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은 어떻게 임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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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동안 본 카페에서 구원, 회개, 성령, 성령 세례, 성령은사, 성령 열매, 성령 충만 등과 관련된 말씀을 정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주권적 역사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로 그 절대주권적 역사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성령님이 임하는 방법은 시대적 배경, 상황에 따라, 그 목적하신 바에 따라 특별하게 임하는 경우가 있고, 일반적(보편적) 방법으로 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이를 설명하고 비교하고자 합니다.
<시대적 배경, 상황, 대상에 따른 특별한 경우>
1.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성자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세례를 받는 경우이며, 성자 하나님되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엄청나게 특수한 상황입니다. 이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임하셨고, 하늘에서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합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일상적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임하시는 모습을 비둘기 같이 내려오듯 하셨고 소리까지 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10-11)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요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2.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후 성령이 임하시리라는 약속대로 사도행전2장에 성령이 강림하는 모습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경우도 매우 특수하고, 특별한 경우라고 믿습니다. 승천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초대교회에 처음으로 임하는 경우이며 이는 앞으로 성령시대를 시작하는 첫 출발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임하셨으며 그곳에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여기서 방언이 일어난 것도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에 대한 겉으로 나타난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보여줌으로 복음서도 없는 상황 즉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임재를 강력하게 증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3. 이어서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에도 임하지 않던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온 사도들의 안수를 받고 성령이 임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도 하나님께서 복음증거가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던 사도들의 권위를 세워주고(오픈 성경 주석 참조),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특별히 역사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사도행전8:14-17)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4.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들이 유대, 사마리아, 중동인근 지역, 로마 등 세계 여타 지역으로 확장되어가는, 정말로 다이나믹한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셨으나, 점차 보편적, 일반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령은사로서 방언이 강조되는 것을 경계하기까지 합니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방언이 지나치게 강조되자 고린도전서 12장-14장에서 상세히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며 방언을 해야할 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후서가 기록된 이후의 성경에서는 방언(히브리어 방언 등 지방언어 제외)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기록이 없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5.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성령 하나님은 특별하게 임하십니다. 사도들의 초기 사역이 펼쳐지던 때만 하던 때도 아직 교리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성령과 다른 위와의 관계가 공적으로 확정된 것은 AD 589년이 되어서 였다, ‘기독교 신학개론, 루이스 뻘콥, p91)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전하도록 하시기 위해 겉으로 나타난 성령 은사 즉 방언을 하도록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행10:45-48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1:15-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행15:1-2, 8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을 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19:1-7절에 나타난 에베소에서 12명의 그리스도인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은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령님의 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친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 뜻대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행1:5, 2:38,39) ..... (오픈성경 주석 참조) 제가 잘 아는 기독교교리에 능한 분은 “은사를 받아서 순식간에 영적 거인이 되려는 것은 은사를 주시는 목적에 위배되며 하나님의 성장시키시는 방법에도 위배되므로 은사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경계하셨습니다.
6.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에 일어나는 겉으로 드러난 성령의 은사 즉, 방언, 신유 등이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믿는 자에게 성령의 내주하심이 충분이 증거됨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경우에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첫째 여전히 교회의 공동의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얻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표준새번역)
또한 성경을 구할 수 없거나, 글자를 잘 모르거나, 급박한 상황 등에서 겉으로 드러난 성령의 역사가 꼭 필요한 경우입니다. 둘째, 성령의 은사의 의미를 잘 모르고 굳이 방언 등 겉으로 드러난 은사를 사모하는 경우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 소원함을 보시고 허락하시는 경우입니다.
물론 방언, 신유 등을 함에 있어 악령이 역사하는 경우도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모두가 성령의 역사가 아님도 알아야 합니다. 한 예로 십여년전 다미선교회라는 이단 단체에서 집회할 때,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방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방언을 통역하는 자들도 모두 거짓 영에 이끌려 언제 휴거가 일어난다고 거짓을 고한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경우>
성경에서 말씀하신대로 성령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임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진실로 주로 시인하는 자에게는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성령님은 임하시며, 그와 함께 하십니다. 특별하게 성령님이 임하는 것이 성령의 은사 등을 통해 나타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께서 임한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린도후서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요일4:13-15)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성령이 내주하시는가? 성령 충만한가?의 의미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암송하며, 공부해 나갈 때,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마음에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성경 말씀대로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요, 성령의 은사요, 성령의 역사하심이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교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거나 전하는 삶도 방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의미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최선의 은사를 허락하십니다. 이미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성령을 주셨을 때 그 은사를 함께 주셨다고 믿습니다. 성령 따로 은사 따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주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지체의 필요에 따라, 그 지체에 맞는 은사가 나타나도록 역사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부족한 가운데 해외에 있을 때 그 서툰 언어로도 복음을 설명하였을 때 복음을 처음 듣는 자도 알아듣고 주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영접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도 진정한 의미의 방언이요, 성령의 은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주의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을 무리하게 일반화시키거나 공식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무리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님이 어떻게 임하시는가에 대한 정형화된 공식을 찾는 시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 성령 세례 받음’ 그리고 ‘성령을 받은 것을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로 확인’하는 듯한 공식화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데 시간을 드리도록 인도하기 보다는 교회나 선교에 덕이나 선한 지식을 쌓은데 도움이 안되고 자기 과시적 신앙생활을 하도록 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불순한 동기를 가진 목회자들은 이를 하도록 도와주거나 방법을 전수한다고 하며 헌금 등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 글이 연약하고 표적을 원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패역한 시대에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보여주기 위해, 건전한 마음으로, 선한 뜻으로 방언 등 은사운동을 추구하는 교회나 목회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역이 더욱 부흥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