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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에서 희망을 사세요 세상에 하나뿐인 수공예술품들 2주년 맞은 홍대 앞 희망시장
지난 15일 오후 희망시장이 열린 홍대 정문 앞. 놀이터 바닥에 한 도예가가 천을 깔고 조심스럽게 진열한 찻잔과 찻주전자 세트 사이사이엔 “만지지 마세요”라는 푯말 대신 “만지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다른 한 쪽에서 옷걸이에 걸어 놓은 알록달록한 셔츠들을 뒤적거리던 한 손님이 소녀의 얼굴이 그려진 분홍색 티셔츠를 가리키며 “얼마예요?”가 아니라 “본인을 그리신 건가요?”라고 물었다. 입을 옷을 사려던 게 아니라 옷이라는 캔버스에 그려진 일러스트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 한 젊은 작가는 방금 전 자신이 만든 명함갑을 사간 손님을 불러 세워 명함갑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다. 자신이 파는 모든 물건은 다시는 똑같이 만들 수 없는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팔릴 때 마다 기념 촬영을 한단다.
이곳에서 독특한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와 가방, 명함지갑, 노트 등을 올망졸망 늘어놓고 좌판을 벌이던 미대 졸업생 최송이(24)씨는 “제 그림을 알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작년 10월부터 나오고 있다”며 “희망시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작품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검은 선을 이용한 그림만 그렸는데 지금은 색상도 화려해지고 옷이나 가방 등으로 적용하는 범위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파는 것 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며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앞으로 전시는 꾸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4월부터 매주 희망시장에 참여해 왔다는 프리랜서 금속공예가 표명선(39)씨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신선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독특한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어서 항상 배우러 오고 있다”며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이곳에 나오는데 따로 쉬는 날이 없어도 소풍 오는 것처럼 피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놀이터에는 전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작가들이 각종 수공예품과 미술품, 서적 등을 들고 나와 좌판을 벌였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호기심에 들른 사람들까지 약 5000여명이 희망시장을 찾은 때문인지 좁은 놀이터는 오후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2년 전에 단 12명의 작가가 500여명의 구경꾼을 모으며 시작했던 희망시장이 규모만 보면 10배 가량 성장한 셈이다.
이곳을 지나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감탄을 연발했다. 이곳에서 수제 달력을 산 미국인 샘(23)씨는 “학교 주위에 형성된 희망시장 같은 곳은 지금껏 둘러본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유일한 곳”이라며 “학생들과 젊은 작가들이 만든 오리지널 작품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선물로 달력을 샀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출신의 렉서스(23)씨도 “훌륭한 예술품들이 많아서 한참을 골라 마음에 드는 팔찌를 하나 샀다”며 “베리 나이스(very nice·매우 좋다)”를 연발했다.
그러나 희망시장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소위 ‘팔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순수 미술품 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실용적인 공예품들이라서 순수 미술 작가들의 참가 비율은 오히려 감소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 미술평론가 겸 작가 박원석(46)씨는 이날 순수 예술작품을 전시한 소수의 작가 중의 한 명이었다. 박씨는 이날 티슈와 김에 즉흥시를 적어서 한 장에 1000원씩 받고 팔았다. 대구에서 열리는 예술작품 벼룩시장인 ‘깨비 예술시장’에 몇 차례 참여해 오던 박씨는 홍대 앞 ‘희망시장’에는 처음 나왔다고 한다. 그는 “아직은 주위 상인들이 더 덕을 보는 것 같고 미흡한 점들이 많지만 이곳에 나와 일반인들도 예술적 문화를 누리고 싶어한다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것을 발판으로 10만~100만원대로 일반인들이 월급에서 큰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중·저가 예술작품 시장이 활성화돼야 작가들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희망시장에서 공예품 하나를 사는 것을 시작으로 일반인들이 손으로 만든 작품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순수예술작품을 사는 풍토도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수공예협동조합을 구성하고, 현재 1만 3000여명의 작가가 등록된 희망시장을 법인화시켜서 온라인까지 시장 영역을 확대하는 등의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은기자 2ruth@chosun.com>2rut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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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5.18 13:22 01" / 수정 : 2004.05.18 13:45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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