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성지는 초대 교회 교우촌이자 처형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면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바닷길이 열렸듯이 매일 썰물 때면 육지까지 바다가 열려 길이 생기는 제부도의 신비스런 광경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어 더욱 좋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한 남양 성모 성지는 서울에서 1시간, 수원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남양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의 위치를 갖고 있고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하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 많은 교인들이 찾아 들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백학, 활초 등 많은 교우촌이 인근에 형성되어 있었다. 옹기를 구워 팔던 백학 교우촌에서는 가마터와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교우촌은 왕림과 큰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고 안양 수리산 · 양지 골배마실 · 안성 미리내 · 진천 배티 · 아산 걸매리 등과 걸어서 하루 거리에 위치해 박해 당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양 농협 앞에서 버스를 내리면 길 건너편에 '로사리오교'라는 자그마한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다리 앞에는 '남양 성모 성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입간판이 하나 서 있고 여기가 바로 남양 성지에 들어서는 입구이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마치 성과 속을 구분하는 듯한 정문이 있고, 그 옆으로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예전 로사리오 동산 자리에 조성된 대형 잔디 광장이 나오고 야외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야외제단이 멀리 보인다. 그리고 광장 양 옆으로는 보행로와 쉼터 및 식당 등 부속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야외제단 옆을 지나면 제일 먼저 두 팔을 들어 순례자들을 축복하며 환영하는 강복 그리스도상을 만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2011년 남양 성모 성지 봉헌 20주년을 기념해 변화된 모습들이다.
성지에 들어선 순례자는 마치 성모님의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성지의 양편과 뒤쪽으로 구릉처럼 나지막한 동산들이 성지를 감싸 안듯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으로 성지가 들어앉아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강복 그리스도상을 지나가면 눈에 확 들어오는 '묵주기도 길'은 남양 성모 성지의 자랑이다. 원형으로 펼쳐진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로 꾸며져 있는데 대형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비롯해 어른 둘이 팔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돌들로 묵주알을 만들어 놓았다. 빛의 신비를 포함해 총 20단의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어 있고, 그 길을 하늘에서 보면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 모습과 흡사해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2006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파하기 위해 경당 위 야산 정상에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산을 새로 조성해 봉헌하였다. 이 동산은 성서에 따른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산 정상에 넓은 잔디 광장과 함께 조성되었고, 동산 가운데 하느님 자비의 상을 세우고 그 한 편에 피에타 성모상을 그리고 동산 둘레로 하느님의 자비심을 구하는 5단 묵주기도 길을 조성하였다. 동산 아래에는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도 조성하여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남양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 성지이다. 원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신앙 선조들이 순교한 순교 성지인 남양 성지는 1991년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며 수원교구 설정 기념일이기도 한 10월 7일 정식으로 성모님께 봉헌됨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 성지로 선포되었다.
성모 성지란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모 성지로 선포한 곳을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에 1천 8백 여곳이 있는데 그중 성모가 발현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에 적게는 한 곳에서 많게는 여섯 곳 정도가 있을 뿐이다.
남양 성지는 성모 성지로 선포된 후 지속적인 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묵주기도 고리 운동은 현재 수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매일 자신이 약속한 시간에 15분간 5단을 바침으로써 24시간 내내 민족의 평화통일과 가정의 성화를 위한 묵주기도가 이어지게 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성모 신심미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주에는 과달루페 성모님과 함께하는 낙태 속죄와 보속을 위한 미사와 생명수호를 위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또한 2017년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 100주년을 준비하며 통일 기원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남양 성모 성지 순례를 모두 마치면 제부도로 가서 바닷길이 열리는 장관을 목격할 수도 있다. 남양에서 사강 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20분 정도의 시간으로 제부도에 도착할 수 있다.
제부도에 갈 때에는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하루에 두 번 썰물과 밀물이 반복되는데 썰물 때에만 제부도로 들어갈 수 있다. 제부도 서편에 있는 2.5킬로미터의 모래밭과 그 뒤의 미루나무 숲이 볼 만하다. 특히 썰물 때마다 6시간씩 계속해서 열리는 바닷길은 자연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의 웅장함을 보여 준다.
썰물 시간이 맞지 않을 때에는 인근 대부도를 찾아갈 수도 있다. 피서철이면 이곳들을 찾는 인파가 많아 교통 체증이 심하기 때문에 미리 적절한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3년 4월 3일)]
순교자들의 성모 신심 이어받아 성모님께 봉헌한 남양 성모 성지
“ㅇㅇㅇㅇㅇㅇ에서 돌아오며 나는 행복했다. 그것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 하나를 얻었다는 기쁨이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눈 내리거나 바람 불 때도… 그렇게 찾아가자면 나는 어느새 성모님에게 조금씩 더 가까이 가 있지 않을까.”
작가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씨의 성지순례기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작가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든 ㅇㅇㅇㅇㅇㅇ는 어디일까. 그곳에서 그 무엇이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곳은 바로 한국교회에서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모 성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남양 성모 성지(전담 이상각 신부)이다.
한국교회 신자들의 성모 신심은 각별하다. 힘든 일에 부닥치게 되면 엄한 아버지보다는 편한 엄마를 먼저 찾아가 미주알고주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언제 찾아가더라도 지친 영혼을 포근히 감싸주는 성모 마리아를 모신, 성모 마리아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지가 바로 병인박해(1866년) 순교터 위에 세워진 남양 성모 성지이다.
성지를 둘러보자. 성지의 얼굴은 뭐니 뭐니 해도 성지 한가운데에 있는 로사리오 광장과 왼편에 있는 남양 성모 마리아상을 빙 둘러싼 20단 묵주기도 길이다.
빼어난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묵주기도 길에서 순례객을 인도하는 것은 대형 돌 묵주알, 화강암으로 만든 지름 0.7m 크기의 묵주알이 로사리오 광장 주변과 야산의 오솔길을 따라 4.5m 간격으로 놓여 있어 순례자들은 그 묵주알들을 한 알 한 알 짚어가며 묵주기도 20단을 바칠 수 있다.
묵주기도가 길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들도 이곳에 오면 생각이 달라진다. 철따라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갖가지 예쁜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계절이나 밤낮, 날씨에 상관없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를 부르며 성모 마리아께 매달리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돌 묵주알은 신자들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의 손길로 반들반들 윤이 난다. 성지를 찾는 이들은 “이곳에 오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푸근함을 느끼며, 돌 묵주알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성모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는 것 같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 성모님을 그리워하는 신자들의 발길로 다져진 곳이기에 그럴 것이다.
묵주기도 길 왼편 잔디밭에 있는 남양 성모 마리아상(높이 3.5m)은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마리아상과는 크게 다르다. 남양성모성지를 대표하는 이 성모상은 ‘우리 엄마’와 같은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조각가 오상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씨 작품으로, 어린 예수가 엄마 마리아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친근한 형상이다.
성모 마리아께 매달려 있는 아기 예수가 순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며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너도 너의 모든 어려움과 슬픔, 근심과 걱정을 말씀드리며 엄마에게 매달려라.” 그래서일까. 아기 예수님처럼 성모께 다가가 만지고 매달리며 기도하는 신자들 모습이 하나도 이상스럽지 않다.
남양 성모 성지를 방문했을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산’이다. 묵주기도 방향과는 반대로 나 있는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언덕 정상, 그러니까 로사리오 광장 오른편에 있는 이 동산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기억하고 그분께 의탁하며 기도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조성된 것이다. 동산 잔디밭에서는 자비로우신 예수님상과 피에타 성모상,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사도인 성녀 파우스티나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흉상이 순례객을 반긴다.
이 동산 둘레는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5단 묵주기도 길이다. 순례자들은 이 묵주기도 길에서 가시관, 못과 망치, 못에 뚫린 예수 손과 발, 창에 찔린 심장 등을 형상화한 묵주알 위에 손을 얹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5단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산에서 로사리오 광장으로 내려오자면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과 낙태 아기들 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고통을 가장 깊이 함께 나눴을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묵상하며 기도드리는 길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와 성모가 겪은 수난과 고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바닥에 돌을 깔아 맨발로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각 처마다 아들 예수의 고통을 느끼는 성모의 마음을 1인칭으로 표현한 묵상글을 담았다.
낙태 아기들 무덤은 낙태에 대해 속죄하며 보속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이곳에는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꾸몄으며, 생명의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상을 모셨다. 낙태를 부추기는 사탄과 싸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묵주기도의 터전에서 생명수호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처럼 의미 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남양성모성지=이상각 신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난 20여 년간 성지개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이가 이 신부다. 이 신부는 “순교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매달린 이가 성모 마리아요, 그들이 바친 기도가 묵주기도”라며 “이곳은 바로 순교자들의 성모신심을 잇는 성모성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단체로 어쩌다 한 번 다녀가고 마는 그런 성지가 아니라 한 번 와본 이는 꼭 다시 찾는 영혼의 쉼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성모님 품에 안겨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성지’가 바로 남양 성모 성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부는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께 매달릴 때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다”면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남양 성모 성지를 찾아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혼의 양식을 얻어갈 것을 권했다. 묵주기도만으로 부족한 이는 성지 한 켠에 마련된 성체조배실을 찾아 침묵 중에 하느님을 만나도 좋을 듯하다.
남양 성모 성지는 매일(월요일은 사무실에 확인) 오전 11시에 미사를 봉헌하며,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 30분 특별고해소를 운영한다. [출처 : 평화신문, 2009년 10월 4일, 남정률 기자, 일부 편집(최종수정 2013년 4월 3일)]