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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사적저널 24 - Jordan Trip 요르단 여행(9/30~10/3)
제목: Jordan TRip
날짜: Wed, 3 Oct 2001 20:14:58 -0400
사진은 물이 제법 많을 때의 요르단 강입니다. 이 사진은 아마도 갈릴레아 호수 가까이에서 촬영한것이지 싶습니다. 둘째 사진은 느보산 정상에 있는 구리뱀 구조물입니다.
2001. 9. 30 - 10. 3
Jordan Trip
Enon - Mount Nebo - Madaba - Wadi Mousa - Petra - Wadi Rum - Amman - Jerash - Allenby Bridge - Israel
오늘은 요르단으로 먼 여행을 떠나는 날이지요. 먼 곳으로 떠날 때는 언제나 그랬듯이 8시 30분에 출발하여, 예리고를 비껴서 알렌비 브리지를 넘었습니다. 알렌비는 2차대전때 호주군과 영국군을 지휘하여 팔레스티나에서 터키(오스만 투르크) 군과 싸웠던 영국의 장군입니다. 알렌비 브릿지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경계지요. 요르단에서는 킹 후세인 브리지라고 부르고요. 국경을 통과하느라 버스 밑바닥까지 지뢰탐지기로 조사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올 때의 조사와 비교하면 정말로 새 발의 피지요. 저는 여권사진이 너무 젊다고 곤욕을 치뤘어요,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올 때. 안경을 벗어보라 어째라 말이 많더군요. 여권 갱신할 때 귀찮아서 몇 년전 사진을 그대로 쓴게 탈이었지요. 이스라엘에 갈 때는 여권사진도 새롭게 해야되요. 요르단 영토로 들어오니 요르단 장교 한 사람이 우리 버스에 동승하더군요. 요르단을 떠날 때까지 함께 다닌다고 하네요.
다리 밑으로는 본래 요르단 강이 흘러야 하는데, 바짝 말라있었어요. 요르단 강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한 강 정도를 연상하기 쉬운데, 실은 무척이나 작은 규모입니다. 거의 좀 큰 규모의 시냇물이라고 하면 맞지요. 더욱이 요즈음은 갈릴레아서부터 사해에 오는 동안 관개용수로 너무도 많은 물을 빼 쓰기에 더욱 가늘어졌지요. 좁은 데는 정말 뛰어서 건널 정도 밖에 안된답니다. 그래 사해가 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원래 요르단 강에서 물을 공급받아야 되는데 유입되는 물은 없고 계속 증발만 하고 있으니 줄어들 수 밖에요. 그래 오래전에 사해 바로 옆에 세웠던 요양소등이 지금은 사해와는 한참 떨어져 있어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해는 꾸준히 그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요르단은 2차대전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던 나라입니다, 사우디나 이랔, 이란등과 마찬가지로. 모두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하면서 전쟁후의 독립이라는 감언이설로 아랍의 민족주의를 부추겨 지금의 터키(당시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게 꼬드긴 결과입니다. 인구가 한 5백만 정도인데 국토의 80%가 사막이고, 아랍 국가치고는 석유자원이 전혀 없는 아주 자원이 빈곤한 나라입니다.
그래 석유는 이랔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로, 지난번 걸프 전때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이 서방 연합군을 지지하였지만, 요르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랔편에 설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많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67년 전쟁때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웨스트 벵크지역을 제외하면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인고로 많은 국민들이 다른 아랍국가에서 노동하여 번돈을 국내로 송금하여 국가 경제가 돌아갔는데, 이랔편에 선 관계로 전쟁에 즈음하여 이주노동 하던 요르단 사람들이 다른 아랍국가에서 강제추방 되었거든요. 1999년에 후세인이 죽고 그의 아들 압둘라가 왕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때 웨스트 벵크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후 1988년 킹 후세인은 이 지역을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고 1994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지요. 대부분의 요르단 사람들은 사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사실 요르단 사람이나 팔레스타인 사람의 구별이 없었지요. 영국이 지도에서 선을 그어 만든 것이니까요. 지금 압둘라 왕의 부인도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 평화조약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나, 물론 극단적인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겠지요.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은 후 관광수입이 23% 정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덕분에 지금은 파편을 맞고 있는 셈 이구요.
요르단은 전체 국가산업 중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율이 2번째라고 할 정도로, 너무도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하긴 거의 모든 땅이 불모의 땅이니 모든 것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이지요. 그나마 관광수입은 이스라엘에 왔던 사람들의 일부분이 요르단을 방문하는 정도인데, 작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정정불안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구요.
저희들이 처음으로 간곳은 요르단 동편의 애논(Enon Sapsaphas- Bethany of Transjordan) 이라는곳. 성서에서는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는 곳입니다.
요한 1:28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요한 3:2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요르단에서는 이곳을 순례지(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간곳이 느보산 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모세가 약속된 땅을 이곳에서 바라보고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곳 이지요^^. 하긴 뭐 모든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기는 하지요! 시나이와 네겝 사막등 두렵기까지한 광야를 사십년이나 방랑하다가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 약속된 땅을 보니 네겝과 다를바없는 황무지였기에, 아니 이곳에 오기위해 그렇게 고생을 했나 하는 심정에 억장이 무너져서 객사했다고 하지요. 느보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요르단 건너편은 정말 모세가 심장마비로 죽을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불모지입니다. 프란치스칸들이 이곳에 성당을 짓고 관리하고 있는데, 정상에 철사같은 재질로 뱀의 형상을 십자가에 달아놓은 구조물이 서있습니다.
요한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느보산에 오른뒤에 남쪽으로 몇시간을 달려서 페트라가 있는 와디 무사에서 일박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갔던 네겝사막 지역인데, 요르단 동쪽인 것만 다르지요.
모세를 아라비아어로는 무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와디 무사는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솟게 했다는 그 지역입니다. 와디 무사로 가는 도중에 사막의 서쪽 지평선으로 지는 장엄한 일몰과, 동쪽에서는 만월이 떠오르는 장면을 보았지요. 사막의 능선들이 참 로맨틱하게 보이던데요, 달빛이라서 그런지 더 부드럽고. 10월 중순경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때쯤 지리산 장터목에서 노고단으로 지는 해와는 아주 다른 감흥을 자아냅니다. 이렇듯 환경이 달라지면 느껴지는 정서도, 드는 생각도 다를 수 밖에 없을진대 진리를 체험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할 수 밖에 없겠지요.
페트라는 그리이스어로 바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Pietro)도 같은 말의 음역이지요. 나바테아인들이 기원전 200년경에 건설한 도시인데, 사암을 깍아서 많은 궁전식의 무덤을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저는 따로 부탁을 해서 이번만큼은 독방을 썼습니다. 아버님 기일에 혼자 지내고 싶어서. Duty Free Shop 에서 산 위스키를 한잔 하구요. 요르단에는 페트라와 와디 룸이 제일 유명합니다. 페트라를 본 다음 와디 룸으로 갔지요. 페트라는 인디아나 존스를 촬영한 곳이고, 와디 루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를 촬영했던 장소입니다. 전에 낙타를 타며 사막을 오가던 베두윈들이 지금은 일제 토요타 짚차를 운전하며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살고 있더군요. 낙타도 타보고, 그들의 텐트에서 전통차와 식사도 하고 그렇게 몇 일 지내고 오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인터넷 카페에 가서 메일을 보낼겁니다.
성서사적저널 25- 휴일
제목: 휴일
날짜: Thu, 4 Oct 2001 21:20:10 -0400
오늘은 하루 쉬는 날인데 몸이 좋지 않아 오후에 외출하려다가 그만 두었어요. 바로 옆의 우리 고난회 수도원 에 가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쥬세빼 신부가 외출중이라서 전화도 못했네요.
사람이란 역시 몸과 마음이 일치해야지, 따로 놀면 병이 나나 봅니다. 요르단 여행은 마음이 편치 않은 중에 했기 때문인지 피로감도 더하고 가벼운 감기까지 왔네요.
무엇이든 마음이 내키지 않는것을 하면 무리가 따르지요.
나바테아인들의 페트라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었는데, 오늘 레슬리교수와 이야기하는중에 풀렸어요.
왜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 샌드스톤을 깍고 무덤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물론 이해가 안가면 외워야 하지만, 그러자면 외울게 너무 많찮아요^^ 물론 장엄하기도 하고 멋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이집트했들처럼 문화가 죽음 지향적이랄까, 아니면 사후의 세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은 문화라면 이해가 되지만 나바테아인들이 살던 지역을 발굴한 현장에서는 그런 증거가 없거든요. 레슬리 교수는 참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위트랄까, 정말 스마트 가이입니다. 자주 좀 우스운 질문을 하는 미네소타 출신의 신부님이 질문을 햇습니다. "쉬는 날 무엇을 하느냐고?" 레슬리 왈 "쉬는 날의 뜻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라고. 덧붙여서 "그것은 Theory 이고 It's up to you" 하더군요. 이번 일요일에 떠나는 열흘의 갈릴레아 강행군 중에 하루 쉬는 날이 있거든요. 매일 매일 버스를 타고 한 사적지를 방문하고 둘러보고 강의 듣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사적지로 가고 하는 것이 열흘이나 계속되니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하루 쉬는 날이 있는건데, 유난스러운 미국인들은 쉬는 날도 무엇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레슬리에게 물어보니 교수 왈 첫 번째 이유는 "할 수 있어서 했다" 는 것이었지요. 즉 돈과 시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페트라는 하나의 "스테이트먼트(선언)" 이라는 것이지요.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텐트생활을 하던 베두윈 들이었는데, 축적한 돈과 시간이 있었기에(시나이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막의 대상로를 장악했었거든요- 그들은 사막의 기후나 길을 잘 알뿐 아니라 자신들만이 아는 물 저장소를 많이 만들어 두었었지요), 우리도 이런 Monument 를 건축할 수 있다는 과시였다는군요. 사람의 과시욕은 아무도 못 말리지요?
로마시절에는 필라델피아로 불렸던 현재 요르단의 수도 "암만" 북쪽에 Gerash 라는 로마의 도시가 있는데, 그 발굴현장도 어마어마 했거든요.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 화려함이나 규모가 대단했구요, 그 사막의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하고 물이 펑펑 흘러나오는 분수대를 만들고. 레슬리는 그 도시의 첫 번째 목적이 토착민들로 하여금 로마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토착민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장대한 건축물, 도시계획, 압도적으로 우월한 문화를 본보기로 보이면서 로마의 지배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요.
아마 미국은 틀림없이 9.11에 대한 다른 희생양을 찾아 칠겁니다. 제국은 제국이지요. 로마제국처럼.. 그러지 않아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속성이 있는데, 저렿게 체면이 깍이고서도 가만히 있을만큼 성숙했을리는 없으니까요. 체면말고라도 제국주의 국가의 가장 큰 산업은 전쟁이니까 경제가 돌아가려면 전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겠지요..
제라쉬는 과거에 마르꼬복음 5장에 나오는 게라사로 잘못 오인된적이 있어요.
1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게라사의 광인에게 들어있던 군대라는 마귀를 쫒아내고, 그 마귀들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 모조리 갈릴레아 호수(마르꼬 복음에서는 바다라고 표현) 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제라쉬에서 갈릴리 호수까지는 족히 50마일은 넘거든요. 그러니 그 거리를 돼지 떼들이 질주하여 순식간에 빠져죽었다면 정말 장관이었겠지요! Holy Pigs!
요르단 여행 중에 아카바(홍해에 접한 요르단 유일의 항구) 북쪽 25마일정도의 거리에 있는 와디 룸(Wadi Rum) 에 갔었지요. 이곳은 자연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입니다.
물론 사막이지요. 사막인데 양쪽으로 용암(화강암)으로 된 거대한 봉우리들이 줄지어있고 가운데는 평평한 땅, 비가 오면 강이 되는 곳입니다. 저희들은 지프를 타고 이곳을 한 바퀴 돌았지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기억하세요? 영화중에 로렌스가 아랍부족을 설득하여 오토만 투르크(터키)의 요새가 있는 아카바를 공격하러 가게 되는데, 그때 사막을 건너는게 큰 도전이 되잖아요. 영화에서는 로렌스를 영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극적으로 가던 길을 되돌아가서 낙오한 한 아랍인을 구해 돌아오게 되지요. 다른 아랍인들은 모두 샘에 도달해서 기다리고 있고. 바로 그 샘이 있는 곳입니다. 영화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하는군요. 지금은 영화덕분인지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아서 베두윈들은 낙타를 타는 대신 일제 토요타 지프를 운전하면서 생활하고 있구요. 로렌스의 샘도 영화와는 달리 지금은 커다란 탱크를 만들어서 그곳에 샘물을 연결해 저장하여 쓰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식사 후에 갈릴레아 여행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오늘이 목요일, 내일과 모레 수업을 하고 일요일에 갈릴레아로 떠납니다. 일정은 열흘입니다. 지중해를 따라 올라갔다가 갈릴리 호수 주변의 성서사적을 보고 골란고원을 거쳐 다시 아라바 계곡으로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내일이나 모레 인터넷 연결을 한 후에는 , 돌아오는 10월 16까지 소식을 못 전하겠네요.
참, 저희들 이집트 여행은 취소되었어요. 너무 위험하다는군요. 미국인들이 위험하겟지요! 하지만 어쩝니까! 그들이 조직한 프로그램에 몸담았으니...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네요. 그 대신 터어키의 이스탐불과 사도 요한이 유배되었던 섬인 파트모스로 간다고 합니다. 꿩 대신 닭인지, 아니면 닭 대신 꿩인지는 그 후의 삶의 질이 결정해주겠지요! 하나의 페이퍼를 끝내 제출했고, 다시 신명기계 사관과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해서 시작했습니다. 안식년 맞나, 옌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