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읽기모임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드립니다.
새삼스럽게 뒤져보니 여기 모임을 제안하는 글을 올린 게 작년 4월 21일, 그리고 첫 모임이 5월 10일이었더군요.
이후로 13번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12번째가 올 1월 10일이었는데 유난히 추운 날이었는데다가 연초라 그 때 모인 분들이 적어서 대충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다음 모임에서 다시 한 번 내용을 확인하자고 해서 13번째 모임을 위한 요약문은 따로 올리지 않았으니까 요약문은 12번만 올렸습니다.
그리고 1월 24일에 13번째 모임을 가졌는데 지금껏 모임에 대한 보고조차 올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가 저의 게으름 탓이고 두번째는 다들 바쁘신 탓이며 세번째는 그날도 새해 첫번째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이야기를 특별히 정리해서 올릴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날, 다음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 2월은 학교도 방학이니 우리도 방학을 할까 하다가 2월 14일 한번은 모이고 두번째만 쉬기로 했습니다. 사실 의료생협으로서는 2월이 매우 바쁜 달이기도 하거든요. 다 아시다시피 2월 25일은 전주의료생협 총회가 있는 날이고 회의자료를 준비하자면 사무국은 눈코뜰 새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2월 14일에 읽을거리를 1월말까지 여기 카페에 올리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올린 분이 없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느 글을 요약해야할지 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함께 읽고 싶은 글이 많았습니다.
김덕진 신부의 <철거된 '남일당'에서 시대를 본다>를 읽으면서는 여러 차례 눈물을 닦아야 했던 것같습니다. 이미 잊혀진 사건이 되어가고 있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과거'가 되어버리고 있는 '남일당' 또는 '용산'.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철거민이라는 말이 그렇게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제게 다가온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거민!
말 그대로 삶의 터전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긴 사람들을 가리킴인데 그게 지금까지는 그냥 그렇게 쓴 글자로밖에 읽히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필자가 쓴 것처럼 그들은 정말 뭐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내가 살던 잠자리, 삶의 터전을 그대로 놔두라는 요구 때문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게 철거민이라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게 아니라 그저 건성이었다고 해야겠지요. 그, 별것도 아닌 요구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그들이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사회인지를 절감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송동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국장의 <학교급식 논의의 재구성>도 잘 모르고 있었던 학교급식 문제의 실상을 잘 알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사실 학교문제, 교육문제가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해당 학교에 다닐 때만 잠깐 관심을 가지다가는 잊어버리는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지지난번에 읽었던가요? 김종철 선생의 글에서 무상급식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는 했지만 학교급식 문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글 또한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계삼 선생의 <근대적 몰상식을 물구나무 세우다>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을 '밑줄을 그으'며' 읽고 쓴 글인데 러미스 깊이 읽기를 아주 잘 도와주는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몇 년 전에 출판된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 이어 최근에 나온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같은 러미스의 책은 물론 직접 사 읽으면 더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이 글만으로도 러미스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황대권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의 <애니미즘의 부활>은 우리가 흔히 미신으로 치부해버리는 영성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귀한 글이라 생각되었습니다. Anima Mundi. '우리에게 친숙한(?) 영어로 옮기면 "Soul of the World"' 그러니까 '세계 영혼'이랍니다.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 현대문명이 얼마나 반생명적 가치에 기초한 것인지,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스며있는 '정령'의식은 자연과 인간이 결코 따로 떼어낼래야 낼 수 없는 공동운명임을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빠져있는 이 물질중독으로부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제부터는 가난해지기 위해 아니마문디를 회복해야 한다'는 그의 호소가 귓전을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 <녹색평론>을 통해 기본소득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 접할 수 있었던 세키 히로노 씨의 글이 이번에도 또 올라와 있습니다. <근대 조세국가의 위기와 기본소득>에서 히로노 씨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이 주로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것인 데 반해 클리포드 더글러스(1879-1952)의 사회신용론을 바탕으로 정부통화에 의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 가지 위기, 즉 '피크오일에 의한 원유생산량 감소, 달러 기축통화체제 아래에서의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와 리먼쇼크 이후의 그 파탄, 국가부채의 중압 밑에서의 근대 조세국가의 위기'에 대해 사회신용론 방식이 얼마나 말끔하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의 실현을 어렵게 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결론적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똑똑히 눈을 뜨고 끈질기게 학습을 계속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추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번역가 이한중 씨의 <세상은 다시 넓어진다>입니다. 이는 필자가 번역하여 출판할 예정인 <장기긴급상황>이라는 책에 대한 소개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책 선전만은 아닌 것이 이 글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글의 제목에서 세상이 다시 넓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간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석유문명과 교통, 통신의 발달로 세상이 많이 좁아져왔다고 할 수 있었던 체제가 이제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단계에 왔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석유문명이 가져온 기후변화만 하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서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는 방식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어느날 갑자기 빙하기의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화석연료시대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장기긴급상황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이 글(혹은 책)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가 3월 새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그 마무리 단계인 2월이 매우 바쁜 계절이기도 할 것이고 특히 의료생협으로서는 새로 개정된 생활협동조합법에 따른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음 주 월요일 독서모임이 무리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참여하시는 분들이 숙고하셔서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저렇게 장황하게 여러 글을 요약한 것은, 만약 이번 모임이 무리일 경우에 대비하여 개별적으로라도 정리를 하실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은 오프라인을 통해서라도 연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모임을 쉴 경우, 3월부터는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이후의 계획에 관해서도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3월 첫모임은 3월 14일이 될 것입니다. 모일 날짜뿐만 아니라 함께 읽을 글도 선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월호는 3월 들어서 배달될 것이므로 3월 첫모임은 1-2월호(116호)에 실린 글 중에서 선택해야 하겠지요. 다음 주(2월 14일)에 모이지 못하더라도 2월 25일 총회에서는 다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첫댓글 교수님도 많이 바쁘실텐데 꼼꼼하게 정리해 올려주셨네요 사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펴보지도 못했는데 ... 덕분에 잠깐이나마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서모임은 3월 14일 월요일 7시에 있습니다. 그동안 느긋하게 음미하며 행복한 밥상 (녹색평론) 맘껏 드시고 만나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