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 광주(光州). 자 원백(元伯). 호 겸재(謙齋)·난곡(蘭谷). 약관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고 그 뒤 현감을 지냈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의 진경화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문재(文才)가 없었으므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만이 화폭의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다. 저서에 <도설경해(圖說經解)>가 있고 그림 작품으로는 <입암도(立巖圖)>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등이 있다.
작품감상
금강산정양사도(金剛山正陽寺圖)
지본(紙本) 설채(設彩)한 부채의 그림이다. 22×61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경산수를 그린 겸재는 특히 금강산의 뾰족뾰족한 산골(山骨)을 독특한 화법으로 잘 그렸다. 왼쪽과 아래 부분에는 토산(土山)이 자리잡고 중앙에 정양사를 중심으로 뒤와 오른쪽으로는 금강산 1만 2000봉이 빽빽이 들어서서, 그 전모를 한 공간에다 모아놓은 것이다. 이 외에도 금강산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금강전도(金剛全圖)
국보 제217호. 지본담채. 59×130.7 cm. 호암미술관 소장. 금강내산을 부감형식의 원형구도로 그린 진경산수이다. 왼편에는 윤택한 토산들을 배치하고, 오른편에는 수직준으로 정의된 수많은 첨봉(尖峰)의 바위산을 그려넣었다. 바위산에 보이는 수직준들은 대개 강하고 활달하며 예리한 데 비해, 토산에 보이는 준법과 미점들은 습윤하고 부드럽다. 부감법으로 홍문교로부터 1만 2천 봉을 집결시켜서 그리는 화법은 겸재 이후 크게 유행하였는데, 그것이 겸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본(祖本)이 있었던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상고할 길이 없다. 《금강전도》에 나타난 필법은 거센 필선으로 중첩한 무수한 봉골(峯骨)을 죽죽 그려내린 것으로, 금강산과 같은 골산(骨山)에 알맞다. 이 점에서도 겸재의 천재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골법을 써서 중봉을 그리거나 산세를 묘사할 때는, 화면 전면을 꽉 채우거나 중앙으로 몰아 집중적으로 그리는 두 가지의 독특한 구도를 채택한다. 이 점은 중묵암산(重墨岩山)의 화법 때의 구도와는 아주 다른 것으로 지도제작법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인왕제색도
한국화의 시작을 겸재 정선의 실경 산수로 보는 이도 있어 겸재에 대한 관심이 새로울 즈음에 조선일보 1997.8.5.월자에 우리문화유산기행28회 "인왕제색도"를 연세대 교수 최정호씨가 언급하여 우리미술'한국화'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 내용을 대략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음악이 듣는 공부인 것 처럼 미술은 보는 공부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또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보는 공부를 한다. 그러나 사과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를 먹는 '음식'으로, 과수원에서 거둬들이는 '수확'으로, 또는 사고 파는 '상품'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을까? 미술은 사물을, 자연을, 인간을 보는 우리 눈의 공부이다. 훌륭한 미술작품은 우리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욕망, 사회적인 통념, 역사적인 이유등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사물의 존재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훌륭한 예술가란 모든 사람과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들추어 보여준다란 말이 가치를 가진다면 겸재 정선(1676~1759)은 산의 나라 한국,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산에서 해가 뜨고 산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사는 '산의 나라'한국에서 살아온 사람 가운데서, 처음으로 이땅의 산을 그린 화가로 훌륭한 예술가 중의 한사람이 된다. 한국 산수의 참된 모습, 동국진경을주제로 그린 진경산수의 거장으로...
겸재 이전의 조선조 화가들도 산을 그렸고 산수화를 그렸지만겸재가 등장하던 17세기 말엽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회화는 중국회화의 아류로서 중국화를 모본으로 그걸 그대로 본뜨는 임모(서화의 원본을 보면서 그대로 베끼는 것)또는 그것을 흉내내는 방작(모방한 작품)이 고작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회화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도화서에서는 중국의 궁정화파인 이른바 원체화류의 화제와 화법을 그대로 본받아 그리는 것이 당시 관화의 주류가 되고 있었다. 비록 한국의 화가가 그리기는 했으나 그림의 주제도 중국적이요, 그림의 기법도 중국적이었던 것이다.
겸재는 원래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고 부모가 연로하여 10대에 이미 도화서원이 되었다. 하지만 중인이나 상인계급 출신의 도화서 화원들이 그리는 그림의 화풍이 겸재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양반 출신으로 도화서원이라는 기술직을 맡은 겸재는 그렇기에 꼼꼼한 필치로 외형 묘사에만 주력하는 직업적 화가들의 공필 보다는 일반 사대부들이 여기로 그리는 남종화풍의 문인화에 더욱 끌리게 된 듯 싶다.
인격과 학문이 높은 선비들이 수묵 담채로 내면세계의 이른바 사의를 중요시한 격조 높은 남종화는 반청 감정을 지닌 중국 남부 지방 사람들의 그림이었다. 그러한 남종화가 호란을 겪은 뒤의 반청, 북벌 사상에 젖어있던 17세기의 조선조 지식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고 유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겸재는 남종화 계통의 화풍을 열심히 익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않고 자기가 직접 여행하며 살펴본이 땅의 산천을 화제로 삼아 진경산수의 명작들을 낳게된 것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도 많이 돌아다녔지만, 벼슬을 한 뒤에도 겸재는 세 고을의 현감으로서 많이 돌아다녔다. 여행을 많이 했기에 사경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그 덕분에 운동부족의 여느 조선조 양반들과는 달리 겸재는 이가 들수록 더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고, 더욱이 '나이가 들수록 그림이 더욱 교묘'해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 '만익공묘'의 겸재 그림 가운데서 최고의 수작이자 무릇 한국미술사의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가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다.
1751년 겸재가 75세때 비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바로 그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인왕산 앞 지금의 효자동 근처에서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사경한 작품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누구나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이뤄진 인왕산의 매시브(massive:둔중)한 괴량감에 먼저 압도된다.
맥큔 여사가 '이 거대한 암벽의 본질적인 초시간성'이라 일컬은 바윗덩어리의 인왕산. 어쩌면 이 인왕산은 산의 나라 한국, 개골산의 나라 한국, 시생대와 중생대의 변성암과 화강암이 '만고강산'국토의 70%를 덮고 있는 오래된 돌산의 나라 한국, 월출산에서 설악산까지, 금강산에서 백두산까지 검푸른 나무숲 위로 백회색의 바윗봉우리가 이마를 쳐들고 솟아있는 산악 국가 한국을 서울 한복판에서 시위 입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는 마치 그러한 뜻을 사의하려는듯 화면 구도에서도 인왕산의 어두운 빛깔의 바위를 상단의 윗부분 가득히 그려 메워놓고 하단의 아랫부분에 골짜기로 숨어드는 하얀 안개와 근경의 날렵한 소나무숲을 매치시키고 있다. 그림 아래위에 이처럼 강렬한 흑백,농담의 대비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상단의 바위 덩어리의 거대한 암면의 괴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힘찬 붓질로 그려내린 수직집선준의 기법, 먹칠한 위에 되먹칠하는 적묵의 기법, 그리고 크고 작은 나무들을 그리기 위해서 보여준 활달한 편필의 기법등은 겸재가 일평생 서울 근교의 산수를 사경하면서 오랜동안에 걸쳐 스스로 창안한 독자적인 기법이다. 그는 비단 그림의 주제를 한국의 산수에서 잡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그리는 기법에 있어서도 그 자신의 고유한 한국적 화법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인왕제색도는 '실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진경'을 그린 것이다. 그것은 '사경'이라기 보다 차라리 '사의'이다. 굵고 검은 선, 짙은색의 주조, 강렬한 농담의 대조, 그리고 물결치듯 굽이치는 산봉우리와 계곡과 안개가 중첩하는 역동감은 서양회화사의 '레알리즘'보다는 엉뚱한 비약일지 모르나 20세기초의 '표현주의'화풍을 선구적으로 예시한 것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에밀 놀데, 죠르쥬 루오, 막스 베크만 등의....
한국화는 자연의 숨소리를 빼고 논의할 수 없다. 보는 공부인 미술이 자연을 보는 방식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