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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01
1. 부둣가 창고 ( 밤 ) -N2
빠득! 소주병을 비틀어서 따는 손. 테이블에 마개를 따놓은 소주병이 가득하다.
휑한 창고에 어울리지 않는 소파, 거기에 몸을 파묻고있는 정사장, 고개를 끄덕한다.
정의 부하들이 소주병을 들고 다가가는 곳. 태호와 민수가 기둥에 묶여 있다.
겁에 질려 말문이 막힌 민수. 태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정사장을 본다.
부하들이 깔대기 모양으로 자른 페트병을 태호 입에 쑤셔 넣는다. 민수는 얼굴을 피하려고 몸부림치지만 강제로 턱이 잡힌다.
부하들에게 억지로 고개가 젖혀진 태호와 민수. 다른 부하가 페트병 깔대기에 소주를 들이붓기 시작한다.
목젖이 꿀럭거리고, 일부는 넘쳐서 흐르고... 헛구역질하는 민수. 태호는 부들부들 떨며 버틴다.
태호 시야에 천장에 매달린 불빛이 보인다. 점차 가물거리는 불빛. 태호의 초점이 흐릿해지면서...
태호 : (소리) ...350억을 날렸다. 그게... 내가 죽는 이유다.
2. 수영장 ( 낮 ) -D1
화면 전환과 동시에 물보라 일으키며 입수하는 태호. 역동적인 스트로크로 물살을 가르는 태호.
옆레인에 조금 뒤처져 따라오는 민수.
벽을 차고 턴하는 태호, 지치지도 않고 쭉쭉 나가더니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잠시 후, 헉헉대며 도착하는 민수.
민수 : (숨을 몰아쉬며) 정사장도 70억이나 넣으면, 전부 얼마야?
태호 : 액면 350억.
민수 : 판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냐?
태호 : 크게 벌려야 크게 먹죠.
민수, 뭔가 말하려는데 다시 반대편으로 헤엄쳐가는 태호. 지친 민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3. 스쿼시장- 실내 클라이밍장(변경) -D1
팡팡! 거침없이 공을 때리는 태호. 이리저리 받아치느라 분주한 민수.
민수 : (헉헉대며)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 사채업자까지 끼는 거.
태호 : 종목 참하고, (공 때리는) 설계 확실하고, (받아치고) 실탄 충분해요. 이 작전만 성공하면 한몫 크게 잡는 겁니다!
(힘껏 스매싱) 에누리없이 10억!!
민수, 공 받아치려다 나동그라진다. 라켓 내던지고 대자로 드러눕는.
민수 : (헐떡거리며) ...불안하지두 않냐, 넌?
태호 : 어차피 이기면 살고, 잃으면 죽는 판이에요. 그리고 이 판, 내가 먹을 겁니다.
민수 : 배부르지, 10억이면... (액수 떠올리고 흐뭇한) 돈 좋아하는 우리 마누라, 놀라 까무러치겠네.
(일어나 앉고) 태호 넌, 어디 쓸 거냐?
태호 : (대답 대신 땀을 닦아내며 웃는) ...
4. 공항 고속도로 ( 저녁 ) -D1
굉음을 울리며 빠르게 질주하는 태호의 차.
5. 공항 근처 갈대밭 ( 저녁 ) -D1
갈대밭 일각에 세워진 태호의 차. 멀리 공항 청사가 보이고,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불빛이 깜박인다.
조수석의 정민, 태호를 쳐다본다. 담담한 시선으로 멀리 풍경을 바라보는 태호.
정민 : 퇴근하는 사람 납치해서 기껏 데려온 데가 여기야? 뭐 중요한 얘기라도 있는 줄 알았네.
피식 웃더니 차에서 내리는 태호, 밤하늘 향해 기지개를 켠다. 뒤따라 내리는 정민, 태호 옆에 서고.
태호 : 정민아. 나... 한국 뜰 거다.
정민 : (표정) ...?
태호 : 채프만 투자은행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어. 기본 연봉 8만불에 개인 성과급 7대3... 파격적인 조건이야.
정민 : 맨하탄?
태호 : (끄덕) 월스트리트에 가서 늑대가 돼보려구.
정민 : (표정없는 미소) 혼자서 결정 다 했네. 박수라도 쳐줄까?
태호 : 같이... 가자.
정민 : ...무슨 뜻이야?
태호, 준비했던 반지함을 꺼내서 열어보인다. 세련된 디자인의 다이아반지.
뜻밖의 프로포즈에 당황하는 정민.
태호 : 식은 간단히 올리구, 신접살림은 뉴욕 가서 꾸리자. 정착할 자금은... 조만간 손에 들어올 거야. 10억이면 충분하겠지.
정민 : (표정) ...!
태호 : 넌 다른 걱정 말구 나만 따라오면 돼.
정민 : 태호씨...
태호 : 너 경영 전략 공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홍보팀 월급쟁이는 사표 던지고,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해. 내가 서포트해줄게.
정민 : 아까부터 계속 혼자 결정하구 있네.
태호 : 그게 내 장점이거든. 계획하고, 추진하고, 손에 넣는 거.
정민 : 난... 태호씨 계획에 포함될 생각 없는데?
태호 : (멈칫) 정민아!
정민 : 대신... 태호씨가 내 계획에 들어와.
태호 : ...?
정민 :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능력있는 남편을 얻는 거, 그게 내 계획이야.
태호 : (미소) 이정도 반지론 어림없구나?
정민 : 10억... 이라구 했지?
태호 : (끄덕)
정민 : 커트라인은 그걸루 하자. 반지는 그때 가서 받을게.
태호 : 결국 너... 이 반지 끼게 될 거야.
정민 : 속단하긴 이를걸?
씩 웃는 태호, 다가가서 정민에게 키스한다. 열정적으로 태호 입술을 받아들이는 정민.
둘의 실루엣 너머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6. 서울역 근처 ( 저녁 ) -N1
운전석의 태호, 신호대기에 멈춰서 있다.
정민에게 돌려받은 반지함을 물끄러미 보는 태호. 자존심이 상했지만 불쾌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승부욕이 솟구치는 표정.
여기저기 짜증스레 울리는 클랙션. 얼큰하게 취한 노숙자 몇이 보행자 신호가 아닌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냉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호. 반지함을 대쉬보드에 대충 던져 넣고, 기어를 넣는다.
끼이익! 연기를 내며 급출발하는 태호의 차. 놀라서 피하거나 자빠지는 노숙자들.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가는 태호, 조롱하듯 피식 웃는다.
7. 테헤란로 전경 ( 아침 ) -D2
박력있는 BGM과 함께 부감으로 펼쳐지는 빌딩가 전경. 첨단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카메라 누비면서...
태호 : (소리-힘찬) 대동바이오 작전 들어간다! 출석 체크!
8. 작전 사무실 -D2
책상과 컴퓨터 외엔 아무런 집기가 없는 휑한 공간.
태호와 민수는 각자 책상에 놓인 여섯 대의 모니터에 HTS를 띄워놓았다.
헤드셋을 쓰는 태호, 벽시계를 본다. 8시 56분. 개장이 4분 남았다.
태호 : (마이크에 대고) 신사동팀?
사내1 : (소리) 대기 중입니다.
태호 : 짱구 슈퍼도 이상무?
사내2 : (소리) 준비됐습니다.
태호 : 오케이. 그럼 최종 확인! 대동바이오, 12시 기준으로 2만원까지 끌어 올린 다음, 기관이랑 개미들 동향 체크.
그 뒤엔 차트 무시하고 내 오더만 따라와. 메신저랑 핸드폰 수시로 확인하고.
사내1,2 : (소리) 알겠습니다.
개장시각이 몇 초 남지 않았다. 긴장해서 입술을 핥는 민수.
태호, 걱정말라는 듯 어깨를 툭 쳐주고 손마디를 우두둑 꺾는다.
태호 : (모니터에 바짝 다가 앉고) 차트 한번 예쁘게 그려 보자. 돈 버는 그림으로!
정각 9시가 되는 동시에 빠르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태호와 민수.
9. 편집화면 -D2
객장의 주식 현황판. 등락표시되는 종목들.
/ 태호, 헤드셋에 부지런히 지시하며 마우스를 클릭한다. 민수도 이쪽, 저쪽 모니터를 확인하느라 바쁘고.
/ 객장에 있는 개미들,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분주하게 입력하고...
/ 통김밥을 씹는 태호, 시선은 계속 모니터에 고정. 안약을 넣고 고개를 터는 민수.
계획대로 풀리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의 태호.
10. 작전 사무실 / 화장실 -D2
기지개를 켜며 들어서는 태호. 문득 핸드폰을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한다. 정민이 보내온 메시지.
정민 : (소리) 다음 프로포즈는 제대로 된 곳에서 분위기있게 할 것. 안그럼 커트라인 통과해도 불합격.
피식 웃는 태호. 답장을 누르려다 그냥 호주머니에 넣는다. 급할 것 없는 기분.
셔츠 소매를 걷고 수도 꼭지를 트는 태호, 콧노래 부르며 세수하려는데.
민수 : (밖에서 다급한) 태호야! 태호야!
태호 : (표정) ...!!
11. 작전 사무실 -D2
얼빠진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는 민수. 태호도 차갑게 굳어 버렸다.
눈에 띄게 하한가로 내려앉고 있는 주가 그래프.
민수 : 누가 물량을 계속 풀고 있어! 한 두 군데가 아니야!
태호 : (허겁지겁 헤드셋 끼고) 신사동! 짱구슈퍼!
사내1,2 : (소리) 네!
태호 : 만팔천에 매수 물량 대고 있을 테니까 바로 따라붙어!
사내1,2 : (역시 다급한 소리) 만팔천! 오케이!
태호 : (민수에게) 내 쪽에 차명계좌 세 개만 심어봐요!
민수 : (멍해서) 누... 누가 흔드는 거지? 역작전인가?
태호 : (버럭) 뭐하구 있어요! 급한 불 먼저 끄자니까!
그제야 정신차리고 모니터에 달라붙는 민수.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는 태호와 민수. 입이 바짝 타들어간다.
12. 작전사무실 / 화장실 -D2
시간경과.
세면대에 넘친 물이 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물소리만 들릴 뿐, 죽음과도 같은 정적.
13. 작전사무실 - 정사장 사무실 -D2
화장실에서는 물소리, 사무실에는 초침소리만 들린다.
오후 3시를 막 넘긴 시각. 몸을 와들와들 떨고있는 민수.
민수 : 이... 이거 어떻게... 된 거냐? 350억... 전부 날린 거야?
얼어붙은 태호,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모니터만 본다. 엄청난 하향곡선으로 마무리된 그래프.
민수 : (울음이 터질 듯) 태호야... 우리 이제 어떡하냐? 응?
태호 : (목소리 겨우 가누며) 잠시만요... 생각을 좀...
민수 : 확실하다며? 다 먹을 수 있다구 그랬잖어, 네가...
태호 : (벌떡 일어나는) 조용히 좀 하라니까!
멈칫, 쳐다보는 민수. 혼란스러운 태호, 컴퓨터 앞을 서성거리며 초조한데...
정적을 깨며 울리는 핸드폰! ‘정사장’ 이름이 뜬다.
민수 : 정사장이지? 받지 마, 태호야.
선뜻 손대지 못하고 전화기만 보는 태호. 목을 죄듯 계속 울리는 벨소리.
태호, 나꿔채듯 핸드폰을 든다.
정사장 : (소리) ...장팀장. 그림이 쪼매 얄궂네. 이기 우째된 기고?
태호 : (가다듬고) 뭔가... 착오가 있는 거 같습니다.
/ 카드를 한 장씩 뒤집어가며 패를 떼는 정사장.
정사장 : ...착오? 그카믄 내 돈 70억은 무사하다, 그 말이제?
태호 : 사장님이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사장 : (카드 젖히려다 멈칫) ...맞나?
태호 : 걱정 마십시오.
정사장 : 마, 그캐도 내 장팀장한테 직접 들어야 안심이 안되것나? 퍼뜩 일루 건너오그라.
태호 : 알겠습니다.
정사장 : (전화 끊고, 카드 젖히면 조커다. 쓰게 웃는) 일마 대그빡 굴리는 소리가 여까지 들리네. (부하 향해) 아~들은 도착했제?
/ 퍽! 컴퓨터 본체에서 하드 드라이브를 뜯어내는 태호. 민수도 허둥대며 USB와 서류 등을 박스에 쓸어 담는다.
핸드폰 배터리를 챙기는 민수. 태호, 민수의 핸드폰을 나꿔채더니 배터리를 뺀다.
태호 : 전화 안되고, 집에 가도 안돼요!
민수 : 그치만 형수가 걱정할 텐데...
태호 : 정가놈 손에 죽고 싶어요?
민수 : (멈칫)
태호 : (재킷 걸치며) 짐 챙겨서 출입구로 와요! 그쪽으로 차 대놓을께!
14. 지하 주차장 -D2
주변 살피며 다급히 걸어오는 태호, 차에 올라서 시동을 건다.
저만치 엘리베이터홀과 연결된 출입구. 박스를 안고 나오는 민수가 보인다.
태호, 그쪽으로 차를 몰아가는데... 끼익!! 태호의 차를 앞뒤로 가로막는 두 대의 차. 정사장의 부하들이다.
놀란 민수가 박스를 집어던지고 달아난다. 쫓아가는 부하들.
똑똑, 차창을 노크하는 정의 부하, 떡대. 난감한 태호.
이번엔 주먹으로 차창을 두드리는 떡대. 창문을 내리는 태호, 침착하게 노려본다.
태호 : 똥차 치워라. 느이 사장 만나러 가는 길이다.
떡대 : (흐물대며 웃는) 사무실 말구, 다른 데로 모시랍니다.
긴장하는 태호. 저만치... 부하들에게 붙잡힌 민수가 질질 끌려오고.
15. 부둣가 창고 ( 밤 ) -N2
기둥에 묶여있는 태호와 민수.
정사장이 혀를 끌끌 차며 다가선다.
정사장 : 장팀장, 사람 그래 안봤는데 쪼매 실망이다. 내 돈 70억 날려묵고 오데로 토낄라캤노?
태호 : 그런 거 아닙니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정사장 : 해결? 작전 말아묵고 잠수타는기 해결이가?
태호 :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중간에 정보가 샌 겁니다! 역작전이 걸렸어요!
정사장 : (고개를 젓는) 장팀장 니같은 책상물림들은 이캐서 안되는기라.
(순간 매섭게 노려보는) 우째 이래 판이 몬쓰게 됐나... 니 아즉 모르제?
태호 : ...?
정사장 : 대동바이오 최사장... 글마가 회사 공금에 비자금까지 싸그리 챙기가 날라뿟다. 주식이 그래가 토막난기라. 알긋나?
태호 : (충격) 최사장이... 잠적했다구요?
정사장 : 빙시나! 작전하는 자슥이 사람을 믿으모 우야노? 니도, 내도 글마한테 뒤통수 맞은기라.
태호 : (믿기지 않고) ...
정사장 : 최사장 그 새낀 따로 잡을 기고... (떡대가 건넨 서류를 들여다보며) 오피스텔 보증금에 외제차 리스에 적금 쪼매 있고...
(찌푸리는) 언발에 오줌누나? 이래가 70억 우예 갚겠노?
태호 : (정신 추스르고) 기회를 주십시오! 세 번... 아니, 한번만 제대로 굴리면 다 털 수 있습니다!
정사장 : 금감원하고 경찰은 손가락 빨구 논다카드나? 니 수배 떨어지모 작전이고 나발이고 나까지 똥물이 튈 낀데...
태호 : 할 수 있습니다! 제 실력, 아시잖습니까?
정사장 : (미심쩍게 보는) ...
태호 : (필사적인) 이대로... 안죽습니다, 저.
정사장 : 실력은 알았고... 그라모 장팀장 운빨 한번 보자.
안주머니를 뒤적이는 정사장. 태호와 민수, 불안한 시선 주고 받는다.
정사장 : (카드를 두 장 꺼내고) 킹생조사. 킹이모 사는 기고, 조커 뽑으모 죽는 기라. 너그들 두 마리.
민수 : (왈칵 겁먹는) ...
정사장 : (싸늘한 미소) ...우얄래?
태호 : (이글거리며 보는) 어차피... 다른 선택도 없잖습니까?
두 장의 카드를 노려보며 망설이는 태호. 겁에 질려 보는 민수.
태호 : (결심하고) 왼쪽.
정사장 : (카드 흔들며) 이거?
태호 : (끄덕)
정사장 : 맞나? 안바꿀기가?
민수 : 태... 태호야.
태호 : (고개 젓는) 왼쪽...
태호가 고른 카드를 천천히 뒤집는 정사장. 조커 무늬!!
핏기가 사라지는 태호와 민수.
정사장 : (돌아서며) 떡대야. 일마들 치아뿌라.
태호 : 잠깐!! 남은 카드도 봅시다.
정사장 : (표정) 니... 지금 내를 의심하나? 둘 다 조커라꼬?
태호 : 봅시다, 한번.
정사장 : (태호에게 다가서는, 살기등등) 장태호... 니 대가리만 팽팽 돌아가고, 니 운빨만 갑인줄 알았나?
잘난 놈은 잘난 맛에 뒈지는 기라.
남은 카드를 바닥에 내던지는 정사장. 선명한 킹 무늬!
태호, 헉! 놀라는데, 정사장이 그대로 주먹 날린다, 퍽!!
/ 빠르게 스쳐가는 1씬의 장면들.
페트병이 입에 박히고, 소주가 들이부어지고, 태호와 민수는 버둥거리고, 정사장은 싸늘히 지켜보고...
16. 부둣가 일각 ( 밤 ) -N2
몸을 못가누게 취한 태호와 민수, 정의 부하들에게 이끌려 차에 실린다.
안전벨트를 채우는 부하들. 운전석의 태호, 정신을 차리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민수도 흐느적거리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차문을 닫는 부하들, 바다 쪽으로 차를 밀고 간다.
탄력으로 굴러가던 태호의 차가 그대로 추락, 바다에 처박힌다. 물거품과 함께 가라앉는 차.
무표정하게 지켜보다 돌아서는 정사장. 떡대가 부하 둘에게 지키라고 눈짓하고 정을 따라간다.
17. 차 안 -N2
수심을 향해 기울어진 차체. 발치부터 물이 차오른다.
태호 : (꼬인 발음으로) 형... 민수형, 정신차려.
민수 : (혼미한 상태로 흐느끼는) 미안해... 여보야... 미안해...
태호 : 형!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민수.
안되겠다 싶은 태호, 더듬거려서 안전벨트를 푼다. 쿵! 핸들 쪽으로 엎어지는 태호. 물이 시트까지 넘친다.
차문을 열려고하지만 수압 때문에 어림없다. 앞유리를 쿵쿵 쳐보는 태호. 단단하다.
유리를 깰만한 도구를 찾아 차 안을 더듬거리는 태호, 대쉬보드를 연다.
간단한 동작도 힘에 부치는 태호, 까무룩히 눈이 감기는데... 그때 시선에 보이는 반지함.
눈빛이 달라지는 태호, 반지함을 움켜쥔다. 살아야 한다!
태호, 볼펜을 꺼내서 팔뚝에 힘껏 찔러 넣는다. 피가 솟구치며 통증과 함께 정신이 든다.
시트 등받이로 버티고 앞유리에 구둣발 내지르는 태호. 쿵!쿵! 필사적인 발길질.
절박함과 분노로, 야차같이 빛나는 태호의 눈빛!
태호 : (쥐어짜내는) 웃기지 마... 나 혼자... 안죽어... (폭발하듯) 지옥까지 끌구 간다!
쩍!! 앞유리에 금이 가면서 우지직 깨진다.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바닷물. 순식간에 물이 차오른다.
잠수 상태에서 민수의 벨트를 풀어주는 태호. 민수, 짠물을 먹자 반사적으로 발버둥친다.
보닛 쪽으로 헤엄쳐나간 태호, 민수의 팔을 잡아 빼내려한다. 민수의 상반신이 차체를 빠져 나오는데... 벨트에 걸리는 발목.
태호, 숨을 참으며 열심히 잡아당기지만 요지부동.
당황해서 물을 삼키는 민수, 절망적인 눈빛으로 태호를 본다. 어떻게든 끌어내려 죽을 힘을 다하는 태호.
그때... 태호를 잡은 민수의 손에 힘이 빠진다.
흠칫 놀란 태호, 다시 손을 뻗지만 이미 숨을 놓아버린 민수, 차체와 함께 시커먼 수심 아래로 사라진다.
으아!! 태호의 절규가 묵음으로, 물거품으로 터져 나오고...
18. 부둣가 일각 ( 밤 ) -N2
차에 기대 서 있는 정의 부하. 다른 하나는 조수석에 퍼질러 앉아 하품.
잠잠한 바다를 보다가 돌아서는 부하, 소스라치게 놀란다.
물에 흠뻑 젖은, 야차같은 몰골의 태호가 쇠파이프를 들고 서 있다. 퍽! 피 뿌리며 나가 떨어지는 정의 부하.
욕설 내뱉으며 차에서 내리는 다른 녀석.
쇠파이프 치켜들고 쇄도하는 태호, 그대로 풀스윙!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사내.
태호, 쇠파이프를 내던지고 차에 오른다. 신음하는 정의 부하들을 지나쳐 빠르게 멀어지는 차.
19. 정민의 오피스텔 앞 ( 밤 ) -N2
끼익! 급정거하는 차.
운전석의 태호,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다. 길 건너에 보이는 오피스텔 입구.
지친 태호, 헤드레스트에 기댄 채 오피스텔을 바라본다.
/ 시간경과. 택시가 멈추더니 정민이 내린다. 퇴근하는 길인 듯.
안도하는 태호, 차에서 내리려다 멈칫!! 출입구 주변에 수상한 차가 보이고, 떡대와 정의 부하 몇이 매섭게 주위를 살피고 있다.
태호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눈치. 정민을 눈여겨보는 사내들.
정민, 아무 것도 모른 채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낮게 한숨 쉬는 태호, 사내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출발한다.
20. 거리 일각 ( 밤 ) -N2
운전하는 태호.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 그러다 표정!
저만치 경광등이 번쩍인다. 길을 막고 음주 단속하는 경찰관들.
취기가 남은 태호, 재빨리 핸들을 꺾어 골목으로 빠진다.
단속을 피하는 차량을 잡기 위해 이미 대기 중인 순찰차와 의경들.
이를 악무는 태호, 그대로 지나쳐간다.
호루라기가 울리고, 무전 교신 바빠지고, 태호를 뒤쫓는 순찰차.
/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순찰차, 급정거한다. 시동이 걸린 채, 문이 열려있는 차.
순경이 랜턴으로 안을 비춘다. 비어있는 운전석.
순경,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운전자는 보이지 않고... 부감으로 보이는 도심의 야경. 그 어디론가 사라진 태호.
21. 전당포 ( 낮 ) -D3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 창살 너머 전당포 사장이 돋보기를 들이대고 반지를 살핀다.
참담한 표정으로 반지를 응시하는 태호.
22. 호텔 앞 ( 낮 ) -D3
모범 택시가 멈추고 태호가 내린다. 자연스럽게 회전문으로 향하는 태호.
카메라 위로 올라가면 특급 호텔 전경.
23. 호텔 객실 ( 저녁 ) -N3
룸서비스 접시가 비어 있다. 가운 차림의 태호, 신문을 황급히 넘기다 멈춘다.
‘대동바이오 최용민 사장, 공금 횡령후 잠적’ ‘주가 조작 혐의로 추가 수사’라는 제목. 정사장의 말이 맞았다.
답답해진 태호, 창가로 가서 서성거린다.
24. 호텔 로비 ( 낮 ) -D4
카드형 공중 전화기로 통화 중인 태호.
태호 : 혹시, 경찰이나 누가 찾아왔어?
사내1 : (8씬의 신사동팀 - 소리) 아뇨. 아무도 안왔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태호 : 그건 알 거 없고, 짱구 슈퍼팀하고 연락돼?
사내1 : (소리) 그쪽은 라인 끊겼어요.
태호 : (표정) ...!
사내1 : 지금 어디시냐구요? 제가 찾아갈게요.
태호 : (순간 짚이는) 옆에... 누구 있지?
사내1 : (소리-당황하는) 저 혼자 있는데요.
떡대 : (소리) 전화 이리내 새꺄! (소리) 야, 장태호!
태호 : (황급히 전화 끊고, 프론트로 가는) 1205호실, 체크 아웃하려구요.
프론트직원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이 정산하는 동안 태호, 품 속에서 봉투 꺼내서 본다. 수표와 5만원권이 두툼하다.
기다리는 사이 초조하게 주위를 경계하는 태호.
25. 모텔 객실 ( 밤 ) -N5
23씬과 비교되듯, 배달 시켜먹은 그릇 쟁반이 입구에 놓여 있다.
꾀죄죄한 침대에 웅크린 태호. 창 밖에서 들리는 취객들의 고성방가, 가게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
수척해진 태호, 뒤척이며 잠을 못이룬다.
26. 모텔 앞 ( 낮 ) -D6
어수선한 모텔촌 전경.
모텔 출입문을 밀고 나오는 태호. 수염도 웃자랐고, 초췌한 몰골이다.
주머니를 뒤적이는 태호. 손에 쥔 돈은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 뿐.
기가 막힌 태호, 헛웃음이 나온다.
27. 편의점 안 ( 낮 ) -D6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허겁지겁 먹는 태호. 계산대 위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앵커 : 이틀 전 경기도 회남 저수지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은 행방불명됐던 대동바이오 사장 최용민씨로 밝혀졌습니다.
흠칫 놀라 TV를 보는 태호. 저수지에서 시신 인양하는 자료화면.
앵커 멘트에 이어서 50대 최사장의 증명사진 함께 뜨고.
앵커 : 공금 횡령과 주가 조작 혐의로 경찰에 수배가 내려진 최씨는 한달 전, 가족과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발견 당시 사체는 내부 장기가 모두 적출된 상태로 심하게 부패, 훼손되어 있었으며...
태호 : (충격으로 굳는) ...!
앵커 : 경찰은 금전 및 원한 관계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동바이오 주가 조작에 관련된 배후를 집중 수사할 방침입니다.
편의점사장 : (찌푸리며) 천벌을 받을 놈들! 세상에 빼처먹을 게 없어서 사람 오장 육부를 꺼내다 팔아먹나!
딸랑~ 문 닫히는 소리에 고개 돌리는 사장. 먹다 남은 김밥과 컵라면.
28. 골목 일각 D6
격하게 토악질하는 소리.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태호, 고통스럽게 게워내는데...
섬광처럼 스쳐가는 기억.
/ 정사장 : 대동바이오 최사장... 글마가 회사 공금에 비자금까지 싸그리 챙기가 날라뿟다.
/ 정사장 : 최사장 그 새낀 따로 잡을 기고...
/ 정사장 : 잘난 놈은 잘난 맛에 뒈지는 기라.
입을 닦고 일어나는 태호,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벽에 기댄다.
태호 : (소리) 잡히면... 나도 죽는다...
29. 공원 벤치 ( 아침 ) -D7
운동 나온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간다.
벤치에 길게 누워있는 태호. 밤이슬이 내려앉아 머리카락이며 양복이 모두 축축하다.
탕탕! 소리에 헉, 잠이 깨는 태호. 청소하던 경비원이 쓰레받이통으로 벤치를 두드린다. 당장 꺼지라는 눈빛.
몸을 부르르 떨고 일어나는 태호.
30. 상가 / 화장실 ( 낮 ) -D7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배를 채우는 태호. 그런다고 해소될 리 없는 허기와 갈증이다.
멈추고, 거울을 보는 태호. 한달 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초라한 몰골. 눈빛도 초점이 없고...
31. 상가 / 내부 복도 -D7
터덜터덜 화장실을 나서는 태호. 무심코 고개 들다가 멈칫!
저만치 가게 문 앞에 신문지로 덮인 짜장면 그릇이 보인다. 짜장 양념도 남아있고 단무지도 몇 개나 있다.
홀린 듯 다가가서 쪼그려 앉는 태호, 침을 꿀꺽 삼킨다. 단무지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는... 그러면서도 참담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단무지를 집으려다가 주먹을 움켜쥐는 태호. 이건 아니다, 이렇게까지는...
고개를 젓고 일어나던 태호, 문득 그릇을 덮은 신문을 본다.
자원봉사자들이 급식하는 사진 위로 헤드라인. “배고픈 이웃을 사랑으로 위로합니다 - 서울역 무료급식의 현장”
32. 서울역 전경 ( 오후 ) -D7
舊역사와 新역사가 나란히 이어진 전경. 역 앞 광장은 소음과 활기로 북적거리고.
33. 서울역 앞 ( 오후 ) -D7
두리번거리는 태호. 오가는 사람들보다 노숙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하도 입구에서 구걸하는 노인, 볕좋은 곳에서 낮잠자는 사내, 바닥에 소주와 컵라면 늘어놓고 술추렴하는 무리도 있고...
태호, 오긴 왔지만 한심해지는 기분. 그때...
영칠 : 저기... 선생님.
태호 : (돌아보는) ...?
영칠 : (엉거주춤, 소심해보이는) 제가 친구 만나러 부산에서 왔는데요, 기차에 가방을 놓구 내렸거든요?
만원만 빌려주시면 꼭 갚겠습니다.
태호 : (이건 뭐야 싶은 눈빛) ...
영칠 : 진짜, 진짜... 갚겠습니다. 그러니까 만원만... (순간 뒤통수 맞는) 아!!
영칠의 뒤통수 때리며 등장하는 사내. 꽁지머리를 묶고, 국적불명의 패션으로 무장한 차해진이다.
해진 : 이거, 이 자식... 구걸의 기본이 안돼있네. 너 같으면 생판 처음 보는 놈한테 만원씩 빌려주겠냐?
영칠 : 난 빌려주는데요?
해진 : 그리구... 서울말 쩐다, 너? 부산에서 왔다며?
영칠 : 부산 사람이라구 다 사투리 쓰나?
해진 : 확 그냥! 말대답은 콩콩... (한숨) 매니저 경력 15년에 너같은 놈은 첨이다, 진짜.
영칠 : (볼멘) 그러게 직접 하라니깐!
해진 : 봐, 임마! (태호 향해 서더니, 급불쌍한 표정으로) 마... 쌔임요, 지가 예,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말임니더...
(멈칫, 태호를 위아래로 훑는)
태호 : (뜨악해서 보는) ...
해진 : 야, 공영칠. 호구 고르는 규칙 1번!
영칠 : 남자보다 여자가 성공확률이 높다.
해진 : 2번!
영칠 : 지갑이 두둑해보이는 사람을 골라라.
해진 : 근데 어떻게 정반대로만 고르셨을까?
영칠 : 그래두 양복 입었는데?
해진 : 아이고, 인간아. 컴퓨터는 박사가 사람 볼 땐 봉사냐? (태호를 흘끔 보고) 딱 봐도 견적 나오잖아. 노숙 일주일차.
태호 : (어이없는)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해진 : (억지 미소) 댁은 그냥 가던 길 쭉~ 가셔. 곱게 보내 드릴께.
태호 : (발끈) 뭐?
조회장 : (소리) 이봐, 차이사!
낡은 트렌치 코트, 손에 든 영문 잡지... 로맨스그레이 분위기의 조회장이 다가온다.
조회장 : 전경련 만찬에 늦겠어. 서두르지. (태호를 흘끔 보고) 새로 입사한 사원인가? 패기 있어 뵈는구먼.
해진 : 그래봤자 인턴입니다. 회장님이 신경쓰실 급이 아니에요. (부축하며 이끄는) 가시죠, 회장님. (영칠에게) 컴덕후, 너두!
영칠 : 해커라니깐, 해커!!
옥신각신하며 가는 해진과 영칠, 조회장.
기가 막혀 보던 태호, 둘러보면 주변의 노숙자들이 해진 일행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34. 무료 급식소 앞 ( 늦은 오후 ) -D7
빌딩 뒤편, 오래되고 좁은 골목에 자선단체의 무료 급식소가 있다.
입구부터 길게 줄 서 있는 노숙자들. 행렬 중간쯤, 태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린다.
몇 사람 앞쪽에 해진과 조회장, 영칠도 보이고... 더디게 이동하는 행렬.
허기지고 초조한 태호, 고개 내밀고 급식소를 쳐다본다.
그때 자원봉사 조끼를 입은 신나라, 소주병을 들고 나온다.
나라 : (노숙자들 향해 병을 흔들며) 자꾸 이럴 거에요, 정말? 급식소에서 술 안된다고 했죠!
해진 : 에헤! 오늘은 또 누가 우리 나라짱 신경을 긁은 거야!
나라 : (다가와서) 내놔요.
해진 : 뭘? (작은 페트병 보이며) 이거 물인데? (조회장과 영칠 보며) 그치?
영칠 : (날카로운 나라의 시선 피하고) ...
조회장 : (관심없이 영문 잡지만 읽는) ...
나라 : 내가 마셔봐요?
해진 : 생사람잡네. 백퍼센트 H2O라니깐!
나라, 페트병 나꿔채더니 뚜껑 열고 바닥에 붓는다.
아이고! 아까워하는 해진. 다른 노숙자들, 키득거리고...
나라 : 안에도 물 있으니까 새로 채워가요. (돌아서려다, 기침하는 조회장에게 다가가는) 회장님, 왜 병원에 안오세요?
조회장 : 주치의가 세미나 때문에 유럽을 갔는데, 아직 귀국을 안했어.
나라 : 하여튼 병을 키운다니깐... 내일은 꼭 오셔야 돼요! (짐짓 으름장) 제가 낮근무니까 기다리구 있을 거에요.
양씨 : (킥킥) 우리 회장님, 딱 걸렸네.
나라 : (양씨를 째려보며) 자활근로 또 땡땡이 쳤죠? 벌써 네 번째에요.
양씨 : (당황) 아니, 그게 아니구...
태호, 노숙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나라를 신기한듯 본다.
그 시선 느끼고 태호를 쳐다보는 나라. 낯선 얼굴이라 갸웃해서 본다.
태호, 멋쩍어서 눈길 피하고, 나라는 다시 급식소로 들어가려는데...
뒤편이 시끌시끌해진다. 눈에 흉터가 선명한 뱀눈과 그 수하들 서넛이 거들먹거리며 앞쪽으로 다가온다.
양씨 : (재빨리 숙이며) 오셨습니까?
뱀눈 : (고개만 끄덕)
양씨 : (앞쪽 사람들에게) 뭐하구 있어. 비켜 드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자 뱀눈과 그 패거리가 줄의 맨 앞에 선다.
기가 막혀서 보는 나라, 한마디 쏘아 붙이려고 나서는데.
태호 : 지금... 뭐하는 겁니까?
뱀눈 : (뜨악하게 쳐다보는)
태호 : 다들 줄서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뱀눈과 패거리, 피식 웃고 돌아선다. 울컥 치미는 태호.
태호 : 당신들 뭐야? 배고픈 건 다 똑같아! 줄 서, 줄!!
뱀눈 : (흉터있는 눈이 꿈틀) ...!
35. 뒷골목 공터 ( 늦은 오후 ) -D7
우당탕, 나가 떨어지는 태호.
패거리가 둘러서 있고, 뱀눈이 다가와서 쪼그려 앉는다.
뱀눈 : 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냐? 종로야? 영등포야?
태호 : 알고 싶으면... 줄 서.
뱀눈 : (피식) 미친 새끼... 이 바닥 돌아가는 거, 쥐뿔도 모르잖아, 이거. (얼 굴을 들이대고, 험악한)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태호 : 공짜밥도 새치기하는... 노숙자...
뱀눈 : (으르렁) 길바닥서 살아남고 싶으면 분위기 파악 좀 해라.
태호 : (노려보는) ...
뱀눈 : (일어나며, 부하들에게) 골고루 주물러줘. 육즙 잘 배게.
뱀눈이 물러나면 패거리들이 다가선다. 사정없이 날아드는 발길질.
웅크린 채 몰매를 견디는 태호의 신음.
36. 무료 급식소 앞 ( 늦은 오후 ) -D7
자원봉사 조끼 벗은 나라, 안에다 ‘내일 뵈요~’ 인사하고 나오다가 흠칫 놀란다.
입술 터지고 피딱지가 엉겨붙은 태호, 비틀비틀 다가온다.
태호 : 식사... 아직 됩니까?
나라 : 급식은 7시까지에요.
태호 : 그럼... 남은 밥이라도...
나라 : 미안해요. 준비한다고 하는데두 양이 늘 부족해서... 남은 급식이 없어요.
태호 : (낙담하는, 돌아서는데)
나라 : 저기요.
태호 : (돌아보는)
나라 : 병원부터 가지 그래요? 이 근처에 노숙자들 무료로 봐주는 병원 있거든요.
태호 : (쥐어짜듯) 나... 노숙자 아닙니다.
나라 : (표정) ...!
돌아서는 태호, 다리를 끌며 걸어간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라.
37. 지하도 일각 ( 밤 ) -N7
박스 깔고, 신문지 덮고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
한쪽 구석에 둘러앉은 해진과 조회장, 영칠, 양씨.
해진은 카드 셔플하고, 조회장은 영문 잡지 탐독하고 영칠은 컴퓨터 판촉 전단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읽는 중.
카드를 섞는 해진의 화려한 손기술에 감탄하는 양씨.
양씨 : 이 실력인데 전재산을 날려 먹었나?
해진 : (손을 쉬지 않으며) 카드야 딜러가 섞고, 난 있는 칩 다 쏟아 붓고...
걸그룹 키워가며 15년 모은 재산, 일주일만에 털어 먹었지. (한숨) 마카오쪽으론 오줌도 안싼다, 내가.
영칠 : 와, 이 도둑노무 시키들! (전단지 보여주며) 이런 똥컴 사양이 99만원이래! 이게 말이 돼요?
조회장 : 쯔쯔... 스티브 잡스한테 전화 한번 넣어야겠구만.
영칠 : 잡스, 죽었는데요.
조회장 : (멀뚱) 언제?
영칠 : 2011년 10월 5일에요.
조회장 : (허공을 보며) 허허... 인생무상이라...
조회장에게 더 말시키지 말라는 듯 영칠 향해 고개 저어 보이는 해진.
그때 뱀눈과 패거리가 다가온다. 표정 굳는 해진 등등.
뱀눈 : 야, 사기꾼.
해진 : (주눅든) 예...
뱀눈 : 요즘 실적이 별루다. (발로 해진의 가슴을 툭툭 차는) ...잘하자? (잠든 노숙자들을 둘러보며) 어우, 쓰레기같은 새끼들.
다른 노숙자들과 떨어진 곳, 박스도 신문지도 없이 등 돌리고 누워있는 태호.
뱀눈, 태호를 보고 코웃음치더니 패거리들과 함께 멀어진다.
눈 감고 있던 태호, 가만히 눈을 뜬다. 분노를 참느라 이를 악무는...
조회장 : 저녁 굶었지?
태호 : (고개 돌려 보는) ...?
조회장 : (다가와 앉고) 내, 그 마음 다 아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게 배곯는 설움이야. 가만있자...
(품에서 수첩 꺼내더니 볼펜에 침 묻혀가며 ‘일 금 일억원’ 정성스레 쓰는)
태호 : (벙찐 표정으로 보고) ...?
조회장 : (종이 뜯어서 건네며, 진지한) 이걸루 밥 사먹게. 힘든 일 있으면 회장실로 찾아오구.
어이없어서 쳐다보는 태호. 괜찮다는 듯 태호 어깨를 두드려주고 자리로 돌아가는 조회장.
해진과 영칠 등도 자려고 주섬주섬 눕는다.
태호, ‘일억원’ 글자를 뚫어지게 본다. 가진 것이 많았던 한달 전...
38. 태호의 꿈
외제차를 몰고 달리는 태호. /
정민과 시선 맞추며 다정한 태호. /
모니터 앞에서 망연자실한 태호. /
억지로 들이붓는 소주에 몸부림치는 태호. /
짠물 들이키며 고통스러워하는 민수. /
지난 시간들이 섬광처럼 스쳐가다 화이트아웃!
39. 무료 급식소 근처 ( 아침 ) -D8
장승처럼 서 있는 태호,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곳. 저만치에 웅크린 노숙자들이 아침 급식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태호 : (소리) 따뜻한 밥 한그릇... 자꾸만 비굴해지고 싶다.
허기진 배를 만져보는 태호, 그러다 추레한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태호 : (소리) 그렇게 무릎 꿇다보면 결국... 저 줄을 벗어날 수 없다.
급식줄에 섞여 잡담하다가 문득 돌아보는 해진. 급식소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태호의 뒷모습.
40. 골목 일각 ( 아침 ) -D8
생각에 잠겨 걸어오는 태호. 그 앞쪽, 엄마를 따라가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핫도그를 떨어 뜨린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달래며 골목을 벗어난다.
바닥에 떨어진 핫도그. 다가서는 태호, 흙묻은 핫도그를 뚫어지게 본다. 그 표정 위로.
태호 : (소리)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심하고 다른 쪽으로 시선 돌리는 태호. 거기 누군가 흘리고 간 5천원짜리가 보인다.
순간, 눈이 빛나는 태호, 지폐를 줍는다.
핫도그를 포기했기에 주어진 댓가일까? 태호, 행운이 믿기지 않는 표정인데...
뱀눈 : 동작 그만.
돌아보는 태호.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뱀눈과 패거리, 양씨.
뱀눈 : 그거... 일루 갖고 와라.
태호 : (움직이지 않고 노려보는)
뱀눈 : 눈깔을 파버릴라... 갖고 오라고오...
태호 : 내가 먼저 주웠어요. 내 겁니다.
뱀눈 : (씨익 웃는) 이 새끼가... 오늘도 한따까리 할래? (바짝 다가서는) 내 놓으라고 새꺄.
태호 : 타인의 분실물 취득시, 선발견자보다 선취득자에게 우선권이...
뱀눈 : (탁! 태호의 뺨을 꼬집어잡는)
태호 : ...!!
뱀눈 : 어디서 먹물 좀 빨았냐? 세상이 책대로 돌아가는 거 같어? (볼을 흔 들며) 분위기 파악 좀 하라니까, 말귀 어둡네... 새끼.
뱀눈, 태호 손에서 지폐를 나꿔채더니 꼬집었던 볼을 놔준다.
안주머니에서 지갑 꺼내는 뱀눈, 지폐를 챙겨 넣으며...
뱀눈 : 서울역에서 굴러다니는 건 비둘기 똥까지 다 내 꺼야. 알겠냐?
현금이 두둑한 지갑을 보자 내심 놀라는 태호.
뱀눈, 지갑을 챙긴 뒤, 핫도그 스틱을 발로 굴린다. 앞뒤로 굴려지며 흙이 묻는 핫도그.
뱀눈 : 대신... 이거나 처먹어. (태호 앞으로 핫도그 툭 차주고) 거지가 맛으로 먹냐? 살려구 먹지.
뱀눈, 태호 어깨에 일부러 부딪히고 지나간다. 키득대며 뒤따르는 패거리들.
분노로 주먹을 움켜쥐는 태호. 그대로 선 채...
태호 : ...야.
뱀눈 : (멈추는)
태호 : (여전히 뱀눈을 등지고 선 채) 그거... 내 돈이야.
인상 험악해지며 천천히 뒤돌아서는 뱀눈.
그와 동시에 돌아서는 태호, 체중을 실어 주먹을 날린다 퍽!! 뱀눈의 턱에 명중하는 카운터블로.
푸대자루처럼 나가 떨어지는 뱀눈,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놀란 양씨와 패거리들.
저만치 골목 입구, 숨어서보던 해진도 경악!
일격필살을 날린 태호, 사내들을 돌아본다. 멈칫, 한걸음 물러나는 패거리들.
태호, 뱀눈 상의에서 지갑을 꺼내 5천원 한장을 빼고 툭, 지갑을 내던진다.
태호 : (지폐 보여주며) 내 돈... 5천원만 가져간다.
반사적으로 고개 끄덕거리는 패거리들. 저벅저벅 걸어가는 태호.
얼이 빠져있던 양씨, 기절한 뱀눈을 보더니 표정 변한다.
양씨 : (발로 퍽퍽 차며) 별 것도 아닌 게... 치사한 새끼! 회식도 안시켜주고! 목욕탕도 안데려가고! 개새끼!!
골목 빠져 나가던 태호, 돌아본다. 패거리들, 이젠 전부 달려들어 뱀눈을 밟고 있다.
찌푸리는 태호. 그러다 저만치 떨어진 해진과 시선 마주친다. 놀랐던 표정이 호기심으로 바뀐 해진.
아무래도 상관없는 태호, 무심히 돌아선다.
41. 할매 식당 ( 오전 ) -D8
테이블 몇 개 없는 허름한 식당. 태호가 잔뜩 긴장해서 앉아있다.
주방에서 쩌렁쩌렁 통화 중인 장군할매.
할매 : 야, 이 할망구야! 일년 열 두달 꿩 궈먹은 소식이다가 손주 손녀 결혼 할 때만 전화질이냐! 안가! 못가!!
태호 : (코를 킁킁, 찌개 끓는 냄새에 집중)
할매 : 뭐시여? 내 손주딸년 혼사는 머덜라고 궁금한디? 아, 일 없다니께!!
태호 : (참다 못해) 저기요!
할매 : (험악하게 보는) 뭐?
태호 : 주문... 아까 전에 들어갔는데요.
할매 : 그려서?
태호 : 네?
할매 : 김치찌개 달라믄서? 끓지두 않은 김치국물 처먹을겨?
끄응, 말을 참는 태호.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종구가 들어선다.
테이프로 얼기설기 때운 뿔테 안경, 유행 지난 군용파카... 딱 보기에도 노숙자 아니면 거지다.
종구 : ...할매. ...밥 줘.
할매 : 끊어, 이 할망구야! (수화기 내려놓고) 맨날 처먹는 거?
끄덕하는 종구, 냉장고로 가서 소주병과 맥주잔 꺼내오더니 테이블에 앉는다.
거침없이 뚜껑 따서 술을 따르는 종구, 시원하게 원샷!
할매 : (끓고 있던 찌개 갖다주며) 어느 세월에 사람구실 할 거시여?
(태호를 보더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걸뱅이 새끼 천지구먼. 쯔쯔...
태호 : (울컥) 할머니!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할매 : (주방으로 가려다) ...법? 무신 법?
태호 :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부터 주냐구요?
할매 : 시끄러 이 눔아! 요 화상은 우리 집 단골이여.
종구 : (듣는둥 마는둥 찌개 떠먹는) ...
태호 : 아무리 단골이라두 순서는 지켜야죠!
할매 : 니가 주인이여?
태호 : 네?
할매 : 수 틀리믄 니 눔이 주인혀! 여그 들어와서 밥허고 찌개 끓이구, 다 해 먹으라구!
태호 : (기가 막힌) 할머니!
할매 : 오냐오냐 걸뱅이 새끼들 받아줬더니... 별 지청구를 다 듣네그랴!
열받은 할매, 무기 삼아 소주병 나꿔채려는데 능숙하게 소주병을 재빨리 가로채서 잔에 따르는 종구.
그때 문이 열리고 나라가 들어선다.
나라 : (바로 상황파악) 어휴, 할머니! 손님하구 싸우지 말라니깐! (태호 기억 하고) ...어?
태호 : (멈칫, 알아보는) ..!!
/ 짧은 시간경과.
나라가 태호 앞에 찌개 뚝배기를 놔준다.
나라 : 저희 할머니가 가끔 욱해서 탈이지, 손맛은 최고에요.
멋쩍은 태호, 찌개를 한수저 뜬다. 온 몸에 퍼지는 전율!! 배도 고픈데 맛도 최고다.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하는 태호. 밥 뜨고, 찌개 먹고, 반찬 털고...
빠른 컷으로 전개되는 태호의 폭풍 먹방. 어느새 밥그릇과 뚝배기, 반찬 접시가 깨끗하게 비었다.
수저 내려놓는 태호, 행복한 포만감에 후! 한숨 토하고, 나라와 할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본다.
주변에 아랑곳없이 밥과 술을 묵묵히 비우는 종구.
42. 할매 식당 앞 ( 오전 ) -D8
기분좋게 나오던 태호, 멈칫 본다. 양씨, 뱀눈 부하들이 반원으로 둘러서 있다.
긴장하는 태호,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주먹을 쥐는데... 일제히 허리 굽혀 인사하는 노숙자들.
태호 : (주춤하는) ...뭐야?
양씨 : (박카스 상자 내밀고) 16만 4천원... 오늘치 상납액입니다.
태호 : 뭐?
양씨 : 평소엔 20 넘게 찍는데 요새 영 수입이 안좋아서요.
태호 : (상자에 담긴 지폐를 보며, 당혹스러운) ...내가 이걸 왜 받어?
양씨 : 에이, 우리가 다 봤는데.. 뱀눈 그 새끼, 완펀치로 날렸잖아요. 그 새끼가 받을 돈, 대신 받는 겁니다.
태호 : ...필요없어.
양씨 : 세상에 돈 필요없는 사람도 있나? 받아요. 그래야 우리도 편해져요.
태호 : (난감해서 양씨와 노숙자들 보는데)
오십장 : (소리) 누구여? 너여?
태호와 양씨 등등, 일제히 돌아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학생용 백팩을 멘 오십장, 뚜벅뚜벅 다가온다.
오십장 : 나가 오늘루다 뱀눈, 그 잡것을 제낄라구 혔는디 임자가 선수쳤다메?
태호 : (이건 또 뭔가, 당황스러운)
오십장 : 저 시러배 잡것들헌티 돈 뜯기는 것두 지랄 맞구, 자리 밀려서 한뎃 잠 자는 짓두 서러워 못하것네.
(턱, 태호 어깨를 짚는) 긍게 한판 뜨세. 심플허게...
태호 : ...뭐요?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해진이 다가온다.
해진 : 제대로 합시다, 오십장. 제대로!
오십장 : (매섭게 돌아보는) 제3자는 빠져라잉?
해진 : 보는 눈도 많은데, 규칙대로 해야죠. 시간도 맞추고, 장소도 잡고... 엄연히 규칙이 있잖아요, 안그래요?
오십장 : 허면 어쩔 것인디?
해진 : 내일 새벽 1시, 삼거리 육교. 콜?
오십장 : (태호를 노려보는) 도망치믄 뒤진다잉?
기세등등, 돌아서가는 오십장.
태호,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떨떨한 표정인데...
해진 : 나, 차해진이요.
태호 : ...?
해진 : (넉살좋은 미소) 우리... 심도깊은 대화 좀 나눕시다.
43. 목욕탕 / 열기사우나 안 -D8
수건을 덮고 땀 빼는 태호. 그 옆에서 헉헉대는 해진.
해진 : 딱 보니까 알겠더라구. (태호의 근육 살피며) 몸관리 꾸준히 했죠? 운동신경이 장난 아니던데.
태호 : 꺼지쇼. 귀찮게 하지 말구.
해진 : 에헤, 들어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고단백 영양정보라니깐.
태호 : (관심없이 땀을 훔치고)
해진 : 아까 그 돈,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요?
태호 : ...
해진 : 이 양반, 큰일날 사람일세. 출처도 모르는 돈, 날름 받아서 싸우나를 오셨어?
태호 : (피식) 십만원도 돈이야?
해진 : 어이쿠, 그래서 겨우 오천원 때문에 사람을 뒤에서 깠나?
태호 : (노려보는) ...
해진 : (마주보며) 다들 구걸하는 형편에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을까?
태호 : 상납한다더군. 거지들이...
해진 : 그렇지! 서울 시내에만 대략 오천 명. 그 중 10프로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거든.
그 상납액을 다 모으면 일년에 얼마나 될까요오~
태호 : (조금 솔깃) ...?
해진 :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 낮추고) ...백억.
태호 : ...!!
해진 : 경쟁자 없는 독과점에 세금 한푼 안붙는 캐쉬가 일년에 백억이라구!
잠시 놀랐던 태호, 못미더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나가버린다. 황급히 따라 나가는 해진.
44. 지하철 객차 -> 역사 일각 -D
맹인이 스틱을 더듬거리며 걸어온다. 목에 건 라디오에서는 찬송가가 흘러 나오고... 바구니에 돈을 넣어주는 사람들.
꾸벅 인사하며 지나가는 맹인. 그 위로 해진 설명.
해진 : (소리) 구걸도 목만 좋으면 수입이 짭짤해요. 근데 이게 모이지가 않아요. 왜냐?
/ 맹인, 출입 계단으로 향하는데 배중사 부하들이 나타난다.
해진 : (소리) ...뺏기니까.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맹인, 지폐 십 여장을 건네고 꾸벅 인사.
해진 : (소리) 뺏기는 굴욕같은 거, 아무렇지도 않아. 이미 다 뺏기고 털리던 인생 끝에 길바닥까지 쫓겨났으니까.
맹인 : (초라한 걸음으로 계단 올라가는)
해진 : (소리) 돈 되는 거 또 있지.
45. 주민센터 안 ( 낮 ) -D
프린터에서 출력되는 주민등록 등본.
양씨에게 등본을 건네는 직원, 그 뒤를 보더니 기가 막힌다. 양씨 뒤에 줄 서 있는 노숙자들.
/ 연달아 프린트되는 등본. 차례로 받아가는 노숙자들 위로.
해진 : (소리) 대포폰, 대포차, 대포통장...
46. 지하도 일각 -D
양씨가 악어 부하에게 등본 건네고 몇 천원 받는다.
차례로 등본을 넘기는 노숙자들. 서류 가방에 등본과 주민증이 가득하다. 그 위로.
해진 : (소리) 그렇게 소주값 몇 천원에 팔린 명의가 다른 데로 넘어가면 웃 돈이 얼마나 붙을까? 십만원? 이십만원?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큰 돈 나오는 구멍이 또 있거든.
47. 폐건물 외부 -> 수술실 -D.N
으스스한 폐건물 앞, 봉고차가 멈춘다.
독사 부하들이 뒷칸에서 비닐백을 꺼내 안으로 옮긴다. 사람이 들어있는 형체.
해진 : (소리) 연고없는 노숙자들, 얼어죽고 병 걸려 죽어봤자 담당 공무원만 귀찮거든.
가망없는 목숨들은 미리미리 재활용하는 거야.
/ 마취 상태로 수술대에 누워 있는 중년의 노숙자. 술에 취한 의사가 수술 준비한다. 뒤에 서서 지켜보는 독사 부하들.
메스가 복부를 가르는, 바닥에 피가 흐르고...
해진 : (소리) 심장, 간, 위, 콩팥, 눈알, 가끔씩 피부... 어휴, 안에 든 것도 많아. 사람 몸뚱아리는...
48. 코인 세탁소 안 -D8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빨래. 해진이 손가락을 딱! 튕긴다.
해진 : 그래서 결론! 노숙자는 다아~ 돈이다!!
낡은 트레이닝 복을 걸친 태호, 듣는 둥 마는 둥, 빨래가 건조되길 기다리고 있다.
해진 : 그 어마어마한 돈이 피라미드 형태로 상납이 되는데, 오늘 형씨가 때려눕힌 뱀눈, 그 자식이 넘버 7걸랑.
서울역 관리하는, 최하위 보스. 그 윗대가리들을 하나씩 제끼고 올라가면...
태호 : (일어나서 세탁기로 가는)
해진 : (옆에 바짝 붙어서) 꼭대기에 최소한 백억이 기다린다구, 백억!
태호 : (셔츠와 바지 꺼내서 팍팍 터는) 그렇게 탐나면 당신이 가져.
해진 : 에이... 히딩크는 감독을 해야지, 뽈은 박지성이 차고... (태호가 쳐다 보자) 이래뵈도 내가 원석 골라내는 선구안 하나는
끝내주거든. 어때? 나랑 손잡구 넘버원까지 달려보는 거...
태호 : (생각하는) 넘버원이라... 괜찮네.
해진 : (반색하며) 그렇지! 금은보화가 기다린다니깐!
태호 : 근데 이 바닥은 아냐.
해진 : ...?
태호 : (트레이닝복 돌려주는) 잘 입었어.
해진 : (당황해서) 어이, 형씨.
태호 : (셔츠를 펄럭~ 날리며 걸치는) 난... 내 싸움터에서, 내 방식대로 재기 할 거야.
49. 거리 일각 ( 낮 ) -D8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가는 태호.
이만치에서 태호 뒷모습을 바라보는 해진, 못내 아쉬워서 입맛을 다신다. 옆에 서 있는 영칠.
영칠 : 형 구라가 안통하는 사람두 있네.
해진 : (부라리는) 맞을래?
영칠 : 포기해요. 첨부터 이 동네하구 잘 안어울리는 사람같던데...
해진 : (멀어지는 태호를 보는) ...
조회장 : 다시 오게 돼 있어.
해진, 영칠 : (돌아보는) ...?
조회장 : 사람사는 물길이란게 한번 흐름이 바뀌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는 법이야. 언제구 다시 올 걸세.
해진 : (표정 살피며) 회장님? 괜찮아요?
조회장 : 뭐가 말인가?
해진 :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지금이 몇 년도게요?
조회장 : 실없는 소리... 그나저나 청와대에서 아직 연락 없었나?
해진 : (짜게 식는) ...백악관에 갔나부죠, 뭐.
50. 정민의 오피스텔 앞 ( 저녁 ) N8
출입구가 보이는 곳, 못박힌 듯 서 있는 태호. 저만치에서 정민이 걸어오고 있다.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는 태호.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에 고개 드는 정민, 굳어 버린다.
먹먹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태호.
태호 : ...오랜 만이다.
정민 : (놀랐던 표정이 차가워지는) ...
태호 : 잘... 지냈어?
정민 : (한발 다가서는) ...
태호 : 미안...
태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이힐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정민. 헉! 무릎을 감싸안는 태호.
정민 : 이건 한 달 넘게 전화 한통 안한 벌. 그리구 이건... 그동안 날 감쪽 같이 속인 벌! (핸드백으로 때리려는데)
태호 : (정민의 팔을 잡는) 정민아!
정민 : 증권회사 팀장? 사이드잡으로 투자 컨설팅을 해?
태호 : 내 말 좀 들어봐!
정민 : 경찰한테 다 들었어.
태호 : (멈칫) ...!
정민 : 작전 쪽에서는 알아주는 에이스라더라. 주포라고 한다며? 주가 조작 설계하고 지휘하고... 그게 태호씨 진짜 직업이잖아.
태호 : 그래서? 실망했니?
정민 : 나,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같은 거 안해. 그동안 속은 게 좀 짜증이 나서 그렇지.
태호 :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민 : 그건 믿어줄게.
태호 : 믿어두 돼. 진심이니까...
정민 : 경찰 말구, 태호씨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 또 있지?
태호 : (표정) 무슨 소리야?
떡대 : 여어, 장태호!
흠칫 돌아보는 태호와 정민. 떡대와 정사장 부하 몇이 다가온다.
정민을 뒤로 비키며 막아서는 태호.
떡대 : 와... 우리 사장님 촉이 예술이네. 끈질기게 기다리면 언제구 기어나올 거라구 하시더만. 어떻게... 술은 좀 깨셨나?
태호 : 여자는... 보내고 얘기하자.
떡대 : 안되지, 그건. 장태호 너 담궈버리면, 저 여자가 목격잔데...
태호 : (꿈틀! 주먹을 굳게 쥐는데)
정민 : (앞으로 나서며) 당신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가.
태호 : (팔을 잡는) 정민아!
정민 : 이 남자도 손댈 생각 마. 그랬다간 다쳐.
떡대 : (피식 웃으며 다가서는) 혹시... 미친 년이세요?
순간, 야무지게 떡대의 뺨을 때리는 정민.
확! 치밀어 오른 떡대, 정민을 후려치려는 순간! 태호가 떡대의 팔을 나꿔챈다.
다른 부하가 태호의 옆구리를 가격한다. 바닥에 뒹구는 태호. 독이 오른 부하들, 태호에게 달려드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뛰어오는 검은 양복의 경호원 다섯. 영문 몰라 당황하는 떡대.
경호원 둘이 태호와 정민을 커버하는 동안, 다른 경호원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떡대 패거리를 제압한다.
길바닥 싸움과 차원이 다른 기술과 동작.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져 팔이 꺾이는 떡대 패거리.
갑작스런 상황에 얼떨떨한 떡대와 패거리들. 태호 역시 상황파악이 안되는데.
정민 : ...보내 주세요.
경호팀장이 눈짓하자 떡대 부하들이 풀려난다. 황망하게 도망치는 떡대 패거리들.
정민 : (경호팀장에게) 아버지한테는 보고하지 마시구요.
팀장 : (목례하고 부하들 걷어가는)
태호 : (의아해서 정민을 보는) ...아버지? 정민이 너, 아버지 돌아가셨다며?
정민 : (담담하게 마주 보는) ...
51. 한중그룹 사옥 앞 ( 저녁 ) -N8
근엄하고 위압적인 분위기의 윤일중 회장, 임원들 배웅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
차에 오르려던 윤회장, 손짓으로 세훈을 부른다. 다가온 세훈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윤회장. 경청하는 세훈.
말을 마친 윤회장, 임원들을 둘러보고 차에 오른다. 그 위로...
정민 : (소리) 한중그룹 윤일중 회장이... 우리 아버지야.
52. 카페 안 ( 저녁 ) -N8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정민. 어이없이 바라보는 태호.
정민 : (남 얘기하듯 태연히) 혼외 소생. 옛날 말로 하면 서녀. 간신히 호적에는 올라갔는데, 본가 식구들은 없는 사람 취급하구...
고리타분한 스토리야.
태호 : (갑자기 실소가 터지는)
정민 : (언짢게 보는) ...
태호 : 호부호형도 못하고,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지도 못하고... 대단하구나, 재벌집안이라는 거.
정민 : 주가조작하다가 도망다니는 사람한테, 그런 비아냥은 듣고 싶지 않네.
태호 : 됐어. 이걸루 피장파장이다.
정민 : ...?
태호 : 난 내 직업 숨겼구, 넌 니 아빠 감췄잖아.
정민 : 혼자 사과하려니 억울했구나? 하긴... 태호씨는 지는 거 싫어하지.
태호 : 니 아버지가 누구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갖고 싶은 건 네 배경이 아니라, 윤정민... 그 자체니까.
정민 : (차 마시려다 보는) ...
태호 : 나... 다시 시작할 거다. 그리구, 내가 했던 프로포즈, 아직 유효해.
정민 : (냉소하는) 한달 동안 어디 다른 세상 갔다 왔어?
태호 : 무슨 뜻이야?
정민 : 현실을 똑바로 보라구. 경찰이 찾고, 사채업자가 쫓아 다니구 있어.
미국? 출국 금지됐을 텐데 어떻게 나가려구? 빠져 나간다구 해도 빈털터리로 가서 뭘 어떻게 할 건데?
태호 : (굳는) ...방법이 있을 거야.
정민 : 아니. 태호씨는 끝났어. 감옥에 가든가, 더 운이 나쁘면 아까 그 사람들 손에 해꼬지당하겠지.
태호 : (꿈틀) 나... 이대로 안무너져.
정민 : (안스러운 미소) 노름꾼은 밑천 다 날려두 본전 생각 땜에 노름판을 못떠나구,
사이비 광신도는 세상이 멸망해도 자기만 구원받을 거라고 믿구... 태호씬 어느 쪽이야?
태호 : (이글거리는 눈빛) 둘 다... 본전도 찾고, 구원도 받을 거야. 그래서... 정민이 너도 가질 거다.
정민 : 어떡하지? (커피 한모금 삼키고 내려놓는) ...미안하지만 태호씨는 내 인생에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됐는데.
태호 : 윤정민!
정민 : 훨씬 유능하고, 쓸모있는 남자를 찾았거든.
태호 : ...!!
정민 : 좀 있으면 여기 올 건데, 소개시켜줄까?
태호 : (꿈틀! 그러나 표정관리하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해. 날 사랑했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정민 : 사랑... 그거 우리 두 사람한테는 안어울리는 말 같다. 어차피 태호씨는 날 소유하고 싶었던 거 뿐이잖아.
패배를 모르는 장태호 인생을 장식해줄 전리품으로...
태호 : (쾅! 테이블 짚고 일어나는) ...
정민 : (말갛게 쳐다보는) ...
태호 : (눈빛은 불타지만, 입가엔 쓴웃음) ...기다려. 내 영혼을 팔아치워서라두 널... 내 장식품으로 만들 테니까.
53. 카페 앞 주차장 ( 저녁 ) -N8
분노에 휩싸여 걸어오는 태호. 차 한 대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세훈 : (고개 내밀고) 거, 차 좀 보고 다닙시다!
매섭게 노려보는 태호. 뜨악해서 마주 보는 세훈.
태호, 성큼성큼 걸어가고 세훈은 ‘저거 뭐야?’ 싶고.
54. 카페 안 ( 저녁 ) -N8
착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정민. 세훈이 미소 지으며 다가온다.
세훈 : 미안... 오래 기다렸어요?
정민 : (여전히 상념에 빠진) ...
세훈 :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 뭐부터 들을래요? (앉다가 태호가 남긴 커피잔 발견하고) 누구... 왔다 갔어요?
정민 : (표정 고치고) 신경쓸 거 없어요. 기분 별로니까 굿뉴스부터 듣죠.
세훈 : (티켓 꺼내 보여주는) 티켓 구했어요. 토요일 7시, R석 두자리.
정민 : (적당한 미소) 이 뮤지컬, 예전에 매진됐는데 용케 구했네요?
세훈 : 정민씨가 보고 싶어 하니까 수단, 방법 안가렸죠. 극장에 협박전화했어요. 티켓 안팔면 폭파해버린다고.
정민 : (피식) 나쁜 소식은요?
세훈 : (짐짓 한숨) 다음 주부터 나, 기획전략실로 출근합니다.
정민 : (놀라는) ...!
세훈 : 월급 도둑이 체질인데, 회장님이 직접 맡기신 자리라 거절할 수도 없고... 골치 아프게 됐어요.
정민 : 지금 농담해요? 기전실이면 회장님 브레인팀이에요. 한중그룹 계열사 열 여섯 개를 좌지우지하는 부서구요.
세훈 : 정민씨는 회장님하고 독대해본 적 없죠?
정민 : (멈칫) ...
세훈 : 카리스마 장난 아니에요. 워낙 철두철미한 양반이라 모시기 쉽지 않거든요.
정민 : (표정관리하며) 그런 분이 선택했다는 건, 세훈씨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뜻이겠죠. 나쁜 소식, 축하해요.
세훈 : (웃으면서도 서운한 척) 정민씨. 우리 사귄지 한 달두 안됐어요. 근데 앞으론 데이트할 시간도 회사에 바쳐야 된다구요.
정민 : 난... 매진된 티켓 구해주는 남자보다, 자기를 매진시키는 남자가 좋아요. 일이든, 사랑이든.
(남아있는 커피잔을 보며 씁쓸해지는) 날 위해서도 실패하지 말아요, 세훈씨.
세훈 : (문득 갸웃해지며 출입문을 돌아보는, 설마 조금 전의 그 남자) ...?
55. 부둣가 일각 ( 밤 ) -N8
태호의 차가 빠졌던 위치. 부두 끝에 놓이는 국화 한송이. 태호, 소주를 바다에 휘휘 붓는다.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마시는 태호, 후... 뜨거운 숨을 토하더니 밤바다를 바라본다. 눈가가 젖어드는...
태호 : 형... 미안해요. 형한테 진 빚... 어떻게든 갚을께. (떨리는) 그러니까 나, 조금 더 살아야겠어요. ...미안해, 형.
밤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태호의 실루엣이 길게 보이고...
56. 지하도 일각 ( 밤 ) -N8
신문지 덮고 잠든 노숙자들.
한쪽에 코골며 자는 해진. 누군가 해진을 발로 툭툭 건드린다. 짜증내며 고개 드는 해진.
해진 : 어떤 새끼야?
태호 : ...나야.
해진 : (잠이 덜 깬) 어?
태호 : (팽팽한 눈빛으로) 넘버원... 내가 제껴야겠어. 어떻게 하면 되냐?
57. 편집화면 -D
서울역 일대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화면 위로...
해진 : (소리) 뱀눈 그 자식은 별 볼일없지만, 그 위부터는 진짜 싸움꾼이야.
/ 공터 일각.
노숙자들이 원산폭격하고 있다. 전투화에 군용점퍼 입은 배중사, 험악한 눈빛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얼차려를 준다.
해진 : (소리) No6는 배중사라고... 노숙자들이 동원되는 이런저런 잇권 사업 담당이야.
특수부대 출신인데, 하급자 폭행죄로 불명예전역 당했어. 또라이 중에 상또라이라고 할 수 있지.
/ 다방 안.
부하가 수집해온 등본 서류를 추리는 악어. 여종업원이 지나가자 엉덩이를 움켜쥔다. 꺅! 놀라서 피하는 종업원.
입맛 다시며 흐물흐물 웃는 악어.
해진 : (소리) 각종 명의 매매 사업을 맡고 있는 서열5위, 악어. 싸움질이든 사업이든 꼼수가 주특기야.
음흉한 놈이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돼.
/ 폐건물 앞.
여러 개의 아이스 박스를 들고 나와 승합차에 싣는 부하들.
다가오는 독사. 부하가 박스 하나를 열어 보인다.
얼음이 깔린 박스 안. 비닐팩에 담겨 있는 선홍빛 간! 방금 적출된 것이다.
해진 : (소리) 서열 4위는 독사라는 놈인데, 이 새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독종이야. 그러니까 장기 밀매를 맡은 거구...
/ 교도소 독방.
손가락 두 개로 푸시업하는 사내의 뒷모습.
죄수복이 터질 듯한 근육. 목덜미까지 그려진 문신의 끄트머리. 짧은 머리에서 비오듯 땀이 흐르고...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는)
해진 : (소리) No3 작두는 지금 빵에 가 있어. 나두 소문만 들었는데, 걸리면 다 썰어버리는 놈이래.
출감이 얼마 안남았으니까 조심해야 돼.
58. 지하도 일각 ( 밤 ) -N8
한쪽 구석자리. 목소리 낮추고 얘기를 주고받는 태호와 해진.
해진 : 한 놈두 우습게 볼 만한 상대가 아니야. 목숨 걸구 싸워야 된다구.
태호 : (생각에 잠긴) ...
해진 : 왜? 갑자기 쫄았어? 관두고 싶어?
태호 : (냉소적인) 아직 시작도 안했어. 넘버2는 누구야?
해진 : 전에 만났잖아. 할매 식당에서 밥먹던 그 작자.
태호 : (갸웃하다가 기억해내고) ...!!
59. 폐버스 안 ( 밤 ) -N8
바닥에 뒹구는 소주병들. 군용 침대에 누워 있는 종구.
누군가 버스에 올라선다. 동물적 본능으로 몸을 일으키는 종구.
멈칫하는 사내, 사마귀다. 가디건에 셔츠를 받쳐입고, 안경을 끼고... 공부벌레 대학원생같은 느낌의 사마귀.
종구, 사마귀를 알아보더니 긴장을 푼다.
사마귀 : 형님이... 지금 오시랍니다. 다른 보스들도 전부 소집했어요.
종구 : (소주병 들고 털어보는데 비었다, 내던지고) 술 있냐?
사마귀 : (웃는) 와서 드시죠.
종구 : 꺼져.
사마귀 : 오늘도 빠지면... 형님이 화가 많이 나실 겁니다.
종구 : 꺼지라구 했다.
싸늘한 미소로 인사하고 나가는 사마귀.
멍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보는 종구. 그 시선이 닿는 곳에 도금 벗겨진 챔피언 벨트가 보이고...
태호 : (소리) 동양 챔피언?
60. 편의점 앞 ( 밤 ) -N8
컵라면과 소주 놓고 얘기 중인 태호와 해진.
해진 : 쌍팔년도 챔피언이라두 복싱한 싸움꾼은 한방이 있거든.
태호 : 그 작자는 무슨 사업 담당인데?
해진 : 그냥 놀아.
태호 : 뭐?
해진 : 그건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진짜 강적은 최종 보스, 넘버1이야.
태호 : (긴장하는) ...
61. 더 클럽 앞 ( 밤 ) -N8
육중한 세단이 멈춘다. 차문을 열어주는 사마귀.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거구의 사내, 곽흥삼이 내린다. 그 위로...
해진 : (소리) 서울역 지하경제 시스템을 맨주먹으로 만들어낸, 피라미드의 정점, 무적의 사나이... 곽흥삼.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뒤, 안으로 들어가는 흥삼.
62. 더 클럽 / 홀 ( 밤 ) -N8
들어서는 흥삼, 살짝 찌푸린다. 내실에서 와장창,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 욕설과 비명도 들리고...
우왕좌왕 들락거리던 종업원들, 흥삼을 보더니 황급히 허리 굽혀 인사.
흥삼, 바 앞에 앉아있는 여인에게 다가간다. 얼음찜질하던 미주, 흥삼을 보자 얼굴 피한다.
미주의 턱을 잡아서 돌려 세우는 흥삼. 눈가에 멍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피하는 미주.
낮게 혀를 끌끌 차는 흥삼, 내실로 향한다.
63. 더 클럽 / 내실 -N8
흥삼과 사마귀가 들어서는데 와당탕! 문 앞에 나가 떨어지는 악어.
테이블 위에 우뚝 선 종구, 흥삼을 보자 멈칫! 종구 향해 술병을 치켜 들었던 독사와 배중사도 얼어붙는다.
난장판이 된 내실을 태연하게 둘러보는 흥삼.
흥삼 : 젠틀하게 살자, 젠틀하게... (미소 속에 번득이는 살기) 어려운 거 아니잖아. 응?
64. 건물 옥상 ( 밤 ) -N8
상가의 옥상 어디쯤... 태호가 서 있다. 저만치 보이는 서울역.
투지와 각오로 형형해지는 태호의 눈빛.
태호 : 곽흥삼... 너는... 내가 잡는다...
주먹을 불끈 쥐는 태호. 앞씬에서 흥삼의 여유로운 표정, 감정을 알 수 없는 종구.
세 남자의 얼굴이 운명적으로 파팟! 한 컷에 박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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