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국민학교 1
“이 선생, 나하고 같이 가”
아산으로 떠나는 나를 교장선생님께서 후행을 하신단다. 아산까지.
교장선생님과 함께 온양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하셨는지 아산군 교육청 학무과장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야. 집 가까이 해주게” “알았네. 염려 말게”
아주 친하신 분들끼리 오랜만에 만나셨는지 화기애애하시다.
어떨결에 높으신 분들과 함께 하니 마음이 얼얼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음봉면 쌍룡국민학교로 발령을 냈네”
‘으응, 쌍룡.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집에서 가까운 곳에 그런 학교가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는데.... 어딜까 ?’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음, 그래 수고했어. 이선생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어”
교장선생님을 배웅하고 나니 궁금하기 짝이 없다.
집에 와서 이리저리 알아보니 쌍룡은 내가 사는 탕정면과는 이웃면인 음봉면에 있지만 산 넘고 물 건너 30리나 떨어져 있단다.
버스를 타려면 천안으로 나가서, 성환까지 간 후, 다시 쌍룡으로 가야 한다니 도저히 불가능하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던 시기다
이미 발령은 났고, 하숙할 형편도 아니고, 막막하다.
‘그래, 자전거다. 그 길밖에 없다’
천안에 나가서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시험삼아 자전거를 타고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한숨이 났다.
물을 건너고,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 건 보통이 아니다.
1년 동안 그 산을 넘는데 만난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인적이 뜸한 험한 산이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데만도 20분이 걸린다. 헉헉대야 한다
대신 내려가는 길도 길어서 땀을 식히는 데는 도움이 됐다.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자전거를 타고도 한 시간이 넘는다
‘이 거 보통 일이 아니네. 비 오는 날이나 겨울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
어쨌든 새 생활은 시작됐다.
‘4학년’ 눈빛이 초롱초롱한 착하고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나도 이제 5년차,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잘 따르고 학부모님들도 순박하고 우호적이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출퇴근이 어렵지만 견딜만 하다.
집 떠나 있다가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니 마음도 놓였다
집 형편은 어수선했지만 새벽에 학교로 떠나고, 밤중에나 돌아오니 집 사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월급타서 전해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선생님들도 젊은 사람이 많아 마음이 잘 통했다.
선배, 후배 하면서 동년배가 다섯이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천안에서 출퇴근하느라 퇴근하면 버스를 타고 곧장 떠난다.
아산 인주가 집이라 그 동네에서 하숙을 하는 돈우와 어울렸다.
돈우는 유모어 감각이 뛰어나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여선생님들이 다가오길 피했다.
자칫하면 허리가 꺾어지게 웃어야 했고, 어떤 때는 복도를 기어가며 자지러져야 할 봉변을 당하기도 했으니까....
나도 그 때까지는 즐겁게 웃고 웃길 줄 알았었다. 그리운 시절이다.
퇴근 후 둘이서 술 한잔하면서 노닥거리는 것이 즐거웠다.
거의 매일 함께 하면서도 그냥 헤어지기 어려웠다.
나는 집에가면 골치 아파 잊고 싶었고, 돈우는 하숙집에 들어가면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며칠을 계속 마시다 보면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내가 퇴근하자마자 돈우 몰래 학교를 빠져 나와 허겁지겁 자전거를 끌고 20분을 걸려 그 높은 산을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자기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법
한숨을 푹 쉬고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저 멀리 학교 교문이 보인다.
그런데, 돈우가 교문 앞에 서서 손을 올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이런, 이 걸 어떻게 하지 ? 그냥 넘어가 ?’
한 참을 고민하다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돈우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내려가는 길이라 금방 도착한다.
돈우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득의양양하다.
그래서 또 한 잔 걸치는 하루가 된다.
다른 하루는 돈우가 술을 먹지 않으려고 나 몰래 피해 나간다.
하숙집에 들어가 불을끄고 숨는다.
그러면 내가 찾아가 “돈우야. 돈우야” 부르지만 조용하다.
내가 뻔히 알고 있는데도.....
그러면 방 옆, 옛날 화장실에 놓여있는 자루가 길게 달린 똥바가지를 든다.
돈우 방 창문을 열고 들이밀며, 휘휘 휘두른다.
두어번 휘두르기도 전에 “아이구, 아이구 나갈게. 제발 그만해” 항복한다
효과가 상당히 빠르다
그런 날은 둘이 만나 코가 휘일 정도로 마신다.
술자리가 끝난 후에는 내가 문제다.
깜깜한 한 밤중, 희미한 자전거 라이트에 의지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집으로 가야 한다,
인적없는 높은 산은 무섭기까지 하다, 산짐승도 두렵다
산 위로 오른 다음에는 빨리 산속을 벗어나려고 내리 밟는다.
그런데 시골 흙길에는 마차가 지나간 길에 푹 파인 자욱이 있다.
거기에 바퀴가 빠지면 여지없이 넘어진다.
빠른 속도로 내리 밟다가 넘이질 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운동신경이 있어서 넘어지려는 순간에 자전거를 집어 던지고 몸을 날려 땅위에 설 수가 있었다.
한 번 넘어지면 온 몸이 까지고 얼굴도 긁힐 수 있는데, 번번히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 몸이 땀에 젖는다.
산을 넘고 인가의 불빛이 보이면 안도가 된다
집에 들어서면 모두 잠들어 있고, 나도 쓰라진다.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