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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모든 일에 있어 엄격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 속 마음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인정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에게는 언제나 관용의 미덕을 잃지 않았던 릭 블레인(Rick Blaine) . 그는 일견, 원칙주의자이자, 자신의 일에만 몰입하려 드는 냉정한 남자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묵과하지 않는 자랑스런 사나이의 혼을 보여 주고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는 가치관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참전을 결심한다.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는 바로, 사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관용과 용기, 그리고 숭고한 희생의 미학'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판타지로 그려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사랑,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 그리고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표출하는 생의 욕망과 페이소스를, 처절하리만큼 아름답고 격조 높은 로맨티시즘으로 승화시켜 담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영화처럼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숭고함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 영화에서 레지스탕스의 리더로 등장하는 빅터 라즐로(폴 헨리드)가 선창(先唱)을 하자, 눈물을 흘리며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따라 부르던 프랑스인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남자가 추구하는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에는 반드시 '사나이다움(manliness)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로맨티시즘'은 때로, 과감한 결단을 요하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정'이 됐든, '이념'이 됐든, 아니면 '사랑'이 됐든...
Charles Boyer & Ingrid Bergman In Gaslight
*** 이 영화 '가스등(Gaslight)'은 1944년에 MGM(Metro-Goldwyn-Mayer)이 제작한 흑백영화다. 조지 큐커(George Cukor)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희곡을 존 발더스턴(John Balderston)과 월터 라이쉬(Walter Reisch)가 각색했다. 주연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추억의 배우들인 샤를르 보와이에(Charles Boyer),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조셉 코튼(Joseph Cotton)이다.
이 영화는 안개가 짙게 깔린 음습한 도시 런던을 무대로, 막대한 상속재산을 노리고 아내를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한 남자의 탐욕과 이상심리를 추적해 나가는 고전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다. 여주인공 폴라(Ingrid Bergman)의 남편인 그레고리(Charles Boyer)는 기실 그녀의 숙모를 죽인 살해범이자 보석도둑에 불과한 자이지만, 처음엔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폴라에게로 귀속될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던 비열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숙모를 살해한 이후, 자신이 이미 짜놓은 완전범죄의 시나리오대로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 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내인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유산을 가로채겠다는 사악한 음모의 발로였던 것이다.
'시민 케인(Citizen Kane)'과 '제 3의 사나이(The Third Man)'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조셉 코튼은, 폴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런던 경시청의 경위 브라이언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예의(銳意)로 그 특유의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미지를 무기 삼아, 역설적으로 실질적인 주인공의 캐릭터를 오히려 무색케 하는 강렬한 개성을 발휘함으로써 일급 성격배우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거의 패닉(panic)상태나 다름없는 극도의 불안심리에 매몰되면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여인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냄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생애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30년대 헐리우드를 풍미했던 프랑스 출신의 명우 샤를르 보와이에(Charles Boyer)는 종전의 자신의 젠틀한 고정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해 최초의 악역을 맡았던 셈인데, 그 역시 성격배우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이상성격의 소유자 그레고리의 캐릭터를 무난히 잘 소화해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로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한 멜로 드라마를 즐겨 다루어 왔던 죠지 큐커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알프레드 힛치콕과 같은 스릴러 전문 감독의 일련의 걸작 스릴러에서 나타나는 품격 높은 서스펜스 영화로서의 아우라(aura)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형식상의 결함, 즉 내러티브 상의 특별한 하자가 발견되는 건 아니지만, 극적 반전의 효과가 떨어지는 결정적 단점으로 인해 스릴러 본연의 가치와 흥미요소가 반감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봐야 할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범작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영화'로 치부돼 온 데에는, 바로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한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여배우의, 뭇 사나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고혹적인 자태와 더불어, '단아한 여인의 기품을 오롯이 유지해 나가면서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게 은근히 표출해야만 하는 고도로 절제된 공포감'이라는 어려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녀의 열연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한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아나(처녀성과 사냥의 수호신)와도 같은 청초함의 화신으로 불리던 그 잉그리드 버그만이, 자신의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매우 정열적이고 도발적인 여인으로 살다 갔다는 점이다. '카사블랑카'의 대성공 이후 '누구를 위하여 鐘은 울리나', '성(聖) 메리의 종(鐘)', '가스등' 등의 연이은 빅히트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그녀는, 1948년 우연히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인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감독한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감독의 심오한 지성과 격조 높은 창의력에 대한 외경의 마음은 곧 그에 대한 흠모의 감정으로 표면화되었고, 이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열은 결국 그를 만나기 위해 이역만리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만드는 결정적 단초가 된다. 7년간의 스캔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유부남인 한 이탈리아 감독과 불륜에 빠진 그녀에 대해 세계의 전 언론은 신랄한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50년 2월 로셀리니의 아들을 낳는다. 곧이어 미국의 상원의원 에드윈 존슨은, "버그만은 헐리우드의 타락의 마녀다!"라고 외치며 공개적인 비난을 본격화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 사건은 잉그리드 버그만 스스로가, 나다니엘 호오돈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그녀의 실제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제작,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감행함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세기의 스캔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맹렬한 기세로 그녀의 영혼을 옥죄던 '마녀사냥식 헤스터 플린의 여론재판'은 그들 사랑의 진정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인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게 되나, 로셀리니의 이혼을 결코 허용치 않았던 보수적인 이탈리아 정부와 여론 및 사법부의 단호한 입장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결국 결별의 고배를 마시고야 만다.
Ingrid Bergman & Humphrey Bogart In Casablanca
"Was that cannot fire, or is it my heart pounding?(대포 소리인가요? 아니면 제 가슴이 뛰는 소리인가요?)... 이는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에서 자신들 앞에 예정된 이별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일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릭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아무 말도 그에게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애절한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명대사다. 하지만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찬연한 청초함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그 당돌하기까지 한 도발의 용기는 대체 어디서 솟아나온 정열의 분출이었을까? 청초함과 도발적 정열은 결국 극과 극에선 서로 통할 수 밖엔 없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역설의 제시인가? 그렇다면 이는 '러셀의 역설' 이후 가장 흥미로운 역설의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를 '버그만의 역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쨌든 그녀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남성들에게 있어 적어도 한번 쯤은 상사병에 버금가는 열병을 치르게 하기에 충분한, 영원한 '베아트리체(Beatrice)'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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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As Tears Go By도 같이 있어야 될 거같은데요..^^
휴가때 한번 보아야겠네요~설명을 보았으니 더 재미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