취락 유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축목경제로부터 유목경제로 전환되는 과도기 또는 초기 유목경제와 사회 단계에 처하여 있지 않았을까 한다.
6) 제6단계(전 6~5세기)
제6단계는 5단계로부터 완만하게 진행된 오르도스 청동기문화의 골격이 완전하게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음산 산맥 서남단의 E지역군을 제외한 내몽고 중남부 전역에 관련 유물군이 출현한다. 대체로 보아 청동기류에서는 중원청동기와 확연하게 대비되는 오르도스 양식이 복합하는 반면, 토기류에서는 북방 양식(쌍이, 단이, 발형, 무문)과 중원 양식(호형, 꼰새끼문, 파도문)이 단일 기형에 복합 또는 혼재하는 특징을 보인다. 묘제와 순생 습속 면에서도 주변 지역에 비해 비교적 강한 일치성을 보인다.
그러나 유물 복합도 면에서 지역군 간에 위계 상의 차이가 확인되는데, 금속기의 공반 관계만을 기준으로 할 때, A지역군의 경우, 청동 무기(검, 화살촉, 곤봉머리), 청동 공구(도끼, 곡괭이, 송곳, 끌), 청동 마구(말재갈, 말 얼굴 장식, 방울), 각종 청동 장식류는 물론 비록 예외적이기는 하나 금기(귀걸이)와 철기(도자)가 공반하고 있는 반면, B지역군은 청동 무기와 공구 및 장식류만이, C지역군은 청동 무기와 공구류와 장식류와 약간의 마구류(재갈, 말디 연결구, 방울)와 철기(패식, 도자)가, D지역군은 주로 약간의 청동 무기(동검 결여)와 공구류 및 장식류만이 공반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기류의 청동기는 물론 금기와 철기까지를 갖춘 A지역군을 상위, 마구류와 약간의 철기까지를 갖춘 C지역군을 중위, 청동제의 무기와 공구 및 장식류만을 갖춘 B, D지역군을 하위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군 간 위계 상의 차이는 같은 유적 내 계층성에서도 확인되는데, A지역군은 부장 수준 면에서 수장층과 일반 성원 간의 차별성이 뚜렷한면, D지역군은 계층 간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고, C지역군은 무기와 마구 및 철기 부장 무덤과 일반 무덤 간에 차별성이 인정되기는 하나 현격하지 않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비록 유목사회이기에 상대적으로 정착된 사회를 대상으로 개발된 이론을 적용하기에 여러 무리가 따르기는 하나, A지역군은 단순군장사회, C지역군은 군장사회에 접근한 부족사회, C․D지역군은 부족사회 단계에 처하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정황을 고려할 때, 각 지역군 내의 중심 지역은 A지역군은 항금기 도홍파랍,35) B지역군은 화림격이 범가요자,36) C지역군은 양성현 모경구, D지역군은 포두 서원37) 일대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2. 초기 철기시대
1) 제7단계(전 4~3세기)
제7단계는 내몽고 중남부의 북방계 문화가 최고조에 달함과 동시에 급속하게 쇠퇴하는 시기이다. 유물 복합 상의 차이를 기준으로 기원전 4세기(7-1기)와 기원전 3세기(7-2기) 두 시기로 소획기된다. 이중 7-1기는 금관과 금패식을 비롯한 금은기, 동물형 간두식을 비롯한 거구류, 철기의 보편화로 상징된다. 7-2기에는 모든 지역군에서 대구와 도끼 등 약간의 패대구와 공구류만이 부장되는 현상이 관측되는데, 이러한 부장 능력의 저하는 당연히 전국조와 진의 이 지역 진출과 연관이 있다.
한편 제7단계의 경우 A지역군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각종 금은기가 확인되는 반면, C지역군에서는 청동과 철제의 무기류와 공구류 및 패대류가, D지역군은 7-2기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극소량의 패대류만이 부장되고 있어 지역군 간 차별성이 더욱 증대된 양상을 보인다. 특징적인 것은 전 단계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B지역군이 동물형 간두식을 비롯한 거구류와 함께 각종 금은 장식이 복합하는 등 A지역군 다음의 부장 수준을 보인다는 점과 E지역군에서 청동 무기류로부터 거구류까지 갖춘 유적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사회 계층차도 더욱 현격화되어, A지역군의 경우 A급(왕관)-B급(금은장식)-C급(청동기, 철기)-D급(극소 금속기 또는 무부장품)의 네 계층이, B지역군은 A지역군의 B~D급의 세 계층이, C․E지역군은 A지역군의 C~D급의 두 계층이 확인된다. 이중 C․E지역군 등은 몇 개의 부장 단위로 세분할 수 있는데, 계층성 보다는 동일 계층 내 빈부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볼 때, A지역군은 계급사회(유목국가), B지역군은 군장사회, 기타 지역군은 부족사회 단계에 처하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각 지역군의 중심은 A지역군은 항금기 아로시등,38) B지역군은 준격이기 서구반39)과 옥륭태, C지역군은 모경구, E지역군은 호로사태40) 일대인 것으로 여겨진다.
2) 제8단계(전 2~1세기)
제8단계는 내몽고 중남부 전역이 특수한 몇 지점의 유적을 제외하고는 한문화 지대로 변모하는 시기이다. 이 단계의 확실한 흉노 유적으로는 A지역군의 서구반M4~M1241)와 D지역군의 포두 208M2~M542)가 있는데, 서구반M4를 제외하고는 유물 부장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제약 현상은 순생 동물의 수량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당연히 한의 군현 설치 및 대량의 주민 이주와 연관되는 것으로서, 이 시기에 이 지역의 흉노 유목사회가 변동됨은 물론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IV. 여 언
위에서 간단하게 살펴 본 바와 같이, 내몽고 중남부 지역은 주변의 다른 어떤 지역 보다도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음은 물론 이러한 문화와 사회가 주변 지역, 특히 북중국의 북방문화권 지대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국은 물론 동북아의 청동기~초기 철기문화와 문화 지형을 연구하는데에 높은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의 관련 유적의 조사가 충분치만은 않은 상태이다. 아울러 그간 이루어진 또한 관련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특정 지역과 시간대에 편중되어 있어, 이 일대의 문화와 사회 변동을 체계적이면서도 전반적으로 밝히기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향후 더욱 많은 유적이 조사되어 관련 연구에 더욱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다시 한번 정독 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