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살펴보기
신자들이 응답할 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전례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기도다. 전례에 관해 정해진 내용과 절차를 담아 교황청의 권위로 반포하는 것이 ‘전례서’다.
모든 전례와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다. 1965년 막을 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반포된 미사 전례서로는 기도문을 담고 있는 「로마 미사 경본」과 선포될 말씀을 담고 있는 「미사 독서」, 성가를 담고 있는 「미사 성가」가 있다.
미사의 기도문과 독서는 교회 달력인 전례력, 교황청이 정한 기도문과 독서 목록을 따른다. 지역마다 언어가 달라도 전 세계에서 미사가 같은 구조와 내용으로 봉헌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로마 미사 경본」은 각 전례일에 따른 미사의 고유 전례문들을 수록한 것이다.
경본(經本)의 라틴어판 원본은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발행하며, 번역본은 각국 주교회의가 그 나라 말로 번역한 뒤 교황청의 추인을 받아 지역 교회의 공식 미사 경본으로 사용한다. 지역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적응 지침과 고유 전례일(축일ㆍ기념일), 전례일 등급 변경도 교황청의 추인을 받아 확정된다.(교회법 제838조 참조)
미사 경본의 역사
초창기 교회는 고정된 전례문 없이 즉흥적으로 기도를 바쳤다. 3∼4세기 들어 미사 전례문을 글로 적어 낭송했으나 경본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사제가 전례문을 즉흥적으로 낭송하거나 임의로 작성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407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모든 전례문은 공적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면서 전례문을 고정했다. 6세기 이후 한 권으로 묶은 전례집이 등장하는데, 이를 「성사집」(聖事集)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미사’라는 용어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고, 성찬례를 그냥 ‘성사’라고 불렀다.
‘미사 경본’이라는 용어는 중세 때부터 사용됐다. 기도문과 독서, 성가 등 미사에 사용되는 모든 전례문을 한 권으로 모은 「통합 미사 경본」 형태였다. 「통합 미사 경본」 형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유지되다가 공의회 이후 다시 「미사 경본」, 「미사 독서」, 「미사 성가」로 분리됐다.
미사 경본의 역사를 크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로 나눌 때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것은 1570년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미사 경본이다. 중세 시대 성당과 수도회별로 개별적으로 사용하던 미사 전례문을 통일한 것으로, 공의회 직전까지 수차례 개정됐지만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1970년 새 미사 경본이 나오기까지 400년간 사용됐다. ‘비오 5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바오로 6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의 결과를 반영해 1970년 펴낸 것이 「로마 미사 경본」(표준판)이다. ‘표준판’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라틴어 미사 경본을 표준으로 삼아 각 나라말로 번역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공의회 이전에는 전 세계 모든 미사를 라틴어로 봉헌했기 때문에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신자들은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웠다. 이 미사 경본은 성경 말씀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존 20%에서 80%까지 늘렸다.
표준판이 반포된 지 5년 후인 1975년에는 그동안 발견된 개선점을 반영한 「로마 미사 경본」(제2표준판)이 나왔다. 그때부터 27년이 흐른 2002년에는 제3표준판이 반포됐다. 제3표준판은 표준판이 반포된 후 30여 년간 각 나라 교회가 모국어로 미사 경본을 번역하면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 적용했던 수많은 ‘적응’ 사례를 반영한 것이다.
제3표준판의 사소한 오류를 수정하고 보충한 것이 2008년에 나온 제3표준 수정판으로, 현행 「로마 미사 경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반포된 미사 경본들은 모두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틀어 ‘바오로 6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주요 변경 내용
「로마 미사 경본」 한국어판은 라틴어판 원본(제3표준 수정판)을 우리말로 온전하게 옮긴 것이다. 변경된 내용이 이전보다 원본의 본래 뜻에 더욱 충실하다는 의미다. 번역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맡았다. 변경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사 통상문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에서 추가된 ‘영’(spiritu)은 사제 개인의 영혼이 아니라 사제가 성품성사 때 받은 사제의 은사와 직무를 가리킨다. 사제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일깨운 것이다.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에서 바뀐 ‘많은’은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는 성경 본문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과거에 ‘모든’이라고 쓴 것은 예수 그리스도 속죄 예물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에서 ‘보라!’는 과거에는 본문에 있다가 삭제한 것을 이번에 다시 살렸다.
▲ 전례일 명칭
▲ 한국 고유 전례력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 신심 미사로 조정된 것은 같은 성인은 한 번만 기념한다는 원칙에 따라서다. 한국 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9월 20일)에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고 있다.
▲ 기타
미사 전례문을 노래로 바칠 수 있도록 라틴어판 「로마 미사 경본」의 그레고리오 악보를 다듬어 실었다. 라틴어판의 4선 악보 가락을 존중하되, 사제와 신자들이 우리말로 쉽게 노래할 수 있도록 5선 악보로 바꿔 편곡한 것이다. 음높이는 적절히 조정할 수 있다.
주교회의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따라 마련하고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미사 경본에 삽입한 ‘한국 교구 적응 지침’도 게재했다.
장례 예식에서 고별식은 반드시 시신이 있을 경우에만 거행해야 하지만, 한국 교회는 ‘한국 교구 적응 지침’에 따라 천재지변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유골만 있거나 시신이 없는 경우에도 고별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기도문은 알맞게 바꿔 적용해야 하며, 유골도 없는 경우에는 성수 뿌림과 분향을 하지 않는다.
전례 거행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는 오르간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관악기와 현악기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타악기는 특별한 경우에 신중하게 검토해 사용해야 한다. 악기의 사용은 거룩한 목적에 맞아야 한다.
새 미사 경본은 라틴어판에는 없지만 주교회의가 마련해 교황청의 추인을 받은 한국 고유 미사 전례문을 수록했다.
「미사 독서」와 「복음집」
이번에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과 함께 나온 「미사 독서」는 교황청이 정한 미사 독서 목록과 한국 교회 고유의 미사 지향에 따른 독서와 복음,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을 집대성한 책이다. 「미사 독서」가 교황청 추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발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례 시기와 미사 지향에 따라 총 4권으로 이뤄졌다. 「미사 독서」 독서와 복음 본문은 한국 천주교 공용 「성경」을 따랐고, 화답송 등에 쓰이는 성경의 시편은 「성경」 본문을 전례용으로 윤문한 전례 시편을 따랐다.
「복음집」은 미사 독서 중에서 복음만을 모아 복음서 각 권과 장절을 순서대로 엮은 책이다. 복음집은 주교ㆍ사제 서품식 등의 장엄 미사와 주교좌성당을 비롯한 크고 웅장한 성당의 미사에 쓰인다. 교회는 복음에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로 미사 때 복음집에 대해 행렬, 높이 들어 올림, 입맞춤 또는 절, 분향 등을 하고 있다. 「복음집」은 보통 겉표지를 품위 있고 아름답게 장식해 사용한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정주 신부는 “신자들에게는 이전 미사 통상문과 거의 달라진 것 없이 사소한 것들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미사 통상문의 문구 하나하나가 신학적으로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새 미사 경본 발행을 계기로 신자들이 미사와 미사 전례에 쓰이는 문구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새겨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22일, 남정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