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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차이 (고린도전서 2:14~16)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영국 콘웰에서 태어난 빌리 브레이(Billy Bray, 1794-1868)란 목사님은 한 때, 훌륭한 권투선수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수로 있을 당시에 영국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가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때 그와 시합을 하여 패배를 했던 한 사람이 그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소식을 듣고 드디어 원수를 갚을 때가 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빌리 브레이를 찾아가서 갑자기 그를 주먹으로 쳤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빌리 브레이가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빌리 브레이는 그를 상대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용서하니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때, 그 사람은 이러한 모습의 빌리 브레이의 말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사실 그는 빌리 브레이가 자기를 주먹으로 치면, 기독교인이 사람을 친다고 하면서 그를 창피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리 브레이는 자신이 주먹으로 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자,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일로 인해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 빌리 브레이가 믿는 예수를 믿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또한, 그 사람도 결국 예수를 믿고 빌리 브레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용서의 태도를 통해서 불신자들을 구원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서의 핵심은 사도 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 하나인 분파(分派) 문제에 대해서 답변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 주변의 수많은 교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세속적이고 인본주위적인 믿음으로 변질되어 있기에 이를 알고 깨달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이 시간을 통해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떠나서 헬라의 철학과 웅변력과 수사학을 추구하면서 이런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관원들을 스승삼아 그들을 중심으로 분파를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거룩한 교회를 둘로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이 결코 분별력 없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대조해가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존귀함과는 달리 이에 비해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온전한 말씀을 목적으로 한, 복음적인 교회를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증거 한 복음에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지혜와 능력은 유대인들의 지혜와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방 세계의 지혜와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 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이제까지는 감추어져 있었던 하늘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서야 비로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 육신의 세상에 나타난 지혜와 능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는 감추어져 있었으며,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들에게 그림자적으로 보여진 지혜와 능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이 육신의 세상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안에는 이 육신의 세상을 살리는 권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복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증거하고 가르칠 목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나타난 온전한 믿음을 통한 복음으로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나 문제는 아직까지도 우리들 주변에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그리고 이 육신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혜와 능력을 온전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온전한 믿음으로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진실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이 사람의 속사정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만이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만이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통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지혜와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말씀의 복음을 떠나서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추구하며 자신들을 통치하는 권력자들인 권원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존경하는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는 관원인 스승을 중심으로 분파를 조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쉽게 떠나서 오히려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지금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혜만이 능력이 있으며, 참된 복음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두 종류의 사람을 서로 대조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육신에 속한 자와 영적으로 신령한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육신에 속한 자는 어떤 사람들이며, 영적으로 신령한 자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를 깨달아
온전한 믿음으로 영적으로 무장하여 이 육신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육에 속한 자(The man without the Spirit)란 어떠한 사람들을 말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인 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아멘!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을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는 못하는 자들로서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를 하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니지만, 3장 1절을 보면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할 수 없어서 육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자란? 누구를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믿음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자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때문에 3장 1절에서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나 신령한 자는 둘 다 똑같이 중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한 사람은 복음의 분별력을 가지고 장성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하나님의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육에 속한 자의 의미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본문을 읽어 보시어 그 문맥의 내용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도 않고, 또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육에 속한 자들이 받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육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의 일을 받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이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성령의 일이라는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의 하는 일들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으로서 이제까지는 감추어졌던 하늘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나타내신 지혜와 능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복음이 증거 했을 때,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구원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거 하는 것이 성령의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셨기에 바로 이러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육신의 세상에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몸으로 당신의 백성들과 동류가 되셔서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저주의 잔을 마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가 되심으로서 이 일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셨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셨으며, 성령의 일이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같은 모습을 세상의 지혜로 보았을 때, 성령의 일은 어리석은 일이요,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더욱이 헬라인들에게는 바보 같은 일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일이 인간적인 눈으로 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혜로는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또한,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 곧 성령이 우리 안에서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육체를 입으신 일, 그런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 의미로 육에 속한 자들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구약의 경륜에서는 언약의 빛에 거했던 유대인까지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육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연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아무리 구약의 경륜에서는 언약의 빛 아래서 생명을 누리며 지혜를 발휘하고 살았을지라도,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방인들이었던 그들이 아무리 찬란히 빛나는 학문과 철학을 발전시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결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육신의 세상에서의 지혜와 능력의 한계였으며, 이 육신의 세상에서의 관원의 지혜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육에 속한 자들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가 이런 육에 속한 자들의 지혜와 능력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오히려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드높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철학과 수사학, 그리고 웅변력이 뛰어난 스승인 관원들을 중심으로 교회에서 분파를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이에 현혹되어 이들을 따랐던 성도들이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또한, 야고보서를 보면 이와는 반대로 거꾸로 된 상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육신의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 재물과 지위와 권세가 있는 자들이 오면 앞자리에 앉게 하고 교회가 그들 앞에서 굽실거렸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와 야고보의 교회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지금도 수많은 교회들이 이 육신의 세상에서 돈이 있고 권세가 있는 자가 교회에 등록을 하면 얼마 안가서 금방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이 교회에 등록을 하면 교회가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또한, 이런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언권은 더욱 높아만 가지만, 힘없고 가난한 성도들에게는 발언권이란 존재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세상적인 지위나 학위, 그리고 물질주의적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들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섬기는 지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 지나친 저의 주장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의 모습보다 더 지나치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벧엘 교회만이라도 지금처럼 말씀을 중심으로 한 변함없는 믿음으로 항상 세상에 속하지 않고, 육의 삶을 저버리고 영적으로 무장하여 오로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령한 자(Spiritual man)란 어떠한 사람들을 말할까요?
사도 바울은 이처럼 육에 속한 자와 대조하여 신령한 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합니다. 우리 본문의 말씀인 고린도전서 2장 15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 하느니라!” 아멘!
하지만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신령한 자’라는 대목에서 요즘 한국교회들이 주장하듯이 기도를 많이 하는 자들은 무슨 특별한 은사와 능력이 있는 것으로 잘못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신령한 자들로 생각하며, 그런 사람들은 영적인 모든 것들을 판단할 수 있으며,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기도를 많이 하면 신령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몇 마디의 이야기만 하여도 그 상대방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앞에 가면 왠지 위축이 되어 꼼짝 못하는 것이 요즘 한국교회의 현 주소가 아닌가 보여 집니다.
물론 저를 포함하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말씀을 동반하여 항상 쉬지 않는 온전한 기도를 통한 영적인 무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온전한 믿음을 동반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기도란 절대성을 가지고 있다고 진실로 믿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기도를 명분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거짓 영에 사로잡혀 자아도취에 빠져서 하나님과의 관계성 회복은 뒤로한 채, 마치 자신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능력을 받은 것처럼 거짓된 짓들을 행합니다.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지 못한 많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을 세속적이거나, 샤머니즘적인 신비주의로 이끌어 가는 거짓된 영을 받은 자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사단의 그물을 치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을 지옥의 막장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말씀의 묵상과 진실한 고백을 통한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성을 본인인 나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인 분별력이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이 같이 거짓된 자들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현혹되거나,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방금 말씀을 드린 그러한 사단과 같은 짓거리를 일삼는 거짓된 자들을 ‘신령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부에 말씀을 드린 14절에 나오는 ‘육에 속한 자’의 상반되는 사람이 바로 ‘신령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때문에 육에 속한 자들은 성령의 일을 깨닫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데 반해, 성령의 일을 깨닫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진정으로 신령한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임한 성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성도들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진정으로 신령한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형식적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자신의 구원자로 깨닫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의 고백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자기 자신을 증거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곧 신령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줄 아십니까? 그 정답의 뜻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고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그 정답의 뜻이란 바로 ‘신령한 자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의 심령 속에 임한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의 심령 속에 임한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그 심령 안에 계신 성도를 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 구절의 말씀의 본질은 신령한 성도들은 영, 육간에 있어서 분명한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셔서 하나님의 일을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구원으로 주시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일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자들이 진정으로 신령한 성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도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육신의 세상에서 어리석을 수가 있고, 가난할 수가 있고, 그리고 세상에서 아주 하찮은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참 지혜와 능력으로 알고, 십자가의 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만이 참된 생명의 지름길로 알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신령한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
그리고 이와 같이 신령한 성도들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오늘 본문의 14절에서 말한 육에 속한 자들에게서 결코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신령한 성도들의 삶과 행동은 육에 속한 자들에게 있어서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육에 속한 자들은 신령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헌신하는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애써 모은 재물을 우리 벧엘 교회처럼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을 육에 속한 자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육에 속한 그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를 구원의 일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신령한 믿음의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갑니까? 그들은 많은 시간과 물질, 그리고 육체적인 노동과 여러 가지의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를 합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헌신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 신령한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들의 솔직하고 진실한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그런 의미로 신령한 자들은 하나님 외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그런 뜻으로 사도 바울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그렇게 말씀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본문 16절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의 말씀을 합니다. 다 같이 그 구절을 보시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아멘!
그리고 이 질문을 인용하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면 아멘하세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지혜와 능력을 이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는 오늘날 말세의 이 육신의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나타난 지혜와 능력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지혜와 능력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증거 했던 참된 진리의 복음이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의 지혜와 능력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권위 있는 관원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결단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그 비밀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리석어 보였으며, 거리끼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깨닫거나 알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라 단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바르게 알고 받을 수 있는 일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지혜와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속사정은 사람의 영이 잘 알듯이 하나님의 속사정을 잘 아시는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일이며, 역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성도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주안에서 새 백성 된 신령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저와 여러분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믿고 함께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저 자신도 지금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진리의 복음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을 증거하며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 개인의 어떤 설득력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대로 참된 진리의 복음이 증거 되어질 때, 성령께서 친히 열매를 거두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친히 저와 여러분들을 이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심으로서, 회개와 돌이킴과 새 창조적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역사를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무조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도 참된 진리의 복음을 떠나서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의 복음이 아니고서는 성령님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첫째로, 육에 속한 자(The man without the Spirit)들이 되지 말고, 둘째로, 신령한 자(Spiritual man)가 되어 참된 복음과 성령께서 일하심에 다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신뢰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요셉 / 벧엘교회 목사
첫댓글 말씀충만. 은혜충만. 성령충만. 귀한 말씀 가져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말씀에 감사드려요.
귀하고 복된 말씀 은헤받고 가져갑니다. 샬롬!
영육간의 분별할 수 있는 능력받기를 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귀한 말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