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세 구정 무렵인가
갑자기 무신 바람이 불어
부산으로 가출을 하자하여
동네친구 대여섯명이 부산행 완행열차를탔다
지금은 제천서 부산까지도 다섯시간 정도면 족히 가지만
그시절 부산행 완행열차는
11시간 반이나 걸리는 아주 지루한 여행이엿다
매포역에서 오후 한시쯤에 열차를 탓는데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모두들 돈이라고는 땡전 한푼도 없었는데 게중에
홍 아무거시라는 친구에게만 그때 돈 삼백원 정도가 있었지만
이 친구가 얼마나 구두쇠인지 친구들이 배가 고파서 죽든 말든
저혼자 과자나 껌 같은것을 사먹으면서 도무지 인정을 배풀지 않는 것이였다
그중 나와는 친하다고 껌이나 과자를 사면 한개씩 주면서
이원 삼원 계산을 해가며 집에가서 꼭 갚으라는거엿다
끄때는 그친구가 외그렇게 치사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였던지
그때 열차에서 파는 김밥 한곽(나무 도시락)이 칠원이였는데
다셧명이 삼십오원이면 다들 배는 고프지 않으련만
겨우 껌이나 한개씩 주니 감질만 나고 배는 점점 더 고파왔다
배가 고파 눈알이 십리는 들어가 힘없이 앉아있는데
거의 부산역에 도달할 무렵 기차가 갑자기 서더니
사람이 떨어졌다는거였다
그리구 떨어진 사람이 우리 친구중 일행는 말에 가슴이 덜컹덩 내려앉았다
(어려서 이름을 10상억이라 쓰고 아들 역사 10근형이라써서 친자 확인)
다행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죽기라도 했더라면 어쩔번 했겠는가
그래도 천지신명께서 도우셔는지 팔꿉치와 무릅만
조금 까지고 노랑 고무신 한짝만 잃어버렸다
사연인즉 열차 승무원이 차표검사를 하는데
무임승차를 햇으니 차표 검표를 피하느라
출입문을 닫고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검표원에 들켜 달리는 열차에서 뛰여 내렸다는 거엿다
하여튼 밤11시30분에 도착해야 할 기차가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부산진역에 도착을 했고
1월달의 새벽밤은 사정없이 춥고도 매서웠다
신발을 잃어버려 한쪽 신만 신고는 절룩 거리며
신발가게를 찾아 헤메는데 역전파출소 순사님들이
이노므세키들 니그들 뭐하는 놈들이고
"야---신발 살라구유"~~~
"신발 이져버리 가꾸유"~~~
야 !이느므시키들아 지금 통해금지 시간이 넘엇는데
신발가게가 어딧노 이시키들 돌아 뎅기지말구
대합실 가가 자빠자 자라~~ !!
하며 파출소 순사 아저씨가 경상도 사투리로 야단을 쳤다
그즘에는 제주도와 충청북도만 빼고는 전국이 통행금지가
있었던 때인데 충청도 촌놈들이 통행금지가 뭔지 알았어야 말이지...
할수없이 대합실에 가서 수돗물로 잔득 배를 채우고
밤을 세우려고 난로(42구공탄)옆으로 갔는데 대합실에 구두닦이
양아치 세키가 니그 이세키들 어서왔노?
야!!---제천서 왔어유~~~
이세키들 제천서 여그는 좆 빨러 왔나 이세키들아
낼 당장 집에 안끼가믄 패 지기쁜다 하믄서 연탄집게를
벌겋게 달가가꼬 눙까리를 콱 쑤셔쁜다고 겁을 주는데
춥고 배는 고픈데다 얼마나 겁이 났던지 이빨에서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길다란 대합실 의자에 다섯명을 쪼르륵이 앉혀 놓고는
싸데기며 박치기며 그야 말로 제놈 입맛대로 차고 패다가
두명씩 두명씩 박치기를 시키는데
네번째 앉은 나는 줄를 잘못 서가꼬 무지하게 손해를봤다
첫번째 두번째 박치기!
세번째 네번째 박치기!
갑자기 눙까리에 별이 번떡거리면서
대가리에 총 마즌거 맨치루 띵해 죽겟는데
옆에 다섯번째 놈이 한놈 남으니까
이번엔 또 네번째 다섯번째 박치기!!
양쪽으루다 스테레오로 박치기를 하고나니까
하늘이 노랗고 땅 덩거리가 빙글 빙글 도는거 같았다
씨벌느므시키 외 나만 두번씩이나 박고 지럴이야 !
속으로 궁시렁 거리면서 눈물만 찔끔 찔끔 흘렷다
씨발~ 내가 다시는 네번째에 앉나봐라
괜히 가출을 했다가 배만 쫄쫄곯고 구두닦이 형한테
디지게 얻어 맞고 부산 시내는 구경도 못하구 수도꼭지만 존나게 빨다가
이튼날 새벽 열차를 쎄비타고 오는데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열차가 서있는데도 가는것 같고 눈앞이 노랑게 전신이 내려 앉는것 같았다
중간에 매포역에서 내려 신발 잃어버린 친구 다이야표 까막고무신 한컬레
사신고 석탄차로 갈아타고 이틀를 꼬박 굶고 거지꼴를 해가지고
집에와서 꽁리밥 한그릇를 고추장에 비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데 그 맛이 어찌나 꿀맛 같던지 지금도 잊혀지지가않는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구두닦이 형이 아니였다면
그렇게 혼을 내서 돌려 보네지 않았다면 지금쯤 뭐가 되어 있을런지
조빨러 부산까지 가서 배골코 매만 실컷 맞고 왓는지'''
그리고 굳은 땅에 물고인다고 그때 그 구두쇠 친구는 부자가 되여서
지금은 원주에 살고 있는데 내가 가면 술도 사고 밥도사고 커피도 사고는한다
추억이란 세월이 지나고나면 뭣이든 아름다운가보다
매 맞은것도 무슨 이야기거리라고 이렇게 글를 쓰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