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맹자반 야외수업 / 강릉 2013.4.26(금)
금년도 봄 야외수업이 4월26일에 있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이다. 강남구민회관 앞에 7시반까지 버스를 대기시켰다. 필자는 차량을 책임지게 되어 있어서 시작 전부터 끝날때 까지 늘 신경이 쓰인다. 기사와 버스가 달라져서 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인원이 초과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결국은 세자리가 남았다. 그런데 꼭 와야할 부반장이 안보인다. 이유를 물으니 3명이 오버되어 부반장을 포함 3명이 양보하고 오지 못했단다. 미리 연락이 되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특별한 사유야 있었겠지만 좀 심한 편이다. 필자 친구도 늦게사 갈수 없겠냐 물어서 인원이 초과되어 안된다고 얘기했는데--
여행기 초두에 잔소리 같은 말이지만 질서를 잡기 위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반드시 선착순(사전입금기준)으로 하고 추가는 대기자명단 순으로 하고 취소시는 만 하루전까지 연락이 없는 경우 환불불가. 앞으로 한두해가 아닌 계속되는 야외수업에 하나의 원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안을 한다.
8시 정각에 버스는 출발했다. 반장이 아침식사로 김밥,떡,귤과 물병을 개인별로 일일이 포장을 해서 나누어 주었다. 봉사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노선생님이 오늘의 스케쥴과 개략적인 유적지에 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목적지는 강릉이다. 강릉의 오죽헌,경포대,허난설헌, 선교장 그리고 안목항 바닷가-- 필자는 금년에 벌써 세번째 강릉행이다. 그러나 동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행에서 느끼는 감흥도 달라진다. 버스 타는 시간이 근 세시간이 걸린다.
작년부터 등단한 서영교 동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필자의 대학동기생으로 여행,모임에서 늘 사회를 맡는 전문가이다.많은 준비를 해왔다. 뿐만아니라 DVD도 앙드레류의 뉴욕공연, 나훈아,조용필 공연까지 볼 수 있는 완벽한 준비다. 우스개,꽁트,넌센스퀴즈 등 다양한 종류의 내용으로 사회를 맡 았다. 이어 논어반에 들어온지 불과 두달밖에 안되지만 이 방면에는 프로급인 배영호동지가 소개되 었고 그는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자기소개와 우스개를 선사하였다.
오죽헌(烏竹軒)
그러는 사이 목적지 강릉에 도착하였다. 첫번째로 찾은 곳이 오죽헌이다. 지난 2월 이곳을 찾았을 때 어찌나 변한 모습에 놀랐는지 그때의 감회가 새롭다. 예전 기억이 잘 나 진 않지만 오죽헌은 이처럼 크지도 화려하게 꾸며지지도 않은 모습인 걸로 기억하는데-- 들어가는 정문 입구에 이율곡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그의 글 見得思義가 명필로 돌에 새겨져 있다. 오죽헌 배치도를 본후 오죽헌 첫 출입문인 자경문앞에서 해설사를 만났다. 그의 오죽헌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자란 친정집이자, 아들 율곡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사임당 신씨는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문장,침공,자수와 시문과 그림에도 능한 여류 예술가였다. 또한 자녀교육에도 특별하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여성상이다.
율곡 선생(1536~1584)은 이름 10만 군대의 양병을 주창하였고 대동법,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심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파주의 자운서원,강릉의 송담서원 등 20여개의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오죽헌은 강릉의 유현인 최치운(1390~1440)의 창건으로 아들 응현은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그의 사위 신명화(신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사위 권화에게 물려주면서 그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엄과 교훈을 길이 추앙하게 된 것이다.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죽헌동(竹軒洞)에 위치하며 오죽(烏竹) 즉 검은 대나무가 뜰안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율곡 이이의 동상
이율곡의 필치
오죽한 안내도
자경문(自警門)
소나소나무 숲으로 들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의 허난설헌의 생가자리를 공원화 하였다. 집 담벼락에 '2013년 난설헌문화제'알림 판이 붙어 있다. 4월27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집 구석구석 아름다운 봄꽃들이 객을 맞는다. 붉은 겹벚꽃과 핑크 색 복사꽃이 한데 어우러지고 명자나무도 붉은 꽃 경쟁을 한다. 하얀 옥매도 결코 지지 않는다. 문화해설을 맡은 여해설사가 천재적인 유류시인 허난설헌에 대해 열을 다해 설명을 한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자,작가, 화가,이다. 본명은 초희(楚姬)로, 호는 난설헌(蘭雪軒), 난설재(蘭雪齋)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본관은 양천이다.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서예와 그림도 잘 그렸다. 남편 김성립과 시댁과의 불화와 자녀의 죽음과 유산 등 연이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608년(선조 41년) 남동생 허균이 문집을 명나라에서 출간함으로서 알려졌다. 사후 남편 김성립이 이조참판에 증직되면서 그 역시 정부인으로 추증된다. 초당 허엽의 딸로 허봉의 여동생이 자 교산 허균의 친누나이며, 허성의 이복 여동생이다. 그의 나이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평을 들었다. 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허엽은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쳤다. 허엽은 서경덕과 이황의 문인으로 그가 서경덕의 문하에서 배운 도학적 사상이 난설헌과 허균 남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시재주와 글재주, 서예 재주를 아깝게 여긴 오빠 허봉의 주선으로 남동생 허균이 허성, 허봉과 평소 친교가 있었던 중인 시인 손곡 이달(李達)에게 시와 글을 배울 때 그도 함께 글과 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세도가 안동김씨(安東金氏)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하였는데,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그녀의 시재주와 글재주가 뛰어나자 남편 김성립은 그녀를 피하였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렸다. 그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종9품직에 머물렀고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고부간에 불화로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1580년(선조 13년) 아버지 허엽이 객사한 이후 아들과 딸을 연이어 병으로 잃었다. 그 아픔을 적은 시 곡자(哭子)가 공원안 허난설헌 동상 옆에 적혀 있다. 천편이 넘는 그녀의 아름다운 시는 우리나라 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유명해지고 출간되어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 허균의 암기력에 의한 213수의 시가 전해지는데 그 중 87수는 신선이 사는 소나무 숲으로 들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의 허난설헌의 생가자리를 공원화 하였다. 집 담벼락에 '2013년 난설헌문화제'알림 판이 붙어 있다. 4월27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집 구석구석 아름다운 봄꽃들이 객을 맞는다. 붉은 겹벚꽃과 핑크 색 복사꽃이 한데 어우러지고 명자나무도 붉은 꽃 경쟁을 한다. 하얀 옥매도 결코 지지 않는다. 문화해설을 맡은 여해설사가 천재적인 유류시인 허난설헌에 대해 열을 다해 설명을 한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자,작가, 화가,이다. 본명은 초희(楚姬)로, 호는 난설헌(蘭雪軒), 난설재(蘭雪齋)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본관은 양천이다.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서예와 그림도 잘 그렸다. 남편 김성립과 시댁과의 불화와 자녀의 죽음과 유산 등 연이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608년(선조 41년) 남동생 허균이 문집을 명나라에서 출간함으로서 알려졌다. 사후 남편 김성립이 이조참판에 증직되면서 그 역시 정부인으로 추증된다. 초당 허엽의 딸로 허봉의 여동생이 자 교산 허균의 친누나이며, 허성의 이복 여동생이다.
그의 나이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평을 들었다. 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허엽은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쳤다. 허엽은 서경덕과 이황의 문인으로 그가 서경덕의 문하에서 배운 도학적 사상이 난설헌과 허균 남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시재주와 글재주, 서예 재주를 아깝게 여긴 오빠 허봉의 주선으로 남동생 허균이 허성, 허봉과 평소 친교가 있었던 중인 시인 손곡 이달(李達)에게 시와 글을 배울 때 그도 함께 글과 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세도가 안동김씨(安東金氏)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하였는데,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그녀의 시재주와 글재주가 뛰어나자 남편 김성립은 그녀를 피하였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렸다. 그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종9품직에 머물렀고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고부간에 불화로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1580년(선조 13년) 아버지 허엽이 객사한 이후 아들과 딸을 연이어 병으로 잃었다. 그 아픔을 적은 시 곡자(哭子)가 공원안 허난설헌 동상 옆에 적혀 있다.
그녀의 아름다운 시는 우리나라 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유명해지고 출간되어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 허균의 암기력에 의한 213수의 시가 전해지는데 그 중 87수는 신선이 사는 세계를 동경한 것이라 한다. 27세 나이로 요절한 천재 여류시인이다. 공원 옆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잠시 둘러본 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기념공원 간판
허난설헌 생가
난설헌 문화제 광고
솟을대문
그림을 그릴까 글을 지을까?
야외수업 중 봄꽃이 만발/옥매,복사꽃,겹벚꽃
빨간 명자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명자 반장
안채
해설사의 열강
허난설헌의 영정
허난설헌의 명시
허난설헌 동상
허난설헌 시 - 죽지사3
허난설헌 시 -호정
허난설헌의 哭子
허난설헌 기념관
선교장(船橋莊)
오늘 야외수업 탐방코스 중 마지막 탐방지는 300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이다. 당초 계획에 없던 것이었으나 필자가 강력추천하여 추가된 곳으로 다행히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민간 가옥으로는 궁궐을 제외 하고는 99칸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나 실제는 한양을 벗어나 지방에서는 수박칸을 짓곤 하였다. 여기도 당초 256칸이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1703~1781)에 의해 처음 지어져 후손에 의해 이어온 120여 칸에 달하는 저택이다. 개인소유 최고의 주택으로 1965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KBS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조선말 사대부의 대 저택이다.현재 이 집에는 효령대군 18대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물레야 물레야>등의 영화촬영 장소이기도 하였고,드라마<궁>, 영화<식객> 드라마<황진이>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kbs 1박2일팀이 묵었던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각연못에 활래정이라는 외별당이 멋진 건축물이 반긴다. 선비와 풍류객들의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하다. 활래정을 지나 24칸이나 되는 행랑이 가로막는 앞에 우뚝 선 솟을대문이 있다. 선교장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옥호이자 편액이 버티고 있다. 신선이 유하는 높고 그윽한 집이란 뜻으로 정문이다. 옆 우물이 있는 대문은 여인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한다.
대문안으로 들어가면서 서고 겸 공부방이자 나중에는 할머니 거처로 사용된 서별당,1920년 ㄱ자 형태로 지어 집안 잔치나 손님맞이로 사용된 동별당 그리고 1748년 처음 배다리로 이씨가의 삶의 터전화 된 여인들의 거처인 안채로 이어 가면서 지혜로운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을 살펴 보았다.
마지막 열화당이라고 옥호가 붙은 건물이 단연 시선을 끌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연유된 문구로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툇마루가 서양식 테라스가 달려 더욱 이채로웠다. 조선 말 러시아 공관 직원들이 영동지방을 여행하면서 장시간 이곳에 묵었던 답례로 러시아 공사가 구리판,목재,목공을 들여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가치로 보존하고 있다.
행랑채에 앉아서 마지막 설명을 듣는다. 행랑채에 거주한 하인들이 수없이 많은데 무슨 일이 생기면 이들이 줄지어 먼저 달아난다고 하여 줄행랑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하니 말의 어원도 가지가지--
바닷가로 와서 바다구경을 하지 않고 가기에는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모든 스트레스와 근심걱정을 다 바다에 던지고 힐링된 기분으로 귀가하자는 뜻으로 강릉에서 방파제가 길고 전국 커피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안목항으로 갔다.지난 2월과 4월초 두번에 걸쳐 안목항 커피샾에서 내린커피를 마시며 바다구경을 한 기억이 새롭다. 일행은 시간이 바빠서 커피샾은 생략하고 방파제로 바람을 맞으러 산책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어느새 온몸의 피로를 씻고 산뜻한 새기분으로 전환되었다.
만 하루동안 많이도 다녔다. 알찬 야외수업이다. 버스안에서 오늘의 수업내용을 다시 복습도 하고-- 원래 논어반 원칙은 복습이 없지만 예외인 셈이다. 오는 길에는 서영교 동지가 준비해온 DVD로 지루함을 달랜다. 앙드레 류의 뉴욕 등 해외공연이다. 네델란드인인 앙드레류는 세계 130여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바이어린연주,지휘자,사회를 겸하며 무거운 관현악을 청중에 가까이 접근시키며 인기를 폭발시킨 장본인이다.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감상하거나 조용히 잠을 자는 동지도 있고-- 평화로운 버스안 풍경이다. 이렇게 논어,맹자반 봄 야외수업은 끝이 났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활래정 해설사가 재미있게 설명을 한다 선교장과 소나무숲 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고 특히 초가집들은 몇채만 유지하고 있다.
선교유거 / 신선이 머무는 집 정문이다. 여인들은 우물이 있는 문으로 출입한다. 오은고택 동별당 현판이다. 툇마루에 앉아 공부중 선교장 뒷산에도 예쁜 꽃들이 열화당 테라스/러시아인 작품 행랑채 툇마루에 앉아 강의에 열중 친구야! 사진 한장 남기자 강릉(안목)해변가 누군지 알아맞히기 안목 해변가 커피타운
감사합니다. |
|
첫댓글 미전의 글이 왜 이제 올라 오는지? 너무 오래 기다렸소 .불후의명작 이란 따로 있는것이 아니고 미전의 글이 바로 불후의명작 인 것이라 생각 되는데 다른동지들의 의견은 어떤지요?
나이 때문으로 이유를 대도 될까요? 게을러서 귀찮고 미루다 보니--미안합니다. 내용이나 글에서 오타가 있으면 양해바랍니다.
이렇게 새롭게 다시 보니 너무 감사합니다 미전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마지막 커피타운에서 느긋한 커피를 마시지 못함이
좀 아쉬웠어요
맞이요. 특히 여성분들은 분위기 있는 커피숖에서 바다를 내다보면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음미하는 멋도 있었어야 했는데--
제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 이라는 소설을 읽고 난 뒤 난설헌의 생가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도 재미있게 글, 사진 올려주셔서 갔다온 거나 진배없네요. 불후의 명작, 동의합니다!
이번에 정희씨는 참석을 못했지만 전 동지들이 님의 모범적인 양보정신에 감동을 먹었습니다. 반장이 애 좀 먹었을 겁니다.
미전의 여행기에 뿅--- 간 사람들이 들어 있는 모양인데....... 함께 여행해본 사람들은 여행기를 읽고 보고나서 새삼스럽게 다시한번 제대로 여행을 하고온 기분이 들것이다. 이런명품 여행기를 읽고서 그대로똑같은 순서대로 여행한 지인들이 많이 있다. 본래 여행은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들 하는데 다시 말하면 예습을 하고 여행을 가니 얼마나 재미있고 많이보고 감격 했겠는가,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미전의 세계 여러나라 명품 여행기가 수두룩하게 많으니 참고하시고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봄이 어떠하신지요. 미전을 대신해서 감사 합니다.
산토리니님 이거 누가 보면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오해하겠소. 괜히 비행기 태우며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단지 사진자료는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하여튼 비행기 태우주시니 기분은 우쭐한데 곧 떨어질 일만 남은 것 같소이다.
참석하지 못한 야외수업 안방에서 듣고 보는것이 여간 즐겁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없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미전의 여러 기행, 탐방기를 읽을 때 마다 항상 갖게되는 놀라움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의 모든것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고 치밀한 묘사로 새롭게 정리하는 솜씨에 박수를 보냅니다.
내 짧은 경험으로 그 많은 자료를 챙기고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옮겨야 하는 일련의 작업이 여간 번거롭고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전의 그 마음이 탐방기 전편에 흐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요즈음 이런저런 개인일로 카페 출입이 뜸했습니다. 뒤늦은 댓글이 되었습니다.
우보의 칭찬글은 천군만마를 얻은듯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문필가 우보의 글에야 비교할 째비가 안되지만 -- 댓글 하나만이라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미려한 문장이니까--이번 여행기를 우보께 맡기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논어반 동지들이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다음엘랑 빠지지 말고 동참하시기를--
제가 온라인 처음데뷰하다보니 서툴러 댓글을 여기안쓰고 기행문 있는 본부에 등록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청계 배영호
배영호 선생님, 카페 가입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