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의 실험적 문화 공간(The Story of Royal Cuisine), 궁연(宮宴)
궁궐의 잔치를 뜻하는 궁연의 영문 풀이는 ‘The Story of Royal Cuisine’이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궁중음식과 우리 식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아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미 있는 것에 파묻히지 않으면서 오늘의 감성으로 우리 음식과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가는 궁연을 만나본다.

과거에 발이 묶이면 새로운 지경을 개척하지 못하고, 과거의 유산을 귀히 여길 줄 모르면 현재의 깊이가 없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궁중음식 전문점 궁연의 화두는 ‘전통을 중심에 두면서 어떻게 더 넓게 펼쳐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북촌의 중심인 가회동에 문을 연 궁연은 그런 화두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우리 음식과 문화의 실험적 문화 공간이다.
“전통에 갇혀 있으면 앞으로 못 나가죠. 전통의 본질을 살리면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아무렇게나 섞여 보여지는 우리 음식이 아니라 전통은 전통대로 바르게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해서 보여주려 합니다.”
궁연의 그런 고심과 노력의 흔적은 궁연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단순한 공간 구성과 색감의 통일
우선 공간을 둘러보면 장식을 최대한 자제하여 단순하게 디자인하되 음식과 사람이 돋보이도록 기획했다. 생활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여 전통 한옥의 분위기가 아닌 현대적인 공간에서도 궁중음식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건물 바깥쪽으로는 데크를 만들어 햇살을 즐기며 다과를 들 수 있도록 했고, 진정한 야연(野宴)이 가능하도록 야외 정원을 마련해두었다. 음식을 준비해 나가는 주방은 통유리로 오픈해서 손님들도 볼 수 있게 하고, 서빙하는 직원들도 드나들면서 요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전체적인 색감은 짙은 밤색, 치자색, 지백색 등 세 가지를 기본 색상으로 삼았습니다. 짙은 밤색은 사람과 자연을 아우르는 대지를 상징하고, 치자색은 식감을 자극하는 동양의 입맛을, 지백색은 순수하고 소박한 한국인의 정서와 덧칠하지 않은 여백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에 생동감을 주고자 서공임 씨의 오방색 민화를 전시했는데요, 가지나 복숭아 등 음식 재료가 숨어 있는 화려한 오방색 우리 민화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의 풍요로운 이미지와 함께 전체적인 구성에 경쾌함을 주기 때문이죠.”
음식이 담길 그릇 역시, 오랜 시간 고심한 부분이다. 그릇은 라기환과 백소연 작가의 시노 유약을 입힌 그릇과 삼백자, 백자, 세 가지 느낌의 그릇을 쓰는데, 따뜻한 음식은 시노 유약을 입힌 그릇, 전채는 삼백자, 전통적인 상차림 반상에는 백자를 쓴다. 그릇 빚는 사람도 음식 맛을 알아야 담아낼 그릇을 제대로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해 몇 번씩 찾아가 음식을 맛보게 하며 그릇의 느낌과 음식이 어울리도록 했다.
“식기 모양은 대체적으로 사각형 도자기를 쓰고 있습니다. 사각 접시는 좁은 식탁 공간 안에서 공간 활용이 더 좋을 뿐 아니라 모던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궁연의 전체 공간 구성이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이나 인테리어와도 어울림이 있는 그릇 형태를 택했고요.”
상차림의 정적인 리듬과 역동적 리듬
이제 음식이다. 궁중음식이 갖고 있는 밋밋하고 정체된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이 과제이다. 고전음식의 옛 재료와 조리방법 등의 특징은 살리되 변형의 폭을 넓게 두기로 했다. 우선 좋은 음악처럼 한식의 정적인 리듬에 역동적인 리듬이 적절히 흘러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직접 손님상에서 음식이 끓여지는 모습이나 소스를 직접 뿌리고 대접하는 시각적인 면을 고려했다.
상차림은 최고의 대접을 의미하는 1인 상차림을 기본으로 하되, 식사하는 즐거움과 연대감을 위해 함께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요리를 코스 중간중간에 구성했다. 1인상 대접을 받으면서도 함께 먹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볼륨감 있는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사의 흐름은 조용히 가다가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도록 식사 코스 정점에 뜨겁게 끓여 먹는 음식을 배치했다. 독특한 느낌의 내열자기를 선보이는 밈의 온열기 화로에 초를 켜면 불길이 보이고 서서히 뜨거워지면서 음식이 자글자글 끓는 것을 볼 수 있다. 식사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으면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화채와 과자 등 화려한 색감의 식사를 정리하는 메뉴를 내놓는다.
“상차림에서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배제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절판의 경우 일품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코스 요리에서는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 부담스럽기 때문에 구절판 대신 색감으로 보여줄 수 있게 삼색 밀쌈으로 대체했습니다.”
꼭 어떤 전통적인 메뉴에 집착하기보다는 처음 궁연이 생각했던 것처럼 본질을 살릴 수 있게끔 궁중음식의 색감, 구성, 재료, 조리 방법 등을 최대한 살리되 자유로운 구성의 묘미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궁중의 옛 기록을 바탕으로 잔치음식 순서에 맞는 음식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궁연의 음식은 <음식발기(飮食拔記)>와 <의궤(儀軌)> 등 궁중의 옛 기록을 바탕으로 궁중의 잔치에서 왕에게 올렸던 ‘찬안(饌案)’을 기초로 재현하면서 요즘 사람들의 입맛과 정서에 맞도록 배려하였다. ‘궁궐의 잔치’를 의미하는 궁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궁중 잔치에서는 ‘진어미수’, ‘진탕’, ‘진어소선’, ‘진어대선’, ‘진어만두’, ‘진어과합’ 등의 순서로 음식이 나간다. 초반에는 안주 요리로 신선한 계절 별미, 국물 음식, 생선요리, 고기 요리 등이 나가고, 이어 만두나 국수 등의 주식이 나가며, 차와 떡, 과자 등의 후식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궁연반수라’는 입매음식이라 칭하는 첫 번째 상에 밀쌈과 선, 석류탕, 홍시죽순채가 오르고 반상과 다과상이 나온다. ‘궁연죽수라’는 왕족들의 죽상을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추어 짧은 순차식으로 간결하게 재구성한 식단으로, 입매음식은 같고 죽상에는 전복죽, 맑은 찌개, 물김치, 마른찬과 별찬이 나온다.
‘궁연정찬’은 궁중음식과 전골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세 가지 마른안주에 색밀쌈, 오이선, 석류탕, 탕평채와 누름적, 맥적과 백김치, 두부 버섯전골, 반수라 그리고 궁중 떡과 과자, 차 또는 화채로 구성된다. 일본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장금만찬에는 타락죽과 명태껍질채, 수삼누르미, 석류백김치, 연저육 등이 눈에 띈다.
이 밖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 회갑연의 진찬안(1795년)과 고조리서 <산가요록(1450년경)>, 그리고 최초의 한글요리책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 나오는 미공개된 음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식단인 ‘진어별만찬’이 있다.
삼색정과와 함께 내는 차조미음, 연근채와 함께 내는 육사과면, 석류백김치를 비롯해, 궁중만두 규아상과 동아만두, 신선로에 담아내는 금중탕이나 고종이 즐긴 야참인 배동치미 국수와 약고추장 김쌈 등 다채로운 메뉴로 구성된다.
‘식앤’을 통한 한식의재해석 논의

음식에서부터 공간 구성, 건축, 실내 디자인, 그릇, 심지어 음악까지 궁연의 색감에 통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밑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복려 원장은 그동안 ‘식앤(食and)’이라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모임을 통해 한국적인 것의 재해석을 놓고 고민하고 공부해왔다. 어느 분야의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든지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음식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논의든 한식을 새롭게 보는 데 큰 공부가 되었다. 자신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궁연의 조리사는 오픈 전 두 달 정도 교육을 시켰고, 주차와 카운터를 맡은 직원들까지도 실습해서 먹어보는 데까지 모든 교육 과정에 참여토록 했다.
“우리 것이 바르게 알려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식에 솜씨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의 독특한 음식도 선보이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할 우리 술도 새롭게 조명 받게 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천착해온 사람은 조용히 빛이 난다.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을 때부터 우리 음식을 아끼고 사랑해온 한복려 선생의 오랜 ‘천착’이 더 환하게 빛나기를 기대해본다.
궁중음식이 갖고 있는 밋밋하고 정체된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이 과제이다. 고전음식의 옛 재료와 조리방법 등의 특징은 살리되 변형의 폭을 넓게 두기로 했다. 우선 좋은 음악처럼 한식의 정적인 리듬에 역동적인 리듬이 적절히 흘러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직접 손님상에서 음식이 끓여지는 모습이나 소스를 직접 뿌리고 대접하는 시각적인 면을 고려했다.
[알아둘 사항]
위치 : 안국역 헌법재판소 지나 가회동사무소 옆
영업시간 : 정오~오후 3시, 다과 오후 3~5시, 저녁 오후 5시 30분~오후 9시(설과 추석 명절 휴무)
메뉴 : 궁연반수라 2만8000원, 궁연죽수라 2만8000원, 궁연정찬 4만8000원, 일품음식 월과채 3만2000원, 대하찜 4만5000원, 연저육 3만9000원
문의 : 02-367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