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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 4진성원목사님-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
네.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런 말씀 있죠. 그런 말씀처럼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간절히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 충만하게 그렇게 다 받으실 수 있도록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5절까지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5절 말씀 저와 여러분이 한 절씩 교독하시고 마지막 절은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아멘
이제 진성원 목사님 나오셔서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해 주시겠습니다 예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예 또 유튜브로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셨습니까 코로나19 펜데믹이 벌써 1년 반 정도 이상 진행됐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서 우리의 많은 생활 패턴 바뀌었습니다. 우리 신앙 형태도 바뀌었고요. 예배 형태도 지금 바뀌었고.
우리의 사는 것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백신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코로나 팬더믹이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국내만 해도 하루 확진자가 1500 명이 넘었어요. 1600명대에서 1800명대까지 이번 주간 동안. 그렇게 이르렀습니다. 또 어제 조금 전에 전에 전도사님이 설명해 주신 대로 수도권 같은 경우 거리두기 4단계를 2주간 연장한다는 그런 뉴스가 나왔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건지 또 이 이후에 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이 기간을 잘 보내야 될까요. 또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알 수도 없는데 잘 지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여러분께 저도 고민하면서 기도하면서 분명히 드릴 수 있는 한 가지 대답은. 이럴 때일수록 또 앞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거예요. 지난주에 제가 캐나다에 있을때 같은 교회에서 함께 사역했고 또 친하게 지냈던 목사님 지금은 캐나다 한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어요. 그래서 조심해서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서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어요. 이 코로나에 대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에 대해서 저한테 많이 질문하시더라고요 또 사랑하는 교회에 이 코로나 기간 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고 성도들이 또 힘들어 하는 분은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 믿음 안에서 전진하고 있는 것들 실제로 예전에. 현장 예배 또 사정 때문에 또 온라인 예배 드렸던 분들을 총 한 번 출석을 계수해 봤더니 거의 모든 분이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들 또 헌금에 대한 것들.
헌금이 줄지 않고 계속 들여지고 우리 재정 가는 곳에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또한 하나님 말씀 강력한 말씀이 선포되고 있고
또 성도들이 이 안에서도 기도하고 있고 훈련되고 있는 것들 또 우리가 직접 가지도 않는데도 아프리카 선교 가운데 정말 부흥이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니까 굉장히 놀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어떤 시대가 올 것인지 어떻게 대비해야 될 건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저도 책들을 몇 권을 읽었어요. 그리고 기도 하면서 생각도 해봤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가 없어요. 지금도 불확실한 시기를 거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올지를 얼마나 바뀔지. 또 어떻게 신앙생활이 우리 사회생활이 바뀔지 시대가 바뀔지 예측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저희 교회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볼 때 또 하나님의 말씀 또 성령 안에서 묵상해 볼 때 분명한 것이 있어요. 어떻게. 저희 교회가 이 코로나 기간 가운데서도 이렇게 건재하고 또 저희는 멀티사이드 처지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까. 다른 게 아니에요.어떤 책들에 보면 아홉 가지 전략들 9가지들 여러 가지 그런 분석이 나와요. 그런데 그런 분석을 따라가지 않았는데도 이런 놀라운 열매가 있어요. 어떻게 했습니까.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담임 목사님에게 진리의 말씀에 놀라운 은혜들 계시들을 부워주셨어요. 그 말씀에 집중하는 거예요. 예배에 집중하는 거예요 또 예수님께 집중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예수님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진리의 말씀 책을 읽고 또 디스코드 앱을 통해서 기도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했더니 하나님께서 코로나와 상관없이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수많은 프로그램이 우리의 신앙 공동체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기 원하고 그랬을때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는 거예요. 전략이 필요할 때 전략을 주시는 거예요 문이 열려야 될 때 문을 열어주시는 거예요. 사람이 필요할 때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함께하고 계시는 거예요.이게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과 우리 개인의 미래도 똑같습니다 여호수아 1장에 나오는 것처럼 가나한 앞에서 새로운 시대. 여호수아에게 어떤 전략을 주셨습니까. 다른 거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이 율법책을 묵상하여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형통할 것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또 예수님께 승천하기 전에 수제자 베드로에게 가셔서 양들을 의탁하시기 전에 뭐라고 묻습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가장 기본적인 것을 점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이게 코로나 가운데 폭풍 속에서 전복되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바르게 갈 수 있습니까.
또 앞으로 주 안에서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한테 먼저 당부드리고 싶은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본질에 집중하십시오 주님께 붙어있으세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사세요. 그리고 주님 기뻐하는 삶 성실하고 내게 맡겨둔 일. 거기에 집중하세요 곁눈질 하지 마세요. 그러면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게 승리의 비결입니다. 먼저 이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2장 1에서 5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2018년도 9월 중순에 해외 토픽에서 전 세계 곳곳에 엘리우드 킵초게라는 사람에 관한 뉴스가 탑 뉴스로 전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우드 킵초개가 누군지 들어보셨습니까. 아세요 혹시 아는 분도 있을 수 있어요. 거의 드물 수 있습니다. 이분이 뭐냐 하면 누구냐 하면 이 사람이. 케냐의 마라토너예요. 마라톤 선수예요 2018년도 9월 16일 베를린 국제 마라톤 유명한 마라톤 대회에서 42.195 풀 코스를 달렸는데 거기에 이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 초개가 기존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무려 1분 18초 앞당겨서 그 엄청난 거예요. 거리로 따지면 전의 세계 기록 사람의 450m 이상을 더 많이 달린 거예요. 엄청난 거 아니에요. 100미터 트랙이 얼마나. 뭔데요 세계 기록보다도 450미터 이상은 기록이 2분 두 시간 1분 39초에요 이 사람은 이 대회가 있기 6년 전인 2012년에 처음으로 마라톤을 시작한 사람이에요. 물론 육상을 했던 사람이지만 이런 킵초계가 이런 놀라운 기록으로 세계 기록을 경신한 것을 볼 때 세계 육상대가 발칵 뒤집혔어요.
환호했어요. 이야 인간의 한 게임. 두 시간 벽을 깰 수 있는 사람이 드디어 나왔구나.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주를 역사적인 레이스라고 칭찬했어요 칭송했어요 자랑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시각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는 2018년도 베를린 국제 마라톤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경주로 기억될 것입니다. 또 어제 개막식이 있었던 2020 도쿄올림픽 1년이 늦어졌잖아요. 이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많은 단거리 또 장거리 또 많은 경기에서 역사적인 경주 역사적인 경기가 진행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지금 우리 앞에 이것보다 킵 초계의 그런 베를린 2018년 국제대회보다도 올림픽보다도 더 중요한 경주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경주가 우리 앞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주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가 실제로 주목하고 있어요.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빽빽한 구름처럼 누굽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와 있어요 이름들이 모세. 아브라함 에녹 다니엘 그 외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경주를 주목하고 있어요 또 지금은 또 시대가 갔으니까 우리로 적용해 보면 누가 또 보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 야고보 요한의 웨슬리 찰스 피니 성프란시스 썬다싱 키네스 헤긴 목사님 소치하신 그리고 무명의 수많은 믿는 자들이 이 경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안 가. 지금 올림픽 팬더믹 때문에 관중도 지금 못 채우고 올림픽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관중을 꽉 채웠다 할지라도 전 세계에서 만약에 시청한다 할지라도 그 정도가 아니에요. 놀라운 주목을 받고 있는 그런 경주가 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경주이기에 이렇게 주목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중요한 경주에 참석한 그 선수가 바로 여러분들이에요 우리들이에요 한국 대표로 나간 게 아니라 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하늘이 집중하는 그 경주의 선수가 여러분이에요. 1절 보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우리 앞에 당한 경주예요 여러분과 제가 정신 차려야 됩니다. 우리는 관중이 아닙니다 이 중요한 경주가 진짜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데 여러분과 제가 관중이 아니라는 거예요. 놀랍게도 우리가 메인 선수예요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는 지금 경주중이에요. 그것도 이 경주는 우리의 신앙의 경주고 이 경주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삶과 결부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경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경주를 장거리 경주에 빗대어서 또 어떤 싸움에 빗대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장에 보면 그 시작이 강조적 접속사 토이가룬 이러므로 그리고 시작되고 있어요. 그냥 연결하는 게. 아니 강조하면서 얘기하고 있어요 즉 12장의 내용은 독립적이지 않다는 거야. 11장 유명한 믿음장이 있잖아요. 그 믿음 장에서 연결되는 거예요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나오죠 여러 상황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켰어요.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한 자들이에요 그리고 연이어서 이제 나오는 거예요. 그들이 승리했다. 이젠 너희 차례다. 연결돼 있는 거야. 역사를 쭉 보여주고 있는 거야. 이 중요한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경주자가 돼서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올림픽 정도가 아니에요. 유명한 마라톤 대회 정도가 아니에요. 월드컵 정도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가장 중요한 경주를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 보면 특히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삶을 자주 육상 경기 또는 경기의 싸움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서 9징 24,27절이에요
운동장에서 다름 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다른 질 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지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 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다름 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지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움이로다 한 군데만 더 보면.
디모데후서 4장 7에서 8절이에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의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여러분 이게 신앙의 여정이에요. 신앙은 마치 경기와 같아요. 신앙은 마치 경주와 같아요 우리는 관중이 아닙니다 우리는 메인 경주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승리했던 달렸던 그 경주를 이제는 우리 차례가 돼서 우리가 사명 우리가 구원의 그 경주를 달리고 있습니다 다 주목하고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 경주가 아니라 내가 집에 혼자 있어도 경주를 달리고 있는 거야. 여기 예배 드리고 있어도 유튜브를 보고 있어도 경주를 달리고 있는 거예요. 하늘의 허다한 증인들이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 그 모든 것들을 다 보고 있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 구절들에서 보는 것처럼 이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 궁극적인 최종적인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반드시 완주하고 승리해야 할 중요한 경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경주는 단거리 경주처럼 금방 끝나는 경주가 아닙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주 주님만 아세요. 우리의 인생의 시간이 다 할 때까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그때까지 달려야 되는 경주에 싸워야 되는 싸움이 우리는 처음에 잠시 달 달렸다고. 내가 옛날에 은혜 받았을 때 모두 저한테 다 적용되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 그렇게 은혜 받았다고 그때 그랬었는 데로 만족할 수 없는 거예요 또 끝까지 방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달려야 되는 거예요 지난주 우리 김옥경 목사님도 말씀하신 거에요 인내가 중요한 거예요 신앙의 경주에 인내가 중요한 거. 1절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러분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세상은 이 코로나 팬다맥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코로나 팬더믹. 이 중간에도 우리는 계속 지금 경주하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의 신앙의 우리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구간을 달리고 있습니다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 이 사실을 인식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앙의 경주를 어떻게 달리고 계십니까. 멈추면 안 돼요. 늦어지면 안 돼요. 포기하면 안 돼요. 지금 다 보고 있어요. 스포트 라이트가 여러분에게 다 비추고 있어요. 이거는 그냥 어떤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도전하려고 주는 그럴싸한 말이 아니에요. 그냥 사실이에요. 영적인 그렇다면 둘째로 어떻게 하면 이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여러 가지 비결이 나옵니다 첫 번째로 먼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1절이에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여러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가 무엇입니까?
예전에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자세히 설교해 주셨어요. 담임 목사님 저서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경기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먼저 무거운 것은 죄는 아니지만 우리의 경주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케네스 헤긴 목사님이 그의 책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조금 들어보세요.
그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불러서 시킨 일이 아닌 것들. 즉 삶에 있어서 정당한 것들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있어서 당신의 특별한 영적인 경주의 속도를 늦추는 것들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방해할 것입니다
또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도 사도들이 쓴 러브레타 히브리서에 대한 책이에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무거운 것은 무거워서 걸음거리를 방해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 경주자는 경주를 할 때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가능한 가벼운 몸차림으로 나서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을 최대한 가볍게 하여 믿음의 경주에 나서야 한다 저자는 무거운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자체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아닐지라도 믿음의 경주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여러분 아셨죠. 죄는 아니지만 우리의 신앙에 실제 달리는 것에 이 경기에 지장을 주는 속도를 늦추게 하고 방해하는 거라는 거예요 이거 실제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무거운 것이 있습니까 오늘은 좀 생각해 볼 것들이 있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어떤 무거운 것이 있나요?. 잘못된 생활 습관 지나친 취미 생활 관심일 수 있어요.
예전에 저희 교회에 오신 잔생거 목사님이라고 오셨어요 그분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이걸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자신에게는 골프라고 얘기했어요 골프치는 게 죄인가요.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치다 보니까 거기에 막 생각이 (가는거에요) 그게 삶의 어떤 주축으로 자꾸 바뀌더라는 거예요 어떤 목사님은 제가 들었는데 바둑이라고 그러죠. 바둑을 배웠는데 재미있더라는 거야. 설교하러 딱 올라갔는데 우리 청년들은 머리가 깜하니까 흙돌로 보이고. 권사님 저기 백 이렇게 그게 막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 집에 가서 빨리 해야지 누구랑 불러갖고 해야지 기원에 가서 바둑 둬야지 죄는 아닌데 우리의 삶에 자꾸 영향을 주는 거야.
또 어떤 분들에게 쇼핑 지나친 취미 생활 인터넷 사용 유튜브 시청일 수 있어요. 이게 뭐 나쁜 게 아니잖아요. 좋은 정보 과하면 게임일 수 있어요. 지나친 핸드폰 사용 주식이나 코인일 수도 있어요. 애완 동물일 수 있어요. 저도 동물을 사랑하고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한테 그게 무거운 것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말씀드린 거는 굉장히 실제적인 겁니다 영적 세계에서 우리의 경주를 나도 모르게 지금 늦추고 있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거에요. 우리 삶의 패턴에서여러분 이 땅의 경주에서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선수들이 가벼운 옷 신발을 개발하여 착용합니다. 우리고 수영복도 막 바뀌잖아요. 스피드 스케이팅 보면 옷들이 바뀌잖아요. 헬멧도 바뀝니다. 어떤 거는 또 그 당시에 경주자들은 실제로 맨몸으로 알몸으로 경주를 했습니다. 가볍게 한다고 그런데 우리가 세상 관심사에 필요 이상 관심과 마음을 쏟고 있다면 마치 이것은 무거운 모피 코트를 입고 달리는 것 같아요 아니면 치렁치렁 장신구들을 (헉헉거리면서) 매고 막 뛰는 거와 같아요
얼마나 어리석은 경주인데요. 이건 패션쇼가 아닌데요. 잘 달릴 수가 없는 거예요. 금방 지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 25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여러분 우리의 삶을 실제로 돌아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것이 실제 경주이기 때문에 저희는 지금 디스코드 앱을 통해서 마을마다 기도를 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실제 바빠서 잘 못 한다고 해요 근데 무조건 바빠서가 아니에요. 어떤 경우는 시간이 이미 다른 곳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또 다른 곳에 에너지를 다 쏟았기 때문에 할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바빠서 사정 때문에도 있을 수있지만 어떤 경우는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무거운 곳이 될 수 있는 거. 조정이 필요한 거예요. 또한 얽매이기 쉬운 죄는 반드시 벗어버려야 합니다. 끊어야 됩니다. 얽매이기 쉬운 이라는 뜻은 쉽게 얘기해서 덫에 걸리는, 덫에 걸리게 하는 이처럼 죄는 우리의 삶에 덫에 걸리게 해서 경주에서 주저앉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케네스 헤긴 목사님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죄는 경주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당신을 넘어지게 하고 당신이 영적인 경주를 잘 달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삶의 죄는 당신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영을 무디게 하여서 성령님의 이끄심에 둔감하게 반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다스려지지 않는 죄는 당신 으로 하여금 오직 자연적인 영역에서만 살게 하여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를 놓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의 경주를 늦추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신앙의 삶은 어떻습니까? 성령님과 동행하는 거 성령을 쫓아 행하는 거예요. 열매 맺는 거 성령의 은혜를 쫓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거예요.
사역도 어떻게 합니까. 봉사도 우리의 단순한 노력이 아니에요. 성령의 은사 능력과 은혜 기름부음을 통해서 감당하는 거예요. 근데 죄가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삶에 죄가 계속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덫에 걸리는거에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왕처럼 또 솔로몬 왕의 삶처럼 심지어 범죄한 후에 다윗처럼 우리도 은혜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하나님과 단절하는 거예요. 이사야 59장 1절처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요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하는 거예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죄가 벽이 되게 하는 거예요. 단절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신학자 찰스하지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죄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경주를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신앙의 경주를 막고 얽매이게 하는 죄가 어떤 것일까요. 집에 가서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서양 속담에 그런 게 있어요. 사람마다 지옥에 내려가게 하는 사다리가 하나씩 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지옥에 내려가게 하는 연결 통로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죄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것입니까? 돈 돈 돈 돈을 사랑하는 탐욕입니까? 돈에 묶여 있는 탐욕입니까? 요즘 있는 음란과 쾌락 사랑입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는 또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까? 거짓되고 교만한 마음입니까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불평입니까.
아니면 불 신앙과 원망입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죄가 있어요 우리를 묶고 있는 끊어버려야 되는 거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런 모습이 뭐와 같습니까.
여기에 묶여 있다 보면 어떤 거와 같아요.
개 집에 묶여 있는 줄에 묶여 있는 개와 같아요.
걔들이 막 뛰고 싶은데 어떻게 합니까 나가면서.
월월 나가다가 그 막 딱 걸리는 거예요.
목줄이 있으면 그 막 딱 걸리는 거예요.
그것처럼 우리가 달려가야 되는데 나는 가길 원하지만 이런 죄죄가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덕과 같이 꽉 묵는 거예요.
그러니까 맴도는 거예요. 전진 못하고 맴도는 거예요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돼. 빛이 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실체를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어요.
여러분. 아니 댄 굴뚝에 연기는 하지 않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만약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점점 느껴지지 않는다면.
은혜가 떨어지고 소멸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이 사라지고.
비 의 감격이 사라지고 성령의 기름 부움과 활력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돼요.
아이 뭐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가 없는지 살펴봐야 돼.
그냥 쉽게 여기면 안 되는 거야.
이처럼 무거운 짐과 엉매이기 쉬운 짓을 버려 죄를 벗어 벗으려야 신앙의 경주를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점검하는 것이 해결책이에요.
점검해 보세 이게 실제예요. 중요한 경주가 실제예요.
주목하는 게 실제예요. 무거운 것과 얽매이는 죄가 우리를 달리는 경주를 방해하는 게 실제입니다.
이걸 풀어야 이 중요한 경주를 달려갈 수 있어요.
둘째로 인내로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우리의 완전한 모범 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절과.
삼절 입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 같이 자기에게 거역하신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성 육진하셔서 우리와 동일하게 온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이 신앙의 경주 사명의 길을 걸어가셨어요.
그리고 승리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여기 뭐라고 나와 있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무슨 뜻입니까.
믿음의 주라는 게. 믿음의 시초라는 거예요.
선고자 또 창시자라는 뜻이에요. 원어는 믿음의 창시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완성자 되시는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되시고 시작점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
되시는 진짜 모범 중에 모험 대신 앞서 간 선조뿐만 아니라 진짜 이분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오
구원자의 우리의 진짜 믿음의 창제자여.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 그 본을 따르고 예수님의 삶에서 도전을 받아야 됩니다.
사실 온전한 본이 되신 예수님의 신앙의 여정은 쉽지 않았어요.
십자가 고통을 참아야 되어요. 부끄러움과 수치를 이겨야 됐어요.
십자가를 참으 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또 사람들의 오해와 반대와 배반과 거역을 참아야 됐어요.
여러분 십자가가 뭡니까.
하늘의 저주. 받은 사람이 달린다고.
그 저주의 저주의 쌍집이었습니다. 가장 흉악범들.
저주 받은 사람이 벗은 몸으로 매달려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서서히 죽는 다 복에 저주받은 죽음이었어요
요즘으로 보면 흉아범들 진짜 큰 흉아범들.
그러면 가족들이 어떻게 합니까. 아는 척은 안해요.
가족들 된 것도 막 힘들잖아요. 드러날 까 저주 받은 거예요 수치예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어요 고통은 개의치 않으셨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가운데 그 사명의 길 신앙의 길을 끝까지 인내하면서 완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2절에 있는 것처럼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즉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그것을 바라보셨어.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 자리가 어떤 자라입니까.
하나님의 뜻. 온전한 사명을 이루고 그 영광의 자리 권세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승리의 기쁨에 이것이 포함되어 있어.
사명의 완수가 포함돼 있어요.
주님 바라보신 것 그 앞에 있는 기쁨.
하나님 보자의 우편에 앉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겁니까.
하나님이 주신 그 사명을 완수하는 거야 천하보다 한.
영원을. 천하보다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의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의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그 하나님 구원하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뜻을 성취하는 그 기쁨을 드리는 그리고 또 어떤 게 있습니까.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영원히 지옥 멸망의 빠질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는 것
그리고 사명이 완성되어서 이제는 그 나중에 그 자리에서 주님과 만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이 돼서 장자 되신 예수님과 만나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한 기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 또 수많은 자들이 그 영광스러운 구원 받은 그 기쁨.
그것을 함께 만나는. 그리고 예수님이 진짜 영광의 죄가 되서 권세의 자리에 앉아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기쁨을 누리는
이 사랑의 목적이 그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참으셨어요.
예수님이니까 하셨다고. 아니요 예수님이 그것을 바라보셨어요.
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쉽지 않으셨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에게는 분명한 목표와 목적이 있었어요.
내가 이것을 참고 이것을 완주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그래서 그분이 그 어려운 여정을 승리하셨어요.
우리에게도 우리 앞에 있는 기쁨 영원한 승리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되는 거
하나님의 뜻대로 삶의 경주를만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삶의 경주를 마쳤어요. 기쁨 가운데 주님께 나아가는 거.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거. 부활하신 사랑의 주님 앞에 설 날을 소망하는 거예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때로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해 직장 종료들이 이해하지 못해.
때로 조 조롱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다시 평가할 그 날 그날을 기억하는 거예요
마치 경주자가 경기를 끝나고 시상 세계에 서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님이 궁극적인 구원을 주실 그날을 바라보는 영광스러운 몸의 구속이 부활 생명이 주어지게 될 겁니다.
생명의 면류가 구원이죠. 구원이 주어질 거야.
그리고 행한 대로 칭찬받고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등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영원히 주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은 그 앞의 소망을 바라보셨어.
그래서 참을 수 있었어요. 우리가 경주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고요.
무거운 것 어매인 것을 재해 버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
나를 위해서 그 길를 가셨던 예수님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던 그것대로. 우리도 소망이 있어야 돼 요 여러분 소망이 있으세요.
강렬하십니까 여러분 살아 있는 신앙 깨어 있는 신앙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소망이 불타는 거 이 소망이 실제가 되는 거.
반대로 우리의 신앙이 잠들면 어떤 일이 있어요.
이거를 그냥 머리로는 알아요. 그런데 너무 먼 거예요.
비현실적인 일기처럼 느끼는 거예요. 그냥 알고 있는 어떤 사실로만 느껴지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에서 8절.
나는 손 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우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멸 유환이 예배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은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다 또 고린도 전서 15장 58절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위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알미니라
여러분 삶의 명확한 뼈대가 있습니까 목표가 있습니까.
주님은 있으셨어요 그 주님을 따라야 되는 거예야 2절에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바라보다
아포론테스의 견눈 한룸. 한눈 파지 않으면 시선을 집중하는.
계속 집중해서 묵상을 하는. 예수님께.
시선 시선을 고정하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
자기 뜻대로 우리와 가치관이 다르게 사는 그 사람들 또 교인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살지 않는 그냥 비슷하게 사는 그 사람들에게 바라보고 마음에 비교하고 위축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을 모으면 삼으라는 거야. 여러분 신앙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있죠
핍박이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도 적재자들 죄인들이 자신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모욕하고 비방하고 조롱하고 수치심을 유방하는 것 그때 인내하셨어요 참으셨어요.
이 소망을 가지고 게샘만에서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죽으실 때까지 참으셨어요 그 앞에 있는 기쁨으로 인해서 여러분 성경 보세요.
그냥 써 있어서 그렇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창조 주신데. 만왕의 왕이신데 대제사장이 잡아다가.
어떻게 합니까. 침을 뱉다요 같이. 옆에 있는 사람이 주먹으로 때립니다 뺨을 딱 치면서 선지자 노이더라고.
누가 때렸냐. 조롱하는 거예요 쉬웠을까요 예수님 모멸감을 안 느꼈을까요
군병들이 어떻게 합니까. 옷을 벗기고 자세.
곧 왕 비슷한 옷을. 니가 왕이라면서 입히고 가시로 멸류관을 써서 눌러 씌우고 갈 때 가지고 막 머리를 치면서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조롱합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려서 숨도 못 쉬고 있는데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원했는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
저게 뭐 진짜야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라.
그럼 내가 믿을 테니까. 조롱합니다 다 참으셨어요 그 앞에 기쁨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받을 그 구원의 하나님이 그걸 보고 기뻐하셔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온전한 승리.
그 왕국에서 우리와 만날 그 모든 것을 인해서 주님이 참으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주님 바라보고 이 생명의 좁은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기쁨이 있을까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저희 부대가 유독 훈련 또 행군이 많았습니다.
완전 군장 한 25kg에서 한 30km 32k까도 나가는데 완전 고장을 합니다 훈련 때 걸어서 40kg 또 100kg 행군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로 쉽지 않았어요. 산악부대였기 때문에 평지로 10kg가 아니라 산을 막 타는 거예요.
지금 막 그래도 사나. 어느 정도 타는 게 그때 많이 훈련이 된 것 같아.
많이 잊어버렸지만 산악부대였어요 훈련할 때마다 거의 발에 이렇게 큰 물집이 잡히고 그러면 또 하고 그랬어요 근데 어느 한 훈련인데.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 훈련 전에 제가 휴가가 있었어요 훈련 전에.
이렇게 멀리 막 행군이 있는 때는 예비 훈련이라고 있습니다.
단련시키기 위해서
우린 그 군대를 잘 모르는 사람. 잘 몰라요.
근데 그 있어요. 그래서 훈련을 시켜요 연습을 어느 정도 시켜요.
근데 그때 제가 휴가를 갔어요. 휴가 갔을 땐 좋았어요.
돌아오니까 본 훈련이 시작되는 거예요.
발바닥에 굳은 살이 있었는데. 마이 말랑말랑해졌어요.
그리고 훈련을 딱 가는데 한 100kg 행군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하루 지나니까 벌써 물질이 막 터지는 거야 이틀 지나니까 발바닥 전체가 다 터지.
내일 결정적으로 이제 마지막 그 코스를 하는 거야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요 근런데 또 믿는 사람이라.
그때 이 모범을 보여야지. 그 생각이 오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기도했어요
좀 지금 생각하면 좀 미식한 방법 같지만 청테이프로 발을 그냥 이렇게 동동 동여했어.
나중에 어떻게 떼라고. 그리고 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새 힘을 주십시오. 다 믿는 자인 거 알고 있는데.
여기서 나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상황은 이렇지만.
끝까지 가게 해주십시오. 걸을 때마다 너무 아파.
나중에 감각이 많이 없어지더라고요. 너무너무 통증이 아프더라고요.
그래. 그 하루 종일 산을 넘고 하는 걸 갔습니다.
해가 다 지고 있는데 진짜 저기 부대가 보이는 거.
온 몸이 땀이 땀 번복되고 막 다른 이제 거의 끌지만 저는 그냥 포기하지 않고 그냥 제때 속도를 맞춰서 막 가는 거예요.
근데 저기 부대가 뭐 궁가합니다. 그러면서 멋있는 사나이 보람찬 막 그러면 가는 거예요.
불빛이 보이는 거야. 거기에 기쁨이 있더라
성취감이 있더라고. 그리고 끝나고 그 피범벅이 된 닭.
이렇게 씻겨 나가고 옷을 갈아입는데 그때 내가 미쳤어.
그런 생각 드는 게 아니라 속으로 참 잘했다 완주자.
승리자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 물며 우리의 영원한 신앙의 경주를 완주했을 때 승리했을 때.
어떤 기쁨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길을 거셨어요 가셨어요.
여러분 앞서 간 예수님과 허다한 증인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십시오.
응원하고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여러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지금 늦춰지고 주저앉았다면 다시 일어나세요.
우리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기억하세요 우리만 어려움 당한 게 아니에요 우리만 쉽죠.
팬더미고 우리만 다른 어려움들이 있어요.
딴 사람들 우리만 가는 신앙의 여종 아닙니까.
다 같던 여정입니다. 상황이 조금씩 달려도 다 쉽지 않은 길 같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인 거예요. 믿음의 선조들이 이 길을 걸었고.
예수님께서 이 길을 걸으셨어요. 이제는 우리 차례예요.
주님 바라보셔야 됩니다. 로마서 8장 18절 생각하 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셋째로 인내로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각우하고 나가야 됩니다 주님 바라볼 뿐만 아니라 4절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필리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은 과거에 이미 큰 환란을 경험한 자들이었어요.
히브리서 10장. 3 33절 보니까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란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고난을 경험했던. 핍박을 경험했던. 그런데 지금 또 다른 환란이 다가오고 있는 거.
우리가 히브리서를 공부하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에요.
외부로부터 노마의 박해가 있었어요 또 내부로부터는 같은 동족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라고.
너 뭐 하고 있느냐고. 동족의 회유가 있었습니다.
심한 압박이 있었어요 내 외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 그런데 이런 상태에 놓인 그들에게 너희가 비록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아직 피 흘리기까지
원래 들 순교하기까지 죄와 싸운 것이 아니라고 좌절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와 싸운다는 것은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께서 지적한 대로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첫째는 배교회 제를 포함한 개인적인 죄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주님께 돌 돌이키는 거예요.
또 개인적인 죄에 대해 죽기까지 싸운다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실제적인 내용들은 뭐냐 하면.
공동체에 다가오는 핍박과 밖이에요 즉 편지의 수신자로 하여금 신앙을 포기하도록 위협하는 박해자들 그 압박.
그 죄에 대해서 피울리까지 싸우는. 아직 너희가 고난을 전에 당했지만 죽기까지 한 것은 아니다.
4절 전에 3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일을 생각하라.
예수님 얘기를 하시면서. 지금 예수님이 내적으로 썩었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니까 외부 핍박을 견디신 예수님을 생각
생각하라고 또 히브리서 6장과 10장에 보면 배교에 대한 것이 나와요.
그리고 11장에 뭐가 나옵니까. 상을 바라보고 인내로서 고난을 참았던 믿음의 선지들의 스토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오는 거예요. 우리 개인적인 죄.
특히 배교에 대해서도 필리까지 죽기까지 싸우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문맥을 통해 볼 때 더 많은 것은 어떤 겁니까.
니가 전에는 고난 받았다 핍박이 있었다.
그러나 죽기까지 더 큰 예수님처럼
죽음까지 이은 건 아니다. 그때까지 견뎌야 된다는 거.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심한 미움 증오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도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과 11장에 믿음의 선지들처럼 죽기를 각하고 서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경기를 계속할 수 있어 각오가 돼 있어야 되는 거야.
전에 구원한 받았지. 죽은 거 아니잖아.
죽기까지 그 고원 받는 거 아니잖아.
죽기까지 과거가 돼 있어야 되는 죄에 대해서도 고난에 대해서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반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어니 그리고 이런 세상 가운데 믿는 자로 살아가는 거.
몇 번 말씀드린 것처럼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때로 불이익을 당합니다 손해 빈정 핍박을 받습니다 직장 학교 친구 가족들에게서도 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면 떼로 두려움이 올 수도 있어요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도 점점 그 가운데로 너무나 많은 조수사들이 있어요.
이 코로나 가운데서도 작년에 6월 20일부터 26일까지 목회 데이터 연구소에서 기독교 이미지 이거
정기적으로 이런 질문들이 있어요. 근데 최근에 있는 코로나 가운데 작년 6월에 있었던 조사가 있어요.
기독교인의 이미지에 대해서 물었어요.
1 2 3위가 뭔 줄 아십니까 예전 게 아니에요.
첫 번째가 뭐냐면 3십1 프로 거리.
두고 싶은 존재 2등 30% 이중적인 사람들 3등 209로 사기꾼 같다.
다 합치니까 90프로예요
물론 우리가 빛이 안돼서 분명히 그런 게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프레임들 이런 공격들이 지속되고 있는 거예요.
교회를 향해서 더 심해졌어요 또 전 세계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어요 이 속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준 그 신앙의 경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기를 각오하는 일사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달려갈 수 있어요.
다닐과 세 친구처럼 에스더가 보여준 것처럼 또 믿음의 선조들이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가셨던 것처럼 그런 결단이 있을 때 우리도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서 하게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 8장 35절이에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우리가 알 듯이 원래 신앙이 그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름을 따르는 거예요.
이런 각오 없으면 우리도 모르게 주저앉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각오가 되셨습니까. 두려워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는 거라는 거야.
마태복음 10장 33절이에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요한 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이거 아시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 당하고 어려움 당할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맨 마지막에 뭐라고 나옵니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모세 던져지리니 이는 둘째 사망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려놓고 이 길을 가셨고 우리 선조들도 이 길을 갔습니다 우리가 잘 하는 히브리서 11장 35절에서 38절에 이렇게 나와요.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심한 고문을 받되 굳자에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왜 이게 중요합니까.
이 다음에 나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지금 너희 경주다 하고.
그전에 이게 나오는 거예요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칫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가치는 실현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더불어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빛값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1936년 10월에 평양 산정현 교회에 목회하시던 우리가 잘하는 주기철 목사님이 그때 목회하셨어요.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결사적으로 거부했습니다.
1938년에 체포되었어요. 황씨 불경죄 치환 유지법 위반 죄목으로 징역 10년 형이 선고를 받았어요 네 번의 구속.
6년간의 넘는 긴 투업. 무서운 고문.
일제 회유. 계속되었어요. 예전에 영화 보니까 주기철 목사 영화 보니까 고문 하는데 그냥 메달아서 때리고 막.
그 정도가 아니에요
어떻게 합니까 나무 틀을 만들어서 나무 틀을 가운데 끓인 거예요.
그리고 그 털에 구멍을 뚫은 거야. 발이 뭐 이렇게.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대나무 죽창을 만들어서 무슨 그 사이를 찌르는 거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 틀에 들어가서 다 살이 터지고 찔리고 사람이 받을 그런 게.
아니 너무나 잔인한 고문이.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주님 앞에 엎드렸다 그래요 그리고 끝까지 그 길을 갔습니다 1944년 만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셨어 주기철 목사님께서 일제히 회유를 거부하고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곧 고백했던 것처럼. 일사각오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요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비 한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리오.
나는 일사의 각오와 다짐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 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14 가구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 먹고 백 가파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 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재단에 들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례 요한도 스데반도 청자년회 때에 뜨거운 피를 흘려 주님을 향한 그의 다짐을 지켜 나갔습니다 예수님도 믿음의 선진들도 주기철 목사님도 일사각오의 신앙생활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예요. 우리도 다른 일이 없어요.
우리도 죽기까지 싸워야 되는 거 죽을 각오로 해야 되는 거야.
그리고 주님을 따라야 되는 거 이런 결단과 각오가 있을 때 주님의 은혜로 멈추지 않고 인내로서 끝까지 우리의 신앙의 경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내로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번 따라보세요.
자녀들이 받는 징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5절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스대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질함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지금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수진자들에게 새로운 박해와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이러한 밖의 어려움 가운데 이들을 힘들게 했던 또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우리가 죽기까지 하나님을 찾는데.
우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 이렇게 응답할 것 같은데 그대로 다 되지 않는 거야.
돌리어. 계속된 핍박과. 고난과 어려움이 계속해서 다가오는 거예요.
막 헷갈리는 거예요. 이때 그들 중에 당하는 고난의 문제 때문에 회의를 마음에 회의가 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면.
그리스도인이 어찌하여 이렇게 고난을 받을까.
계속 받을 거. 신앙을 고백했는데. 그 결과 나에게 다가오는 왜 고난과 환란뿐이란 말인가.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조금만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라도 이렇게 진계와 같은 어려움이 오는 것인가.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하고 계신 건 아닌가.
이런 고민이 들 수 있다는 거 어쩌면 이게 우리의 고민일 수 있지.
왜 나의 삶은 이렇게 나의 마음대로 안 되고.
계속해서 연단의 과정 같은 것일까. 이에 대해서 히브리 기자가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의 고난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 고난이 하나님의 무관심이나 무능 불리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거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요. 우리를 단련시키는 그런 수단이라는 거
그래서 이브리 기자가 하나님의 진가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다 잊지는 않았지만 5절에서 11절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5절 하반절 보니까 뭐라고 나와요.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질함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여기 징계가 나와요.
우리가 징계할 때도 이 말씀을 나눕니다.
징계라는 말은 헬라오 파이데이아 징계라는 뜻이 있습니다.
징벌이라는 뜻이 있어요. 근데 그거와 함께 훈육 교정 훈련 발련이란 뜻이
달련이란 뜻이 징계 못지않게 주듯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고 낙심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징계하실 때 그냥 뭐 괜찮아.
이렇게 여기지 말라는 또는 징계하고 달려나실 때.
고난이 올 때 낙심하지도 말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징계의 단어 의미에서 보았듯이 징계는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훈련 방식이.
또 그 가운데. 징벌뿐 아니라 우리가 잘
못 할 때는 물론 벌을 주시죠.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우리를 위한 거라는 거 지난주 말씀처럼 야고보서 1장 2절 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알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 더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또 징계는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증거가 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6절과 8절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달려나시는 아들마다 책직질하시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게 없으며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여기 징계 또 같은 뜻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달려하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됨의 신분 증명서라는 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길거리에서 어떤 학생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때로 얘기하는 어른도 있지만 웬만하면 요즘은 가만히 그냥 지나갑니다.
근런데 자기 자녀라고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녀가 엉뚱한 짓을 하고 공부 안 하고 딴 짓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당장 가서 혼내는 거예요 맞서는 거예요 뭐라고 하면 싫어할 자녀들이 많겠죠.
그래도 맞서는 거예요. 왜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회초리를 드는 거예요 자녀이기 때문에 또 자녀가 바른 훈련을 받고 준비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왜. 자녀하이기 때문에 육절에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고난을 허락하셨어.
25년 이상 믿음을 믿음의 조상으로 훈련하셨습니다 모세를 다윗을 야곱을 신실하게 다루셨어 우리는 이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해야 합니다 절입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여러분 사실 하나님의 징계와 다루심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10절 11절이에요.
그들은 잠시 자기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 하시느니라. 무릎 징계가.
당신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0절에 있는 것처럼.
징계가 뭐라고요. 주님 안에서 고난받고 때로 잘못했을 때 징계를 포함해서 우리의 유익이라는 거.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우리를 빚는 수단이라는 거예요.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별된 자로 바르게 세워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 어떤 사람도 그냥 승승장구할 때 위험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통로로 주님과 동행하는 주님 닮은 사람으로 믿기 위해서 잘못할 때 아버지가 되어서 진계
하시고 또한 고난과 많은 것들을 통해서 연단을 통해서 우리를 빚으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67절 71절이에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만.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윤례를 윤례들을 배우게 되었느니라 또한 11절에 있는 것처럼 연단을 통해 단련된 자들은 결국 어떤 열매예요.
의와 편광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의 다루심을 받아요 주님의 훈련을 받아요.
고난을 겪어요 그러면서 주 안에서 통과합니다.
그러면 어떤 게 있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의 열매 이것은 결국 구원을 낳습니다 구원과 연결된 구원의 열매.
영원한 구원 또한 그의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함께하는 평강의 열매를 맺고 삽니다.
얼마나 유익한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달려온 징계 가운데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많으시죠
왜 주님을 찾는 거 같은데. 내가 여기까지 버티겠다.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야 되겠다. 그렇게 가는데 어떤 분들은 연속적으로 있어요.
물론 우리를 돌아봐야 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관심해서 나를 안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잘못됐으면 돌이키기 원하시는 뜻이 있고.
또 고난을 통해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 여러 가지 고난을 겪다 보니까 이 땅에 소망이 끊어지는 삶이 그런 거구나.
주님이 전부시구나. 주님 바라보게 하는 거예.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는 거예요.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이. 멈추지 마십시오.
라는 글을 쓰셨어요. 그것만 제가 조금 읽어드리겠습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실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 실연의 가치를 안다면 그 어떤 것들보다 그 실현들로 인해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실현이 당신은 언제나 정결하게 해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자리에 당신을 데려다 놓은 것은.
바로 그 고난의 격렬한 용
광로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실현도 없고 고난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들을 건드리도록 허락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유혹을 능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삶을 봐야 돼요.
그저 내 뜻대로 다 되는 것. 그게 복이 아니에요.
진정한 복은 어떤 겁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 나를 시험하시고
나라를 다루어 주셔서. 하나님의 길 의의 길 영원한 길로 인도해달라고 영원한 진짜 승리자가 되는 것.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복입니다 또한 우리는 쉬운 길이 아니라 생명의 좁은 길을 걷기를 원해야 돼요.
영원한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다루심을 볼 때 우리는 신앙의 경주에서 낙심하고 주저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담임 목사님 하고 월요일부터 한 수요일 정도까지 수양관을 갑니다.
돌아오는 주간도 수양관을 가는 그런 주간이에요.
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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