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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룽창뽀 강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은빛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산 해발 5,300미터 중턱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 동쪽을 향해 흐른다. '세계의 용마루'라는 티베트 고원, 칭장고원 남부를 가로지르는 이 강은 티베트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준다. 하늘의 강이라는 '톈허(天河)'라 부르며 티베트의 원천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다시 이동해야 한다. 버스도 있고 트럭도 있고 트랙터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버스를 타고 떠났다. 우리는 트럭 운전사와 값을 흥정했는데 아무리 깎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흥정이라기 보다는 좀 친해보려고 그런 것이기도 하다. 이 트럭을 타지 않고 걸어갈 수는 없다.
하여간 버스 요금과 같은 가격으로 우리 일행 6명이 탔다. 두 사람은 트럭 뒷자리 좌석에 타고 나머지는 트럭 뒤에 탔다. 앞자리에는 운전사의 3살 난 아들이 함께 타고 있다.
바나나를 주니 참 맛있게 먹는다. 입 주위에 바나나 먹은 티를 내며 뒤를 돌아보며 계속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중얼거린다. 동그랗고 선하게 생긴 눈망울이 너무 귀엽다.
40분 가량을 달려 드디어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일컫는 쌈예 마을에 도착했다. 라싸처럼 번잡하지 않고 한적한 쌈예 진에 도착한 것이다.
사원 옆에 있는 자그마한 숙소 하나를 잡았다. 1인당 15위엔. 한 방에 침대가 딱 여섯 개였는데 그야말로 우리를 위해 준비됐구나 싶을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이곳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고 해서 서둘러 숙소를 잡았다. 나중에 보니 마을 곳곳에 숙소는 꽤 많다. 하지만 이처럼 저렴한 가격은 없지 싶다. 6개월 여행 중에 하루 숙박료로는 가장 싼 금액이다.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모두 피곤한 지 자유시간이다. 이제 낮 12시이니 일단 잠을 좀 자는 게 필요하다. 라싸에서 출발해 버스를 타고 어둠 속을 달렸고 날이 밝자 선착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얄룽창뽀 강을 건넜고 또 트럭을 타고 왔다. 겨우 5시간의 여행이었는데도 정말 기나긴 여행을 한 느낌이다.
2) 쌈예 桑耶 티베트의 원초적 숨결이 살아있는 사원
쌈예 사원 입장료는 40위엔. 카메라로 사진 찍으려면 150위엔, 캠코더 촬영은 무려 1500위엔이나 한다. 아예 촬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과 같다. 웅장하고 멋진 사원이지만 티베트의 대부분의 사원이 그렇듯 여기도 자본의 논리가 있다. 여행자들이 가격을 올려놓은 측면도 있긴 하지만 너무한다. 그래서 사원 주위를 두루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사원에는 높은 장대가 솟아있다. 티베트 문자로 불경의 한 구절을 새겨 넣은 각양각색의 천으로 둘둘 감았다. 그 아래에 양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담벼락 아래에는 까만 소가 역시 풀을 뜯고 있는데 그 뒤쪽에 한 동자승 녀석이 용변을 보고 있다. 땅에 내려앉은 새도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고 나무에 묶인 누렁소는 하염없이 앉아있다.
서기 7세기 쏭첸깐뽀(松贊干布)가 토번을 일으킨 후 4대가 흐른 후 티쏭데우첸(赤松德贊, 742~797)왕이 서기 762년부터 건립을 시작해 779년까지 시짱 제일의 사원이라는 쌈예사원을 완공했다. 그는 문수(文殊)의 현신이라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어진 왕이기도 했고 인도와 당나라 등과도 교류하는 등 불교를 부흥시키고 통합하는 데 노력했다.
이 사원에서는 수많은 학자와 승려를 양성했는데 7명의 귀족이 유명한 승려가 됐는데 이름하여 '쌈예 7인의 선각자(桑耶七覺士)'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모두 7명이고 우리는 스스로 '쌈예의 7인'이라 불렀으니 재미난 인연이다.
사원을 중심으로 4개의 탑이 서 있다. 붉은색, 흰색, 녹색, 검은색으로 이뤄진 탑의 모양이 색깔만 빼고는 다 똑같다. 각각 법륜(法輪), 길상(吉祥), 여래(如來), 열반(涅磐)을 상징한다.
탑 중간 부분에 매서운 두 눈동자를 그려놓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는 인상이다. 마치 세상만사를 다 꿰뚫고 있다는 듯 사방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죄짓고 살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뾰족하게 솟은 탑 중간에 창문들이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 안으로 불상이 보인다.
탑 안으로 들어가봤다. 티베트 어느 곳에나 있는 마니룬이 있어 한번 돌려 본다. 2층으로 올라가 바깥으로 난 통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2층 안으로 들어가니 손바닥만한 달라이라마(達賴喇嘛) 초상화가 눈에 띤다. 티베트 어디를 가도 공개적으로 '달라이라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고 대신에 사원 안이나 탑 안에 너무나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모시는 정도.
달라이라마 초상화 주변에는 인민폐가 많이 떨어져 있다. 중국 돈은 1위엔 아래 10분의 1의 가치인 자오(角)라는 단위가 있는데 1980년대에 발행된 1자오 종이돈이 유리와 바닥에 군데군데 많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중국지폐에는 소수민족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티베트 민족 얼굴이겠거니 하고 봤는데 그렇지는 않다.
이 1자오에는 고산족(高山族)과 만주족(满族) 남자의 얼굴이 새겨 있다. 티베트 장족은 5위엔 지폐에 후이족과 함께 새겨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발행된 지폐에는 마오쩌둥으로 통일됐으며 소수민족들은 종이돈에서 사라져버렸다.
검은 탑 2층에 비둘기 한 마리가 놀고 있다. 갑자기 휙 날아가 버리는데 그 뒤로 사람이 나타나 탑 주위를 돌고 있다. 탑에는 연료로 사용하는 야크 똥이 한 무더기 쌓여 있기도 하고 독특한 문양의 기와도 놓여 있다.
사원 주변은 한적하지만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부를 만큼 성지이기 때문이다. 쌈예 사원을 거쳐 4개의 탑을 차례로 순례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간다. 느릿느릿 마니룬을 돌리며 가는 순례의 발길은 참 조용하다.
라싸 시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는데, 이곳에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 거의 없다. 탑 주위에 있는 양, 소, 야크도 겨우 돋아난 풀을 뜯어 먹으려고 움직이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아주 느릿느릿 움직인다. 사람이 다가가도 거의 본체만체 한다.
3) 쌈예 桑耶 티베트 노총각 따 선생과의 만남
티베트 라싸에서 직선거리로 50킬로미터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3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쌈예이다. 이 조그만 마을을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수십 마리의 양떼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양 한 마리가 대열을 이탈하자 양치기 아저씨가 채찍으로 위협하니 재빠르게 대열로 다시 찾아 들어간다.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가는 양치기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지 궁금하긴 하지만 저렇게 양떼를 따라가다가는 언제 되돌아올 수 있을 지 알 길이 없다.
숙소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평범한 가정 집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닭들이 모이를 쪼고 있다. 겨우 비나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낡은 집이지만 집집마다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잃고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정책까지 중국정부가 이끌어온 수많은 통치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쌈예 진 정부가 있는 건물 앞까지 계속 걸었다. 길거리에 아이들이 당구대에서 놀고 있다. 우리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을 식당을 수소문하느라 들어갔더니 한 꼬마아이가 재롱을 떤다.
쌈예 사원 정문 쪽으로 가니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데 아주 한산한 편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나름대로 번화가인가 보다. 호텔도 몇 곳 눈에 띠고 술집도 있다. 아마도 저녁이 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올 듯 보인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었다. 일행들도 모두 잠에서 일어나 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아가씨가 왠 중국남자와 숙소 앞에서 급히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우리 일행 모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것.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이곳 정부의 건설공사를 총괄하는 따(達) 선생은 갑자기 정부 건물로 들어선 아가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주변 지역의 관광을 시켜준 것. 당찬 이 아가씨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이 따 선생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우리 모두 따 선생이 초대한 식당으로 갔다. 술도 마시고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따 선생은 아쉬웠던지 노래방에서 놀자고 한다. 노총각 따 선생은 아주 점잖으면서도 농담을 아주 잘하는 사람인데다가 스스로 류더화(劉德華)를 닮았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잘 생겼다.
우리 일행은 이 노총각 아저씨가 당돌하게 나타난 한국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우리 일행은 모두 농담으로 잘 해보라고 했건만 한사코 우리의 정겨운 혼담(?)을 거부했다. 하여간 덕분에 시골마을에서 티베트 아저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밤이 되자 약간 비가 내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아가씨와 여학생들이 따 선생과 팔짱을 낀 채 걸어오는데 정말 짧은 시간에 정다운 친구가 됐다. 마침 어디선가 티베트 여인들의 카랑카랑하면서도 토속적인 노랫가락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우리 일행 중 남학생 둘도 달콤한 목소리에 넋이 나간 듯했다.
다음날 따 선생이 다시 왔다. 또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라싸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고 따 선생을 따라갔다. 아직 점심 시간이 되기에 이른 편이라 찻집으로 가서 티베트 사람들이 마시는 쑤여우차(酥油茶)를 마셨다. 이 차는 티베트민족과 몽골족 등 유목민족들이 소나 양의 젖으로 만들어 마시는 음료이다. 약간 느끼했지만 건강에 좋다는 말에 한 잔씩 마셨다. 따 선생은 정을 듬뿍 담아 끊임없이 더 마시라고 따라준다.
점심시간이 됐다. 전날 우리가 들어갔다가 벽에 파리들이 잔뜩 붙어 있어서 그냥 나왔던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여학생들이 질겁을 했지만 그래도 음식 맛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따 선생은 티베트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 음식을 맛 보여주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이다. 정말 여행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감자 맛이 정말 좋은 '샹자이(香寨)'라 부르는 카레 밥이 나왔다. 보기 보다 아주 맛이 좋아서 모두들 한 그릇씩 깨끗하게 다 비웠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됐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에 티베트에 오면 꼭 다시 연락하라는 따 선생은 정말 마음이 따뜻하다. 우리와 헤어지기 아쉬운 따 선생은 한국 아가씨에 거듭 살가운 눈길을 던진다. 이후 그 아가씨는 중국에서 몇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 아가씨는 다니던 외국기업을 그만 두고 회사를 창업한 후 티베트에서 석청을 따러 온 것이다. 티베트를 거쳐 중국 곳곳을 다녔으며 우루무치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한국에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 여학생은 국제기구 엔지오 활동가를 꿈 꾸며 지금은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한 남학생은 동남아시아를 자주 다니며 무언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도 참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듯해 우리의 젊은이들의 기상과 용기가 더 없이 부럽다.
4) 체탕泽当 하늘 위에 그린 티베트 왕의 여름별장
티베트 쌈예에서 자낭을 거쳐 라싸로 돌아가는 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버스가 단순한 시내버스가 아니라 순례자의 버스라 할 정도로 유명한 사원들을 두루 거쳐 간다. 우리는 혹시라도 돌아가는 길에 검문이 있을까 두려웠지만 마음만은 푸른 하늘 덕분에 상큼했다.
얄룽창뽀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니 체탕이라는 마을에 정차한다. 다시 한참을 가더니 자시츠르(紮西次日)라 불리는 산 중턱,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윰브라캉(雍布拉康) 사원에 도착했다. 버스는 승객들이 절경 속에 세운 사원에 올라갔다가 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해발 3,700미터 지점의 윰브라캉 사원은 기원전 2세기경 티베트 왕조 최초의 왕인 냐티첸뽀(聶赤贊普)의 궁전이다. 그는 ‘천신의 아들’이라 불리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말 티베트 역사의 발원지에 왔구나 하는 순간이다. 이 궁전을 서기 7세기경 티베트 민족의 영웅인 쏭첸깐뽀는 사원으로 개조했고 당나라 문성공주와 함께 여름 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윰브’는 어미사슴(母鹿)이라는 뜻이고 ‘라’는 뒷다리(後腿), ‘캉’은 신전(神殿)을 뜻한다. 이 가파르게 생긴 절벽이 마치 '어미 사슴 뒷다리처럼’ 생겼고 그 위에 만든 궁전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올라간다. 사원은 정말 파란 하늘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확 트인 사방을 보노라니 가슴이 환하게 뚫린다. 절벽 아래에는 논인지 밭인지 모를 농토가 잘 정리돼 있다.
사람들이 하얀 벽돌 옆에 세워둔 마니룬을 돌리면서 사원까지 올라간다. 다섯 개의 마니룬 옆에 길쭉한 항아리처럼 생긴 화로에는 나뭇가지가 하염없이 타면서 불꽃을 일으키기도 하고 연기를 하늘로 날리기도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궁전을 지었던 마음이나 연기를 날려 보내는 마음도 다 하늘을 숭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올라왔다가 내려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정겹다. 순례의 여정에 있는 두 노인이 언제 다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싶다. 공예품 파는 마차 옆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노인이 제일 늦게 내려왔다.
오후 1시에 쌈예를 출발한 버스는 저녁 7시 무렵 라싸 시내로 들어왔다. 돌아오면서 티베트 시골의 대중교통이 순례자의 마음을 담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무사히 라싸로 돌아가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훌륭한 사원을 만났으니 말이다. 하늘과 닿아있는 멋진 사원, 아니 이미 기원 전에 한 국왕의 집념이 만들어낸 멋진 궁전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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